그는 내게 친절하고 나도 그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어느 엉뚱한 순간, 예컨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그가 웃고 내가 웃지 않을 때, 그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부쩍부쩍 다가오는 도로를 바라볼 때, 어째서 이 사람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어째서 제희가 아닌가.그럴 땐 버려졌다는 생각에 외로워진다. 제희와 제희네. 무뚝뚝해 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에
나는 그것을 골똘히 생각해볼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좀 사나운 심정이 되었다. 제희네 부모님은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을까. 빚을 떠안으면서 딸들에게 짐을 지운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을까. 자신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랐지만 딸들의
가난하고 돌보아줄 인연 없는 늙은 자로서 병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비참한 일이 있을까, 생각한다.저자는 이런 죽음을 두고 여태껏 인류가 발명한 어느 무기도 그런 형태의 자연사만큼 사람을 강력하게 비참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늙어 죽는 것을 소망한 것이 아니고 길 가다 우연하게, 느닷없이 죽고 싶다고 써두었다.<양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