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의 누번째 과제는 검잘권 행사에 대한 민주적 동제였 다. 사실 검찰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이다.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어서 기소권을 부당하게 행사하거나 행사하지 않을 위험 이 있다. 검찰의 과거사를 보면 그런 일들이 무수히 많았다. 특히 검 사와 검찰 직원들의 불법 비리는 검찰 스스로 수사하고 기소하지 않 는 한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검찰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힐난했다. 왜 바보같이 권력기관을 다 풀어 주었느냐고. 바보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서 그랬던 것이다. 나는 제왕적 대통령이 되 기를 거부했다. 장관과 공무원들, 여러 헌법기관과 정부기관들이 자 기 책임 아래 자주적이고 자율적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나라를 만 들고 싶었다.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사조직처럼
반면 진보 세력은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이념으로 분화되어 있 다. 돈 있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진보적 시민단체조차도 기업의 지원을 얻지 못하고 언론이 외면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튼튼한 정책연구소도 거의 없다. 그런데 보수의 나라 에서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얕게 뿌리 내린 작은 나무에 너무 많은 과일이 매달린 형국이다. 두 차례의 대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 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 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 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보수 세력은 조직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괴감을 주체할 수 가 없었다. 1988년 7월 임시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참담 한 노동 현실에 대한 분노를 있는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 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
부산에서 우리끼리 토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치의 중심은 서울이었다. 바닥 모를 무력감을 느꼈다. 모두들 분열과 갈등을 두 려워했다. 그래서인지 서로 조심해서 크게 다투지는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분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파', 내심 김영삼 후보로 단일화하기를 원한 '단일화파' , 그리고 백기완 선생 지지파로 나뉘었다. 대통령 선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