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저의 세계관 안에서만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면, 영화가 점점 축소 재생산되어 ‘어쩌고 월드’라고 불리는 세계 속에 갇힐 것 같습니다. 그보다 별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 등과 만나서 만들어 나가는 편이 저 자신도 재미있을뿐더러 새로운 발견도 있습니다. 제 경력상 분기점이 된 이 세 작품 덕분에 저의 수용력이 아주 커진 것 같습니다. 물론 감독의 이름으로 이야기되
무라키 씨는 결코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단정하지 않고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는 그저 현재일 뿐이다>가 “텔레비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쓴 책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텔레비전이란 무엇이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라고 부정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텔레
몇 년 전 이나 초등학교 학급 모임에서 다시 만났을 때 모모세 선생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그런 실례되는 말을 했어요?”라며 완전히 잊고 계셨지만, 저는 그 말을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모모세 선생님은 당시 제가 도쿄에서의 일이 벽에 부딪혀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워하며 이나 초등학교로 도망쳐 왔다는 사실을 느꼈을 테고, 저 자신도 “사실은 도망쳐 온 거예
제가 콘티에 얽매여 있었다는 사실은 허우샤오시엔 감독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깨달았습니다. “테크닉은 훌륭해요. 다만 당신은 촬영하기 전에 콘티를 전부 그렸겠지.” 도쿄 국제영화제 참석차 일본에 와 있던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만났을 때 이렇게 정곡을 찔러서, “그렸습니다. 자신이 없어서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디에 카메라를 둘지는 그 사람의 연
어쨌거나 뉴스든 드라마든 모든 방송은 앞으로 사회의 공유재산으로서 재이용 및 자유로운 접근을 허락해야 하며, 창작자도 시청자도 그렇게 의식을 바꾸어 갔으면 합니다. 방송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함으로써 공공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에게 타자와의 만남과 연대의 장을 제공하고 국가주의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안전망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