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인간-동물 관계는 '가해 행위의 은폐' 와 '죄의식의 소거'로요 약된다.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갇혀 살다가 잔혹하게 도살되어 고기로 나오는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식탁에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이들을 먹는다. 그런 점에서 동물원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위험한 공간 이다. 인간을 바라보는 동물들의 낙망한 눈빛이 동물원 자신의 존재 기 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제돌이와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 내서》에서는 하늘로 승천하는 돌고래 이야기가 나온다. 돌고래들은 사 실 지구에서 두 번째로 영리한 생명체다. 그들은 우주 고속도로 건설로 지구가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한다. 돌고래들 은 수족관에서 재주를 부리며 급히 피하라고 알리지만, 사람들은 영문 을 모른 채 키득거리며 박수만
"산업혁명은 석탄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고래로부터 일어났다." 18~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의 견인차는 늦은 밤 공장과 가정, 거리의 등불을 밝히던 고래기름 덕분이었다. 북극과 태평양 등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진 고래 학살, 광기에 찬 에이헙 선장과 줄달음치는 모비딕이 산업혁명을 일구었다. 근대 모직산업은 양이 없었으면 성장 하지 못했고, 소와 닭은 근대 공장식 축
수족관돌고래의 야생적응은 첫째 죽은 생선을 산 생선으로 교체해 먹이고(산 생선을 잡아먹는 방법을 익힌다), 둘째 점진적으로 인간과의 접 촉을 줄여 홀로 설 수 있게 하고(수족관돌고래는 사람만 보면 쫓아와 먹이를 달라는 행동을 한다), 셋째 차가운 바다 수온에 장기적으로 적응시키는 방 식으로 이뤄진다. 케이코는 한두 살 때 야생에서 잡혀 20년 가까이 수족 관에서 살았기 때문
인투 더 블루 프로젝트 이후 20년이 지난 돌고래 야생방사의 상식은 이렇다. 돌고래는 원래 살던 서식지에 방사해야 한다. 어디에 가야 먹을 게 있고 어디를 피해야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돌고래가 알 수 있 는, 한때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고래는 사회적 동물이다. 고 향에 돌아가야 부모를 만나고 친구와 어울릴 수 있다. 퍼시픽랜드는 그 러나 돌고래의 관리가 어렵거
돌고래가 수족관에서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그러나 퍼시픽랜드의 대표는 취재 과정 중 야생방사 의향을 묻는 질문에 "야생방사하 면 살겠나. 몇 년 동안 먹는 게 길들여졌다. 조련사들이 먹이 주러 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남종영, 2012e)고 대답했다. 먹이 주니까 좋아할 거라고? 사냥 안 하니 편할 거라고? 동물원 운영자들은 가끔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당신이 돌
제주의 남방큰돌고래가 학계에 보고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바닷가에 붙어서 뭉쳐 다니는 돌고래를 알고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돌고래를 '수애기' 혹은 '곰새기'라고 불렀다. 수애기는 '물에 놓는 애기' 라고, 물 수(가) 자를 써서 그렇게 불렀다. 돌고래는 물 에서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낳는다. 새끼와 함께 싱크로나이징을 하며 바다를 건너는 돌고래 가족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