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강하는 『장자』를 어린이용 다이제스트 판으로 엮 은 학급문고 도서를 읽고 있었대요. 장자의 첫 장에는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북쪽 바다에 사는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강하는 당신의 아가미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으로서 이거야말로 이 아이한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지만 그래놓
사람을 바라보는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 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 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아주머니는 너랑 달라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으며 징그럽거나 무섭거나 최소한 낯설다는 말 대신, 예쁘다고 해줬다고.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이게 이상하지 않으세요? 라고 머뭇거리며 물었을 때, 처음부터 숨기고 있었던 노력이 허무할 만큼 그녀는 산뜻하게, 비록 범속한 위로에 불과하더라도 너는 너일 뿐이라는 말로 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주었다고. 그런 걸 보면 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