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탕주(月下?舟)'에서는 자연 속에 사람이 호젓하다. 강에 달빛이 떨어지는 정서를 담은, 또 다른 내가 가 장 좋아하는 글귀로 '월인천강(月印千江)'이 있다.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인쇄'되듯 '찍힌다(印)'라는 표현을 썼다. 달은 부처님의 말씀을, 천 개의 강은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한다. 말은 한 번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남도록, 복제와 대량 생산을 하는 과정이
물질과 자연과 우주를 압축적인 수식으로 통찰한 물리학을 탐구하는 인간의 마음과 이를 예리하게 벼린 함축적인 언어로 포착한 시를 쓰는 인간의 마음이란, 그 본질이 크게 다를까 싶다. / 나 또한 모든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런 단상에 빠진 때가 있었다. 모든 예술은 시요, 우리의 삶이 시이니.
한편 글씨 쓰기란 그 결과가 평면으로만 드러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3차원 공간에서의 운동과 물리 작용이 반영되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수식은 우리 타이포그래퍼들이 자주 간과해 온 종이의 미세한 옆면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종이에 수직한 방향으로 일어나는 잉크와 펜, 그리고 인체의 움직임을 기술하고 있다. / 글씨는 2차원적인 공간, 즉 평평한 종이나 모니터 위에서만
글자에는 '가시성', '판독성', '가독성'이라는 기능이 있다. '가시성'은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힘이다. (...) '판독성'은 글자들이 서로 잘 판별되는가를 가른다. (...) 한편, 긴 글을 읽을 떄 인체에 피로감을 덜 주는 글자체에 대해 '가독성'이 높다고 한다. / 흥과 홍과 훙, 판결서체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판사들끼리만 쓰는 글자체가 있었다니! 그 좋은 걸 자기들끼리만! 이
전문가란 이렇게 사용자 본인도 모르던 피로를 살피고 치유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전체 사회의 감각을 건강하게 회복시킨다. / 사회에 이로운 전문가란, 세상을 치유하는 사람이구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가지고 얼마든지 떠들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유니코드로 지구상의 각종 문자들이 통합되어, 이제 하나의 코드 체계 속에 공존한다. 글자들은 분쟁을 거두고 시대와 지역을 넘어 하나로 모이고 있다. 그래서 한때 '언어의 바벨탑'이 무너졌다면, 21세기에는 유니코드를 통해 이제 '문자의 바벨탑'을 세워가고 있다고도 한다. /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아스키 코드와 유니코드에 대해 짧게 배우기는 했지만, 이것이 '문자의 바
로마자가 1차원 줄 위에 선형으로 글자를 배열한다면 동아시아 문자들은 2차원 칸을 한 칸씩 채워가는 공간 관념을 가졌다. / 유지원의 <<글자 풍경>>이 매력적인 까닭은, 글자를 단순히 미학적이거나 인문학적인 관점에서만 분석하지 않고, 사회/과학적, 공간감적인 이해를 같이 끌어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음악의 악보까지 끌어와서 설명해준다! (138쪽의 문자권별 공책 공간 구획
책은 덮인 표지를 들추고, 긴 시간을 들여 인내심 있게 읽어 내는 능동성을 필요로 한다. 그런 한편 거리의 포스터는 굳이 보려 하지 않아도 시선을 끈다. / 뒤에 나올 '가시성'과 '가독성'의 비교를 차치하고서라도, 글자는 하나의 유기체란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글귀가 어느 장소에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가를 헤아리다 보면 그들의 역할을 구분할 수 있다. 이토록 글자란 것
국경을 넘어도 풍경은 대체로 연속적이다. 언어가 불연속적인 듯 바뀌지만, 국경 지역의 언어는 두 언어가 어느 정도 섞인 경계의 성격을 갖고 있다. 확실하게 불연속적인 것은 도로 표지판의 글자체들이었다. 국경을 넘는 즉시 도로에서 각국이 지정하는 공식 글자체가 바뀐다. / 여행의 풍경을 이루는 건 비단 자연과 사람뿐만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글자들, 그 글자들이 어떤 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