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반복하면서 새롭게 바뀝니다. 한 스텝, 다시 한 스텝, 또다시 한 스텝. 춤 추듯이, 우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 속에서 오로지 그 질문 안에서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소로우의 일기」에서 소로우는 말했습니다. "내 안에 무언 가를 사랑하려는 정신은 분명히 있다. (중략) 어떤 경우에든 나를 지켜 주는 근거는 바로 사랑이다. (중략) 이에 근거해서 나를 만나라. 그러면 나도 강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남이 나를 비난하거나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지체없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사랑하는 나의 정신
그녀의 이야기를 몰랐더라면 아, 나도 「일리아스」를 읽었어, 나도 교양 좀 쌓았어, 라는 뿌듯함만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삶과 책이 만났을때 둘은 더 강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서로 다른 인간의 이름을 부르는 존재라는 것. 동료 인간의 슬픔을 헤아리고 그 슬픔에 경의를 표하는 존재라는 것. 우리 인간은 슬픔과 절망과 고통에 빠져 허우
진정한 위로는 진정한 희망이 그러하듯, 상황을 좋게 보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그래서 위로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고, 타인을 향한 용기이고, (고통의 망각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위로는 기억이 그러하듯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 창조입니다.
게으름은 '자기 자신을 얕보는 정신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남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무시합니다. 이 무시는 말로는 겸손의 모습을 띱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는 할수없어요. 저 같은 인간이 어떻게 알겠어요?" 자기를 무시하는 인간은 속으로 남도 무시하고 싶어 합니다. "너도 별수 없는 인간이잖아."란 말이 바로 그런 겁니다. "너도 별수 없잖아." "인간은 누구나
책 읽는 능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슈발의 이야기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꿈, 나의 관심사, 나를 감탄하게 하는 것, 나를 사로잡는 것이 나를 얼마나 멀리 밀고 가는지 알고자 노력하면 됩니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새롭게 만난 것들, 새롭게 창조한 것들 속에서 잠들기를 꿈꾸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