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간신이 될 사람, 충신이 될 사람은 비슷하게 존재한다. 아니, 원래는 둘 다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신이 권력을 부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부패한 권력이 간신을 만든다. 그렇기에 몇몇을 지목해 책임지우는 것은 사안에 대한 안이한 결론짓기다. 간신 한 명만의 잘못으로 나라가 망한 적은 없다. P.275 중에서
적당히 비겁하고 때때로 정의로우며, 사익 앞에서 공익을 추구 하고자 하는 마음이 흔들리고, 대의를 앞세우지만 개인의 욕망에 굴복하는 것이 평범한 얼굴을 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완용은 공익보다 사익을 앞에 뒀고, 자신이 배운 대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에만 골몰했다. 인간을 불신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사회에 휘감겨 살아가는 사람, 특히나 한국과 같이
인간은 유혹에 약한 존재다. 우리 대부분은 기회주의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태어났다. 그 욕망을 억누르고, 공익을 우선하며. 대의를 위해 인생을 던진 이들을 우린 위 인이라고 부르고 이를 기린다. 역사 속에서 이런 위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사는 수천 년 간 축적된 기록이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지금 주변에서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드물기 때문이다. P.188 중에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선택은 역사는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이상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목숨보다 나 하나의 목숨이 더 간절하기 마련이다. 김질은 그날 그 선택의 대가로 수많은 동료들과 그 가족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자신의 생존과 함께 죄책감을 택했다. 이는 배신자가 떠안아야 할 천형이다. P.169 중에서
권력은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간신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그런 '환경'이 주어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간신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간신은 간신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P.121 중에서
21세기인 현재도 대통령의 친인척을 관리하기 위해 민정수석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근처에는 파리 떼가 꼬이게 되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만 살펴봐도 권력의 속성과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이들 의 행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먼 역사 속 이야기나 독재정권 시절이 아니라 인사 시스템과 검증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
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움직인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능력이 없는데 욕심이 많은 자들은 사회통념상 꺼리는 일들, 예를 들면 신념이나 윤리 ,자존심 등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능력이 없음에도 욕심을 채우려는 이들은 결국 당대의 상식이나 윤리관을 뛰어 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왕의 허락이 없으면 간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간신'의 오명을 뒤집어 쓴 홍국영의 모습이다. 20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그는 간신이란 이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는 간신으로 넘어가기 전에 멈취 세워진 권신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도 간신으로 손가락질 받는 데 대한 책임이 정조에게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