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 어쩌다가 이런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을까? 인류가 사냥과 채집을 하던 시기, 사람과 늑대는 직접 충돌할 일이 없었다. 어쩌다 마주친다 해도 다른 동물들과 비슷한 정도 였다. 잡식동물인 인간과 육식동물인 늑대는 생태적 지위가 달라 경쟁관계가 아니었다. 갈등은 인류가 가축을 기르면서 시작되었 다. 사람들은 야생동물을 힘겹게 사냥하는 대신, 동물을 직접 기 르기 시작
한반도 늑대의 고향은 동북아시아다. 땅이 나누어져 있지 않던 그 옛날 늑대들은 남쪽으로 내려왔다. 대형 포식 동물의 입장에서 볼 때 남한은 섬과 같다. 네이멍구 의 늑대들은 박해를 받아 북쪽 몽골로 옮겨가고 있다. 러시아와 우수리 강을 따라 남하하는 떠돌이가 있다지만 호랑이들의 장벽 에 막혀 정착할 수도 없다. 네이멍구와 압록강 사이에 생태통로 가 마련되지 않는 한, 남과
조선총독부는 1915년부터 이 년 동안, 그리고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십 년 동안 1,369마리의 늑대를 잡았다. 이때는 군인과 경찰을 동원 한 사냥이었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점기 내내 늑대가 포획되었다. 1945년 이후 남은 늑대들이 근근이 무리를 이루어 살았으나, 북 한에서는 1959년 "늑대를 해로운 짐승으로 규정하고 허가 없이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한반도 늑대들의 수난은 일제강
야생에서 늑대는 십오 년쯤 산다. 좋은 환경에서 사육하면 이 십 년까지도 살 수 있다. 두 번 다시 야생동물을 키우지 말아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야생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것 은 죄악이다. 그런 녀석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개처럼 우리와 함께 섞여 지낼 수도 없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 을까.
집에 있는 가축은 몇 마리나 되나. "양과 염소가 삼백 마리 정도, 소가 스무 마리, 말이 열 마리쯤 된 다." 원화는 잠깐 생각하더니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통역을 하던 박 선생이 슬며시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숫자를 부풀린 것이다. 유 목민에게 가축의 수를 묻는 건 큰 실례다. 가난해 보이는 게 싫어 원화는 숫자를 크게 부풀렸을 것이다.
야생에서 늑대는 십오 년쯤 산다. 좋은 환경에서 사육하면 이 십 년까지도 살 수 있다. 두 번 다시 야생동물을 키우지 말아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야생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것 은 죄악이다. 그런 녀석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개처럼 우리와 함께 섞여 지낼 수도 없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 을까.
1939년 5월에서 8월까지 할힌 강을 사 이에 두고 소련 전체주의와 일본 군국주의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노몬한 사건이라고도 알려진 할힌골 전투가 그것이다. 1930년대가 시작되면서 일본 제국주의는 그 정점을 찍고 있었다. 1932년, 일본은 중국 동북지방과 네이멍구 동부를 합병해 만주국이라는 꼭두각시 정부를 세웠고, 이후 1937년 7월에는 중·일 전쟁을 일으켜 중국 본토를
돌도끼가 최고의 무기였던 시대만 해도 사람과 늑대는 먹이사슬의 제일 꼭대기에 함 께 있었다. 화살이 늑대의 심장을 꿰뚫는 시대에도 늑대는 사람 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이웃 무리의 다른 늑대들에게 물려 죽는 경우보다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전까지는 어느 정도 안전했던 거리에서 바로 옆에 있던 동료들이 쓰러졌다. 사람들과
칭기즈칸 시대의 악몽 때문에 청나라는 몽골족을 심하게 탄압 했다. 몽골족의 사상을 개조하기 위해 라마교를 권장했고, 인구 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남을 제외한 아들들은 모두 라마 승으로 보낼 것을 강권했고, 결혼을 금지하는 라마승과 사원에게 특혜를 주었다. 그 결과, 고비사막 이남의 네이멍구에서는 30퍼 센트가 라마승이었고, 그 비율이 50퍼센트가 넘는 지역까지 있 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