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그런 나날들이었다. 나는 언제까지고 이 행복한 날들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그러하듯이, 이미 시작된 비극이 그러하듯이 그런 날들은 계속되지 않는다. 그런 날들은 짧기에 달콤한 것이다. 비극은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고, 내가 해맑게 웃던 그 시점에서 다시 우리에게로 방향을 틀었
[습지의 사랑] 물은 이영을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들은 깔끔하게 자추를 감추었다. 회색빛 세상이 환해졌고, 황량해진 숲과 물가에 일렁이는 담배꽁초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물은 이영이 뒤돌아 숲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후휘 흔들었다. 안녕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의미로.
정현은 교묘하게 날 평가했다. 주로 좋은 말을 먼저 건네며 이전의 차림들을 깎아내리는 식이었는데, 당장 코앞에서 칭찬하는 이를 두고 화를 내기도 뭐한 일이었다. 기분이 좋은 것 같다가도, 돌아서면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전에 입었던 옷들을 다시 입어 보며 어느 부분이 어떻게 별로였는지, 나의 몸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했다. 그러다 보면 이전까지 아무
전공은 조소였는데, 다른 무엇보다 손에 줄 수 있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 도구들의 뾰족한 끝을 보고 있자면 세상의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가를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한 치의 흠집도 없이 놓인 푸딩이나, 고운 두부를 마구 뭉개고 싶어지는 충동과 닮았다. 가끔은 그것으로 내 턱 끝에서 쇄골까지를 주욱 갈라 버리고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