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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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드문 겨울철도 걱정이지만 짧은 기간에 업무가 몰리는 여름철도 가시덤불 위의 여정이다. 혓바늘이 돋고 입술 가장자리가 찢어지고 관절과 근육은 제짝이 아닌 것처럼 제각기 겉돌며 덜걱거린다. 특히 육체에서 가장 왜소한 손가락은 마디마디 저리고 쑤신다. 비타민과 항생소염제, 피로 해소제를 섞어서 들이마신들 이미 시들어진 꽃에 물만 성실하게 갈아 주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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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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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고를 뉴스로만 접하는 평범한 시민에겐 생소하겠지만 범죄로 부당한 피해를 입은 이를 보호하고 도움을 주는 취지로 유혈 상해 현장의 특수청소를 지원한다. 예전에는 각 지방검찰청에 속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주로 맡던 일을 언젠가부터 경찰청 인권보호 담당관의 주관하래 전국 지방경찰서도 동참한다.우리를 부른 자가 경찰이든 검찰이든 하느님을 모시든 부처님을 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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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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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현장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대개 표정이 얼어붙어 있다.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들 우리를 부른 지방경찰청 청문감사실의 행정직 경찰들과 사건이 일어난 주소지 관할 파출소의 현장직 경찰 등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들. 한날 한자리에 모인 모든 이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고 싸늘하다. 피를 닦으러 온 우리 청소부들도 현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야 사건과 관련없는 한담을 주고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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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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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주인이 홀로 죽고 개가 그 곁을 맴돌며 숱한 피의 발자국을 남긴 방의 모습도 떠올랐다. 언젠가 보았던 그 검붉은 발자국을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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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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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고유한 제사 음식이 있는 것처럼 죽은 뒤에 민간 처방도 지방색이 있는 것 같다. 남해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을 달래겠다며 톳인지 모자반인지 알쏭달쏭한 마른 해초를 태웠다. 산등성이 아래 비옥하고 널따란 농경지로 둘러싸인 농가에서 마른 쑥을 태우는 것은 흔한 일. 악취를 잡고자 얻어 온 커피의 원두찌꺼기를 종이컵에 담아서 원룸 건물을 계단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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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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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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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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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음식을 치우는 일은 가볍고 쉬운 것, 죽은 사람에 남긴 육체 조각과 혈흔을 없애고 냄새나는 살림을 채우는 일은 무겁고 엄숙한 것이라고 누가 선을 그을수 있는가. 특수청소를 하는 것은 남다른 일, 특별하고 어려운 행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처치일 뿐 그 일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을 누군가 대신하는 것뿐. 그래서 세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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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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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폐색전증 같은 허파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이삼일만 내버려두면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체가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잃은 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 놓는다. 인간의 육체는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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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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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가 인쇄된 파란색 사인 보드를 찾을 필요도 없이 지독한 냄새가 먼저 마중 나와서 내가 가야할 반지하 주택 앞으로 친히 안내했다. 현관문을 열고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올려 보았지만 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요금 미납으로 인한 전기 공급 중단이라면 새삼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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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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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바닥에는 파리 성충으로 변태하지 못하고 생장을 멈춰버린 붉은 번데기들이 정월을 대보름 날의 팥알처럼 잔뜩 흩뿌려져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에 밟혀서 우두둑 하고 알갱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동물이 죽으면 어김없이 파리들이 꼬이고 그 죽음을 양분 삼아 번식하며 수많은 생명체를 부화시킨다. 사람이 죽은 것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구 생태계에서 구더기이야말로
YES마니아 : 플래티넘 t*****i 2024.06.01. 신고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