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건강을 상과 벌의 문제로 보는 관점은 능력주의적 생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운이나 은총의 의미는 고려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전적으로 우리 운명을 책임진다고 여긴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취한 선택과 삶의 태도에 대한 상 또는 벌인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은 자수성가와 자기 통제의 윤리를 확고히 찬양하며,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질 길을 열어준
입시 문제에 사회가 목을 매는 현상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점점 불평등이 늘어난 데서 기원한다. 누가 어디에 발을 들여놓느냐에 의해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다.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나머지 몫을 빼앗아감에 따라, 명문대에 들어갈 경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더 커졌다.
극성 학부모의 등장은 능력주의적 경쟁이 과 열된 시기와 일치한다. 사실 '부모 노릇하다 parent'라는 단어는 1970년 대에 와서야 동사로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자녀가 공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부모의 책임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지게 되던 때다.#리딩스타트
능력 주의의 폭정을 극복한다는 게, 능력이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배분에 아 무 역할도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대신 그것은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정상에 오르는 사 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의문을 제기함 을 뜻한다. 그리고 능력이라는 말로 옹호되어 온, 그러나 분노를 퍼뜨 리고 정치에 해를 끼치며 사회를 갈라놓는
능력주의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스트의 저항 은 공정성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명망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저항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활성화한 슬픔과 분노를 제대로 보고 따질 수 있어 야 한다. 이는 정당한가, 잘못되었는가? 슬픔과 분노가 정당하다고 한 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찌해야 하는가? #리딩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