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루페의 성모가, 즉 인디오들이 굳이 토난친이라고 부르는 그 여자 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성모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 다. 대부분의 인디오들은 성모 얘기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삼위일체 같은 핵심 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 들어버렸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나 성인 들을 자꾸만
중국인 허훼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중국에서 사람을 꾀어 사 들이다가 소문이 나빠져 응모자가 없자 이제는 조선에서 노예를 매수하고 있다. (······) 모두 조각조각 떨어진 옷을 걸치고 다 떨 어진 짚신을 신었으니 이곳 본토의 남녀가 보고 비웃는 소리는 가 히 듣기 거북할 지경이다. 연일 큰비 속에 한인이 여러 어저귀 농 장으로 흩어져 일할 때 부인이 아이를 팔에 안고 혹은 등
메리다에 살고 있던 중국인 허훼이는 메리다 시내에서 얼마 떨 어지지 않은 곳에서 조선인 이민자들과 조우했다. 그는 그때의 충 격을 적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되는 중국계 신문인 문홍일보에 보냈다. 문홍일보에 실린 글을 읽은 미국 유학생 조영순, 신정환은 서울의 기독교청년회 앞으로 급히 편지를 써 날렸다. 청년회의 젊 은 전도사 정선규는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황성신문
하와이의 플랜테이션에는 형식적으로라도 의사가 배치되어 있었지만 유카탄의 아시엔다엔 의사는커녕 변변한 약국 하나 없었다. 사람들 머릿속엔 오직 하나의 길밖에는 없었다. 세 살 먹은 어린애까지 개미처럼 일해 아귀처럼 돈을 모아 계약이 끝 나는 대로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야인들은 가끔 부지런히 일하는 조선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 았다. 그들은 돈을 벌어 돌아갈 곳
유카탄 반도엔 강이 없기로 유명하다. 반도의 대부분이 낮고 평 평한 석회암지대라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질 않는다. 큰 나무도 많지 않고 키가 작은 잡목과 덤불 들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물 은 지하 수십 미터 아래의 우물에서 길어올릴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마야의 고대 유적지 근처에선 아직도 직경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차라리 지하수 연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유카탄 반도는 남한의 두 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한반도 전체의 면적보다는 조금 작다. 동쪽으로 쿠바와의 사이에 유카탄해협을 두 고 있다. 유카탄해협은 카리브 해와 멕시코 만을 이어주고 있는데 멕시코 만류가 빠른 속도로 북서쪽으로 흘러나간다. 남쪽으로는 과 테말라, 남동쪽으로는 벨리즈가 유카탄 반도의 일부를 점하고 있 으며, 영국 해군과 해적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벨리즈
에네켄은 멕시코가 원산지다. 사람 키와 비슷한 크기다. 나무처 럼 단단한 짧은 줄기에 잎이 달린다. 육질 잎은 두툼하다. 끝 이 날카로운 바소 꼴로 흰색이며 길이 1~2미터, 가운뎃부분의 너 비가10~15센티미터이다. 짧은 줄기에 여러 장의 잎이 빽빽이 난 다. 10~15년이 되면 3미터 정도의 꽃줄기가 뻗어나와 꽃이 핀다. 꽃이 핀 뒤 말라 죽는다. 잎은 일 년에 30장 정도 늘어나고 한
극심한 노동자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주들은, 스페인어를 못해 도주의 우려도 없고 외교관이 주재하지 않아 간섭의 여지도 없는 조선인들에 비교적 후한 값을 쳐주었다. 선박용 로프의 원료로 쓰이는 에네켄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서구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으로 말미암은 화물 운송량 증가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었다. 에네켄의 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