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외서의 물결에 휩쓸려 차츰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적인 아동 문학의 명맥을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들이 일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동화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우리 것이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가슴 속에 재미와 감동을 전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현덕 선생님의 이 네 편의 동화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귀한 보석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 노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사셨던 고향 마을의 어느 한 구석에서 지금이라도 막 달려나올 것 같은 그런 평범한 개구쟁이 소년입니다. 노마에게는 기동이, 똘똘이, 영이라는 세 명의 단짝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이 펼쳐나가는 순진무구한 동심의 이야기들이 전편에 걸쳐 아주 소박하고 해학적인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큰 소리'... 노마와 기동이는 서로 자신이 가진 재주를 자랑합니다. 재주라고 해봤자 물구나무서기, 뜀뛰기 같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지만, 둘은 서로 잘났다고 목청을 높이지요. 그런데, 똘똘이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똘똘이는 전봇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그만 큰 소리를 떵떵 치고 맙니다. 조그만 똘똘이가요... 친구들은 그 재주를 보여달라고 난리입니다. 정말 큰일났습니다..., 만약 그 순간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가엾은 똘똘이는 얼마나 난처했을까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똘똘이처럼 친구들 앞에서 지기 싫어서 악의 없는 허풍을 쳐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그 때의 작은 승리감, 곧 닥쳐오는 불안감, 온갖 궁리들이 교차하는 심정을 전 아직도 기억합니다. 현덕 선생님 역시 그런 동심을 잘 알고 계셨나 봅니다. 그러니까 때마침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를 통해 우리들을 안심시켜 주신 게 아닐까요.
두 번째 이야기, '암만 감아두'...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노마는 방 안에서 어머니와 실을 감습니다. 기동이, 똘똘이, 영이가 차례로 노마를 부르지만 그 놈의 실타래는 왜 그렇게 길기만 한 지 도대체 암만 감아도 끝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노마에게 조금만 참으면 귤을 사주겠다고 하시는데, 노마는 이제 귤도 싫고, 실타래는 더더욱 싫습니다. 노마를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와 어머니께 흥흥 투정을 부리며 안달하는 노마의 모습은 정말 우리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반복되는 흥겨운 리듬의 글 속에서 정말 빙글빙글 감아지는 하얀 실타래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세 번째 이야기, '둘이서만 알고'... 어느 날 기동이는 노마와 영이가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둘이서만 알고, 둘이서만 아주 정답게 말이에요. 기동이는 얼마나 샘이 나고, 얼마나 쓸쓸하던지, 노마와 영이를 뒤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노마네 집도 아니고, 이발소도 아니고, 그 둘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요? 바로 어머니가 배를 사시는 곳에 가는 길이었던 거예요. 단짝 친구들 사이의 작은 오해가 진솔하게 그려져 있는 따뜻한 이야기랍니다. 그렇습니다, 우정은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꿀배처럼 그렇게 달콤한 것이지요.
마지막 이야기, '작은 어머니'... 초가집 문지방에 앉아 일 나가신 어머니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파랑 치마 영이와 다홍 두루마기 아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늦도록 돌아오시지 않자 아기는 쓸쓸해합니다. 어머니가 일부러 아니 돌아오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영이는 보채는 아기를 조금만 더 참으라며 달래어 줍니다. 하지만, 집 가까이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혹시 어머니인가 하고 조바심쳐지는 마음은 영이도 어쩔 수 없답니다. 영이도 아직은 엄마 품이 그리운 어린 아이일 뿐인 걸요. 하지만, 동생 앞에서 영이는 그런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어요. 동생에게 영이는 '조그만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영이는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투덕투덕 궁둥이를 두드려줍니다. 이런 영이의 모습은 바로 지난 날 힘들었던 시절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입니다. 가난한 산동네에서 동생을 업은 채 마을을 내려다보는 영이의 뒷모습이 가슴 한 구석을 짜~안하게 아프도록 만들었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화입니다.
월북 작가 현덕이 그려내는 이 네 가지 이야기 속에는 요즘의 동화들에서 볼 수 있는 어떠한 화려함도, 꾸밈도, 환타지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동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담겨 있지요. 멋들어진 수식어와 호화로운 그림, 놀라운 이야기 속에 묻혀버리기 쉬운 순수한 동심의 세계 말입니다. 저는 이 동화는 작가가 머리로 쓴 글이 아니라 마음으로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향을 잃고 헤매이는 우리 어린이 문학의 해답을 현덕의 동화 세계에서 찾아보면 어떨까요? 취학전 유아들과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동화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아기는 더욱 고개를 떨어뜨리고 입에 손가락을 물고 아주 쓸쓸한 얼굴을 합니다. 하지만 조그만 어머니, 영이는 더욱 어째서 어머니가 늦도록 아니 돌아오시는지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광주리에 가득히 담은 귤 사과 배, 그 수효의 갑절보다도 또 한 갑절만큼 그만큼 이집 저집으로 다니시느라고 늦는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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