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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진정한 학제성이 있었던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진정한 학제성이 있었던가?" 내용보기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온 학생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때 읽었던 버트란트 러셀의 이 나에게 주었던 내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잊지 않고, 철학과를 다니고 있다.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은 작년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얼핏 철학과 인문학을 선택한 것이 내 삶의 근원적인 실수가 아니었는가하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난 선배들과 후배들의 틈에 끼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진정한 학제성이 있었던가?" 내용보기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온 학생이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때 읽었던 버트란트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이 나에게 주었던 내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잊지 않고, 철학과를 다니고 있다.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은 작년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얼핏 철학과 인문학을 선택한 것이 내 삶의 근원적인 실수가 아니었는가하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난 선배들과 후배들의 틈에 끼여 바쁜 생활을 보냈고, 그 공부의 시간들에 이 불안감은 어느새 한켠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난 이 책을 몇 달전 다시 읽었을 때, 이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작은 논문을 하나 준비하던 차에 이 책을 다시 들줘보았는데, 그들의 태도는 너무나 보수적이고 뻔했던 것이다. 다시말해, 그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학문구조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이 둘의 관계가 본질적인 차이, 즉 세계에 내재하는 차이인 양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아니 적어도 그들이 문제시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 자크 라캉, 과학철학과 인식론적 상대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자연과학은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환원론적이고 조작적인 문제틀을 가지고 있었다. 즉 관찰자(실험자)의 위치는 배제된 채, 아니 그렇게 함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였다. 예컨데, 통제변수, 종속변수나 실험집단, 통제집단과 같은 용어들이 그 특징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애초부터 이 관찰자를 주체의 위치로 설정하여 여기에서부터 모든 문제를 시작하였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악신의 논리에 의해 세계가 한갖 꿈이 아닐지 모른다고 회의하였고, 칸트는 인식주관에 의해 이 세계가 구성된 것은 아닐까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자연과학은 20C에 들어서면서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러셀 역설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등에 의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젠 관찰자의 위치가 객관성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적사기>에는 이러한 지성과 통찰이 없다. 그들은 다만, 근대의 자연과학이 규정한 틀 안에서 객관성을 논하였고, 그것만이 유일한 지식의 기준인양 떠들어댔다. 그러나, 철학은 그렇게 만만한 학문이 아니다. 즉, 철학은 자연과학이 설정한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문시하는 메타학문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학제성이 분명 가능하며, 그것은 동형성 관계(isomorphy)나 유추, 혹은 은유가 아닌, 교환가능성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실재로 나는 논문을 완성하면서 그렇게 적어내려갔다. 지금 책을 다시 펼쳐읽어 보아도, 자크 라캉에 대한 그들의 폄하는(27p)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e****l 2001.08.28. 신고 공감 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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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 철학 몰라도 기죽을 거 하나도 없다!
"프랑스 현대 철학 몰라도 기죽을 거 하나도 없다!" 내용보기
영화를 보고 나오면 대부분의 경우 재미있다, 재미없다 류의 이분법적 진단이 주를 이루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귀찮고 피곤하면 자기 감정을 굳이 정리하려 들기 보다는 그저 감정 자체를 쾌락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최고인 경우가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저 단순히 "재미 있다, 없다" 정도로 재단할 수 밖에 없는 심플함이 문제가 되는 것은
"프랑스 현대 철학 몰라도 기죽을 거 하나도 없다!" 내용보기
영화를 보고 나오면 대부분의 경우 재미있다, 재미없다 류의 이분법적 진단이 주를 이루기 마련이다. 물론 이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귀찮고 피곤하면 자기 감정을 굳이 정리하려 들기 보다는 그저 감정 자체를 쾌락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최고인 경우가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저 단순히 "재미 있다, 없다" 정도로 재단할 수 밖에 없는 심플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 한 편에 걸쳐 프로이트에서 라캉을 거쳐 보드리야르, 데리라, 들뢰즈까지 동원되는 평론가들의 악취미인 것이다. 꼭 그렇게 자기 사유를 빗댈 방어막이 필요했던 것인가? 물론 우리 나라의 현대 철학이 외국의, 그것도 프랑스 현대 철학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꼭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실제 소비 대상인 대중들의 정서를 무시하는 처사로만 일관하는 것에는 어쩐지 "지적 사기"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지적 사기="">는 바로 이런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난해한 용어와 현란한 수식어를 동원 프랑스 현대 철학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수많은 현학주의자들에게 읽혀져야 할 따끔한 이론서(?)이다. 라캉이나, 들뢰즈, 가타리 등의 현대 프랑스 철학을 이름만으로도 대표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과학적 오류를 요목 조목 지적한다. 문장을 조작하고 앞 뒤 문법체계의 적확한 사용법조차 모른 채, 정신분석학적 사기를 자행했다는 라캉을 시작으로, 뜻도 모르는 과학용어들을 무차별적으로 남발한 가타리의 사기극을 고발한다. 물론 이러한 책들이, 전통과 사유의 복잡한 구조를 파헤치지 못하고, 단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과학적 오류만으로 그네들의 노정을 비판한다는 비난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지식인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파파라치적 출판 상업주의에 기댄 점도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숱하게 난해한 저서를 고민 고민하며 읽다가... 남들 다 이해하는 듯한 이론을 자기만 모르는게 아닌가.. 하고 괜한 낙심에 빠져 있는 순진한 독자들에게 진실을 전해주는 역할은, 이러한 비난을 일거에 진압하고도 남는다. 프랑스 현대 철학! 몰라도 기죽을 거 하나도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음... 또 하나의 박학한 이론이군.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그렇다고.. 이해가 안 간다고 내 사유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게 확실해. 저 녀석들이 잘 이해를 시키지 못할 뿐인거야!" 하는 짐짓 치기어린 철학적 여유가 생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프랑스 현대 철학! 몰라도 기죽을 거 하나도 없다!"
t******k 2000.01.28.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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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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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써 도대체 알아먹을 수 없는 이야기들 때문에 애를 먹을 때가 많았다. 1학년때야 내가 무식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그 뒤로 시간이 지나면서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순전히 내가 무식해서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있었던 반면,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책들이 있었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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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써 도대체 알아먹을 수 없는 이야기들 때문에 애를 먹을 때가 많았다. 1학년때야 내가 무식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그 뒤로 시간이 지나면서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순전히 내가 무식해서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이 있었던 반면,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책들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후자의 책들,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속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현학적인 말장난에.... 그들 모두가 가짜이고 사기꾼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관계도 없는 주변 이론들을 나열해가면서 자신의 현학을 과시하는 태도는 정말 나쁘다. 크로체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어떤 것을 잘 안다는 것은 그것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p******6 2004.09.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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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거나 혹은 웃기지도 않거나...?
"웃기거나 혹은 웃기지도 않거나...?" 내용보기
이 책의 이름에 대해서는 3년쯤 전에 접했고, 사실 이 책이 발간된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으니까...내가 이 책을 읽은건 늦어도 한참 늦은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이미 이 전에 '두문화(스노우)'를 읽었을 때 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물리학도가 신랄하게 인문학, 그중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계열을 비판하는 문장문
"웃기거나 혹은 웃기지도 않거나...?" 내용보기
이 책의 이름에 대해서는 3년쯤 전에 접했고, 사실 이 책이 발간된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으니까...내가 이 책을 읽은건 늦어도 한참 늦은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이미 이 전에 '두문화(스노우)'를 읽었을 때 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물리학도가 신랄하게 인문학, 그중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계열을 비판하는 문장문장이 웃음으로 읽혀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책 후반부에서 앨런소칼은 '두문화'를 언급하고 넘어간다. 그렇다. 아까 위에 포스트모더니즘을 따옴표안에 넣은것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 책에대한 우리나라 학계의 반응을 보여주는 비평문 하나가 떠올라서였다. 그 글에서는 '지적사기'안에서도 볼 수있는 방법중의 하나, '너희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 뭔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생각을 근거로 '지적사기'를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거야 말로 '지적사기'를 '사기'치려는 수작이 아닌가? '지적사기'내에서도 '두문화'가 언급되어지지만, 내 생각엔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인문학을 굳이 겨냥하고 씌여진게 아니다.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은 소칼의 패러디 논문의 제목중 일부처럼 '경계'와 '침범'이다. 소칼이 경계를 누그러뜨려보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썼는지, 아니면 침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쓴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건 이 책은 이미 스노우가 '두문화'에서 지적했던(그가 저서에서 밝혔듯이,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구나 알고있던),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깊은 골에 관한 이야기다. 기술과학은 이제 일반사람의 관심분야에도 많이 파고들어와서, 간간히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과학분야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전문과학 종사자들의 게으름도 비판의 대상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무단으로 경계를 침범한 '도덕불감증환자들'을 단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책에선 그 범죄자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한번 꼬아놓은 계략으로, 사실은 과학분야의 관계자들에게 과학의 대중화를 하지 않은 죄를 물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의도로 생각되어지지만, 여하튼 (나에겐) 웃긴 책이다. 노파심에 하나 더 쓰자면, 소칼은 책에서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밝혔다. 이 책이 절대 인문학(포스트모더니즘계)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은 아니라고. 정신분석이든 심리학이든 그들 사상의 기본에 대한 조롱이 아니다. 소칼의 공격은 그들의 사상이나 이론을 설명하는데 쓰는 어처구니 없는 과학용어에 대한 것이다. 기본 이론이 훌륭하면 뭐해? 그걸 잘 풀어놔야지. 아니, 어렵게 풀어내고 싶으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왜 하필 과학 용어를 끌어들여? 안그래도 일반인들하고 멀어진다고 얻어맞기도 하고 반성도 하고 있느라 바쁜데? 끝으로 소칼이 권하는 책이나 저자는 나와 같은 취향이라면 꽤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아서 권하고 싶다. 언어학에선 스티븐핑커의 '언어본능'을 추천~
m******n 2002.08.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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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겠는가 내 능력 밖의 일인데
"어찌하겠는가 내 능력 밖의 일인데" 내용보기
이 책을 처음에 보고 난 이후에 느낀 감정은 한 마디로 통쾌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으로 적어도 한 번쯤 고통을 받아본 사람들은 이 책이 주는 통쾌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게 과연 진정 프랑스 사회학 탓인지 아니면, 잘못된 번역 탓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이 책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프랑스 사회학을 과학이라는 잣대를 사용해서 그들의 이론을 부수고 있다. 그 내용
"어찌하겠는가 내 능력 밖의 일인데" 내용보기
이 책을 처음에 보고 난 이후에 느낀 감정은 한 마디로 통쾌하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사회학으로 적어도 한 번쯤 고통을 받아본 사람들은 이 책이 주는 통쾌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게 과연 진정 프랑스 사회학 탓인지 아니면, 잘못된 번역 탓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이 책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프랑스 사회학을 과학이라는 잣대를 사용해서 그들의 이론을 부수고 있다. 그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는 판별이 불가능하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프랑스 사회학에 대한 지식도 매우 빈약하고, 검증의 수단이 되는 각종 과학에 대한 지식도 역시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도 이 책의 일부분만 이해가 가능했고, 본격 비판 쪽은 여러 번 시도했으나, 내 능력 밖이라는 것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어느 쪽이 사기꾼일까 하는 호기심이 없지는 않지만, 어찌하겠는가 내 능력 밖의 일인데..
p*****6 2003.02.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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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현학적 조류에 대한 고마운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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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특히 프랑스 철학) 조류의 큰 특징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일반인들은 아마 난해성을 꼽을 것이다. 미셸푸코, 자크라깡, 데리다로 이어지는 난해한 현대철학의 지적 계보는 철학에 자연과학을 무작위로 채용함으로써 철학을 일반인들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학문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철학은 학문의 상아탑안에서 자신들만의 코드로 논의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일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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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특히 프랑스 철학) 조류의 큰 특징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일반인들은 아마 난해성을 꼽을 것이다. 미셸푸코, 자크라깡, 데리다로 이어지는 난해한 현대철학의 지적 계보는 철학에 자연과학을 무작위로 채용함으로써 철학을 일반인들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학문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철학은 학문의 상아탑안에서 자신들만의 코드로 논의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일반인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쳐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가를 물었을 때, 전자를 대답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사회 변혁이라는 철학의 사명을 생각할 때 난해성은 일반대중에게 다가갈 수 없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저자는 수학, 자연과학을 무작위로 인용하면서, 일말의 논리적 상관관계조차 제시하지 않은 여러 철학자들의 현학적 태도와, 자연과학의 허술한 이해에서 오는 지적 무지를 날카로운 명쾌한 문장과 논리로 시원하게 파헤친다. (물론 저자의 공격대상은 철학자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의 비논리와 무지이다.) 지적 우월성으로 대표되는 난해한 현대철학자의 우상을 파괴하는 통쾌한 현장을 보면서 시원하면서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건, 저자의 학문의 정직성, 논리성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이리라
m******g 2004.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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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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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칼이 말해주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그 동안 흠모해 마지 않던 거장들의 책 일부분을 ‘불신’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제는 남는다. 그것은 거장들의 책과 ‘지적 사기’라는 책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같은 이름난 지식인이 과학적 개념을 써먹거나 과학에는 문외한인 독자들 앞에서 이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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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칼이 말해주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그 동안 흠모해 마지 않던 거장들의 책 일부분을 ‘불신’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제는 남는다. 그것은 거장들의 책과 ‘지적 사기’라는 책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같은 이름난 지식인이 과학적 개념을 써먹거나 과학에는 문외한인 독자들 앞에서 이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개념의 정확한 뜻조차 밝히지 않고 전문 과학 용어를 쏟아붓는 식으로 과학적 개념과 어휘를 남용하기 일쑤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저자들의 책 전체가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 대한 판단을 우리는 유보하련다.’ (저자의 말 중)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자신들의 횡설수설을 정당화 한다고 용감히 비판하는 소칼의 저서는 난해한 철학서를 들출 때마다 열등감을 느꼈던 독자들을 후련하게 해주는 책일 것이다…’ (출판사 서평 중) 우리의 혼돈은 우리의 것만은 아닌 듯하다. 소칼의 의도는 거장들의 ‘과학적 지식’이 횡설수설이라는 것에 한정된다. 하지만, 출판사의 서평은 거장들의 지식 ‘그 자체’를 횡설수설로 간주한다. (과감하게도!) 소칼은 틈날 때마다, 과학의 순수성과 엄밀성 이외의 의도는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독자들에게는 (심지어 역자와 출판사에게까지) 그 이상의 의도로 전달, 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이 책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명확히 드러난다. 소칼이 말하는 과학적 사실 ‘자체’에 대해서 ‘그가 옳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과학적 사실이 말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대주의자들’은 안전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유치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예, 누군가 소칼의 연구실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가 2.5초만에 자유낙하하여 죽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소칼과는 무슨 관계인지, 당시 누가 있었는지, 보험금은 누가 받게 되는지에 신경 쓸 뿐이다. (물론, 관심이 없다는 말과 그것이 진리가 아니다라는 말은 별개이다.) 조금은 다른 측면이지만, 거장들이 인용하는 각종 과학 지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칼의 지적이 모두 옳다고 수긍하는 것과는 별개의 권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권위가 ‘과학지식의 남용’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닌 이상, 또한, 그들이 ‘과학지식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 사기혐의를 들씌우는 것은 과도한 반응이 아닌지? 설혹, 과학지식이 거장들의 권위유지를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만 매달려 생경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소칼이 일으킨 ‘패러디 소동’의 의미는, 사회과학계의 거두들이 과학적 지식을 남용하여 ‘과분한 지적 권위’를 얻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폭로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권위가 있는 ‘소셜 텍스트’를 미끼로 삼아야 했다는 것 자체가 ‘과학적 순수성’만의 기준은 부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패러디는, 기존 학계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기존 학계가 ‘굴러먹는’ 방법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는 인정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적 사기’는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다름아닌 엄밀성과 순수성이라는 가치이다. 저자의 말대로, 막연한 권위에 매달려 그들의 천재성과 자신의 우둔함을 비교하는 것보다 순수성과 엄밀성이라는 가치에 매달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당위인 것이다. 그럼에도 남는 씁쓸함은 무얼까. 바로, 이 책이 ‘보여주려 하는 것’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아주 어긋나 있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그 지점에서 과학적 사실과 중첩된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k***n 2000.06.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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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으로 풍요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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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개념들을 마치 다 아는 양 모든 것에 적용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게 많아 보이려고, 그래야 그 사람보다 내가 우위를 점령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감정들로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앎의 부분을 더 크게 포장해 놓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우스워서, 아니, 사회적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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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개념들을 마치 다 아는 양 모든 것에 적용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게 많아 보이려고, 그래야 그 사람보다 내가 우위를 점령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감정들로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앎의 부분을 더 크게 포장해 놓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우스워서, 아니,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몰랐던 부분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있을 때 우리의 자세는 겸허하게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아니다. 질투라면 질투를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앎 자체를 인정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인가?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들, 이런 감정들이 인간관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칼은 미국의 물리학자이다. 그는 프랑스의 인문철학자들이 자신들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 과학개념을 그들의 글쓰기에 마구 사용하고 있다며 이를 사기라고 비판하였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권위에의 도전일 수 있었기 때문에......이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그의 말에 뒤질세라 그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그 용어를 사용한 상징적 의미를 무지한 소칼은 알지 못한다고 말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있다. 소칼,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들......서로 상대방의 학문에 관심을 기울이는 여유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한 건 '자기성찰'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해도 한 번쯤 내가 걷는 이 길이 올바른 길인지 돌아봄 직 한데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에만 바쁜 사람들이었다. 반성은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줌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여 줄 수 있다. 여기서 소칼이 프랑스 철학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여, 그들의 생각에 자극을 준 자체는 참 의미있는 일이지만,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일단은 상대방을 내 아래로 낮추려고 하는 식의 사회분위기는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성과 입장바꿔 생각하기, 상대방의 앎도 내 앎처럼 소중히 여기고 받아들이고 서로의 앎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지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가르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의 앎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이로부터도 충분히 교사는 배울 것이 있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반성해나가는 가운데 앎을 주위와 공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도록 해야 한다. 타인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지적으로 부자가 되는 법을 익혀나갈 수 있게...*^^*
s***2 2003.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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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매한(?) 민중들만 당하는 지적 사기?
"우매한(?) 민중들만 당하는 지적 사기?" 내용보기
두명의 물리학자들이 펼쳐내는 프랑스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의 지적 남용사례 모음집... 지식이란 것은 참으로 오묘한 구석이 있다.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글을 쓰면, 말이 안되는 글일지라도 그럴듯해 보이고, 그에 대한 반론도 적은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옅은 지식일지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왠지 대단해 보인다고 해야할까? 지식 속에 묻혀있는 오용된 지식들
"우매한(?) 민중들만 당하는 지적 사기?" 내용보기
두명의 물리학자들이 펼쳐내는 프랑스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가들의 지적 남용사례 모음집... 지식이란 것은 참으로 오묘한 구석이 있다. 사회의 저명한 인사가 글을 쓰면, 말이 안되는 글일지라도 그럴듯해 보이고, 그에 대한 반론도 적은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옅은 지식일지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왠지 대단해 보인다고 해야할까? 지식 속에 묻혀있는 오용된 지식들... 그것들을 찾아내서 까발린(?)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쁜 책 표지와 산뜻한 제목에 이끌려 샀던 책이지만, 물리학 이론들에 대한 체계가 별로 잡혀있지 않고, 이 책에 소개된 프랑스 사상가들의 업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다가오고 통쾌하게 생각되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에 소개된 사상가들은 이글을 읽고, 어떠한 기분이었을까...? 물리학에 대한 이해나 프랑스 사상가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심풀이 책으로 적극 권장하는 책!!! 그리고 나같은 문외한 들에게는 '이러한 일도 있구나!'라는 세상구경 차원에서 한번쯤 권해볼 만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무튼 아인슈타인의 전략을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지만 설명법을 내실 있게 분석하려면 그 바탕에 까린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아인슈타인이 글에 들어 있는 표현기법과 물리학의 내용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투르의 분석은 아인슈타인이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a*******e 2001.0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