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신대 출신의 목회자 중 최고라고 생각된다. 이중표목사님의 별세신학은 대학시절에 연구되고 생각되었으나 당시에 학교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한 관계로 빛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별세신학은 삶의 신학이라고 생각된다. 죽음을 이야기 하시는 예수님의 예언과 같은 말씀이 내 삶에 적용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집도 옷도 삶도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을 비울수 있는 단계가 될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행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가졌으나 불행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라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러나 살아가고 있는 동안은 내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
저자는 일찍이 자신의 신학을 별세 신학으로 정리했다. 설악산 등정에서 쓰러진 벼락맞은 나무를 보고 자신도 벼락맞아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별세 신학은 결국 매일 죽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전재한다. 살아있기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맹목적인 죽음은 결코 아니다. 이 죽음은 세속적 자기 포기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안에서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주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육이 죽는 것이다. 육은 죽고 영이 사는 것이다. 죽어야 산다. 내가 죽을 때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신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별세 신학은 결코 죽음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별세 신학이 바탕이 된 신앙생활은 즐겁고, 목회는 행복한 목회인 것이다.
매일 죽는 것, 즉, 별세는 기독교 신앙의 한국적 표현이다. 이것은 패밀리 신학, 즉 가정 신학이요, 효 신학이요, 안방 신학, 부부 신학이다. 곧 별세신학은 기독교의 토착화요, 전통 윤리(효)의 기독교 신학화 임을 볼 수 있다. 내가 죽어야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배우게 되고, 어머니의 젖가슴을 통해 유방 목회의 비밀을 깨달으며, 안방의 비밀을 통해 신부 사랑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수를 알게 된다. 저자는 가정의 신비를 별세 신앙의 아름다움으로 풀어낸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 삶은 신비입니다. 살면 살수록 절감하는 인생의 비밀입니다. 한 사람이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성장하며 가정을 이루고 소명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굽이굽이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자취가 숨어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사건, 그냥 지나칠 평범한 일조차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거기서도 하나님은 사랑과 섭리의 손길로 붙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한 인간의 삶을 창세 전으로부터 눈부시게 귀한 것으로 계획하며 예정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삶의 여정을 하나하나 진솔하게 기록해나가면서, 그 여정에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온 저의 발자취를 보았습니다. 제 인생의 발자취는 하나님의 손이 이끌어오신 것이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고백할 뿐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놀라며 이 책을 쓰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그 집요한 사랑에 감격하여 울고 또 울었습니다. 두렵고 떨릴 뿐입니다. 부잣집이 아니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귀부인 어머니의 교양과 여유로운 돌봄 가운데 자란 것이 아니라 배우지 못하고 가난에 찌든 어머니의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