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심의 여지도 없이 문화는 그 시대의 반영이다. 문득 정호승님의 시집을 하나씩 꺼내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호승님 뿐 아니라, 지난 시절 나를 몰두하게 만들었던 작가의 시와 음악과 영화와 그림이 더이상은 예전과도 같은 실재적이면서도 진한 비애나 분노나 저항을 담고 있지 않구나 라는... 그러고보니 새삼스러울것도 없게 되어 버렸다. 케테 콜비츠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시대와 같이 호흡하는 생명력이 없다면 지난 시절 나또한 그들의 작품에서 가슴 애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감동을 얻을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왠지 지난 시절의 정호승님의 시가 더 좋다. 대학시절, 서점주인 아저씨는 책갈피 대신 가끔 엽서를 하나씩 끼워주곤 했었는데, 잊혀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이철수님의 "맹인 가수 부부"라는 판화였다. 그 모티브가 정호승님의 "맹인 가수 부부"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슬픔이 기쁨에게"를 처음 읽게 되었다. 그때쯤 친구는 흠모하는 이에게서 박종화의 "사랑하는 꼬마에게"라는 시를 받았다고 했고, 나는 아껴주고 싶은 이가 생기면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를 주겠노라고 했었다. 그 후로 몇해동안이나 그야말로 애지중지했던 이 시는 가슴이 따뜻한 어른이 철없는 어린 애인에게 거짓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을 떠올려주곤 했었다. 내가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본 것은 거짓없고 춥고 엄혹하지만, 따뜻하게 아우를수 있는 세상이었다. 문득 애틋하고 아껴주고 싶은 이가 생겨서 그에게 이 시를 내민다면, 그 사람도 그런 세상을 보게 될까. 개념 없고 즉물적인 가벼움의 이 시대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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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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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이 시집은 다소 우울하다. 이 시집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슬픔이 기쁨에게의 많은 시들은 다소 어려움이 많은 시인의 삶은 온전히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인지 대체로 어둡다. 그러나 그 어둠이 낯설지만은 않다.
살면서 어떻게 아름다운 일만 겪을 수 있는가? 세상을 편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세상을이끌어가는 사람은 고위층의 사람들이 아니라 서민들이다. 이들의 발빠른 움직임으로 인하여 세상이 열린다.
슬픔 많은 이세상도 걸어 보아라.
첫눈 내리는 새벽 눈길 걸을 것이니
지난 가을 낙엽 줍던 소년과 함께
눈길마다 눈사람을 세울 것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걸어 보아라.
정호승의 시는 삶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소박함과 쓸쓸한 모습이 여러 시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슬픔이 기쁨에게] 나도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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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詩가 어렵다. 절제되고 함축된 언어로 모인 詩가 참 어렵다. 직설적이 아닌 은유적 표현들이 마구 문장 위에 노니는 詩가 많이 어렵다. 하기사 詩가 고스란히 똑똑하게 읽혀지면 詩라고 할 수 없지. 詩가 나의 마음에 들어오기까지 한참을 내 머릿속에서 방황을 한다. 꼭 정호승 시인이 70년대 우리네 어둡던 시절의 청년때를 힘겹게 살아온 것처럼..... 한 청년이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경제적으로 암울하며 힘겨워할 그 시기 즈음에 태어난 내가 그 때의 정서들을 오롯이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엔 다소 무리겠지.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이다. 정호승 시인이 70년대 젊은 혈기에 썼던 詩들이 담겨있다. 지금 정호승 시인의 언어와 내용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낯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詩 속에 담긴 의미들보다 읽을수록 슬픔의 깊이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슬픔은 잃어버린 것과, 사라짐에 대한 恨과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슬픔 속에서 놓지 않으려는 작은 희망의 불씨들이 남아있었다. 모두가 잠든 깊고 깊은 겨울 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것은 일상이 된 사람들. 결코 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난 버린 사람도 있는데..... 한가닥의 희망 때문에 달과 별에게 기도를 한다. 무사히 돌아오라고..... 詩 속에 펼쳐진 환경들은 춥지만 따뜻함이 있었다. 힘 없고, 가난하고,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맴도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전쟁으로, 사람으로 인해, 가난 때문에 받았던 상처들과 무시는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의 긴 그림자처럼 그렇게 그들을 긴 시간동안이나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환경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이었기에 더 애처롭고 가엾음이 시인의 마음 속에 한참동안이나 머물렀나보다. 그저 그 긴 속속들이 내막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읽는 내내 나도 그랬으니깐....... 슬픔에서 시작해 슬픔으로 끝나지만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지는 이유는 뭘까? 그렇다고 그의 詩를 이해했다는 것은 아니다.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정호승 시인의 詩들.... 젊은날 시인의 시적 감수성과 깊이에 놀랬다.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詩들이 더 와닿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슬픔을 이해하기엔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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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은 아름다운 동화도 많이 썼지만 그래도 그의 고전은 역시 시인 것 같다. 슬픔이 기쁨에게 라는 시집역시 나의 가슴 속 깊이 남아있는 시집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라는 시집의 제목 부터 우선 아픔이 서려 있는 듯하지만 내용은 더욱 구구절절하다. 이 시인에게는 무슨 아픔이 이다지도 많았단 말인가. 이 시집의 시들을 읽고 있으면 그래서 우울해진다. 과연 정호승 시인은 이 시들을 어머니의 심정으로 창작하면서 무슨 마음을 먹고 있었을까.
그의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를 읽을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슬프지만 아름다운 시들인 것은 바로 다름아닌 시인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 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 밤 별똥별도 주워서 담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담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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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를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아파진다. 아무리 무덤덤한 사람일지라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슬픔과 고독, 외로움 등을 테마로 한 이 시집은 마음이 외로울 때나 슬플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헤어짐을 위하여 눈물을 깎는다.
눈물이 뗏목처럼 떠오른 침묵의 강가에서
둥글게 둥글게 깎을수록
오히려 다른 사람 눈물이 깎인다.--류관순7
이라는 시에서 시대를 보는 애절함이 안타까움이 배어난다. 그러나 이 시집 속에는 암울함과 어둠만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들을 통한 승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산 위에 있는 마을이 아침이면 산 아래 있는 마을로 내려와 산 아래 마을이 되어 버린다 산 위에 있던 마을의 고양이들이 산 아래 마을의 쥐들을 잡아 먹고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