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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계속 읽다가 좀 힘들기도 하고 해서, 얇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 집어 들었다.
주세붕은 [죽계지] 서문에서 이렇게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60년대 보다 몇십 배, 몇백 배 경제적으로 풍족해 졌고, 아마 90년대 보다도 훨씬 풍족해 졌을텐데, 그때와 비교하여 과연 그렇게 경제가 풍족해 진 것만큼 행복해 졌을까? 물론 절대 빈곤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와 같이 빈곤이 해결된 상황에서, 경제에만 매달려 돈이 좀 더 생긴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보다 소득이 훨씬 높은 여러 선진국들의 자살률이 매우 높은 것이나, 경제 발전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한 우리의 자살률은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라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선조 주세붕이 지적했듯이 정신을 풍요케 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사회적 철학과 정신이 빈곤한 지금의 우리 사회 속에서 괴로워 하는 우리에 대한, 각박해지고 극단적으로 흐르는 그 사회에 대한 해결책은 철학과 정신을 풍요케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천인합일(天人合一) 정신은 이론과 행동, 관념과 현실, 마음과 몸을 일치화하려는 특유의 형이상학으로 발전하였다. 인간 중심의 자연관은 서원의 입지나 구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위, 우리 할배할매의 건축 철학을 지금 우리의 삶에 대입하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되지 않을까? 16세기 중반에 설립되기 시작하여 1871년 흥선대원군의 철폐기까지 300여 년에 걸친 서원 운동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역사상 설립되었던 서원과 사우의 총수는 900여 개소를 넘었고, 서원 설립과 운영이 절정에 달하였던 18세기 초에는 600여 개소의 서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 말까지 공교육 기관인 향교가 총 230여 개소였던 것과 비교하면, 사교육 기관인 서원은 3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효였다. 어제의 경복궁이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을 말해주었 듯, 서원도 비슷한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요즘의 사립학교 / 사립대학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이 18세기 600여 개에 달했다고 하니, 그 곳에서 우리 철학을,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법을 공부한 양반들이 엄청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우리 문화가 결국은 완전히 단절! 그 곳에서 공부하는 이도 아무도 없지만, 껍데기만 남은 건물도 16개소에 불과하다는 것에 오늘도 안타깝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도 껍데기만 조선 민족. 단군 왕검의 옛 조선시대부터의 우리 할매할매들과의 연관성은 지금 미국인과 우리 사이의 연관성보다 더 작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원 건축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조선시대 건축을 대표하는 소중한 건축 분야이다. 조선시대를 유교 사회라 하고 유교 사회의 주도층을 성리학자들이라 한다면 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고 그들의 정신이 가장 깊게 투영된 건축이었다. 절검의 정신, 절제와 추상의 정신, 우주와 인간을 일체화시키려고 하였던 옛 지식인들의 거대한 노력들은 물질과 유행과 자본에 찌든 현대 건축에 무한한 교훈과 가능성을 던져 주는 귀중한 건축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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