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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에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조심스럽다. 호불호로 나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병철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것은 경제인으로서의 이병철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 이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이병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이다.
이전에도 이 같은 주제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천주교의 차동엽 신부가 쓴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이다. 이병철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모 신부에게 건네준 질문지가 적임자를 찾기 위해 돌고 돌다 시간이 꽤 흘러 차 신부에게 전해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생전에 전해지지 못한 채 사후 25년이 지나서야 나왔는데 그렇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이병철의 질문지에서는 절대자와 죽음 이후의 세계, 세상의 부조리와 지구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고 묵중한데다 깊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여서였다.
그런 연유로 같은 주제의 책임에도 어떤 답변이 어떤 방식으로 서술될지 궁금해 『이병철의 하나님』을 읽었다. 이 책은 현직 목사인 황의찬에 의해 쓰여졌다. 황의찬은 이병철이 적은 하나님에 관한 24가지 질문에 순서대로 답을 한다. 그는 이병철의 『호암자전』과 아들 이맹희의 『묻어둔 이야기』, 그밖의 이병철과 관련된 글들을 군데군데 박스로 넣어 생동감있게 풀어나간다.
황의찬은 이병철의 구체적인 질문에 마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듯 차근차근 답변하는데, 읽다 보면 이병철이 천착한 질문에 대한 저자의 세심한 주의와 어루만짐이 느껴진다. 마치 하나님을 대신해 그를 대하고 있다는 듯.
몇 년 전 읽었던 철학자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이 오버랩 된다. 강신주가 김수영의 적나라하고 투철한 인문정신을 애정과 확신에 차서 다루었다면, 황의찬은 이병철의 절대자를 향한 전적인 간구에 방점을 찍는다. 심지어 이병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황의찬은 서문에서 이병철에 대한 친애를 드러내며 17번째 질문을 써내려갈 무렵 자신이 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고백을 한다. 이병철이 질문지를 건낼 즈음 이병철은 10여 년 전에 앓던 위암이 재발해 폐암으로 생사를 다투고 있었다. 황의찬은 이제 자신도 이 책을 쓸 자격을 갖추었다며 파안대소한다.
이병철이 한 24개의 질문 중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신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 아닌가?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 두는가?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하나같이 숙고를 거친 후 나온 질문임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당시 이병철은 암의 재발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죽음을 앞둔 절박함 속에서 반드시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필사의 각오가 들어있는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을 들었으면 좋았으려만 그렇지 못해 여전히 비감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병철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이 갖는 의문을 이병철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쉽고도 깊이 있는 답을 황의찬이 책 속에 충실하게 담아두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