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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종이책으로 구매해서 읽어보고 깜짝 놀랐었다. 악마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또 신앙인을 분석하는 것을 보고 악마가 얼마나 치밀한지 깨닫게 되었다. 아마 실존하는 악마는 이보다 더 치밀하고 간사하게 선이나 아름다움을 포장한 모습으로 다가와 방해할 것이다. 두번째 이북으로 읽는데 처음 읽었던 때와는 달리 계속 불편함을 느꼈다. 어쩌면 계속 악마에 대한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토저의 하나님 관한 책을 읽을 때는 읽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C.S. 루이스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다 보니 루이스 또한 이 책을 쓰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삶 속에 스며든 악마의 괴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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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판타지스럽고 정말로요 근데 인간의 연약한점이뭔지 정말 알겠음 근데 워낙에 제가 CS루이스의 팬이기도 하고 다른 책들도 너무 감명깊게 봐서요 다양한 소설과 책들이 많지만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쓴 책이라 역시 다르네요 ㅠ 그동안 봤던 책들이 아까워지는 순간입니다 좋은 책은 소장가치가 있어서 이북말고 종이로 살걸 그랬네요 ㅠㅠ 역시 CS루이스입니다 ㅎㅎ 추천도하고 하고 선물용으로도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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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해서 그닥 기대안하고 봤습니다. 그랬는데, 예상외로 재밌고 유쾌하고, 또 깊은 깨달음까지 줘서 매우 좋았습니다. 삼촌이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라 문체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설명되어 있어, 비록 배경이 되는 시대는 다를지라도 제가 겪는 현실과 매우 비슷하여 제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것이 결국 원수 마귀의 도구가 될 뿐이라는 것을, 추상적이고 뻔한 조언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알려줘서 좋았습니다. 원수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 대해 알고는 싶으나 지루한 책을 읽기 싫으시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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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나니아 연대기 기적 세상의 마지막 밤 고통의 문제 순전한 기독교 실낙원 서문 그 가공할 힘 오독 기독교적 숙고 (..) # 읽고 나서.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C.S.루이스는 사실 신학자로 더 유명하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 '가디언지'에 연재되었던 C.S.루이스의 글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관해 쓴 31통의 편지글이다. 지옥 심연숭고부 차관, TE, BS, 기타 등등의 '스크루테이프 각하'라고 불리는 경험 많은 악마가 '사랑하는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조언에는 '악마'가 어떻게 우리의 약점들을 이용하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초짜 악마 '웜우드'에게 '할당된 환자'가 '원수 도당'들에게 멀어졌다 다시 구원받는 과정은 모든 인간, 아니 나의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듯 조마조마하고, 마침내 구원을 받고 웜우드가 그토록 사랑한다 외쳤던 스크루테이프 삼촌에게 곧 '잡아먹히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될 때에는 안도와 통쾌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스크루테이프의 '조언'을 통해 우리는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악마로서 인간들을 '유혹'하기 위해 그들은 당연한 악의 선택을 제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실제로 '악'이 되는 것들을 꼬집는다. 일상의 사소한 불평과 불만들이 사실 얼마나 '악'하게 변화될 수 있는지 보는 과정은 그동안 악의 유혹에 빠졌을지 모를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며 불편하게 만든다. 진정한 쾌락은 신이 내린 선물이므로 오히려 '가짜 쾌락'을 부추기라는 점이나, 불안한 미래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하여 평화로운 마음을 무너뜨리게 하는 점이나, 사소한 '짜증'이 악마들에게 얼마나 쉬운 요리 재료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부끄럽다. 스크루테이프가 '악마들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날, 전쟁은 끝이 나고 우리는 천국에 재입성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가 매 편지 앞에 쓰던 '사랑하는 웜우드에게'나, 편지 말미의 '너를 아끼는 삼촌'이라는 말들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이야기였는지, 결국 악마일 수밖에 없는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의 '실수'를 계기로 조카를 '게걸스럽게 탐내'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안도를 느끼게 된다. 짧은 31편의 편지글이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악과 매번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교훈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 밑줄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 없지만, 몇 가지만 옮긴다. 우리야 환자의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좋지. 서로 충돌하는 미래의 모습들이 마음을 온통 채운 채 희망이나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불러일으킬 테니까.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나한테는 한 가지 위대한 소망이 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과학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신화함으로써, 원수를 믿으려는 인간의 마음이 미처 열리기 전에 사실상 우리에 대한 믿음(물론 우리 이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지는 않겠지만)을 슬금슬금 밀어 넣는 법을 터득할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소망이지. 우린 그저 '근래 들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라는 불편하지만 막연한 감정만 요리하면 된다. 넌 '세상'을 이용해서, 즉 허영심이나 부산스러움, 아이러니, 사치스런 따분함을 쾌락인 양 속임으로써 환자를 파멸시키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네가 어떻게 진정한 쾌락이야말로 최후까지 막아야 할 금기사항임을 잊을 수 있단 말이냐?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악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어떻게 접근하든지 간에 중요한 점은,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 - 샴페인이든 홍차든 생선요리든 담배든 아무거나 - 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짜증을 부리게'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그의 자비도, 정의도, 순종도 모조리 네 손안에 들어올 게다. 지옥의 전체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라는, 특히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라는 원칙을 인식하는 데 있다. 즉 나한테 좋은 건 나한테 좋은 거고, 너한테 좋은 건 너한테 좋은 거지. 누군가 얻은 게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은 게 있는 법이다. 원수 도당들이 자주 인정하듯이, 우리 악마들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날, 전쟁은 끝이 나고 우리는 천국에 재입성할 수 있어. 이것이 우리가 이루어 내야 할 대 과업이지. 알다시피 그 작자는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 사랑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고말고. 우리가 그 작자의 진짜 속셈을 알 수만 있다면! 너는 열심을 다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그 기묘한 전제가 환자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꼭 틀어막아야 한다. (....) 시간이란 순전히 선물로 주어진 것이지. 시간이 저희들 것이라면 해와 달도 저희들 소지품이게?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낼 경우에는 우리의 입지가 한층 더 확고해진다. 풍요로움은 인간을 세상에 엮어 놓거든.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는 인간은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세상이 자기 속에서 자리를 찾은 것인데도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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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루이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2가지를 지적한다.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하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이다. 더불어 눈여봐야 할 점은 루이스의 관료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루이스의 1961년판 서문에 의하면, 가장 큰 악은 디킨스가 즐겨 그린 범죄의 소굴이 아니라, 관료조직에서 일어난다.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 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하는 것이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루이스의 고백처럼, 악마의 삶을 고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이 책에 그려진 악마의 언행을 통해 인간을 성찰하는 것이 저자인 루이스의 의도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기독교 신앙관에 대한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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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불편함을 다룰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불편함을 너무 심화시키면 환자가 정신을 차리게 되어 게임이 끝나 버리고, 그렇다고 불편한 마음을 완전히 억눌러 버리면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 요인 하나를 놓치는 셈이다. 석연치 않은 감정을 가슴 한구석에 남겨 놓되 환자가 불편함을 감당치 못하고 마침내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는 지경을 피할 때, 우리는 아주 귀중한 경향을 하나 만들어 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