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중세에 필이 나가서 중세관련 서적을 꽤나 사 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작은 동양의 손자병법을 읽다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으로 빠졌다가 유럽으로 넘어가서 프랑스 혁명사, 백년전쟁, 십자군 전쟁등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였다. 인류의 진화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만큼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을 통해 그 층이 켜켜이 쌓이는 과정을 살피는 가운데 '쾌락'이란 종목도 끼어들어왔나보다.
애가 속지가 샛노란 것으로 봐서 꽤나 오랫동안 다른 책들에게 짓눌려 있었나 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눈에 뛴 것이 다행이라우.
제목 그대로 중세에 쾌락의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냥 이야기는 아니고 유명한 학자들의 저서와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다. 얇은 책에 비해 참고문헌은 어마어마하기 이를데 없으며, 어마어마한 참고문헌에 비해 내용은 별거 없다.
인류 역사의 절반이 50% 전쟁의 역사라면 중세 쾌락의 50%도 성애에 관한 것이다. 당연히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중세 귀족사회에서 일어났던 성행위와 의사들이 바라보는 시각, 교회와 성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성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먹거리와 향연, 산책과 사냥과 게임과 여흥을 통해서 얻어지는 쾌락, 미적인 즐거움인 예술과 문예활동을 통한 쾌락이 나머지를 이루고 있다.
중세의 모든 파트에는 종교적인 색채와 그들의 주장이 심하다 싶을 만큼 많다. 그것을 좀 이해하자면 당시의 종교란 현대의 종교와 그 기능이 달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색깔이 강했고 그러므로 부패했고 부패했으므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이 난무했다.
특히 성애에 관련한 중세 교회의 주장은 워낙 터무니 없는 것이라 아무리 11~2세기의 이야기라지만 좀 어이가 없는 부분이 많았다. 말도 안되는 금욕적인 부분, 특히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돌고래 수준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가 싶을 만큼 모순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금욕주의자들인 스토아 학파를 비롯하여 교회와 성직자들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에게 주장하는 내용과 실제 벌어지는 사건들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서 과연, 당시의 종교는 음흉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거였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재미있다. 아, 저때는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주장하며, 저렇게 얘기했구나, 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거의 천 년전의 일들이라고는 하지만 신체기능적인 면에서는 현대에 못지 않을 만큼 파격적이면서 금욕적인 면에서는 말이 안되는 법칙들을 정해놓은 당시에 대해 유추해보면 결국, 어마어마한 신분 차이에서 오는 현실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없고, 모르고, 무식한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살기 힘들다는 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