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라...작가의 딸...파울라.. 사고로 인하여 잠이 든다..아마 식물인간상태일거라 해야 맞을텐데 책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냥 잠들어 있다고만 하구.. 잠들어 있는 딸을 향해 계속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파울라는 꿈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거다.. 때로는 흥미로운 이야기 때로는 이해할수 없는 난해한 정치이야기로....이야기에 빠져들어 깨어나지 못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지를 쓰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자신의 착찹한 심정을 글로 표현한... 언젠가 파울라가 유명세를 탄다고 했다. 점술가 말로는..그 유명세가...엄마가 파울라를 향한 이 편지글의 책으로 죽고나서 유명세를 탄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 읽어보세요.. 어찌보면 정말 너두나도 지극한 가정사들의 이야기라 지루하기도 하고 잘난척에 짜증나겠지만....언제깨어날지 모르는 딸을 위해 이야기 들려주듯 써내려간 이 편지글은 마음을 참 따스하게 해줍니다.. 사랑받는게 이런거구나~~~~~~~~~하고요. |
| 부슬비가 내리는 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삶과 사랑의 의미를 되씹어 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뜨거운 열정으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몰두하는 것, 그것만이 사랑의 모습일까?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체념하듯 하루하루를 소진시키며 살아야 할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사랑과 삶의 모습을 [파울라]를 통해서 본다. 스물 아홉의 나이에 포피린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식물인간이 된 후 죽어 가는 딸의 곁에서 병상을 지키며 써내려 간 엄마의 편지, 그 기록이 이 책 [파울라]다. 그러나 눈물을 쥐어짜는 3류 소설 일거라고 속단하는 건 금물이다.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자신의 고통까지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안으로 받아들이며 한 줄 한 줄 써내려 간 삶의 고백서이며 사랑의 증거들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좋은 책은 사고의 성장도 가져오지만 정서의 순화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아웅 다웅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세상을 한탄 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진정한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며 그 누구도 자신의 굴레를 벗겨주지 못한다. 스스로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거듭 태어나는 수밖에는.... 주변국의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진정한 자신의 삶의 모습을 확립해가며 사랑하며 사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진정한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감정의 과장이나 픽션으로 덧칠하지 않은 진실한 모습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편지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작가의 어린 시절 가족사와 소녀시절에 겪은 성적인 위험들, 그리고 마흔이 되어서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주 특이한 서술방식으로 한편의 아름다운 글로 엮어냈다. 아옌데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녀의 글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너무나 풍부한 소재로 쉼 없이 소설을 엮어가는 글솜씨는 가히 천재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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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몇번을 울 뻔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창피해서 괜히 딴청을 부렸다. 집에 와서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침대에 쓰러져 단숨에 두 권을 다 읽었다. 혼자였으니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었고 마음껏 울며 읽었다. 다 읽고 거울을 보니 눈 주위가 온통 검게 얼룩져 있었다.
그의 데뷔작이자 내가 좋아하는 책인 <영혼의 집>은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비롯되었다. <파울라>는 그녀의 맏딸인 파울라에게 보내는 편지다. 유전병으로 인해 생의 끝에 놓여 긴 잠을 자고 있는 스물 여덟살 된,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된 그녀의 사랑스러운 딸에게. 코마 상태로 호흡기에 의존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그녀의 가엾은 딸에게.
이자벨은 다시 깨어나면 어쩌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를 파울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쓴다. 무책임한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강단있는 외할아버지와 신비했던 외할머니 사이에 길러져 네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고 너희를 낳았노라고. 친척이었던 아옌데 대통령이 살해된 후 피노체트 정권 하의 칠레를 떠나 몇 년을 숨어 지내며 처참한 날들을 보내야 했고 그 와중에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허망한 사랑에도 빠졌었다고. 그리고 너희에게 돌아와 결국에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며 그 와중에 네 아버지와 남이 되었고 이제는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에 그의 비명과 한숨이 들린다.
파울라. 파울라. 네가 깨어날 수 있을까. 넌 사실은 이미 멀리 가버린 게 아닐까. 파울라 어디에 있니. 너는 어디를 헤매고 있니.
읽으면서 지독히도 가슴이 아팠다. 좋은 작가라 생각했던 이자벨 아옌데의 가장 약하고 아픈 부분을 내가 몰래 훔쳐본 것 같아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가 지극히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미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자신을 돌아보며 속을 후벼내고 있을 그가 안스러웠다. 1992년 12월 6일 파울라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1994년 이자벨은 <파울라>를 발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