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1%
  • 리뷰 총점8 29%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우와 ! 이런 책인 줄 몰랐다.
"우와 ! 이런 책인 줄 몰랐다." 내용보기
1937년 삼천리호에 실린{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제목의 '삼교 경무국장각하'에게 올리는 댄스홀을 허락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이 책은 그저 패미니즘의 연장선? 성매매여성에 대한 인권선언 지위보장 이런류의 책인줄 알았다 TV를 봐도 약자에 대한 차별을 무신경하게 보는 사람들의 행태에 분개하며 책을 고르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을 보았다.아니었다. 패미니즘에 대
"우와 ! 이런 책인 줄 몰랐다." 내용보기

1937년 삼천리호에 실린{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제목의 '삼교 경무국장각하'에게 올리는 댄스홀을 허락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

이 책은 그저 패미니즘의 연장선? 성매매여성에 대한 인권선언 지위보장 이런류의 책인줄 알았다 TV를 봐도 약자에 대한 차별을 무신경하게 보는 사람들의 행태에 분개하며 책을 고르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을 보았다.

아니었다. 패미니즘에 대한 내용이지만 성매매가 아닌 여성해방,근대화에 대한 전통과의 갈등, 서구문화에 대한 충격, 과학과 풍습과의 추이대 역할을 했던 1930년대 전후의 가열차게 살다간 신구지식인들의 이야기

내용이 너무 알차다. 이렇게 그 시대를 해박하게 이야기한 책이 또 있을까

 이 책은 7개의 장으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소제목들이 실려있고 그에 맞는  시대상과 그시대에 나왔던 참고할만한 그 시대 사람들의 글들 중 몇 개를 추려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 '모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전문가의 책이건, 국내외 석학의 책이건 빠진 부분,틀린부분,왜곡된 부분이 있으면 난 리뷰에서 지적하고 넘어가는데 테클 걸겠다는게 아니라 도무지 책속에 티가 없다.

어떤 땐 심도 있는 내용도 상당히 있다.

배우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르겠다.

쓸 말은 많은데

P53 만 인용하면

문명과 행복은 배우는 자가 얻는 것이다. 일본사람이 옛날에는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오히려 우리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려니 금일에 이르러 저렇듯이 차이가 생긴 것은 '모자란 지식을 널리 세계에 구하여'힘써 배운 까닭이다.

자기보다 어린이에게나 자기보다 천한 이한테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구적에게나 힘써 배운 까닭이다. 50년 동안 부지런히 배운 것이 현생의 일본사람이 얻은 바 문명과 행복이다.

기분 나쁘자고 생각지말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라 생각해서 적어보았다.

저자분이 여성에 대한 패미니스트의 성향이 강하면서도 유머가 있으시다. 잘보았소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7.03.2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사회는 발전, 혹은 진화하고 있는걸까?
"우리 사회는 발전, 혹은 진화하고 있는걸까?" 내용보기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제목을 보고 이 책의 내용을 한번 상상해봤다. 무언가 다양성을 확보하고, 좀 열린 자세를 가지라는 것인가? 오.. 맙소사... '딴스홀을 허하라'는 말 그대로 딴스홀을 허하라는 논지의 글 제목이었다. 현대성의 형성... 현대성이라. 책 속에 있는 말이 참 와닿는다. 서구에서는 모던하면 17세기에는 17세기가 모던이요, 18세기에는 18세기가 모던인데, 우리나라
"우리 사회는 발전, 혹은 진화하고 있는걸까?" 내용보기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제목을 보고 이 책의 내용을 한번 상상해봤다. 무언가 다양성을 확보하고, 좀 열린 자세를 가지라는 것인가? 오.. 맙소사... '딴스홀을 허하라'는 말 그대로 딴스홀을 허하라는 논지의 글 제목이었다. 현대성의 형성... 현대성이라. 책 속에 있는 말이 참 와닿는다. 서구에서는 모던하면 17세기에는 17세기가 모던이요, 18세기에는 18세기가 모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이제는 현대가 지금, 바로 여기일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렇다.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세태도, 변화양상도, 사람들의 반응들도. 여전히 신문물, 신문명은 외부에서 들어오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속도차는 사람들간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 속의 현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lnternet. internet은 바다건너 다른 곳과 이곳의 시간적 공간적 격차를 확연하게 줄여버렸다. 거의 없앴다고 해도 좋겠다. 영화에 대한 선견지명은 참으로 놀랍다. 이거 물건이다! 하고 알아보는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그러고보니 서태지의 데뷔무대가 생각난다. 그 자리에서 서태지에게 후한 점수를 준 기성세대심사위원은 전무했다.) 그러나 한편 우스운 것은 일본영화가 세계에서 그리 맹위를 떨치고 있지 못하니 곧 조선영화가 세계에서 최고가 되지 말라는 법 어디있냐는 낙관론이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행태가 요즘과 근본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고, 룸펜역시 백수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도 이전 룸펜보다는 요즘 백수가 훨씬 매력적인 존재들이지 싶다. 책에 실려있는 수많은 삽화와 사진들이 즐겁게 하고, 조금은 알아듣지 못할 단어들도 묘한 거리감과 함께 신선하게 다가온다. 결국 현대성이란 것은 우리 속에서 터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와 우리속에 자리잡기까지의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그것이 형성되어야만 했던 동기가 없이 결과물만 가지고는 연쇄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능력, 능력이 아닌 실력, 실력이라고들 하는것일테고.

[인상깊은구절]
일본에 의한 강점으로 식민지화한 현실에서 보통의 지식인은 더 큰 좌절의 굴레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갔다. 그들은 사각모에 망토를 둘러 쓴 모습만으로도 선민의식을 가져도 좋았지만 그러나 식민지 관료가 되거나 학교선생으로 남지 못하면 대개는 '고등실업자'가 돼 버렸다. 그들은 방구들을 짊어지고 하릴없이 신문이나 뒤적이는 것이 일이었으니 자연 퇴영적이고 나태한 사고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1930년대가 되어 신식교육이 확산되면서 지식인의 수효는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고등실업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룸펜'이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졌고 스스로를 멋스럽게 룸펜이라고 부르는 치도 늘었다. 룸펜이란 말은 독일어에서 누더기, 넝마란 뜻으로 제정러시아 시대의 서구파 자유주의자들을 이르는 말로 지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층 지식계급을 의미하며 이들의 본질적인 속성은 반항과 불안, 무기력 등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책]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김진송
"[책]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김진송" 내용보기
1930년대 현대화가 시작될 무렵.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댄스홀을 금지하자댄스홀을 허가해 줄것을 요청하는 공개 탄원서를 제출했다.<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당시 요청자는 다방의 마담, 기생 등이라는 점에서윤락녀로서 사회의 주변인으로 몰락해 가는것이 아니라 문화적 주체로 부상한것에 주목할만 하며,'딴스홀'의 허용을 요청한 이면에는서구와 일본의 현대화에 대
"[책]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 김진송" 내용보기
1930년대 현대화가 시작될 무렵.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명목으로 댄스홀을 금지하자
댄스홀을 허가해 줄것을 요청하는 공개 탄원서를 제출했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당시 요청자는 다방의 마담, 기생 등이라는 점에서
윤락녀로서 사회의 주변인으로 몰락해 가는것이 아니라 문화적 주체로 부상한것에 주목할만 하며,

'딴스홀'의 허용을 요청한 이면에는
서구와 일본의 현대화에 대한 막연한 추종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식민지 조선의 현대화가 왜곡되어 있음이 잘 나타나는 문서다.

1.식민지 국가에서 현대는 무엇인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거쳐 내부적으로 진행되어온 서양의 현대화 달리
식민지 현대는 외부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새로움에 대한 우월감과 옛것에 대한 열등감,
서구화에 대한 천박함과 전통에 대한 소중함의 충돌이 있을수 밖에 없었다.

후진적사회라는 상황은 식민지배에 당위성을 부여하여 폭력적인 문화를 수용하도록 했고,
더불어 주권중심사상과 자강개념 없이 단순한 문화만을 경험한 일본 유학파 지식인들은 
일제의 지배를 부정할수 없도록 만들었다.

서양과 일본에 대한 물질적 열등감은 
'일제'와 '미제'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와 같이
그들 문화에대한 거부감을 없애면서 그들의 문화를 현대적 문화로 인식하게 했다.

호색적인 일본의 풍속 및 자유방임적 사조로 형성된 성해방과 
욕망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영향으로,
여성은 욕망과 자본을 연결하는 이미지로 되었으며
카페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이 연애를 "거래"하는 장소가 되었다.


2. 현대화의 과정

<모더니즘>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기존 의식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의식의 흐름을 담아낸 "신흥" 에 이어

1920년대 말, 경박하고 자유분방한 유행으로 등장한 "모던"은
지식인의 엄숙하고 무거움으로 규정된 "주의"로서의 현대가 아니라
일상에서 묻어나온 현대화의 현상 그 자체였으므로 
효과적으로 대중의 감성을 이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퇴폐적 현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물질>
단발이 많아지면서 갓을 대신하여 중절모가 새로운 정통성을 확보하게 된것 처럼
새로운 물건의 유입은 문화를 재조직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물질은 자본을 위해 생산되며,
새로운 것은 늘 상층 부르주아에게 우선 열려있었으므로
물질은 문화에 대한 괴리와 계급적인 분열을 만든다.

지식인의 의식은 새로움을 알지만 
가난한 현실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이율배반적으로 되었으며,

계급적으로 보아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아니한 인텔리층-그것이 직업별로 나타난 것이 월급쟁이 

이들의 창백한 인텔리군은 그 참담한 품이(앞길이 막힌 것으로 보아) 프롤레타리아 이하다. 

그들은 다만 시대의 계급의 한 수족일 따름이다
-월급쟁이의 철학 <혜성>1931년 8월호 -

자본과 특권층에 의해 만들어진 유행은 
자본이 없는 대중에게는 또 다르게 바뀌어져 계층을 구분짓는 형태로 나타났다.

유행은 가슴이 아니라 허리에 입는 치마를 입게 했으나 저고리는 양장으로 대체되지 못하고 길이만 길어졌으며,

버선을 벗어던지고 하얀 양말을 신었지만 굽높은 구두가 검은 고무신의 자리를 내쫒지는 못한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맞추지 않을 수 없게 한것이 바로 유행이며, 평안북도 정주 주차장에서 드러난 '키치'의 모습이었다.
이 광경을 목도한 김안서는 거기에서 '1930년대 조선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으니 그것이 가장 적나라한 우리'모더니즘'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문화적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난한 도시의 삶은 허영과 가식으로 포장할수 밖에 없었다.


3. 현대적 인간

경성부청(서울특별시청), 경성역(서울역), 경성제대병원(서울대학병원 옛건물) 등..
식민지시대를 겪었구나 라는걸 알수있는 이질적인 구조물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유행상 불경기균이 작용하는 황금부족증 히스테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유행상불경기균이 작용하는 황금부족증 히스테리 : 

 낙후된 경제사정 속에서의 물질에 대한욕구로 인해 사회분위기는 자조적이고 분열적인 현상으로 나타났고 , 
 이에 1930년대의 한 잡지에서 '여자의 핸드백에 청진기를 댄 의사'가 환자의 증세를 지칭한 말.

 



(이미지 출처 : 구글)

 


m******5 2015.01.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익숙하고 또 낯선 우리의 근대
"익숙하고 또 낯선 우리의 근대" 내용보기
이 책은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제 분과학문을 통할하는 주제인 셈이었던 한국의 '근대성'을 새롭게 탐색한다면, 그 새로움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연구가 주로 탐색하는 시대로 1930년대를 택했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한국, 혹은 조선의 1930년대는 암흑의 시대가 아니었
"익숙하고 또 낯선 우리의 근대" 내용보기
이 책은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제 분과학문을 통할하는 주제인 셈이었던 한국의 '근대성'을 새롭게 탐색한다면, 그 새로움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연구가 주로 탐색하는 시대로 1930년대를 택했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일반적으로 상상되는 한국, 혹은 조선의 1930년대는 암흑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국사'를 배우면서 대략 1905년부터 조선이 식민지화됨으로써 우리 역사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음을 느꼈고, 1910년부터 시작된 '일제 36년'에 대해서는 무단통치, 문화통치, 병참기지화정책 등으로 대강의 시대구분이 된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시대는 그에 걸맞는, 서로 명도만 다른 어떤 무채색으로 채색되어지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인상 속에서 1930년대는 점점 암흑천지의 문턱에 다다른 때였다. 그러다가 1945년 갑자기 조선반도에 찬란한 빛이 다시 비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한국의 근대성을 새로이 탐색하면서 1930년대를 다루는 걸까. 우리는 식민지 시대와 '근대'에 대한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탈론 사이의 논쟁을 기억한다. 사실 이 논쟁은 각각의 논자가 근대라는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여하에 따라 그 입론이 판이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좀처럼 논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 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이 땅의 '정서상' 정당화될 수 없고 수용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하게 존재했으며, 수탈론에서는 국민'국가'가 부재한 근대적 제요소의 발전은 '진정한' 근대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럼 얼토당토 않은 1930년대를 들여다보면서 한국의 근대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렇다면, 또 한 번 수탈론자들을 열받게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뭐, 말도 안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재정립하려 하는가?" 이런 반응 말이다. 이들은 다시 새로운 "~론자"들을 질타하고 반성시켜 순국선열을 모독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다소 스테레오 타입화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의 입론은 그러한 논쟁의 문제설정에서 벗어나 있다. 즉, 이 연구에서는 '근대'가 선험적인 당위로, 지향해야 할 목표로, 각 품목을 정확히 채워넣어야 할 종합선물세트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통속적으로 남발되는 말을 굳이 또 한 번 쓰자면, 이 책은 우리 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는 우리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 이건 복잡한 인식론적, 현상학적 개념들을 끌어들이는 문제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간단한 변명이 가능하다. 일단 역사학의 방법론을 따르는 연구라는 점에서,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사료를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기존에 견지했던 시선으로는 포착되지 않았던 역사의 층위, 당대 사회의 결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새로이 동원되는 사료는 기존의 정치사회사나 경제사에서 사용했던 사상사적 저작이나 주요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관편 보고, 경제 통계수치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발행된 《혜성》, 《별건곤》, 《삼천리》, 《조광》등 문예·대중잡지이다. 사료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근대를 설명하는 관점에 있어서도 "있는 그대로"라는 밑도끝고 없는 말에 대한 변명이 가능하다. 이 책은 '근대'를 우리가 사는 바로 이 시점과 동질적인 무엇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삶을 살아가는 모습, 삶에 대한 태도, 우리가 가진 심성 등이 지금같은 모양이 된 게 언제쯤이냐를 찾아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탐구를 위해서 가장 적절한 사료는 그야말로 기존 역사학을 위해 '가공'되지 않은, 그대로 노출된 모습의 당시의 신문과 잡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놀라울 정도로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비슷한 시대를 발견한 것이 바로 1930년대였다. 광복 후 지난 5,60년의 현대사를 점철한 숱한 사건들을 겪어오며, 이제는 한참이나 멀어져 낯설기 그지 없는 식민지 암흑시대 1930년대에서, 우리는 근대적 인간으로서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지금 그러는 것처럼 '근대'를 당위적 목표로 설정한 인간들이, 식민지라는 모순적인 질곡의 상황에서 고뇌하며 꿈틀거리는 모습을, 그 누더기같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 식민지라는 굴종적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지금 우리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은 그때서야 우리 사회에 드러나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기차와 전차가 들어오고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놓았으며, 전기와 전화가 들어왔다. 구미 열국의 부강함에 자극을 받아 과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과학적 사고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근대적 학문을 배워 온 외국 유학생들이 조선의 '선비'의 자리를 대체하고 '지식인'층을 형성한다. 그러나 자신이 배운 학문과 그 이상을 식민지 조선에서는 미쳐 실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식인들은 점점 실업자, 룸펜, 데카당이 되어간다. 1930년대는 식민지에도 유행이 형성되고 대중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때였다. 스포츠가 오락으로서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인다는 새로운 관념의 확산과 함께 사람들의 일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영화가 제작, 상영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스타 영화배우에 열광한다. 유행가요가 등장하고, 내년의 유행가요는 어떤 것이 될지 음반기획자들이 예측하는 특집이 잡지에 실린다. 대중매체의 확산을 기반으로 한 이러한 대중문화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포섭된다. 이 모든 모습들이 '일상'이라는 수준에서 우리의 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음을 보게 된다.
h******k 2003.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 근대성의 찾아가는 시간 여행
"한국 근대성의 찾아가는 시간 여행"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해 일었던 질투는 곧 그에 대한 고마움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지금 한국 인문학에서 가장 큰 화두가 근대성이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무분별한 서구 이론의 이식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은 쉽게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김진송의 는 이러한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처방전을 내놓는다. 이 저서는 한국 근대성에 내재된 모순들
"한국 근대성의 찾아가는 시간 여행" 내용보기
이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해 일었던 질투는 곧 그에 대한 고마움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지금 한국 인문학에서 가장 큰 화두가 근대성이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무분별한 서구 이론의 이식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은 쉽게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이러한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처방전을 내놓는다. 이 저서는 한국 근대성에 내재된 모순들의 기원을 찾아 일제시대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계몽주의가 한국 사회에 이식되던 시절에 한국의 역사가 지닐 수밖에 없었던 딜레마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즉,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수용했던 근대적, 계몽적 가치가 한국 사회의 식민화를 자신도 모르게 정당화하였던 역사의 아이러니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아이러니에서 지금 한국 근대성의 비극을 본다. 근대성의 부재 속에서 근대성을 찾으려는 비극 말이다. 이러한 비극의 발생은 저자가 한국의 근대성의 유입 과정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하는데, 그것은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와 다르게 자생적 발전이 아닌 서구의 것을 모방하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한국의 토양에 이식했다는 점이다. 즉, “식민지 현대는 출발지에서부터 새로운 빛을 자신의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그와는 매우 다른 타자로부터 발견해야 했다. 그리고 그 뒤로 현대를 향한 진보와 발전은 내부에서 발견되어야 할 목록이 아니라 타자의 인덱스에서 뽑아와야 할 아이템이었으며, 진보와 발전은 끊임없는 문화적 대체효과로서의 진보와 발전이었다.”(p.14) 이는 (저자가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후 박정희 시대에 동도서기(東道西器)의 모순으로 이어진다. 물론 저자의 이러한 관점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 책만큼 이 일제 시대라고 하는 역사의 암흑기를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책은 드물다. 이러한 역동성은 결코 저자가 꾸며낸 것이 아니며, 이는 각 장의 말미에 첨부되어 있는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진다. 이 기사들은 근대성의 유입될 당시 한국 사회에서 그것들에 대해 옹호와 비판이 서로 뒤섞이면서 형성된 ‘재봉선’이기도 하다. 때로는 짤리고, 때로는 그 위에 덮입혀서 형성된 재봉선 말이다. 한국의 근대성 연구에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이 재봉선의 발견, 이것이 이 저서가 지닌 가치인 셈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o 2002.12.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너무도 지금과 닮은 모습......근대
"너무도 지금과 닮은 모습......근대" 내용보기
현대(혹은 근대)성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상대적 개념을 중세적 또는 봉건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면 개방성·합리성·발달된 물질문화 정도로 현대성의 특징을 요약해도 될까. 그렇다면 이러한 현대성은 언제부터 이 땅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암울한 식민지 시기'라는 우리의 편견(?)과는 조금 다른 세상은 아니
"너무도 지금과 닮은 모습......근대" 내용보기
현대(혹은 근대)성을 대표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상대적 개념을 중세적 또는 봉건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면 개방성·합리성·발달된 물질문화 정도로 현대성의 특징을 요약해도 될까. 그렇다면 이러한 현대성은 언제부터 이 땅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암울한 식민지 시기'라는 우리의 편견(?)과는 조금 다른 세상은 아니었을는지. 1920, 30년대는 최소한 지금과 같은 근대 문물(이 책에서 '근대'와 '현대'는 동의어이다)과 사고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한 문화적 여명기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정리·요약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초기 현대의 모습을 모자이크 구성해낸다. 각 장(章)의 말미에는 가공하지 않은 당시의 생생한 목소리들을 담아 독자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이 책보다 후에 출간되었지만, 내가 먼저 접하게 된 『모던 뽀이, 京城을 거닐다』(신명직/현실문화연구/2003년)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형식이다. 1920, 30년대 초기 현대의 모습을 그려보자니, 아무래도 서양의 영향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식민지 현대는 출발지점에서부터 새로운 빛을 자신의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그와는 매우 다른 타자로부터 발견해야 했다. 그리고 그 뒤로 현대를 향한 진보와 발전은 내부에서 발견되어야 할 목록이 아니라 타자의 인덱스에서 뽑아와야 할 아이템이었으며, 진보와 발전은 끊임없는 '문화적 대체효과'로서의 진보와 발전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런 사회문화적 특성은 지속되고 있는지 모른다.》(14쪽) 8,90년 전의 우리 선배들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현대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첫 번째로는 정신을 우월시하는 흐름에서 물질의 가치에 은근히 비중을 두는 쪽으로 전환되었다는 것, 두 번째로는 그것의 결과로써 발달된 물질문화를 가진 서양을 일종의 준거집단화 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오래된 것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외경심의 형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렇게 보니 '현대'라는 것이 '물질에 대한 정신의 굴종'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 이만저만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런데 왜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이러한 현대성이 형성되었을까. 서양과의 접촉은 이미 1860년대의 일이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입에도 얼마든지 그들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을 텐데 말이다. 또한 이 시기(1920, 30년대)를 풍미하던 모던 걸(modern girl)과 모던 뽀이(modern boy)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당시 모습과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1990년대의 신세대 출현 논쟁 때의 그것을 보는 듯해 흥미롭다. 당대의 유행을 선도하던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버리고 전쟁의 상흔(傷痕)만을 기억에 남겨 젊은 세대를 윽박지르는 구닥다리 노인네들만 남았더란 말인가. 글쎄...... 잠정적으로 찾은 해답도 얼버무릴 수준밖에 못 될 것 같다. 1910년대까지는 외세의 개입 모양새가 그리 세련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양인(洋人) 흉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이다. 게다가 일본의 통치방식도 강압적 무단통치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1920년대의 회유적 문화통치와 더불어 신인류의 탄생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에 걸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는 그나마도 멋을 부릴 여유도 앗아갔을 것이다. 바로 이어진 6.25도 모던 걸·모던 뽀이의 재림을 불허했을 게 틀림없다. 아니, 전쟁 때라고 해서 남다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없었겠는가. 후손들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거듭 강조하다보니 그런 이들의 흔적이 감춰지게 되었을 뿐이겠지.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서술은 자꾸 흐름이 끊어져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이런 민초들의 삶을 조명한 역사는 단절되지 않는다. 단지 그 흐름이 순탄하지 못할 뿐, 조선시대나 일제 식민시기나 현재 21세기의 대한민국이나 백성들의 사는 모습과 생각은 놀랍도록 엇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먼 세월 저쪽의 그들은 '조상'이라기보다 '선배'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s********2 2004.03.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람사는건 정말 다 똑같다.
"사람사는건 정말 다 똑같다." 내용보기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그냥 추천이 아니라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때문에 억지로 읽게 된 책이다. 제목도 희안하고 책값도 비싸고 은근히 두껍기까지하고 처음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림이나 사진이 많기는 했지만 글자는 또 왜그렇게 작은지..그런데 이책이 바로 우리 근현대사의 보물일줄이야! 보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별을 네개 밖
"사람사는건 정말 다 똑같다." 내용보기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그냥 추천이 아니라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때문에 억지로 읽게 된 책이다. 제목도 희안하고 책값도 비싸고 은근히 두껍기까지하고 처음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림이나 사진이 많기는 했지만 글자는 또 왜그렇게 작은지..그런데 이책이 바로 우리 근현대사의 보물일줄이야! 보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별을 네개 밖에 주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글이 너무 어려워서이다. 특별히 어려운 용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내용이 머리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것들을 다 감안하고라도 이 책은 보물이다! 중고등학교때부터 역사라면 대체로 선사시대때부터 개항기까지 정도를 배워왔다. 참고로 나는 80년생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근현대사는 따로 배우지도 않았고 국사교과서 끝부분에 형식적으로 나올뿐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다. 요즘들어 현대사가 재조명되면서 (혹은 이제 겨우 논의 되기 시작하면서) 해방후를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텔레비젼 프로그램도 많이 제작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고등학교에서 한국근현대사가 국사책에서 분리되어 따로 배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 민중들의 삶을 다루기 보다는 마치 정치가 삶의 전부인 양 국내정치및 국제관계에만 치중하고 있고 위인들의 삶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역사의 '빠진 고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일제 식민지 시대인 1920년대부터 1940년대 까지의 일반인들의 삶을 당시의 신문, 잡지, 광고 자료들을 통하여 알리고 있다. 지금에도 유명하고 당시에도 유명했던 김동인, 한용운등을 비롯한 명사들의 캐릭커쳐와 각종신문에 실린 칼럼, 풍자 만화, 당시의 성풍속도를 알수있는 여대생을 상대로한 설문조사, 극장 평론, 고학력 실업자인 룸펜의 생활모습, 당시 유행가요와 인기 배우들, 일나가는 부인을 둬서 좋지만 은근히 걱정도 된다는 평범한 남편의 인터뷰글, 처음도입된 라디오, 전차, 네온사인등에 대한 서민들의 놀람과 선각자들의 계몽 캠페인등..글을 읽는 내내 어쩜 이렇게 우리하고 하나도 틀리지 않을까하고 놀라고 감탄했었다.웃지 못한 얘기지만 당시가 일제시대였다면 요즘은 '미제시대'니까 시대상도 거의 같다고 볼수있다. 작가는 이러한 자료들을 모으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책에서도 작가의 그러한 노력과 꼼꼼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읽을거리들은 충분히 대중적인데 작가가 각 장의 앞부분에 쓰고 있는 글들은 너무 학술적인 면에 치중한게 아닌가 싶어서 안타깝다. 조금 더 쉽고 부담없이 만들어졌더라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할거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것만 보안된다면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앞으로 이 책처럼 독자가 1차적인 자료를 직접 접하고 판단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h******g 2003.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시대의 자화상
"우리시대의 자화상" 내용보기
일제강점으로 암울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30년대. 지금껏 내가 알고 있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꼭 그러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알고있는 삼사십년대의 모습은 독립운동가 몇분의 이름과 길거리에 놓여진 전차 이렇게 너무나 피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다해도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의 평범한 우리의 모
"우리시대의 자화상" 내용보기
일제강점으로 암울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30년대. 지금껏 내가 알고 있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꼭 그러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알고있는 삼사십년대의 모습은 독립운동가 몇분의 이름과 길거리에 놓여진 전차 이렇게 너무나 피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가 아무리 암울하다해도 사람들이 살던 시대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의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일본의 지배와 밀어닥치던 현대의 문물과 사고로 혼란을 겪은 그 시대 지식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볼 수있었다. 일본의 지배가 좋았다거나 하는 말은 물론 아니다. 단지 알려지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적응해가며 살았는지를 여실히 볼 수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그 시절과 조금도 달라진것같지도 않은 것같았다. 물질만능주의와 여성에 대한 편견,상품화 모든 것이 그 시대에도 존재했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사실이었다. 현대성....그러니까 근대성 자체에 대한 해결을 이책을 통해서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 실마리와 지금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수있는 책이었다.
b*****5 2002.08.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정말 현대적인 인간인가?
"우리는 정말 현대적인 인간인가?" 내용보기
이 책이 처음 나왔던 90년대 후반(98년쯤으로 기억하는데)부터 꼭 읽어야지 하고 마음 속에 점을 찍어뒀었다. 하지만 출판물의 홍수에 나의 속도와 자금의 한계 등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마음 먹고 잡아들었다. 부제 스타일로 '현대성의 형성'이라고 쓰여 있듯이 이 책은 1920년대와 30년대 조선에서 과연 모던이랑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문화 연구서이다. 그리고 보기 드물
"우리는 정말 현대적인 인간인가?" 내용보기
이 책이 처음 나왔던 90년대 후반(98년쯤으로 기억하는데)부터 꼭 읽어야지 하고 마음 속에 점을 찍어뒀었다. 하지만 출판물의 홍수에 나의 속도와 자금의 한계 등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마음 먹고 잡아들었다. 부제 스타일로 '현대성의 형성'이라고 쓰여 있듯이 이 책은 1920년대와 30년대 조선에서 과연 모던이랑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문화 연구서이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잘 쓴 문화 연구서라고 말하고 싶다. 문화나 인문, 사회 과학 쪽은 똑같은 근거도 솔직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처럼 그럴듯한 해석에 따라 그 당위성이 달라진다. 비슷한 주제와 시대를 놓고 쓴 여러권의 책을 교차해 읽어보면 그 특성은 더 현저히 드러나는데 여기서 저자는 특별한 해석이나 주장을 크게 내세우지 않고 사실들을 잘 분류해 자신이 알려주기 원하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흐름에 맞지 않는 엉뚱한 주장이나 자기 의견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내용들을 절묘하게 편집한 기술에 감탄했다는걸 인정해야겠다.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본받아야할 기술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그 재료가 풍부할 때만 가능하다는 난점이 있는데 이 책은 한권을 위해 많은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제목은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도발적인 것이지만 내용은 진지하고 알차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 그 장의 내용과 관련된 자료 전문을 소개해준 것은 정말 친절한 배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우리(나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별로 현대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저 세상에 가 있고 그들이 지금 이 현대를 함께 숨쉬고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들은 현대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과거로 상징된다. 하지만 1920년대와 30년대에 그들과 함께 숨쉬던 신문, 잡지들의 내용, 그리고 그 주장은 지금 우리의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들 역시 현대의 상징으로 스포츠와 스피드를 논했고, 첨단 과학의 발전에 찬탄했으며 유행을 좇았고 기성 세대의 보수성에 반기를 들었었다. 또 잡지들은 한 우리가 오렌지족을 비판하고 강남 졸부들을 욕하듯이 경성의 새로운 신흥 부자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생활관. 여학교 학생들의 결혼관과 직업관에 대한 설문 조사를 잡지에서 했는데 그 대부분의 내용과 수치는 오늘날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책에 나온 자료와 글들을 보면 사람의 생각과 행동 양식은 거의 변하지 않는듯 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시간에서 현대적이라고 착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듯... 이런 류의 책을 볼때면,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지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푸로와 뿌르 여학생의 정조와 연애관 A- 중역, 지주, 거상, 귀족의 집 따님 B- 졸업 후에 부모와 형제를 부조하여하는 중간계급 이하의 가정의 따님 Q. 결혼은 한개의 모험이므로 처녀대로 있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정조에 구애하지 않노라. A- 100명중 44명 B- 100명중 63명 Q. 연애로부터 결혼에 들고 싶노라. A- 100명중 98명 B- 100명중 67명 Q. 양친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결혼하겠노라. A- 100명중 33명 B- 100명중 6명 Q. 결혼 후에도 직업을 가지겠노라 A- 100명중 6명 B- 100명중 73명 Q. 결혼 후 5년 이내는 자식을 아니 낳겠노라. A- 100명중 83명 B- 100명중 62명
p***1 2001.05.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에게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우리는 지금 현대에 살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현대'란 단지 시간상의 '지금 시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문화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그 현대의 시작은 과연 어디일까? 현대가 과거 구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한다면 현대의 시작의 물고를 튼 것은 단연 '개항'이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분리할 수 있는 시점이 바
"우리에게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우리는 지금 현대에 살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현대'란 단지 시간상의 '지금 시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문화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그 현대의 시작은 과연 어디일까? 현대가 과거 구시대와의 결별을 의미한다면 현대의 시작의 물고를 튼 것은 단연 '개항'이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과거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분리할 수 있는 시점이 바로 개항전후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는 개항 이후 들어온 서구 문물에 의해 변화되기 시작한 우리의 모습이라 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현대의 출발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대의 출발점은 단지 '개항'이 시작된 바로 그 지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현대는 단순한 사건현상으로 해석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대화는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 그 이전부터 이미 일상생활에서 싹트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주장한 위정척사론(爲政斥邪論)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듯이 당시 집권층은 서양세력과 문물의 유입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이처럼 당시의 집권층은 개항 이후 나타날 기득권 박탈의 두려움, 나아가 나라의 멸망, 왕조의 멸망을 두려워했다. 일반인들 역시 단발머리나 양장과 같은 서구식 외양에 극도의 두려움을 나타냈다. 따라서 당시 집권층이나 그외 일반인들이 개항에 대해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도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가져오는 정치, 경제의 기본적 사회틀이 급속도로 변화하는데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제 더 큰 세상이 '바깥'에 존재하며, 그것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돌고 있을 어떤 운명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그리고 어쩌면 그들 자신이 더 빠르고 숨가쁘게 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현대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지각했던 모습으로로 설명해야 한다고 앞서 주장했던 관점이 여기서도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즉 저자는 '현대성'을 논하기에 앞서 현대의 시작을 규명하는데 있어서도 현대의 시작을 알리는 일상생활 저변의 움직임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몇가지 낙관적인 분석을 덧붙여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해서 저자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설명틀에 따르자면 당시 일반대중에게는 적어도 능동적인 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현대화'가 단지 개항에 의해 수동적으로 시도된 사건은 아니며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싹트고 있었고 이러한 변화를 인식할만한 힘을 일반대중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우리 사회의 현대화는 전적으로 외세에 의한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수동적인 변화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현대성', '모더니티', '근대성', '개화', '문명' 등 개항 이후 1900년대 초 변화하기 시작한 우리의 모습을 일컫는 말은 매우 다양하다. 넓게 보자면 이 다양한 어휘가 우리 사회의 현대화를 지칭하고 있다고 보는데 무리는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이음동의어는 각 시기마다 현대를 향한 지향점을 각각 다르게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자면 현대화를 일컫는 몇개의 언어중 주로 '개조', '문화', '모던'의 시대순으로 어휘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어휘는 각기 지향점이 다르고 따라서 각각의 어휘가 사용되던 당시의 현대화는 각각 다른 방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서양의 현대문물이 처음 유입되었을 당시 주로 사용된 말은 '개조'였다. 당시 서양문물의 유입은 우리에게 열등감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서양문물과 우리의 것 사이의 간극은 당시 지식인들을 주눅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따라서 이들 사이에서 '개조론'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당시의 지식인들은 사회의 개조, 가족의 개조, 교육의 개조, 여자의 개조, 인간의 개조, 민족의 개조를 지상과제로 삼았으며 봉건적인 유습이 남아있는 모든 제도와 가치를 '개조'하려고 했다고 한다. 개조는 열강의 침탈에서 오는 위기감과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으며 문명진보된 세상으로 향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이다.(31쪽) 개조의 이를 뒤이어 현대화의 지표로 등장한 '문화'에 대한 사상은 보다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고 한다. 미개한 야만의 반대어로서 문화에 대한 헤게모니를 가장 먼저 장악하고 끌어들였던 것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배자들이었는데 1920년대에 들어서면 일본은 본격적으로 '문화주의'를 통한 식민지배에 혈안이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일제의 문화주의에 대한 당시 우리 지식인들의 태도이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정책은 주로 개량적 민족주의자들에게 흡수되었고 특히 주권중심사상과 자강주의가 결여된 단순한 '문화' 개념만을 흡수한 일본 유학파 지식인들은 일제의 강권을 부정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조와 문화에 뒤이어 등장한 개념은 '모던'인데 이 말은 개조와 문화에서 흔히 나타나던 '계몽'의 의미가 빠져있는 것이었다. 즉 현대는 이제 계몽주의자의 엄숙한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 속의 발랄한 모더니스트를 통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대라는 거대한 사회문화적 흐름이 계몽적인 의식이나 독점화된 문화적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 시기로부터 우리는 낯설지 않은 '현대인'을 만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현대는 다름 아닌 이 '모던'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룸펜문화, 대중문화 형성과 유행의 양태, 도시화, 성과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 등인데 이러한 것들이 계몽의식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당시 사회의 여러 계층의 '현대를 바라보는 눈'에 대해서도 살피고 있는데 저자가 주로 주목하고자 하는 층은 바로 신지식인이나 계몽주의자들이 아닌 일반대중이다. 왜냐하면 계몽주의자들이 개조와 문화를 앞세울 때 이들은 자유와 평등을 앞세웠으며 지식인들이 룸펜 인텔리겐치로 전락할 때 그들은 대중의 감성을 견인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에게 현대란 무엇인가? 현대는 사건으로 점철되는 역사를 통해서 밝혀지지 않는다. 개항, 식민지배, 해방공간의 좌우갈등, 전쟁과 원조, 선거부정에 이은 학생혁명, 쿠데타와 경제 재건, 광주시민운동과 노동자봉기, 금융위기와 IMF체재 등등의 역사의 파노라마속에서, 천천히 그렇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적'의식과 정서의 잠재된 형태들은 모습을 감추어왔다. 사건이 주는 숫자의 무게와 가시적인 효과에 길들여진 역사학은 결코 그 형태들을 그려낼 수 없었다. 현대는 정치사의 밑바닥이나 사회사의 행간속에 간간히 섞여 있었을뿐이며, 연속적인 그러나 단절적인 집단의식의 변화들만이 사건의 지각변동을 통해야만 측정될 수 있는 단위로 치환되고, 으레 그래야할 당연한 현상으로서의 분노와 갈등, 폭력과 위기의 폭발만이 주목되었을뿐이다. 그리하여 연사의 학문적 층위들의 사이를 비집는 현대적인 삶의 조건들은 그리고 거기서 끊임없이 상투화하고 반복되는 삶과 의식의 변화들은 오히려 매우 낯선 모습으로 비쳐진다.
YES마니아 : 로얄 m******n 2000.12.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