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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습이든 자기의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솔개에게 쫓기는 맨 아래층 먹이 감인 생쥐. 생쥐는 누구나 우습게보고, 우습게 생각들을 한다.
도사는 이런 쥐가 불쌍하다 여기고 솔개를 물리치고 잘 보살펴준다.
하지만 사회든, 동물의 세계이든 약한 자는 어디를 가나 두려움에 떨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닐까.
고양이는 그 쥐에 눈독을 들이지만 불쌍하게 여기는 도사가 도와줘서 그 난관을 헤쳐나간다.
그 후 개에 의해 겁먹은 고양이로 변신한 쥐는 또 도움을 받는다. 더 무서운 개로.
개들은 꼬랑지 내리면 끝이다.
대들었던 개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굶주린 호랑리가 개 앞에 떡~ 하니 나타난다. 하지만 쥐(지금은 무서운 개로 변신한) 뒤에는 든든한 백(도사)이 있다.
더 무섭고 용맹한 호랑이로 변신한 호랑이는 이 난관도 극복한다.
하지만 쥐는 자기를 잊는 듯하다. 본래는 ‘쥐’라는 것을…
그리고 자기를 도와준 은인인 도사에게 까분다.(덤빈다)
도사는 쥐의 생각(마음)을 꿰뚫어 보고는 다시 쥐(약한 동물)로 바꿔버린다.
그 후에 도사 앞에 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도냄새가, 아니 카레냄새 나는 책표지. 인도냄새가 나는 도사, 그리고 쥐와 그 외의 동물들
모두들 수고가 많았다.
이런 우화가 생각이 난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여우 뒤에 사자가 있었다. 모든 동물들이 인사를 하는데 여우는 자기가 잘나고 힘이 세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사자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까불대는 여우는 몰매를 맞았다나(?) 내쫓겨났다나 하는 이야기 말이다.
아마 이 이솝우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쥐 이야기는 이솝우화의 이 이야기와 뜻을 같이한 것이리라.
자기의 본모습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본모습을 수긍하고 깨닫고 자기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한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확실히 없을 것이다.
쥐가 되었든, 여우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간에 거창한 빈껍데기는 훌훌 벗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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