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 때 최초의 소설로 배우고 외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고전들이 그러하듯이 읽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한문으로 쓰여 졌기 때문에 번역체 등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대의 소설을 읽는듯하게 잘 번역된 책들이 나오고 있어서 읽는데 거부감을 많이 줄어들었다. 특별히 김시습에 대한 일화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매월당 김시습은 어린 시절의 총명함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어린 아이가 임금 앞에서 지혜를 드러내고 상까지 받았다면 그 기억은 평생 지울 수 없으리라. 이 후 문종 - 단종으로 이어진 정통을 세조가 짓밟는 일이 일어나면서 김시습은 생육신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고 평생 방랑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또한 유학을 배웠지만 불교에 입문하는 등 여러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금오신화>에서는 도교나 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전개 방식을 보이고 있으며 주된 주제는 불의한 자들을 응징한다는 것이다. <금오신화>가 명나라 구유의 <전등신화(剪燈新話>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김시습이 배경을 조선 땅으로 잡고 등장인물이 이 땅의 사람들이며 한국역사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아 독창적으로 구성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전등신화는 이전의 중국의 傳奇小說을 정리한 것이다. 21개의 소설로 이루어졌는데 각각의 소설은 -록, -기, -지, -전 등의 이름이 붙어있다. <금오신화>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 시를 삽입함으로서 운율성이 두드러진 작품들이 많다. <금오신화>는 5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작품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금오신화>의 구성 소설은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으로 되어 있고 역시 -기, -전, -록으로 끝난다. 또 흥미로운 것은 김시습이나 구우나 어릴 적에 재능이 뛰어났으나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내용들을 보면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구도로 되어 있다. 먼저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을 보면 남녀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여자의 환신과의 사랑을 다루면서 세종에 대한 추억과 변하지 않는 충성을 확인하고 있다. 상대인 남자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후에 죽게 된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투영한 것으로 생각 된다. <취유부벽정기>에서는 평양의 경치를 감상하며 역사의 흥망을 한탄하고 있을 때 귀부인이 나타나서 부당한 정권 탈취의 부당성을 나타내며 현실이 아닌 저승에서 자신이 섬기던 사람들과 벼슬을 하고 싶은 생각을 나타낸 듯싶다. <남염부주지>는 저승을 직접 다녀온 후 염라대왕의 후임으로 다시 저승을 간다는 줄거리다. 저승에서라도 불의한 자들을 응징하고 싶은 염원이었으리라. 흥미로운 점은 저승의 묘사가 단테의 <신곡>과 매우 흡사하다. 김시습이 <신곡>의 영향을 받았는지 실제로 저승의 모습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두 작품에서의 묘사를 비교 연구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용궁부연록>에서는 용왕에게서 선물을 받아 온다. 이는 어린 시절의 김시습이 세종으로부터 비단을 선물로 받은 것과 일치한다. 세종에게 받은 총애를 끝까지 간직하고 싶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작품의 끝은 해피엔딩이 없고 불행한 모습으로 끝맺는다. 오랜 방황으로 점철된 김시습 자신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전등신화>와 비교해서 읽어 보니 형식이나 전개 등에 있어서 몇몇 요소는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 받은 듯했다. 하지만 <전등신화>의 아류작은 아닐 것이다. 엄연히 우리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으며 일관된 주제의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귀신이나 저승이 등장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주인공이 불행한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처철함까지 보인다. 이는 김시습 자신의 불행한 말년을 생각나게 하고 금오산에서 눈물을 흘리며 글을 썼을 매월당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금오신화>는 단순히 교훈을 주는 작품도 아니고 다른 소설들처럼 이전의 설화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오신화>가 갖는 최초의 소설작품이라는 역사성이 아니라도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해준다. |
|
학생 때 입시를 위해 제목과 부분부분을 토막으로 만났던 수많은 고대 소설과 가사와 시들. 그중에도 많이 언급되던 작품중 하나가 김시습의 금오신화. 참고서에 예제로 나오는 부분과 요약된 내용을 바쁘게 읽고 머리에 쑤셔넣으면서 언젠가 한번 이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참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쨌든 머리속에 담아뒀던 일을 실천했는데... 번역(한문소설이니까 번역이 맞는 단어인듯)이 깔끔해서 그런지 재미있다.
우연과 신비가 가득한 고대 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짤막짤막한 얘기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짜임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고 또 각각의 얘기 테마들도 흥미롭다.
다섯개의 얘기들을 알뜰하게 읽어나가면서 금오신화가 한편이 아니라 다선편의 얘기였다는 그 오래된 사실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고. (입시 때는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었을테지만 합격한 뒤에 그런 것이 머리에 남아 있기에는 우리 입시는... 어쨌든 크게 망신 당할뻔한 걸 모면... --)
뒤에 딸린 사육신 전기와 원서생의 꿈 이야기는 금오신화의 적은 분량을 커버하기 위한 부록이겠지만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금오신화를 읽으면서 내용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소설 안에 포함된 수많은 시들. 김시습의 창작시인지 아니면 고래로 내려오던 시들을 적절하게 끼워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소설 안에 많인 시가 등장하는 것은 우리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긴 양반의 기본 교양이 시,서,화이니 양반의 연애 놀음에 당연히 시가 빠져선 안될듯...
500년 전에 쓰여진 소설 한권을 읽으면서 조상들의 풍류와 교양을 느낀다... [인상깊은구절]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됨을 道라 했고,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힘을 變이라 했으며 낳고 또 낳음을 易이라 했고 허위가 없음을 城이라 했습니다. 사리가 이와 같은데 어찌 乾坤위에 또 건곤이 있으면 천지밖에 다시 천지가 있겠습니까? 또 왕이란 것은 모두 백성이 추대하는 명칭입니다. 삼대 이전에는 모든 백성의 군주를 모두 왕이라 했으며 다른 명칭은 쓰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