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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인간이 완전함을 찾을 수 있는 지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과연 이 극의 주인공 파우스트가 완전함을 얻고 구원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작품을 읽게 되었다.
결국 찾아낸 답 첫 번째는 파우스트는 육체적 쾌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완전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파우스트는 구원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이렇게 완전함을 추구하는 인간과 스스로 구원을 이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천당의 프롤로그'에서 '하나님이 인간은 완성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으나 몸부림을 계속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바로 파우스트의 행적인 것이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와 협정을 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쾌락에서 완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 쾌락이 인간의 완성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적당하지 않는 것을 깨닫는다. 육체적 쾌락은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부림은 그 이기적인 것을 버리면서 진리를 얻게 된다.
이 극에서 파우스트 외에 중요한 인물은 메피스토펠레스 그레첸이다. 이 둘은 파우스트의 분열된 자아로 상징되어진다. 파우스트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이라는 두 자아인 것이다. 악의 모습이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성육신으로 나타나서 파우스트의 영혼을 뺏으려 한다. 그 목적으로 파우스트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몸부림에 함께 한다. 그리고 그는 파우스트를 쾌락의 길로 인도한다. 그레첸은 파우스트에게 선의 역할을 한다. 쾌락에서 완전함을 찾던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를 죽게 만든다. 그레첸의 죽음은 파우스트 내면의 선의 파멸과 악의 승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쾌락에서 완전함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순수한 그레첸의 품에 안겨 구원을 얻는다. 자기 안에서 선이 없어짐을 알자 악을 포기하고 선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래서 메페스토펠레스의 목적은 달성될 수 없었다. 파우스트의 몸부림이 선에 의해서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빛 속에서 사시고, 마녀들과 악한 영들은 영원한 암흑 속에서 살며, 인간은 빛과 어둠 양쪽에서 산다는 것이다.'라고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한다. 인간은 영원한 빛을 갈구하지만, 인간의 본질로 인하여 빛과 어둠 속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인간의 선악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작품 속의 낮과 밤의 시간은 그레첸과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발푸르기스 밤장면은 육체적 쾌락에서 완성을 찾으려는 파우스트의 추구가 그릇된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장면이다. 육체적 쾌락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예들 들어 그레첸에 대한 파우스트의 사랑은 육체적인 것이며 그는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직 그녀를 소유하려고만 한다. 그녀의 죽음은 쾌락이 갖는 한계성을 드러내 준다. 암흑 속에서 파우스트의 도덕성이 없는 쾌락추구와 이기심을 보여준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테레스와 협정을 맺어 쾌락을 추구하고 그레첸을 죽게 만든 것은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일인데, 그는 구원을 받는다. 신이 아닌 인간 그레첸에게서 말이다. 그레첸은 보다 높은 세력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 파우스트를 구원한다. 파우스트는 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완전함을 찾으려는 계획은 악에 의해서 쾌락의 완전함이라는 잘못된 방식을 취했지만, 구원을 얻으려는 것은 신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획득한 것이다.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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