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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시절 첫장 몇페이지만 넘겨보고 단순히 '지루하고 야한 책'(그땐 왜그랬는지;; 야한 부분이래봤자 몇글자 나오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도로만 생각하고 읽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이제사 다시 읽고 왜 모파상이 이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는지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 참 뒤늦게야 깨닫게 됐다. '나는 책이 말하도록 내버려둔다.'는 모파상의 신념대로 소설속에서 '시간'은 실재처럼 참 가혹하게 흐른다.. (나는 잔느에게 벌어지는 어떠한 불행한 사건들보다 그럼에도 계속 흐르는 시간이 더 끔찍할만큼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잔느의 눈엔 백마탄 왕자님처럼 보이던 남편은 알고보니 색마에 심지어 자기가 임신시킨 하녀가 나은 자기 아들까지 내팽겨칠 정도의 파렴치한이었고 늘 정숙할것만 같던 어머니의 부정. 글고 자기딸을 괴롭히는 그 녀석이 밉지만 젊었을적 자신도 비슷한 짓을 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상한 동질감까지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 그 덕에 잔느가 모든것을 희생할 대상은 아들 뿐이었지만 그 마저도 썩 영특한아이는 아니었으며 자라서는 엄마를 두고 홀연히 도시로 떠나더니 거머리처럼 돈문제로 부모 피를 빨아먹는 철면피가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젠 할머니가 된 잔느가 자신의 하녀(과거 자신의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_-;) 와 손녀를 안아들고 기뻐하는 모습과 '그래 어쩜 인생은 그리 불행한것도 행복한것도 아닌가봐.' 하는 마지막 대사가 쓸쓸한 느낌을 더한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여자의 일생' 이지만 모파상이 쓴 원제는 '어느 일생'이었다고 한다. 사실 삶이라는건 '어느 이의 일생'처럼 어떤 스팩타클한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태어나고 자라 열매를 맺고 조금씩 늙어가다 죽는 (영원한 행복도 없으며 영원한 불행이란것도 존재하지않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인간의 일생도 별 다를것없는 단순한 반복일 뿐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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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 얼마 전 동생과 함께 승아를 데리고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한 ‘헌책방’에 가게되었다. 음악과 함께 책들이 즐비한 그곳은 헌책방이라기보다는 북카페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의 선택을 받은 책중에 하나가 바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다. 사실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책을 먼저 발견하고 사려고 했던 사람은 막내동생이다. 그런데 동생이 착해서 양보(모종의 거래? 강제집행?) 했기 때문에 나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던 책이다. 다행이도 우리가 좋아하는 고전은 천냥이고 현대판책은 금액이 비쌌기에 마음대로 책쇼핑을 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앞으로 갈수만 있다면 자주 그곳에 나의 흔적을 남겨야 겠다. 다시 책속으로 돌아가서 <여자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특별한 책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나의 솔직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잔느의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로 구성되었고, 잔느의 존재는 결혼 후에 불행을 맞이한 안나와 엠마(보바리 부인)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나와 엠마는 가해자였다면 잔느는 피해자이다. 생각해보니 안나와 엠마는 무료한 일상을 달래려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자살한 여자들이지만 잔느는 불행한 일생을 살았지만 끝까지 삶을 지킨 여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들이 가해자였든, 피해자였든 똑같이 불행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처음 안나를 읽고 방황을 했듯이 엠마와 잔느의 이야기는 나를 지치게 할뿐이었다. 만약 내가 미혼인 상태에서 ‘형상화 소설’을 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과는 또 다른 말을 읊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니까! 베르뛰 데 보 남작의 외동딸인 잔느는 여자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수녀원에서 정숙함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는 수녀원에서 딸을 엄중히 가두어 놓음으로써 속세에서 격리시켰고, 세상일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다. 남작은 잔느가 순결무구한 채로 돌아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일생을 놓고 판단해 보았을 때 남작의 교육은 실패였다. 잔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몰랐고 심지가 약해서 그런지 쉽사리 불행에 물들어 갔다. 1819년 5월 2일 수녀원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되었을때만해도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오던 인생의 갖가지 행복을 상상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따금 그녀는 과거를 회상할 때면 그때의 잔느와 마주친 것을 보면 아마도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수녀원에서 행복을 꿈꾸고 있었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남작의 소원대로 잔느는 정숙하고 순결무구한 착한 딸이었다. 잔느 역시 부모님을 철저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라마아르 자작과 결혼했다. 꼭 부모님 뜻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잔느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이 줄리앙이라고 믿고 있었다. 소설은 너무도 빠르게 잔느와 줄리앙의 결혼식이 이어지고 신혼여행 이후 곧바로 현실세계로 안내를 받게 된다. 그러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이다. 잔느의 부모님은 부자였기에 부족함 없이 살았고 외동딸이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깍쟁이라 그런지 살림에 일일이 간섭했고 용돈을 받아 써야 했으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더욱 슬픈 현실은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온 친동생 같은 하녀 로잘리가 줄리앙의 아이를 자신보다 임신했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신랑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면 자식에게 집착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잔느도 곧바로 줄리앙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삶의 초점을 아이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잔느는 평생 스스로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타인으로부터 행복을 찾으려다 불행에 빠진 여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잔느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식에게 집착을 해도 너무 심하게 집착한 나머지 아들 뻬쁠의 인생을 망쳤기 때문이다. 애정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던 부분이 뻬쁠을 향한 잔느의 사랑이다. 그녀는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어 임신을 하지만 줄리앙이 프르빌르 백작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다 분노한 프르빌르 백작이 그들을 낭떠러지로 떨어져 시체로 돌아온 날 계집애 사생아를 낳게 된다. 어머니에 남편에 아이까지 잃게 된 잔느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던 그녀의 잘못된 교육이 망나니 자식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책속의 말을 빌리자면 앞을 내다보지 못한 어머니의 애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줄리앙 죽음이후 소설 대부분의 내용은 뻬쁠에 대한 잔느의 넘친 사랑과 망나니 자식으로 인한 파산이 전부이다. 하지만 절대 사람은 그 누군가로부터 행복은 잠시뿐 영원할 수 없다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P80에서도 보면 ‘그녀는 자기와 남편 사이에 그 어떤 장막이나 장애물 같은 것을 느꼈고, 처음으로 두 사람은 절대로 상대방의 영혼까지는, 즉, 사랑의 내면까지는 침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란히 걷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얽히기도 하지만, 서로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 인간 각자의 정신은 평생토록 고독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라고 했다. 이 부분은 신혼여행도중 느낀 잔느의 마음을 표현한 글인데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이다.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저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남편뿐만 아니라, 연인도, 친구도,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로 인한 행복은 정말 잠시 잠깐이기에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로잘리의 말처럼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 것인가 봐요.” 아들에게조차 버림받은 잔느가 쓸쓸히 노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뻬쁠이 돌아온다는 소식과 함께 그녀의 딸이 먼저 잔느의 품에 안겨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로잘리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분명 이 아이로 인해 잔느의 남은 인생이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정말 인생이란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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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나의 감수성을 정말이지 날카롭게 벼리어준 작품이 바로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이다(원제: 어떤 생애) 서술은 적확하고 간결하면서도 차분하다.
무리없이 아름다운 배경이 펼쳐지고, 읽는 순간 빨려들어가는 소설적 흡입력과 줄거리의 탄력성이 있다. 잔느라는 여인의 인생 부침(浮沈)에 나 자신도 뛰어들어, 동정과 연민을 품고 울기도, 허탈하게 웃기도 했던, 여자의 일생......
인생에 대한 감동과 희열로 충만한 청순한 여인 잔느. 그의 앞에 미남청년 '줄리앙'이 나타난다. 행복이 바로 눈앞에 전개되리라 믿었던 잔느. 그녀의 인생은, 하지만 그러한 행복을 허용치 않았다.
밀월의 밤. 남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잔느.
육체적 관능(官能)을 두려움 속에서 알게되는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에게 하나 하나 가혹한 일들이 벌어진다.
호색가(好色家)인 남편 '줄리앙'이 하녀 로잘리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로잘리 뱃속의 아이가 '남편'의 아이인 것을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는 잔느.
그 뒤부터 . 가슴속에 높다랗게 쌓아올렸던 행복이라는 성(城)은 가차없는 인생의 풍파로 인해 부식되고, 풍화되고 스러진다.
질베르뜨의 남편 '푸르빌르' 백작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되는 줄리앙 그리고 정부(情婦) 질베르뜨. 금욕주의(禁慾主義)를 강조하며, 인간과 동물들의 생래적 본성을 억압하려는 똘비악 신부.
그녀의 주위의 음산한 풍경들이다. 그리고 사건과 사건속에서는 인생의 아이러니가 얼굴을 드러낸다. 줄리앙의 부정을 알게 된 잔느의 아버지가 줄리앙을 다그치자, 사건의 조정자로서 자리에 있었던 사제는 이 한마디로 남작의 입을 막는다.
"자 어떻습니까? 남작께서도 그런 나쁜 장난을 하셨으리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자 , 양심을 속이지 말고 대답하십시오. 사실이죠?"
잔느의 아버지도. 시절의 과거 때문에, 그런 도덕적인 굽죄임 때문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던 것이다. 잔느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자느는 그동안의 모아둔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다.
정부(情夫)와의 교신. 바로 그것이다. 연약한 잔느의 어깨에, 무거운 일들이 하나 하나씩 떨어진다. 행복에의 커다란 희망은 차츰 현실에서 마모(磨耗)되어 가고, 잔느의 감정은 차츰 격정(激情)과 충격에서 쓸쓸한 침착으로 옮겨간다.
거의 의식을 잃은 잔느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을 간호해주던 친절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다름 아닌 하인 로잘리. 지참금과 함께 집에서 쫓겨났던 로잘리 였다. 기묘한 재회가 아닐까.
잔느는 차츰 회복하고, 자식에 대한 애정. 그녀로서는 한가닥의 희망이자 행복인 자식으로 자신의 위안을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도박과 여자관계로 어머니에게 멀어져, 잔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들의 여자가 죽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소식을 접한 잔느와 로잘 리가 집으로 향할 때 로잘 리가 꺼낸 이 한마디는 가장 절실하고 쓸쓸한 인생 품평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 것인가 봐요."
도덕적으로 신뢰했던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행복을 안겨주리라 믿었던 남편에게 버림받고, 남은 희망이자 소망이었던 아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잔느. 그녀는, 테스와 더불어, 사회와 인생에 모든 것을 유린당했던, 한(恨)많은 문학 속, 세계 속 여성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감정의 수많은 액화(液化)를 읽는중에 겪게되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수많은 명작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도 영원토록 읽히게 되리라. [인상깊은구절] 나는 지금 네가 내 곁으로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어미가 늙고 병들어 일년 내내 하녀와 단둘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좀 생각해 보려므나. 나는 지금 큰길가의 조그마한 집에서 살고 있단다. 매우 서글픈 나날을 보내고 있지. 그렇지만 네가 내 곁으로 오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구나. 이 세상에 가진 것이라곤 너밖에 없는데 7년 간을 너 없이 살아 왔으니! 이 어미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얼마나 내 마음을 네게 의지하고 싶었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너는 나의 생명이오, 유일한 희망이요,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었단다. 그런데 너는 나를 배반했고 나를 버렸다. 오! 돌아와 다오. 나의 귀여운 뿔레, 돌아와서 네 어미에게 키스해 다오. 절망으로 네게 팔을 뻗치고 있는 이 늙은 어미에게 돌아와 다오. 잔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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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의 생애는 첫줄부터 물에 젖은 삶으로 시작한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 잠시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추듯 잠시의 신혼생활이 찰나의 행복을 맛보게 하지만 그 이후로 잔느의 삶은 남편의 불륜과 아들의 배신으로 점철되고 마지막 보루였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신뢰마저 철저히 파괴된다
마치 파도가 몰려오듯 불행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양한 형태로 밀려오지만 잔느의 태도는 항상 수동적이고 그 불행을 모두 묵묵히 받아들인다.
잔느의 삶은 조금은 과장된 우리 모두의 삶의 여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잃어가고 신뢰했던 이들에게 배신당해 상처입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수동적으로 인생여정을 밟아갔던 잔느처럼 살것인가,아님 폭풍을 이겨내기위해 비바람을 맞서 싸우며 살아갈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의 인생이며 자신의 선택이다 우리는 잔느의 인생을 함께하며 하나의 또다른 인생을 살아갈 지침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의 교훈이리라. [인상깊은구절] 밤새도록 억수 같은 비가 유리창과 지붕을 뒤흔들며 쏟아진 뒤였다 물기가 흠뻑 배어 무겁게 내려처진 하늘은 금방이라도 터져 땅을 곤죽으로 만들고,사탕처럼 녹이려는 것만 같았다 돌개바람이 때때로 후덥지근한 열기를 뿜으며 지나갔다 좔좔 넘쳐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인적 없는 거리에 가득 찼고,길가 집들은 마치 해면처럼 습기를 빨아들여 온 집안에 스며든 습기는 지하실에서 다락방에 이르기까지 벽을 눅눅하게 하고 있었다. |
|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것은...'이건 여자의 일생이 아니야 잔느의 일생이지.'였다.여자의 일생이라 하기엔 예전의 이야기라고 해도 너무 억지인 것 같아서였다. 물론 과거의 여인들이 그렇게 살아갔는 줄은 안다. 남편과 아이에게 이끌려 살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여성도 있었던게 사실이니깐.. 잔느는 아주 부유한 집안의 딸로 17살까지 성당에서 순결하고 고귀한 여성으로 자라났다. 그녀가 아버지의 약속대로 수녀원에서 그 나이까지 지내고 나오던날. 그녀는 전혀 다른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는 자연속에서 살고 싶어했고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는 그녀에게 숲속의 성을 선사한다. 그렇게 행복하게만 지내다가 한 귀족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어른이 되어간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렇게 빠르게 결혼을 하고 남편과 생활해나가면서 그가 아주 소심하고 아주 계산적인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어릴적 부터 동료인 하녀에게 아이를 가지게 하고 버리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려하지만 그렇진 못한다. 그녀는 하인에게 값나가는 성과 남자를 구해 짝을 지어준뒤 내보내고 자신은 그 때 가지고 있던 아이를 낳아 그 아이 키우는 재미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바람을 피고... 결국 그의 상대가 된 여자의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녀는 그렇게 그에게서 풀려나지만 또 아들이라는 존재에 휘말리게 된다. 그녀가 그렇게 사랑하며 키운 아들은 창녀와 바람이나 그녀를 떠나고 계속되는 아들의 망나니끼 때문에 그녀는 파산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때 예전의 하녀가 그녀를 돌보러 오고 그녀의 사랑하는 성을 팔아 그녀의 삶의 유지 시킨다.그렇게 살아 가던 중 아들에게서 편지가 온다. 자신의 부인이 죽어가니 아이를 맡아달라는 말을 전하는.... 하녀는 가서 그 아이를 데려오고 잔느는 그 아이를 안아보며 이렇게 말한다.'그래도 삶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행한것도 그렇게 행복한것도 아닌가봐.'라고...... 그녀의 삶이 절망자체로 느껴지는 난 그녀의 마지막 말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적어도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는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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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인 잔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여자였다. 아버지의 뜻으로 인해서 12살부터 17살까지 수녀원에서 생활한 잔느는 천진난만하고 세상을 알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라마르 자작이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남작과 결혼하면서부터 잔느는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멋지게만 보였던 남작은 너무나 구두쇠였다. 잔느가 남편이 하녀와 바람을 피워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을 알았을 때, 그녀도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 후로 그녀는 그 아이만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그 역시 바르게 자라나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그리고 남편은 다시 바람을 피우다가 여자의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녀는 전 하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고 늙어서는 아들과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데려오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잔느처럼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것들로부터 모두 버림받으며 자신은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인상깊은구절] 잔느는 똑바로 자기 앞의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비가 곡선을 그리며 화살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문득 생명의 부드러운 온기가 옷을 통해 그녀의 다리와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무릎에서 자고 있는 어린애의 체온이었다. 그러자 무한한 감동이 그녀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아직 자기가 보지도 않은 어린애의 얼굴을 덮고 있는 천을 와락 젖혔다. 자기 자식의 딸이었다. 이 연약한 생명은 강렬한 햇빛을 받자 입맛을 다시며 푸른 눈을 떳다. 그러자 잔느는 두 팔로 어린애를 끌어안고 미친 듯이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 만족하고 한편 시무룩해진 로잘리는 그너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두세요, 마님. 이러다간 아기를 울리시겠어요." 그리고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답하듯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 것인가 봐요." |
| 그녀의 인생은 비참함 그 자체다. 나에게 이렇게 살라면 물론 거절이다. 고민이 있을 수도 없다. 시골 귀족의 딸 잔...미남 청년 줄리앙과 결혼 하지만 줄리앙은 결혼 초부터 잔의 친정집 재산에 손을 대고, 하녀 로잘리에게 아이를 낳게 만드는 망나니이다. 잔은 오직 유일한 혈육인 아들 폴에 대한 사랑만으로 환멸에 가득찬 가정 생활을 끌어간다. 방탕한 남편은 이웃집 여자와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맺다가 죽는다. 줄리앙이 죽었을 때 도리어 난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녀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들 폴은 자라면서 점차 방탕한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마침내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간다. 왜 그렇게 아들이 아버지와 똑같은 것일까? 파리에서 폴이 낳은 딸을 데려오는 마차 속에서 로잘리는 잔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즐거운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로군요."라고... 하지만 나의 눈에 비친 잔의 인생은 불행 그 자체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녀가 조금 더 주체적인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깨여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서 꼭 읽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