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와 사랑의 원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냉철한 수도사요, 철학자인 나르치스와 뜨거운 열정을 지닌 예술가 골드문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골드문트의 행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그를 통해 예술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골드문트는 어린 시절부터 수도원에서 경건한 생활을 해나간다. 하지만 그의 천성,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금욕적이고 이성적인 수도원 생활과는 다른 예술가의 피가 그의 몸을 흐르고 있음을 눈치 챈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그의 잠들어 있는 욕구를 깨닫게 하고 골드문트는 수도원을 떠나 애욕과 편력의 행보를 해 나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예술가 니콜라우스 스승을 만나 예술의 세계에 접어든다. 골드문트의 예술에 대한 강한 갈구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갈구이다. 이는 자칫 마더 콤플렉스와 같은 성향으로 오인 될 수도 있으나 그의 예술에 대한 갈구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태초의 인류의 어머니-이브-와 맞닿아 있다. 그가 생각하는 어머니가 ‘생모’ 정도로 국한되지 않고 이브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의 근원, 영혼 내면에 잠재된 근본적 충동이라는 점이며 그가 예술을 추구하는 행위와 이는 일맥상통한다. 예술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원시인이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것을 기점으로 수많은 화가들이 자신을 역사의 강물에 던졌으며, 단순히 ‘미술’뿐 아니라 음악과 문학과 같은 인류 행동의 전 범위에 걸쳐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리고 예술이 이렇게 다향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이유를 인간이 근원적으로 영혼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일부에서는 ‘인간에겐 단순한 본능, 감성뿐만이 아니라 보다 고차원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감성을 극복해낸 진정한 ‘이성인’을 지향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상당수이다. 불교의‘ 부처’가 그러하고 유교의 ‘군자’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어느샌가 감성을 추구하는 행위를 천박하게 여기고 그 것을 꺼려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극한으로 치닫을 때, 감성은 단순히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게 된다. 그 것이 바로 예술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상적인 감성이 집약되어있는 인간의 정수이다. 골드문트가 수도원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걸어오면서 지나간 수많은 여자들과의 만남. 페스트로 인해 우울하고 절망적인 죽음의 세상. 그리고 나르치스와의 아름다운 우정. 골드문트의 생애 전부가 녹아들어 간 것이 그의 ‘예술’이며 그 것이 결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임을 생각할 때, 결국 이성의 정점에 다다른 자를 인간이 선호하듯이 평소 감성을 천박한 것이라 치부하는 자들도 예술을 선호한다는 이 모순적인 사실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가르쳐 준다. 인간이 짐승과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감성을 극한까지 끌어내어 영혼 깊숙한 곳에 있는 욕구를 절묘하게 구현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찰나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 비해 예술은 몇 세대에 걸쳐 대대로 전승된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돋보인다.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골드문트가 수많은 여자들의 환대를 한몸에 받지만 나이가 들고 고단한 삶으로 인해 늙은 얼굴을 하게 되자 과거에 그와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던-그 것도 실로 위험한 관계로- 여성이 그를 외면한다는 사실은 예술의 영속성과 실로 대조적이다. 결국 작가가 골드문트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어했었던 것은 ‘예술이란, 무상의 극복’이라는 것이다. 나르치스를 통해서 이성을 추구하는 인간 또한 감성을 추구하는 근원적 욕구-그는 골드문트의 존재를 열렬히 갈구한다-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그 것이 천박한 것이 아님을 당당하게 밝힌다. 이성의 정점 또한 이데아, 원형, 무상의 극복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국 이성과 감성이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역설하면서, 이 소설은 인간 존재와 예술의 역할, 그리고 감성과 이성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던져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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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라는 한 인간이 얼마나 세밀하고 아름답고, 위대한 것인가를 이 책을 읽고 나서 더욱더 자신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골트문트"라는 이름의 한 남자의 생애에 관련되어 있는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절실히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잘 못 읽고 해석한다면 그저 삼류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파고 들어간다면 "아! 이런 뜻을 담고 있었구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할 때 섣불리 생각해 버린다면 이 책의 의도와는 다른 길로 독자들은 생각하기 쉬워진다. 여기에 나온 주인공은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하며 방랑자로서의 생활을 택해 살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머니의 그리움을 차츰 느끼게 되고 그러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어머니란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의문을 수많은 여자들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그는 결국 그 어떠한 대답도 얻어내지 못한다.. 다만 나중에 그 의미를 스스로 알게 됐을 때는 이미 그는 몸의 어느 구석하나 성한데 없이 병들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천천히 자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 나르찌스에게 한마디를 남긴다..
"그대가 어머니를 갖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죽을 생각인가"
이 한마디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가지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참으로 간단한 답을 요하고 있다. 그것을 바로 우리 모두 그 누구하나 어머니란 존재가 없었다면 죽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우리 모두 누구하나 어머니 없이 이 세상에 나와 우리 스스로 탄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어머니란 존재를 함부로 여기지 말며, 여자 중에서도 가정 대단하고 위대한 여자가 바로 "어머니"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그러므로 어머니란 존재는 나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결코 두렵게 느끼지 않게 하며,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는 성스러운 존재 ..즉 여기서는"에바"를 말한다. [인상깊은구절] "그대가 어머니를 갖지 않았다면, 도데체 어떻게 죽을 생각인가" |
| 사춘기 시절 헤세의 책을 한권 쯤 읽지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무리가 아닐 만큼 우리 나라에서 헤세의 책은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많이 추천되는 책은 '데미안', '지와 사랑(Narziss und Goldmund)' 그리고 '수레바퀴 밑에서' 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라는 것으로 유명한 데미안도 좋은 작품이지만, 인생을 통찰하는 깊이에 있어서는 지와 사랑이 더 원숙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트문트의 방황과 그가 도달한 결론. 그것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 안에 있던 어머니를 찾는 것이었고 그것을 사랑 또는 인간의 본성 또는 어떤 것이라고 이야기하든지 간에 결국 자기 완성의 길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에서 우리는 쉽게 어떤 도식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우선 불완전한 한 인물과 그의 동경이 대상이 되며 그를 일깨워주는 인물, 즉 조력자자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수많은 방황을 통해서 결국 주인공이 얻는 깨달음은 자기 자신 안에 있던 결론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이 동경했던 인물과는 다른 자신이다. 결국 이것이 헤세가 성장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 |
| 골트문트의 인생은 참으로 훌륭했다. 그 만큼 어려움을 겪은 자가 또 있을까? 친구인 나르치스는 그의 가까운 친구를 보내면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고집을 피우다 끝내 쇠약해서 죽어 버린 골트문트. 우리는 골트문트의 타락한 삶을 보고 무엇을 느낄 수 있겠는가?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에게 배울 점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작가가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골트문트는 참으로 의지가 많은 인간이다. 그의 운명은 기구하다.귀족 집에서 태어나서 자진 해서 그가 스스로 어려운 길을 자처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것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