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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도 역사가 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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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뱅상 뷔포는 <눈물의 역사>의 서문을 “침묵과 언어 사이에 눈물이 흐른다. 젖은 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눈물에 이르기까지, 뿌옇게 흐려진 눈에서 오열에 이르기까지, 눈물은 감동을 나타낸다.” 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스치듯 본 TV에서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는 정신과를 소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울음은 쌓여 있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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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뱅상 뷔포는 <눈물의 역사>의 서문을 “침묵과 언어 사이에 눈물이 흐른다. 젖은 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눈물에 이르기까지, 뿌옇게 흐려진 눈에서 오열에 이르기까지, 눈물은 감동을 나타낸다.” 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스치듯 본 TV에서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는 정신과를 소개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울음은 쌓여 있는 감정을 풀어내는 좋은 방법입니다만, 언젠가부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드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1960년에서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눈물을 펑펑 쏟는 영화관 앞에 관객이 장사진을 치고, 눈물 쏟는 드라마를 시청하느라 서울시의 수도계량기가 천천히 돌아갔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영화나 드라마는 가뭄에 콩나듯 하는 것 같습니다.

 

1970년대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쏟던 시절도 있습니다. 의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감정이 북받쳐서 우는 눈물과 양파와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서 나오는 눈물은 화학적 조성 자체가 다르다고 합니다. 최루가스도 사라지고, 신파조의 멜로영화나 드라마도 희귀해지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일이 드물어지다 보니 감정이 메말라지면서 사회조차도 각박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집니다.

 

우연히 안 뱅상 뷔포의 <눈물의 역사>를 구입하면서 ‘눈물에도 역사가 있다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요약하여 “눈물이란 열쇠글로 18~19세기 프랑스 문화사를 살핀 매우 독특한 책. 우리의 가장 은밀한 태도들 가운데 하나인 이 눈물을 역사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감동의 형태들을 사용하는 방식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섬세하거나 혹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된다는 사실을 성찰한다.”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책을 번역한 분이 내용을 가장 잘 파악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번역을 한 이자경님의 소개에 따르면 안 뱅상 뷔포는 근대 프랑스 사회의 풍속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로서 18세기에 프랑스 사회에서 찬미되던 눈물과 진정토로가 왜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자기억제의 규범에 의해 통제받게 되었는지 밝혀내기 위하여 고문서기록․회상록․일기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결국 이 연구서는 “18․9세기에 있어 프랑스에서의 감수성의 사회적 표현에 관한 변천사”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자의 요약에 따르면, “이 책은 크게 18세기와 19세기 전반, 19세기 후반의 3부분으로 나뉘어 서술된다. 제 I부의 ‘눈물의 취향, 감정의 교환’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흘려지는 눈물이 찬양받고, 고독 속에서 흘리는 감미로운 눈물이 자기  존재의 증명이 되던 18세기에서, 눈물이 가지는 커뮤니케이션의 표징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당시 살롱의 문학과 낭독회, 사적인 편지들에 나타난 눈물의 취향과 눈물을 자아내는 연극인 최루희극의 등장,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 하에의 집단적 눈물 등이 이러한 예로서 인용된다. 제 II부의 ‘스스럼에서 메마름까지’에서는 19세기 초반 그리스도교의 고뇌주의로 인한 자기 억제의 의상과 낭만주의가 결합되면서 새로운 감수성의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끊임없는 자기 억제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감수성은 감상성과 감수성을 구별하여, 감상적 인간보다 신중한 눈물이 선호되며, 남성의 진정토로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눈물은 여성과 어린아이, 그리고 민중 계급에게나 합당한 것으로 격하된다. 제 III부 ‘오열의 발작과 감정의 위기’는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나타나기 시작한 지나친 감수성의 표출에 대한 반동적 경향을 보여준다. 감상적 소설은 이류의 장르로 전락하고, 눈물의 발작은 불안을 일으키는 이상상태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한 경향은 연극에서도 나타나 멜로드라마가 퇴조하고, 관객의 감동도 과시적이며 드러내는 표현방식이 지양되고, 자기 억제와 스스럼의 명령에 의해 규제되고 내면화된다.”고 정리될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너무 차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예를 진행하시는 스님께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슬퍼하면 이승을 떠나야 하는 혼령이 발길을 떼지 못한다면서 곡을 만류하셨던 탓도 있었겠습니다만, 눈물을 쏟아내지 못한 것은 늘 선친을 걱정시켜드린 죄 때문이 아니었나싶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에 일단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용하는 구절마다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놀라움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타인의 눈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참기란 힘들다. 타인의 고통에 마음이 동요되는 이러한 성향은 전염이라는 흥미있는 현상을 유발시킨다. 모든 사람이 점차 눈물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하여 ‘아주 둔감한 사람들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35쪽)와 같이 눈물이 강력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대목에 절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렸을 적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는 추억이 있는데 한 사람이 훌쩍이기 시작하면 금새 극장 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한 그림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용한 그림에 붙인 설명은 다름과 같습니다. “18세기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흐느껴 울었다. 자신을 작중인물이자 작자와 일체화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권적 시간을 즐겁게 기록하여 작가에게 보냈다. 작품의 성공 여부는 독자를 얼마만큼 울리느냐에 좌우되었다.[그뢰즈 그림]”

 

《사교계 인사들의 사전》에 나오는 눈물의 정의도 재미있습니다. “눈물: 아무것도 개선시키지 못하므로, 너무도 잘못 사용되어지는 수분. 여성이 부정을 감추거나, 캐시미어숄을 얻기 위해 마음대로 구사하는 수단. 신경발작 후에 사용되어, 최대의 성공을 가져오게 하는 무기.” 아마도 19세기 초반 눈물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될 무렵의 정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상처입은 감정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서의 눈물이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개인개인에 쌓이는 감정의 수위가 낮추어짐에 따라서 사회전체를 불안하게 하는 감정의 수위도 따라서 낮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가 거칠어지는 것도 눈물이 많이 메말라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y*****2 2010.10.12. 신고 공감 3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