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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공간, 산경으로 가는 도정으로서의 시
"환상 공간, 산경으로 가는 도정으로서의 시" 내용보기
"오랜 방황과 모색 끝에 오래도록 책들이 썩지 않고 노래가 죽지 않는, 시의 천축국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시집 뒷면의 시인 후기)이 이 시집을 끌고 가는 에너지라고 한다면, 그 에너지-열망의 꽃핌이 바로 시집 제목인 '동백'이다. '동백'은 이 시집을 관통하면서 등장하여 독특하게 의미화되고 있는데, 더 나아가 특유한 상징을 성취하기까지 한다. 시의 천축국에 닿을
"환상 공간, 산경으로 가는 도정으로서의 시" 내용보기
"오랜 방황과 모색 끝에 오래도록 책들이 썩지 않고 노래가 죽지 않는, 시의 천축국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시집 뒷면의 시인 후기)이 이 시집을 끌고 가는 에너지라고 한다면, 그 에너지-열망의 꽃핌이 바로 시집 제목인 '동백'이다. '동백'은 이 시집을 관통하면서 등장하여 독특하게 의미화되고 있는데, 더 나아가 특유한 상징을 성취하기까지 한다. 시의 천축국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열망이 만들어 놓은 환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동백이라고 한다면, 동백을 드러나게 하는, 동백 배후의 구축된 '하나의 세계'를 '산경'이라고 할 것이다. 이 시집은 이 '산경'을 향해 가는 여러 가지 길을 몽상하는 시편들이 주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시의 천축국에 대한 열망이 산경이란 환상 세계를 찾아나서는 고행으로 실천되게 되었을까? 그는 열망이 결국 '기적처럼' 현실화될 것을 믿고 있다. 그 현실화는 물론 환상이다. 하지만 그 환상은 시인 자신을 바꿀 것이다. 무슨 말인가? 다음의 시를 보자. "촛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나는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그런데 얼마나 손을 비비고 있었을까/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쥔 촛불이 켜졌다/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겠지만/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 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 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나는 무릎을 끓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촛불> 전문) 무슨 기대를 하고 제단에 나아간 것은 아니었겠지만, 시인은 무엇인가 기도하기 위해 제단에 나아갔으리라. 그 기도는 절박한 것이었을 게다. 시인은 '춥고 가난하였'던 것이다. 그 황량한 심신은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주체하기 힘든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촛불도 없는 제단이지만 그 앞에라도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이 절박함 속에서의 기도, 아마 빛과 열을 달라고 할 그 기도는 시인도 놀라도록 거짓말같이 이루어진다. 그 기적은 시인 자신이 촛불이 되어버림으로서 달성되는 것이다. '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뿐'일 정도로 곤란한 상황 속에서 시인의 열망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 열망은 시인 자신을 열망에 맞게 존재 변이를 시켜 열망을 이루게 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적'이지 않다. "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을 것이다. 시인 자신이 촛불이 된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의 세계에선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팔이 양초로 변해 있다는 거짓말, 하지만 시의 세계에선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다. 열망 속에서 이루어낸 기적, 촛대가 된 시인은 바로 시 자체이다. <촛불>에서 볼 수 있듯이 송찬호 시인에게선 바로 열망이 만들어낸 환상의 현실화가 바로 시가 될 것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열망이 만들어낸 환상 세계가 바로 '산경'인데, 하지만 산경은 쉽게 묘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묘사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환상에 그쳐버리고 말 것인데, "경 없이 가는 길, 그것이 문자의 운명"(<산경을 비추어 말하다>에서)이기 때문이다. 문자는 원래 환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문자라면. 하지만 하나의 협약된 기호로서가 아니라 우연이 만들어진 기호로서 문자, 징조로서의 문자가 있다. 옛 사람들은 거북이 등을 구워 거기에 갈라진 선의 모양을 징조로 삼아 미래를 예측하지 않았던가. 송찬호는 시인을 바로 거북이 같다고 본다. "자신의 등을 구워/문자를 만드는 사람,/우리 동네 시인/같은 사람"은 "세상에는 등에 거울을 지고/ 다니는 사람"(같은 시에서)이다. 거북이 등에 불을 지피고 미래를 보여주는 이가 바로 시인이며, 거북이 등은 바로 미래를 비추어주는 매개체, 거울이다. 송찬호는 "그런 거울 백 개를/모을 수 있다면/산경을 두루 비출 수 있다 했단다"라고 말한다. 거북이 판 하나, 거울 하나는 바로 시 한편을 말할 것이다. 그 시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시인 자신도 알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의 등을 굽고 무엇이 될 지 모를 갈라진 선들, 우연의 문자들을 만들고 미래의 세계를 암시할 뿐이다. 산경을 찾는 사람들은 <촛불>의 시인처럼 어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 열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의 절경 한 폭 짊어지지 못하고 春窮을 넘어가는 저 비탈의 노래가 저러다 정말 산경의 진수를 찾아 들어가는 거 아닌가/살 만한 땅을 찾아 저렇게 말뚝에 매인 집 한 채 뿌리째 떠가고 있으니/검은 아궁일 끌어 묻고 살 만한 땅을 찾아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저 신선 가족이 가고 있으니"(<봄날을 가는 山經>)라고 시인이 쓰고 있듯이 '살 만한 땅을 찾'는다는 열망을 안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 그들은 시의 세계에선 살만한 땅인 '산'을 만나 '산경의 진수'를 찾아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 산경의 진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초가 되어버린 '나'처럼. (그런데 시인은 이들 떠가는 가족 무리들을 '느릿느릿 저 신선 가족'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표현은 여유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견디어 내는 그 답답할 정도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우직함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산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 중국 신화 전설 집인 산해경의 환상 세계일텐데, 시인은 산해경 세계의 무엇을 주목하는 것일까? 산경의 세계는 결코 뚜렷하게 드러낼 수 없는 세계이다. 이 세상의 세계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구운 거북 등판의 무늬처럼 추상적으로 암시할 수 있을 뿐 선명히 드러낼 순 없는 세계일 듯 하다. 시인의 문자는 이 완전히 드러낼 수 없는 세계를 좀 더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리라. 시인은 이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상징을 창출한다. 그것이 동백인바, 산경은 바로 이 동백이 있는 곳으로서 암시될 뿐 뚜렷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동백마저도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 동백을 붙잡아 그릴 수 있는 때는 바로 다음 순간이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꽃을 활짝 피웠다./허공으로의 네 발/허공에서의 붉은 갈기//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바람이 저 동백꽃을 메어물고/땅으로 뛰어내리기 전

[인상깊은구절]
이제 나는 돌부처의 목 부러진 이유를 알겠다 부러져 뒹굴며 발끝에 채이는 미소의 이유를 알겠다 내 안에서 서로 싸우는 짐승들 또한 그렇다 그래, 너희들, 그렇게 싸우는 분명한 선악의 경계가 있는 것이냐 인면과 수심 중 분명한 승자가 있는 것이냐 오늘은 아예 인면이나 수심의 어느 한쪽 얼굴이 아닌 두루뭉수리 인면수심의 얼굴로 돌아다녀야겠다
YES마니아 : 로얄 r*******1 2001.01.0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산경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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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의 [인공정원]과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 지성사, 1994)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를 찬찬히 눈여겨보았던 독자라면 이번 세 번째 시집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줬던 송찬호만의 언어와 그 언어로 빚어낸 세계의 독특함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인공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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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의 첫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89)의 [인공정원]과 두 번째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 지성사, 1994)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를 찬찬히 눈여겨보았던 독자라면 이번 세 번째 시집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첫 시집에서 보여줬던 송찬호만의 언어와 그 언어로 빚어낸 세계의 독특함은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인공정원]에서 보여줬던 그의 시세계는 언어를 질료로 하는 시가 구축해야 할 하나의 지향점으로까지 보였다. 물론 세상의 저자거리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는, 그 시끄러움을 삶의 꿈틀거리는 언어로 포획하여 다시 세상의 한복판에 내놓는 방법도 있을 테지만, 송찬호처럼 조금은 그러한 현실로부터 몇 센티미터쯤 공중으로 떠올라 우리에게 자신이 가고자 하는 세계를 은밀히 건네어주는 시인도 필요하다. 주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두 시집은 조금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시적 원동력을 상상력에서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를 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지향하고 자 하는 상승적 상상력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은 삶으로부터 도망이 아니다. 어쩌면 '부정적 로트레아몽 콤플렉스'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를 동물적인, 그러나 자기 내부로 향한 공격성 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상상력은 현실계를 떠나 단순히 상상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의 단단한 방호벽에 미세한 균열, 그 자리에 조금은 아름다운, 언어와 존재 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도전 정신이다. 그러한 그가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낸 현실의 균열의 틈은 다름 아닌 [동백]이었다. 동백 은 사자이며, 사자의 울부짖음이며, 뚝뚝 끊어져버리고 말 목숨이며, 山經이다. 산경에 이르 는 길은, 壬申年 음력 동짓달 초하루, 파도가 잦아들자 동백국 으로 떠나는 배를 띄웠다 배에는 가축과 곡식 검은 부싯 돌과 흰 물을 실었다 가축과 곡식은 외눈이 반쪽이 쭉정 이 따위의 불구이거나 이름이 없는 무명의 것들로 동백 국에 가서 그들의 병을 씻어주고 귀한 이름의 종자로 얻 어올 작정이었다 배는 쉼 없이 나아갔다 그러나 동백국 길은 얼마나 멀고 험하던가 - [동백國에 배를 띄워보내다], 일부 무릇 생명이 태어나는 경계에는 어느 곳이나 올가미가 있는 법이지요 그러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에 저렇게 떨림이 있지 않겠어요? 꽃을 밀어내느라 거친 옹이가 박인 허리를 뒤틀며 안간힘 다하는 저 늙은 동백나무를 보아요 그 아득한 올가리를 빠져나오려 짐승의 새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 나오는 동백꽃을 이리 가까이 와 보아요 - [관음이라 불리는 향일암 동백에 대한 회상], 일부, 이하 강조 필자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 [동백이 활짝] 전문 그에게 동백은 현실의 꽃이자 현실 너머의 꽃이다. 검은머리 나무는 어디에 그 붉음을 가 지고서 이 세상에 꽃을 틔워보내는가. 틔워보냄은 뛰쳐나옴이다. 그 움직임의 역동성, [사자 ]의 동물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 그런 것이 송찬호만의 상상력이다. 왜 그는 멀고도 험한 붉은 나라, 동백국에 가려고 하는가. 저 길길이 날뛰던 무쇠 덩어리도 오늘만큼은 화사하게 동백 열차로 새로 단장됐답니다 삶이 비록 부스러기 쉬운 꿈일지라도 우리 그 환한 백일몽 너머 달려가 봐요 잠시 눈 붙였다 깨어나면 어느덧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에 닿을 거예요 - [동백 열차] 일부 동백국은 부스러지기 쉬운 꿈 너머의 백일몽 같은 나라다. 비록 그것이 백일몽이라 하더 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 먼 남쪽 바다 초승달 항구를.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정 말 꿈이 아닐까. 마치 우리가 꿈을 꾸고 나서 그것이 꿈이었구나 깨닫는 것처럼 우리의 현 실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꿈일지도 모른다. 미처 동백이 찬연히 피어있는 것을 다 둘러보기 도 전에 동백은, "동남풍/바람의 밧줄에/모가지를 걸고는/목숨들이 송두리째/뚝, 뚝 떨어져내 ([나, 동백꽃 보러 간다] 일부)"리고 만다. 멀리서는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사라져버리는 동 백,은 어찌보면 그가 기다리는, 그가 도달하고자 하는 詩 한 편이며, 노래이다.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 [임방울] 전문 여기에서 그의 시세계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시가 백 년 잉어가 되기 를 희망하는 것에 다름아닌 것이라는 것을. 산경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삶이 어찌 이다지 소용돌이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소동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어느 시절이건 시절을 앞세워 명창은 반드시 나타나는 법 유성기 음반 복각판을 틀어놓고, 노래 한 자락으로 비단옷을 지어 입었다는 그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 들어보시게, 시절을 뛰어넘어 명창은 한 번 반드시 나타나는 법 우당탕 퉁탕 울대를 꺾으며 저 여울을 건너오는, 임방울, 소리 한가락으로 비단옷을 입는 늙은이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e******e 2000.03.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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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 [붉은 눈, 동백]
"송찬호, [붉은 눈, 동백]" 내용보기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얘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이 시는 2연으로 완성되었기도 하고 <상자>에서는
"송찬호, [붉은 눈, 동백]" 내용보기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얘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이 시는 2연으로 완성되었기도 하고 <상자>에서는 시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 덕분에 알게된 이 시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 시집을 샀다.

 

그 기발하지만 쓸쓸한 감성.

d******h 2008.10.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