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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한 동그라미 : lalilu 책의 표지는 제목 왼쪽에 수직으로 “/엄마 되기/의 풍랑 속 흔들리는 모성을 붙잡다”라는 문장을 소개한다. 표지 아래에는 “낯설고 불안한 ‘엄마의 길’ 위에 선 엄마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린다”라는 문장을 함께 제공한다. 이 책은 미래를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힘과 위로 따뜻한 격려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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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연약한 존재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눈을 다른 데로 돌리기 어렵게 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아이들은 연약하기에 잘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잠잘 때 안경을 쓰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 역시도 24시간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습관 같다. 잠잘 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바로 대처하기 위한 심리의 발로라고 해야 하나.
아이가 좀 크고 걸어다니고 말귀도 알아먹을 정도가 되니 그래도 예전만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아니게 됐다. 그럼에도 아직도 놀이터에서 높은 놀이기구에 올라가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불안할 때가 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노심초사하며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있는데 저자는 그 엄마들도 안아줄 환경이 필요하다며 이 책을 썼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처럼 그 엄마들도 누군가 안아주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서를 자주 읽게 됐는데 정보나 지식이 필요해서 읽는 육아서도 있지만 심리적인 지지나 안정을 바라고 읽는 때도 있는 듯하다. 이 책은 후자의 의미가 강한 책이다. 저자의 아이 셋 키우는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생각하는 심리적인 짐은 좀 내려놓고 도움도 받고 자기만의 시간도 좀 가지고 그래도 된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심리적으로 지지받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험하며 배우며 그렇게 엄마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을 엄마가 되어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 되는 두가지 측면을 다 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듯도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잘 할 수는 없다.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전업주부든지 맞벌이든지 '쉼'이 필요한 존재이며 그 쉼이 더 큰 사랑으로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 책은 출판사를 통해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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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0살, 6살, 4살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담심리사이다. 아이 셋의 육아와 직업까지 내공이 어마어마해 보인다. 이상적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은 본인도 엄마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정답보다는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는 책에 가까웠다. 이 책은 상황에 공감하되, 현실적인 방안을 덧붙인다. 엄마도 화를 낼 수 있다고. 하지만 '느닷없는 폭발 대신 충분한 예고편'을 미리 주어야 한다고. 아무 금이나 밟는 아이에게 '제대로' 화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 밖에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내가 '엄마서'를 멀리한 근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사회가 엄마에게 많은 것을 요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책 속에서도 이 무게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점차 기존의 엄마의 정의에서 새로운 엄마의 정의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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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아 우울증이 찾아올 때마다 깊은 자괴감, 죄책감에 빠져들었고, 아이들을 향한 나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려 하고, 의미 없는 가늠질을 반복하였다. 결론적으로 육아 우울증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혹은 아이를 향한 나의 사랑이 부족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전의 내가 나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잘 해주다가도 삐끗하는 날이 있다. '엄마'라는 타이틀로 모든 것을 포용하려 하지만, 나는 엄마이기 전에 이제 철들기 시작한 어른이다. 육아 중 발생하는 화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나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화를 자주 내는 나는 아니지만, 화를 내고 그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기가 힘든 성격인 나. 그 화들을 마주할 때 나는 짐승 같은 나의 모습에 목놓아 울어버릴 수도, 숨어버릴 수도 없었다. 그 모습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이며 수치스러움과 자기모멸감을 느꼈고, 그 잔해들은 한데 모여 죄책감으로 남아 나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화를 내지 말라는 주변인들의 충고에 지쳐갈 때 즈음, 저자는 화를 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만 올바른 방법으로 말이다. 화를 어떻게 내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방법인지 찾아 헤매던 나에게 화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 스스로 아이들에게 희생적인 엄마, 맹목적인 엄마가 되기를 과하게 강요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보다 더 멋진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도서였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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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이혜선 작가님의 책이 출간된 호우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왔다. 의리의 이틀님이 읽어보시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면 좋을 것 같다고 서평 이벤트를 진행하시길래 신청을 했다. 할 일들, 읽을 책들에 치여 신청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 즈음, 주문한 적 없는 택배 도착 예정 문자를 받았는데 뜯어보니 호우 출판사에서 보낸 책이었다. 책의 서두에 작가의 말과 목차를 휘리릭 읽어보았다. 마침 독서모임을 앞두고 읽고 있던 <숭배와 혐오: 모성이라는 신화>와 일맥상통해 보였다. '신기한 연결이군.' 생각하며 부처님 오신 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틈틈이 이 책을 읽었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자신의 일을 하고 있고 글을 쓰며 살아가기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공감하면서. 저자 선안님님은 상담심리사로 다수의 책을 낸 작가셨다. 셋째를 출산하고 영국에서 육아에 전념하는 시간을 보내셨던 모양이다. 남편이 주말 오롯이 육아를 책임져주었다고 하지만 나이도 성격도 각각 다른 세 아이와부대끼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난 5년간 매일밤과 주말동안 홀로 아이와 밀착해서 지낸 나는 조금이나마 짐작이 갔다. 막막함과 두려움을 이겨보고자 종종 육아서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책을 덮고는 했다. 흔들림 없는 확신 가득한 경험담도, 회한 가득한 조언도 불편했다. 정작 아이를 키우는 나를 지지해준 것은 덜 자란 나의 내면아이를 위해 읽었던 심리학서, 문학서였다. 사람의 불완전성, 삶의 예측불가능성을 담은 소설과 심리학서가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숭배와 혐오>에 이어 <엄마를 위한 동그라미>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해 온 '모성 신화'로 인해 우리 엄마들이 얼마나 힘겹고 외로운지 그리고 부당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이면서도 그것을 깨기가 어려운지 생각해 보았다. 분명 이 사회는 엄마에게 타고난 생물학적 이유 이상의 것들을 당연하게 요구해 왔다. 상담심리사라는 직업의 영향도 있을 것 같은데 <엄마의 동그라미>에서는 무너지는 엄마들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해 보지 않는다. 공감가는 상황과 말로 엄마들의 힘겨움을 위로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엄마를 품는 모성의 역할을 해 나갈 것을 권유한다. 엄마가 아기를 잘 품기 위해서는 그 엄마도 누군가가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 후 3개월만에 복직을 하면서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무리를 해서 유축을 했다. 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점심시간을 쪼개고 업무 시간에 눈치를 보며 문을 걸어 잠근 채 유축을 하느라 늘 조마조마했던 오래 전의 나를 떠올리면 안스럽기 그지없다. 불완전한 수유도 회사에서의 입장도 불안하고 불편했다. 11개월간 힘겹게 이어지던 모유수유는 오랜 세월 함께 한 와인모임의 리더가 가게를 닫는 날 중단되었다. 고심 끝에 참석했는데 그날로 수유를 그만뒀다. 힘겹기도 했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고작 하룻밤 술을 마시기 위해 모유수유를 그만두다니 부족한 엄마일지는 모르겠으나 미안함만큼이나 시원함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당시 다니던 병원과 주변의 임신과 출산준비 분위기에서 모유수유=모성의 기본이라는 정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전투적으로 수유를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모든 것이 서툰 초보엄마였고 육아서를 잘 보지 않는 고집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모성에 대한 기준과 판단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며 일희일비하는 엄마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을 겪었고 겪고 있으며 겪을 수많은 세상의 엄마들에게 이 책은 그 일이 비록 힘들지만 의미있는 일이라는 흔하지만 진실된 위로를 건넨다. 더불어 아이만큼이나 엄마도 누군가가 품어주어야 하는 존재임을, 이제 그것을 앞으로의 우리가 이 사회가 해 나가야 하고 변화는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는 희망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전한다. 엄마로서 우리는 아이에 속박된다. 잠시 변신의 자유가 주어져도 자정이 지나면 재투성이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처럼 다시 엄마로 돌아와 아이를 위해 절대적 시간과 체력을 쓸 수 밖에 없는 지금, 엄마로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의미, 내가 갖고 있는 엄마로서의 틀과 한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모성의 의미를 두루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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