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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고 싶은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붙들고 싶은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내용보기
아주아주 오래 전,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했던 말 중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왜 헤어졌냐고. 친구는 이러쿵 저러쿵 상세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이 한마디만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다. '뭔 소리야, 이게?' 이 말이 수십 년이 지난 지
"붙들고 싶은 사랑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내용보기

아주아주 오래 전,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했던 말 중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진 친구에게 내가 물었다. 왜 헤어졌냐고. 친구는 이러쿵 저러쿵 상세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이 한마디만 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다. '뭔 소리야, 이게?' 이 말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머리에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목소리를 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냐는 말. 드라마나 영화에서 멀어지는 연인 사이의 단골 메뉴였던 이 말은 여러 의문을 불러온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이 세상의 사랑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지런히 옮겨다니며 움직이는 걸까?  변하는 사랑은 애초부터 사랑이 아닌게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이 사랑은, 사랑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일까? 그냥 어느 한 사람에 대한 일시적인 집착이 아닐까? 그러면 사랑과 집착은 뭐가 다른 걸까? 집착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랑은, 수없이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갈 주제다. 무엇이 사랑이라고 콕 찝어 머리에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안다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에 빠졌다고 느낄 때 고민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을 것 같다. 뭔가를 모르는 어릴 때라서 그랬을까?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을 무척 경계 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내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널뛰기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벤볼리오 :  내 말을 잘 들어봐. 그런 여자는 잊어버리게.

로미오 :  그러려면 생각하는 법부터 잊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나? 알려주게.

벤볼리오 : 자네의 눈에게 자유를 주어 다른 여인들의 미모를 살펴보게 하는 거지.

로미오 : 그건 그녀의 뛰어난 미모를 더욱 생각나게 할 뿐이야. 아름다운 여인들의 얼굴을 가리는 저 가면들은 가려주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그 가려진 미모를 더욱 생각나게 하는 것 아닌가. 자네가 내게 절세의 미인을 보여 준다고 해 보세. 그런들 무슨 소용인가? 그 여인은 결국 그보다 뛰어난 여인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뿐이야. 잘 가게. 자네는 내게 잊어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못할 거야. (22쪽)

 

이 대사는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전에 친구와 나눈 것이다.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첫 눈에 반하기 전에 이미 한 여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런 로미오에게 친구인 벤볼리오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보라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꽂힌 마음을 돌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려면 생각하는 법부터 잊어야 한다고 로미오가 말할 정도로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에 빠져있는 그 순간에는 그게 변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그때 그 순간에만 말이다.

 

로미오 : (줄리엣에게) 만일 제가 이 천한 손으로 이 거룩한 신전을 더럽히고 있다면,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그 죄를 보상하게 해 주세요. 제 입술은 얼굴을 붉힌 두 순례자처럼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47쪽)

 

그랬던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첫 눈에 반한다. 한 순간, 빛의 속도로 마음이 바뀐 것이다. 지난 날 누군가를 마음에 담았다는 사실은 아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린 순간이다. 그게 사랑이었다면, 사랑이 움직인 것이다. 이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그건 나도 모르겠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떠올려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깊이 생각해야 하는 사랑 때문에 마음이나 생각이 마비될 일은 없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그 사랑은 쉽게 움직여서 아프고 힘든 것이다.

 

로미오 : 아니요. 신부님, 로잘린이라뇨? 저는 그 이름도, 그 이름이 주는 고통도 모두 잊었는걸요. (70쪽)

 

로렌스 신부 : 아, 하느님 맙소사! 이 무슨 변덕이란 말이냐! 네가 그토록 사모하던 로잘린은 벌써 잊었는냐?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사랑은 마음이 아닌 눈에 있구나. 아이고, 성모마리아여! 너는 로잘린 때문에 그 창백한 뺨에 짜디짠 눈물을 무던히도 흘렸지. 맛도 보지 않을 사랑에 간을 맞추려 그토록 많은 소금물을 낭비했단 말인가! (71쪽)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활활 타오른 불꽃이었을 뿐, 움직일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그런 사랑 이야기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 사랑하게 되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일 것이다. 나도 상대도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는 그래서 나온 말인 듯.

 

줄리엣 : 상상은 말보다 내용이 더 풍부하니, 상상은 말로 하는 겉치레보다 실체를 더 자랑한답니다. 가난한 사람만이 자기 재산을 헤아릴 수 있어요. 제가 가진 사랑은 너무나 커서 그 절반도 헤아릴 수 없는걸요. (91쪽)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꿈꾼다. 그래선지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사는 게 아닐까? 그 중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대로 영원히 살 거란 믿음이다. 모든 게 변할 거란 걸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날 거란 사실 말이다. 이 정도 삶을 통찰할 수준이 되면, 진정 살아 있을 준비가 됐을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준비도.

 

로미오 :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갑자기 명랑해진다지. 사람들은 그걸 임종의 섬광이라 하더군. 지금의 내 기분이 그런 것인가? 아, 내 사랑, 내 아내, 죽음이 당신의 감미로운 숨결을 앗아 갔을지언정 당신의 아름다움은 빼앗지 못했군요. 아름다움의 깃발이 아직 당신의 입술과 두 뺨에 펄럭이는데, 죽음의 창백한 깃발이 아직 꽂히지 않았으니 당신은 아직 패한 것이 아니요. (182쪽)

YES마니아 : 골드 l*****j 2023.09.10. 신고 공감 11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