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2%
  • 리뷰 총점8 18%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8)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사라진 서울을 걷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페이퍼로드/2021.5.7. sanbaram   서울은 대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몇 십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서는 대도시화가 되기 전의 서울을 이야기한다. 아직 도시화 초기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던 시절의 서울을 회상하고 그에 대한 이야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페이퍼로드/2021.5.7.

sanbaram

 

서울은 대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몇 십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서는 대도시화가 되기 전의 서울을 이야기한다. 아직 도시화 초기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던 시절의 서울을 회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1990문학과 사회여름호에 [비와 바람 속에서] 3편을 발표함과 동시에 시인이 되었고, 1991년 건축전문지 공간에서 건축 평론 신인상을 받고 건축평론가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567천만년의 고독>, <성 타지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등이 있고, 건축평론집으로는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을 읽는 옛집등 다수가 있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는 옛날의 서울 모습을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오늘도 서울에서는,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 모두를 전생으로 만든다,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등이 그것이다. 다루는 지역은 마포, 왕십리, 종각, 중구, 창신동, 압구정, 청계천, 인왕산, 선유도, 인사동, 종묘, 장충단, 충정로, 자하문, 신촌, 홍대, 서촌, 필동, 효자로 등으로 주로 구도심 지역과 그 변두리 지역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을 바라보면 어제의 낡은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는 걸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곳의 유명했던 건물과 지형에 얽힌 이야기 및 사람들 살아가던 모습들 회상을 통하여 어려웠던 시절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변한 모습에서 간신히 옛날을 회상해 볼 수 있는 곳곳의 이야기를 추억하면서 지금과는 달랐던 예전 서울 모습을 설명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설명하는 옛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 그림이나 지도 등이 빠진 것은 못내 아쉽게 생각 되었다. 책 속에 있는 삽화만으로는 온전히 상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도시가 되기 전의 서울 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한양도성은 놀랍게도 단 98일 만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139410월 한양으로 천도하여 바로 다음 해 종묘와 사직단, 경복궁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9월 말에 완공한다. 공가 기간은 불과 10개월이었다.(p.35)”

태조는 1396년 음력 19일부터 228일까지 49일간, 이어서 86일부터 924일까지 49일간, 백성 1974백여 명을 동원하여 불과 98일 만에 한양도성을 완공했다. 그래서 인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대대로 성곽을 보수한 무수한 기록이 나온다. 아무래도 졸속시공의 결과인 듯 싶다. 한양도성이 총연장 59,500척의 성터 중 43000, 즉 삼분의 이가 넘는 부분이 토성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사기간 내에 완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흥인문흥인지문으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부터였다.(p.37)”

이때 흥인문도 개축을 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훈련도감 공사들을 동원하여 동대문을 완전히 해체한 다음 낮은 지반을 여덟 척이나 돋우고 그 위에 동대문을 중건했으니 거의 새로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고려 개국과 함께 왕조의 역사로서는 서울의 처음이 이곳 흥인문 부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비운의 단종비가 시녀들의 구걸과 옷에 물감 들이는 일로 연명했던 곳도 여기요, 구한말 민비의 애환을 전하는 곳도 이곳이다. 그러나 흥인문 길은 왕조의 비운에 아랑곳없이, 임진왜란 이후 지방 장사치들이 몰려와 종로 시전과 대응하는 난전이 펼쳐져 숭례문과 함께 민중의 역동적인 생활 터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다소 비약은 있지만 비운의 단종비가 연명했던 것도 옷감에 물들이는 일이요, 당시에 배오개라고 불리던 종로 4가가 오늘날에도 유서 깊은 포목점 거리로 잡은 것도 그 유래가 깊은 것이라고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내기도 한다.

 

오늘날 상품은 그것이 어떤 세대나 계층을 대변하든 간에 곧 그들의 문화를 대변한다. 문화를 팔아야 물품이 팔리는 시대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p.41)” 사실 20세기 초를 제외하곤 그렇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 과거 난전에서는 물품의 유통과 함께 연희가 있었고, 악극이 있었으며, 정보의 교환이 있었다. 오늘날 물품 유통의 장소가 다름 아닌 과거 난전의 모습이라는 것은 분명, 문명의 진보에 대한 아이러니다. 동시에 이것은 현대 상업 자본주의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원래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일본인이 우리 땅이름을 죄다 흔들어 놓을 때 새로 만든 말이다. 이전에는 그냥 개천이라 불렀다.(p.107)” 서울은 북악산이나 인왕산에서 청계천 남쪽으로 흐르는 크고 작은 개천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청계천이라는 이름도 인왕산 청풍 계곡에서 발원하는 개천이란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예부터 개천은 하천과 구분해 썼다. 하천이 자연 그대로 물줄기를 뜻한다면 개천은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정비한 하천을 말한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차이를 의미하는데, 서양의 도시계획이 수성(守成)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면 우리 도시계획은 철저히 삶에서 기인한다. 풍수지리가 고려의 정치이념을 구현하는 행정의 가치체계를 상징한다고 볼 때, 우리 도시계획과 그것을 이루는 인프라에 대한 정비는 이미 고려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양의 하수 체계가 르네상스 이후라고 할 때 서양과 우리가 보는 도시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중에 서양의 도시계획은 인위적으로 인프라를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자연의 인프라를 도시의 목적에 맞게 다듬은 것을 개천이라고 부르게 된다. 청계천 복구는 청계천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청계천을 만든다는 것이 그 발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게 오늘날 청계천이다. 그러니까 지금 청계천으로 흐르는 깊이 40센티미터의 물밑으로는 차수막으로 차단된 원래의 오염된 청계천 물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서울시는 원래의 청계천을 다시 새로운 하천으로 덮어버렸다.

 

서양은 건축을 건축물 자체로 인식하지만 우리는 건축물이라는 개별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제나 건축을 포함한 마당, 그리고 마당을 포함한 마을, 마을을 포함한 산세로, 건축의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장된다.(p.176)”

따라서 우리 건축은 지형과 산세가 건축 디자인의 관건이다. 예부터 풍수지리학이 중요하게 여겨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서구 건축은 집을 바깥에서 바라보면서 미학적 관점을 형성해 나가지만 우리 건축은 집안에서 바깥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에 장식이 없다. 이와 같이 한국 건축의 장식은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된다고 건축학자 다운 시각으로 우리의 건축에 대해 설명한다.
 

고종황제는 황태자 순종에게 장충단세 글자를 쓰게 하고 민영환의 글로 비석을 세웠다. 이렇게 대한제국의 현충원인 장충단이 태어났다. 장충단은 그 후에도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을 계속 배향함으로써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고, 반일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p.187)”

사직단은 그냥 사직단일 뿐이다. 장충단은 그냥 장충단일 뿐이다. 굳이 거기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이라고 한다. 사직단을 공원이라고 부를 때, 그 장소의 역사성은 사라져버린다. ‘이름 붙이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이름은 역사를 지우기도 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언어 속에는 식민지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어는 외래어에 너무 많이 오염됐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계화로 착각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경복궁 사대문은 모두 이와 같은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서 그 이름이 정해졌다. 경복궁의 북쪽 문인 신무문은 북현무에서 따온 이름이고, 남쪽 문인 광화문은 궁궐의 정문인 관계로, 모든 궁 정문에는 조선 시대의 통치 이념인 유교의 이상을 상징하는 를 넣는 당시의 예에 따라 창덕궁은 돈화문, 창경궁은 홍화문, 경희궁은 흥화문, 경운궁은 인화문이라 한 것처럼 광화문이 되었고, 동쪽문과 서쪽문은 봄과 여름의 이름을 따 건춘문과 영추문이 된 것이다.(p.247)”

영추문은 또한 연추문 이라고도 불렀는데 역시 가을을 끌고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이 된다. 광화문이 주로 임금이 드나들던 문이라면 영추문은 주로 문무백관들이 드나들던 문이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모두 영추문을 통해 궁궐을 드나들었다. 아마도 가을이라는 상징이 무르익은 성숙한 정신을 뜻하는 고로 국사를 맡아보는 이들의 추상같음과 노회한 국정 경영을 기대하며 그렇게 정한 듯싶다. 자세히 얘기하면, 건춘문으로는 세자와 동궁에 위치한 각사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드나들었고, 영추문으로는 문무백관들이 드나들어 그 기능이 역할에 의해 구분되었다고 문의 이름과 활용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예스24 리뷰어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k******4 2021.05.17. 신고 공감 29 댓글 44
리뷰 총점 종이책
건축하는 시인이 쓴 서울이야기
"건축하는 시인이 쓴 서울이야기" 내용보기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온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이다. 남쪽의 한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조그만 도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올라온 서울의 첫인상은 번잡하기 그지없었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람들, 그치지 않는 소음들 속에서 처음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어 집에라도 내려가는 날에는 소음과 번잡함에서 해방되는 것 같아 정신이 맑아지기도 했다.
"건축하는 시인이 쓴 서울이야기" 내용보기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온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이다. 남쪽의 한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조그만 도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올라온 서울의 첫인상은 번잡하기 그지없었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람들, 그치지 않는 소음들 속에서 처음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어 집에라도 내려가는 날에는 소음과 번잡함에서 해방되는 것 같아 정신이 맑아지기도 했다. 헌데 언제부턴가 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도 서울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용산역에 내려 소음과 복잡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후론 그런 일상 속에 묻혀 서울에서 살았다. 외곽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거주지는 서울을 벗어났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은 계속되었고, 그러다 십 몇 년 전 근무지가 지방에 있는 공장으로 바뀌면서 서울을 벗어났다.

 

지금은 서울을 떠나 살고 있지만, 간혹 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가면 다시 정신이 없어진다. 하나는 너무나 바뀐 모습에 그곳이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이 맞나 싶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십년 넘게 한적함 속에서 지내다보니 복잡하고 정신없이 빠른 삶에 미처 적응이 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서울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다. 마치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느꼈던 소음과 번잡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워졌듯이...

 

이 책은 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그런 서울에 대해 쓴 책이다. 우리가 무심코 걷는 거리이지만 옆을 바라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스며있다며 그는 말한다. 저자는 총5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지금의 서울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하고, 자본이 바꿔놓은 거리의 옛 모습을 추적하는가 하면, 거리와 장소에 깃든 역사를 돌아보기도 한다. 도시정비에 따라 많이 허물어져 내렸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것들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는가 하면, 항상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던 곳을 찾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무한한 도시의 욕망아래 지금은 사라져버린 곳들을 역사 속에서 불러내고, 혹은 변한 거리를 걸으면서 그곳을 사랑했던 시인과 작가들의 노래를 통해 수많은 사연을 소환하고 있다. 그곳에 살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 수없이 걸었으면서도 귀 기울이지 않아 듣지 못했던 거리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그 시절 그곳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춰지는 곳이 있다. 내가 서울에 살면서 생활했거나 자주 가보던 곳이다. 광화문네거리에서부터 동대문에 이르던 거리의 주변도 그 중 하나이다. 다니던 학교가 위치했던 곳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이 있었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주변 골목골목마다 추억이 깃들어 있고, 거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도 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난전이 펼쳐졌던 동대문과 종로의 육의전이 있던 자리에는 재래식시장이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나 도시계획에 따라 고층건물들로 정비되면서 지금은 지방 의류소매상의 대단위 도매거래처가 형성되었다. 잃은 것은 과거 난전의 사람 사는 맛이었고, 얻은 것은 도시의 살풍경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건축가답게 화신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종로타워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건물이 서로 조우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한 풍경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건물들이 완공된 후의 모습을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나로서는 옛날 난전 골목골목에 위치해 있던 주점들과 창신동의 헌책방과 청계천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창신동일대에 자리 잡은 헌 책방들은 청계천이 복개되기도 전인 1960년대 이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심에 대형서점이 출현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헌 책방에서 풍기는 오래된 책 냄새는 아직도 아련하다. 주인은 손님을, 손님은 주인을 신경쓰지 않고 따로 놀았지만, 그날의 운수에 따라 책값이 수시로 들쭉날쭉 했지만, 주인도 손님도 그런가보다 했던 그 시절을 지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더욱 애틋해진다. 청계천은 북악과 인왕, 남산 등에서 시작한 여러 물줄기가 서울 도심을 관통하다가 마장동에서 정릉천과 합류하고 뚝섬부근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었던 개천이다. 하천이 자연 그대로의 물줄기라면 개천은 인위적으로 흐름을 조작해 정비한 하천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도 자체 정화능력을 상회하는 생활하수로 문제가 되었고, 치수의 주대상이기도 했다고 하니 청계천의 개천역사는 그만큼 오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58년 복개공사가 시작된 이후 청계천은 땅속을 흘렸고, 그 위론 자동차도로가, 삼일고가도로가 자리 잡았다. 삼일고가도로는 처음 운전을 시작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거쳐야 했던 난코스이기도 했다. 저자는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통해 복개되기 전 청계천의 모습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 청계천이 2002년 복원되었지만, 옛 모습을 찾은 것이 아니라 개천을 덮었던 콘크리트를 아래로 내리고 그 위에 수돗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한다. 복원된 청계천의 콘크리트 바닥 아래로는 여전히 그 옛날 청계천이 생활하수와 함께 흐르고 있다.

 

종묘는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한 명소이기도 하다. 건축물로써 종묘가 지닌 용도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죽은 자의 집이다. 처마의 어둠과 마당의 빛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종묘를 두고, 저자는 서구예술이 오랜 시간 걸려 도달한 미니멀리즘의 미학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되지도 않는 헛소리라고 치부하는 그는, ‘종묘가 서양인의 눈에도 확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가장 한국적이어서가 아니라 종묘의 한국적 특수성 속에 이미 삶의 보편성이 깊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서구의 미니멀리즘과는 상관없이 삶과 죽음을 읽어내는 우리의 방식이 그들의 눈에도 보편적으로 보인 까닭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자신들의 욕망을 합리성과 서구적인 예술성으로 포장하여 새로운 건축물들로 도시를 점령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저자의 말은, 우리의 무분별한 도시재개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밖에도 남대문, 인사동, 장충단로나 효자로 등에 얽힌 이야기는 과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곳을 무시로 드나들던 때에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서울은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다시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수많은 시인들이 자신들이 살고 보았던 서울의 거리를 묘사한 시를 읽으면서는 그 거리 가장자리에 서서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 시인의 눈으로 살펴본 서울 거리의 이야기를 따라 걷다보면, 서울의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어제의 낡은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걸어보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k*****1 2021.05.16. 신고 공감 20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다양한 기록과 저자의 경험을 통해 서울의 풍경을 그리다!
"다양한 기록과 저자의 경험을 통해 서울의 풍경을 그리다!" 내용보기
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서울의 풍경을 자신의 경험과 옛 문헌 혹은 문학작품에 반영된 모습을 통해서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건축하는 시인의 시(市) 이야기'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서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을
"다양한 기록과 저자의 경험을 통해 서울의 풍경을 그리다!" 내용보기

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가 서울의 풍경을 자신의 경험과 옛 문헌 혹은 문학작품에 반영된 모습을 통해서 설명하는 내용이다그래서 책의 부제는 '건축하는 시인의 시(이야기'이다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저자 역시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서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을 것이다때로는 변하기 이전 서울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하고간혹 변한 이후의 모습을 통해 과거의 그것과 비교하여 그 의미와 감회를 서술하기도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언제나 풍경은 자기 내부에 있다'고 전제하고서울의 곳곳의 풍경에 대해 다양한 '기억'들을 소개하고 있다건축가이자 시인인 저자는 때로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거리와 건축에 대해서 논하고많은 경우 다양한 문인들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모습에 대해서 기억하고자 한다

 

첫 번째 항목인 '오늘도 서울에서는'이라는 제목 아래 서울의 '마포''왕십리', '종각에서 동대문까지'의 종로거리와 '중구등 이른바 강복 지역들을 중심으로 저자 자신과 다양한 이들의 기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간혹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지도를 대할 때면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서울 도성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이용유 시인의 시를 통해서 까마득한 시절의 마포의 풍경을 제시하고저자 자신이 겪었던 옛 기억을 거기에 겹쳐서 너무도 달라진 오늘의 마포 풍경과 비교하고 있다서울 도심에서 약 10(4Km) 거리에 있는 왕십리가 도선과 이성계의 도성 찾기에서 비롯된 지명이라는 것여기에 김소월과 김혜순 그리고 조선시대 문인인 택당 이식의 한시 작품을 제시하면서 왕십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있다

 

서울이 강남으로 확장되기 이전에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는 명동과 종로였다그래서 '종각에서 동대문까지거리를 훑으며 종로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하고신동엽 시인의 종로오가라는 작품에 그려진 우연히 만난 시골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산업화의 과정에서 도시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한다이처럼 저자에게 서울은 변해버린 현대의 모습보다 옛 기록과 저자 자신의 기억을 통해서 반추되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이미 서울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나 역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서울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라는 두번째 항목에서는 창신동과 압구정대학로와 청계천 등을 소개하고 있다이 책에서 '압구정'은 유일하게 서울 강남의 지명을 다루고 있다고 하겠는데그 이유는 저자의 경험이나 과거에 활동했던 다른 문인들의 경험 속에서 서울은 주로 한강 이북 지역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희대의 간신이라고 평가를 받는 조선시대 한명회의 정자인 압구정에서 유래했다는 압구정동은 온통 배밭이었던 곳이 강남의 개발 열풍과 더불어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된 곳이다저자는 자신과 함께 어울렸던 시인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에 등장하는 그 풍경에 주목하고 있다또한 청계천 개발이라는 프로젝트가 사실은 환경이 아닌주변 개발로 인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졸속 행정이었음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건축가의 입장에서 청계천 개발은 원래 흐르던 청계천을 지하에 매설하고그 위를 새롭게 복개하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인공적으로 한강물을 퍼울려 흐르게 한 실패작이라고 단언한다.

 

'모두를 전생으로 만들다'라는 세번째 항목에서는 삼청동과 인왕산한강의 선유도와 전통이 사라진 전통의 거리 인사동의 풍경을 소개하고 있다나 역시 간혹 서울에 올라가서 지인들을 만날 때에 인사동에 들르곤 하지만지금의 모습은 불과 30여년 전의 그것과 달라져서 이제는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서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네번째 항목인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에서는급격하게 변해가는 서울의 풍경에서 그래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종묘''장충단', '충정로''자하문로등의 고풍스러움 혹은 느리게 변하는 모습들을 다루고 있다마지막 '그 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라는 항목에서는저자의 서울살이를 토대로 자신이 거쳐왔던 장소들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자신이 처음 서울에서 살았던 '신촌'과 건축사무실을 처음 열고 출판사 동인들과 함께 어울렸던 '홍대', 새로 사무실을 옮겨 열었던 경복궁 옆의 '서촌'과 그 주변의 '효자로', 그리고 친일파 자손임을 알리며 재건축을 의뢰했던 남산 자락 필동의 '적산가옥'과 그곳의 새롭게 변한 모슴 등을 소개하고 있다

 

나에게도 서울은 여전히 강북의 골목골목의 이미지로 남아있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다녔던 적이 많았기에지금도 남산과 종로 그리고 신촌을 비롯한 강복 곳곳의 골목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려질 듯하다대학 다니던 시절 새벽까지 술을 먹고 잘 곳도 마땅치 않고 택시비도 없어서학교 앞에서 서소문의 집까지 술에 취해 몇 시간을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아마도 그러한 기억이 있기에저자의 이 책을 흥미롭고 또 가끔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고 하겠다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옛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그 모습을 바뀌겠지만그래도 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사라진 서울을 걷'는 저자처럼 옛 모습 또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책을 읽으면서 익숙한 곳을 소개할 때엔나 역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그곳을 그려볼 수 있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1.05.20. 신고 공감 1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라진서울을 걷다
"사라진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페이퍼로드/2021.5.7.   서울은 대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몇 십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서는 대도시화가 되기 전의 서울을 이야기한다. 아직 도시화 초기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던 시절의 서울을 회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사라진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페이퍼로드/2021.5.7.

 

서울은 대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몇 십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서는 대도시화가 되기 전의 서울을 이야기한다. 아직 도시화 초기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던 시절의 서울을 회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1990문학과 사회여름호에 [비와 바람 속에서] 3편을 발표함과 동시에 시인이 되었고, 1991년 건축전문지 공간에서 건축 평론 신인상을 받고 건축평론가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567천만년의 고독>, <성 타지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등이 있고, 건축평론집으로는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을 읽는 옛집등 다수가 있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는 옛날의 서울 모습을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오늘도 서울에서는,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 모두를 전생으로 만든다,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등이 그것이다. 다루는 지역은 마포, 왕십리, 종각, 중구, 창신동, 압구정, 청계천, 인왕산, 선유도, 인사동, 종묘, 장충단, 충정로, 자하문, 신촌, 홍대, 서촌, 필동, 효자로 등으로 주로 구도심 지역과 그 변두리 지역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을 바라보면 어제의 낡은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는 걸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곳의 유명했던 건물과 지형에 얽힌 이야기 및 사람들 살아가던 모습들 회상을 통하여 어려웠던 시절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변한 모습에서 간신히 옛날을 회상해 볼 수 있는 곳곳의 이야기를 추억하면서 지금과는 달랐던 예전 서울 모습을 설명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설명하는 옛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 그림이나 지도 등이 빠진 것은 못내 아쉽게 생각 되었다. 책 속에 있는 삽화만으로는 온전히 상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도시가 되기 전의 서울 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한양도성은 놀랍게도 단 98일 만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139410월 한양으로 천도하여 바로 다음 해 종묘와 사직단, 경복궁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9월 말에 완공한다. 공가 기간은 불과 10개월이었다.(p.35)”

태조는 1396년 음력 19일부터 228일까지 49일간, 이어서 86일부터 924일까지 49일간, 백성 1974백여 명을 동원하여 불과 98일 만에 한양도성을 완공했다. 그래서 인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대대로 성곽을 보수한 무수한 기록이 나온다. 아무래도 졸속시공의 결과인 듯 싶다. 한양도성이 총연장 59,500척의 성터 중 43000, 즉 삼분의 이가 넘는 부분이 토성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사기간 내에 완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달의 사락 k******4 2022.09.10. 신고 공감 1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라진 서울을 걷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서울에 살면서 이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정겨우면서도 가슴아프게 느껴진다.  건축하는 시인 <함성호>의 <사리진 서울을 걷다> (페이퍼로드 펴냄)은 집에서 직장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 속 여행을 좀 더 정답고, 느슨하게 만들 수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는 매일 아침 차를 몰고 한강변을 따라 출근하는 그 길이 교통체증으로 짜증나는 시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서울에 살면서 이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정겨우면서도 가슴아프게 느껴진다.  건축하는 시인 <함성호>의 <사리진 서울을 걷다> (페이퍼로드 펴냄)은 집에서 직장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 속 여행을 좀 더 정답고, 느슨하게 만들 수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는 매일 아침 차를 몰고 한강변을 따라 출근하는 그 길이 교통체증으로 짜증나는 시간보다는 정겨운 기억과 아픈 상처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저자는 조용하지 않은 번잡한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도시의 복잡한 활력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도시를 싫어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사는 곳의 옆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무심히 걷는 이 거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고 가로를 정비하고 나무를 심고 의자도 갖다 놓고 분주하지만 정돈된 거리는 깨끗하지만 난삽한 풍경이 주던 활력을 잃어버려 아쉽다는 것이다. 그래거 그 거리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은 <오늘도 서울에서는>에서 마포를 먼저 회상한다. 마포에서 8대를 이어 살아온 고인이 된 이영유 시인을 소환한다. 마포는 우리말로 '삼개'로 불리는 포구 이름으로 삼개는 마포동, 토정동, 하수동 일대 연안을 지칭하는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서강, 마강, 용강을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옛날 마포에는 배천 배씨와 경주 이씨의 세거지였는데 밤섬에는 마씨, 석씨, 인씨 등 의귀 성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마포에서 나서 인천에서 살았던 시인은9대손인 아들을 데리고 소래에 나가 그 옛날 마포 종점을 소래와 연결하는 시를  <밤 깊은 마포종점(2003 문학과지성사)> 남겼다.

 

  왕십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왕십리 부근에 다다랐는데 한 노파가 나타나 이곳에서 십리만 더 가보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태조와 무학은 이것이야말로 신의 계시라 여겨 북악산 기슭에 궁터를 잡았다. 그 짐명이 '십 리만 더 가라'라는 뜻의 왕십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십 리는 지금의 서울의 서북쪽이 아니라 동북쪽이라는 것, 그리고 노파는 신라 말기 도선국사였다고 한다. 하왕십리 도선동은 바로 도선국사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결국 조선은 천 년을 가는 도읍지를 못 보고 오백 년 도읍지를 선택한 셈이라는 것이다. 왕십리는 뉴타운으로 개발해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실개천이 만들어지고 아파트 중심의 개발을 지양하며 동대문운동장 지역과 뚝섬의 '서울숲'을 연결하는 '그린 뉴타운'으로 조성될 예정인데 개발이 된다고 오랫동안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 쫓겨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종각에서 동대문까지의 모습에서 지난날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힘겹게 살아온 모습을 떠올리고 중구에서 불엧탄 숭례문으로 마무리한다.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 편에서는 제일 먼저 창신동 헌 책방을 들춰낸다. 헌책방에는 쌓여 있는 책의 모퉁이마다 문득 보르헤스와 에코를 만날 것 같은 더무니 없는 상상도 할 수 있는 것, 손님에 무관심 주인, 헌책의 쿰쿰한 냄새, 무질서 가운데서도 원하는 책을 장ㄹ도 골라내는 놀라운 감각의 주인이 있는가 하면 그저 뭉뚱그리며 "거기쯤 찾아봐." 하는 성의 없는 주인들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가치로 재된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개성이 보이는 곳이 헌책방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헌책방은 틀에 짜인 도시의 커다란 그림 속에서 작고 고요한 활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헌책방은 일상에서 일탈해 있다. 그것은 동화적인 공간이며, 재생산되길 기다리는 40인의 도적들이 쌓아둔 지식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밖의 세계가 계획되고, 정돈되어 있으며, 신호와 법규에 따라 길을 건너고, 순응해야 한다면 헌책방은 느슨하고 의외의 발견이 준비되어 있으며, 비합리적인 우연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은 한 사회의 요구와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을 만들지만 거꾸로 건축은 인간의 행위를 만들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도시의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과 농촌의 풍경 속에서 자란 사람의 기질이 다른 것처럼, 한옥에 사는 사람과 아파트에서 자란 사람의 정서는 같은 도시 안에서도 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헌책방의 공간은 그 의도와는 상관 없이 잠시 우리들이 자본주의적인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모든 공간은 그 공간에 걸맞은 꿈을 꾸게 만든다. 헌책방이 주는 꿈은 이렇듯 비합리적이고, 그 공간의 생성 자체도 대부분 우연적이다.  - 본문 중에서 -


 

  압구정은 우리 현대사의 개발과 자본의 범람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배밭이었던 이 곳을 최첨단 소비문화의 자랑이 된 것, 이 공간에서 보낸 저자의 한 시절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러면서 압구정 거리의 시작 자체가 우리 근대화의 내키지 않는 부산물쯤 되는 곳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옛날 한망회의 호에서 지명이름이 유래한 것 처럼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나 이곳에 정자를 짓고 강 건너 이제나 저제나 권력에 다가갈 생각을 했을 법한 이때부터 지금의 자본주의의 모든 것처럼 여겨지는 이 곳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엇을까? 생육신의 한사람인 기시습이 강정()에 걸려 있는 한명회의 젊어서는 사직을 짊어지고, 늙어서는 강호에 눕는다(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라는 시구의 扶를 망으로, 臥을 로 고쳐 써서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는 뜻으로 바꾸어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압구정이야기는 성수대교 붕괴로 거품임이 밝혀지고 압구정으로 향하는 강북의 실목이 차단되면서 홍대 앞 거리는 상업자본의 세례를 받게 되고 돈의 일부가 홍대 앞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발길은 대학로, 청계천을 향하는데 청계천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을 이룬 사건, 그 이름 석 자 전태일을 떠올린다. 그는 청계천이 전태일의 몸을 사르던 불꽃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서, 비록 그 물은 가스 폭발이 일어날 정도로 이미 썩은 점액질이 되었지만 청계천과 한국 노동운동과 전태일의 이름으로 다시 민주화 운동의 강물로 사람들 마음속에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청년의 순수한 열정에 의해 새로운 명당수를 다시는 그 누구도 파묻지 못 할 가물로 흐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청계천 복원은 무겁게 덥고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이제는 후손들이 어찌해볼 수 없도록 다시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다는 한탄도 함께 한다.

 

  걷기는 삼청동, 인왕산을 거쳐 선유도에 닿는다. 선유도는 몇번 가본적도 있지만 출퇴근 길에 매일 차창 밖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이곳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두개의 산봉우리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개발의 힘은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 인사동에서 발걸음을 멈춘 길은 종묘, 장충단로, 충정로, 자하문로를 걷는다. 그 걸음은 효자로에서 멈춘다. 시를 곁에 두고 있는 건축가로서 저자는 어찌보면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건축은 파괴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안에 있는 괴거의 기억은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l***4 2021.05.2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라진 서울을 걷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사라진서울을걷다♥협찬도서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한국의 수도...한국의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이상이 사는 곳...언제나 아파트 상승의 중심인 곳...서울하면 나에게 생각나는 의미다.한마디로 나에게는 낯설고 살아보지 않았기에 추억도 장소에 대한 기억도 없는 곳이다.그런 서울을 이야기하는 책이다.인간의 삶에는 과거와 현재,미래가 있고 그 시간을 떠올리며 우리는 공간이 가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사라진서울을걷다

♥협찬도서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한국의 수도...한국의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이상이 사는 곳...언제나 아파트 상승의 중심인 곳...서울하면 나에게 생각나는 의미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낯설고 살아보지 않았기에 추억도 장소에 대한 기억도 없는 곳이다.그런 서울을 이야기하는 책이다.인간의 삶에는 과거와 현재,미래가 있고 그 시간을 떠올리며 우리는 공간이 가진 의미와 나의 추억을 겹쳐 보게 된다.그렇게 사람들은 공간의 변화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도시 또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다시 부서져서 지워지기도 한다.도시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괴롭고,힘들고,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보게 된다.저자는 서울의 기억을 더듬어 가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오늘도 서울에서는」 때때로 적막하고 막막한 삶을 오가는 낯선 사람들이 있고,도시의 공간과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기쁨이 있을 것이다.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가는 도시에서 오래된 것들은 바람부는 날이면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추억하게 한다.
오래 된 책방,내가 뛰어 놀던 골목길의 이발소,구멍가게를 아무일 없이 한번은 보고 싶은 날이 있다.자본주의의 상징인 아파트가 그 자리를 채울수록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
나 스스로 잊어 버린 것들을 도시는 기억하고 있을까?라고....

●모두를 전생으로 만드는 인사동,선유도,인왕산,삼청동의 추억은 나의 고향인 부산과도 닮아 있다.도시는 떨어져 있지만 도시들이 가진 전생의 기억은 같은 추억임을 알게 한다.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 인간은 많은 이야기를 닮고 있는 도시를 사랑한다.즉,기억하고 추억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그럼 반대로 세계적인 것이 한국인가?라고 저자는 물어 본다.도시에게....」

말이라는 것은 반대로 적어 보았을 때도 말이 되어야 진실이라고 난 믿는다.세계적인 도시에서 「세계」는 어느 순간부터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인 도시라는 개념으로 서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었다.

영화와 음악,음식이 한류라고 불린다.
개인적으로 "한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서양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의 한계와 문화의 경계가 보이기 때문이다.미국의 자본주의의가 전 세계를 초토화 시킬 때 우리는 "미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도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고 이야기하지 말자!!」초가집이나 한옥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마치 지금도 거기에 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랑 무엇이 다를까?라고 생각하여 본다.

◆이 책을 읽으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낯선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기를 꿈꾸는 도시의 바램이 보인다.

사라진 서울은 사람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사라진 서울은 사람의 시선이 사라진 도시의 꿈과 추억이 아닐까라고 반추하여 본다...

내일은 보수동 헌책방을 가보고 싶다.사라진 것들을 도시에 사는 나의 눈에 다시금 담아야 하기에....


책을 덮는다.







YES마니아 : 로얄 w*****3 2021.05.1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땅의 이야기를 읽다
"땅의 이야기를 읽다" 내용보기
요즘 '산책'에 관한 글들이 많다. 나의 산책은 사색이 가능한 잔잔함보단 반려견과의 우렁찬 박진감으로 가득하지만, 산책이 주는 기분 전환은 확실하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자연의 모습은 부지런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회사에서 마주하던 사람들의 시들하고 무기력한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자연의 역동적인 생명력에 경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요즘 '산책'에 대한 글이, 산책의
"땅의 이야기를 읽다" 내용보기

요즘 '산책'에 관한 글들이 많다. 나의 산책은 사색이 가능한 잔잔함보단 반려견과의 우렁찬 박진감으로 가득하지만, 산책이 주는 기분 전환은 확실하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자연의 모습은 부지런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회사에서 마주하던 사람들의 시들하고 무기력한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자연의 역동적인 생명력에 경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요즘 '산책'에 대한 글이, 산책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이것 아닐까.


서울을 해외여행하는 기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3살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경기도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후드득 쏟아지는 서울의 상세 지명에 네이버 지도를 옆에 끼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대학시절 연합동아리 모임으로 대학로에 자주 갔다. 대학로에 학교라고는 성균관대학교뿐인데 왜 '대학로'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어 선배와 동기들에게 물어봤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책이 그 의문을 풀어 주었다. 대학로의 이름이 대학로인 이유, 서울대학병원이 혜화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어 혼자 배시시 웃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 대학교가 들어섰다. ... 1975년에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전하자 구 문리대 일부는 대부분 민간 주택지로 불하되어 본관만 남기고 철거되었다. 그리고 당시 문예진흥원장의 제안으로 공원으로 바뀌면서 서울대학교 자리는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대학로의 역사는 물론, 조선의 궁터가 북악산 기슭이 아닌 중랑구쯤이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 8 학군이 만들어진 배경, 동대문이 패션의 중심지가 된 이유 등 서울에 얽힌 역사를 때론 재미있게, 때론 진지하게, 때론 서글프게 엿볼 수 있었다.


성인 되고 내 발로 찾아간 서울의 첫인상은 시끌벅적한 종각역의 피아노 거리와 울퉁불퉁 돌길에 땅과 주변을 살피느라 정신없던 인사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코엑스몰 정도로 기억하기에 책을 읽을수록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누워 있는 분수, 청계천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질 때, 성인이 되었지만 미성숙했던 나였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뭔가 문제가 많은 건 확실해 보였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기업 출신답게 본인의 실적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은 받았다. 

복원 작업이 끝나고, 교보문고 말고도 광화문에 갈만한 곳이 생겼다며 친구가 나를 데리고 청계천에 갔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청계천 물에 하얀 맨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경해서 그곳에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있던 땅이 무너져 내려 나 혼자만 멀뚱히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을 맛 본건 단지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복원사업의 우여곡절이 청계천에 자연스레 묻어난 것이 아닐까. 

 

"자양 취수장과 뚝섬 정수장에서 각각 모터 펌프 4대와 대형 변압기를 일 년 내내 가동해 한강의 물을 청계천으로 퍼 나르는 방법을 택했다. 물 12만 톤을 24시간 내내 양수기로 퍼올리는 비용도 하루 기준 전기료 230만 원, 전기료 인건비 등을 포함한 유지비만 연간 18억 원 이상 든다. ... 
그러나 막대한 경비는 더 막대한 이익을 낳는다. ... 서울시는 이 일대에 주상복합 시설과 오피스빌딩, 방송국 등이 들어선 일본 도쿄의 '롯폰기'처럼 개발하는 걸 구상했다. 그렇다면 청계천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고, 삼일고가도로의 철거는 순수하게 청계천 복원을 위해 철거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청계천은 명당수인만큼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역사가 얽혀 있었지만 현재의 나, 우리에게 밀접한 이야기가 아무래도 더 눈에 띄었다.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맑은 물이 수돗물임을 새삼 상기하며,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겹쳐졌다. 서울 중앙부의 욕조 속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모습이...

 

선의 길, 인사동

"길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선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점의 길이다. 길에 선적인 특성이 강조될 때 우리는 풍경을 잃는다. ... 
새로 단장한 인사동은 말끔히 정리되면서 보다 선적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인사동은 버려 버렸다고 자탄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좋은 공간은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몇 년 전 오랜만에 인사동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잰걸음으로 중앙로를 통과하곤 '볼 게 없네'라고 생각했었다. 최근의 삼청동도 그렇다. 점점 선의 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버려 버렸다고 자탄할 일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는 글귀에 얼마 전 삼청동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젠 볼 것 없어진 삼청동'을 걸었다. 중심 거리에 자리한 건물 1층은 대부분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눈에 익은 가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볼 것 없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가파른 언덕에 작은 카페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평수에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카페는 고요할 정도로 손님이 없어 보였지만,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시끌시끌해졌다. 루프탑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루프탑에서 바라본 풍경엔 청와대 일대와 북악산 포대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수없이 가던 삼청동이었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에 커피 마시는 것도 잊고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서구와 우리 건축의 차이

"서구 건축은 집을 바깥에서 바라보면서 미학적 관점을 형성해 나가지만 우리 건축은 집안에서 바깥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에 장식이 없다. 한국 건축의 장식은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된다."

 

'물질을 잃고, 출렁이는 물그림자-종묘' 장(챕터)에서 위와 같이 문구가 있다. 우리나라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변하면서 한국 건축의 장식도 미니멀리즘과 많이 멀어졌었다고 생각한다. 책 <공간의 미래>에서 건축가 유현준은 기능에 따라 공간과 가구를 나눈 현재 우리네 방의 구조는 근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전의 발전으로 가구의 통폐합이라는 새로운 미니멀리즘으로 향해 가는 듯하다. 책 <공간의 미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현대 사회는 기능에 따라 물건이 나누어지기보다는 합쳐지는 추세다. ... 거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혼자 TV를 시청할 수 있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식탁에서 누가 공부를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이 만들어졌다."

소파베드, 다용도 침대, 책상 겸 식탁 테이블 등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로 급변하고 있는 집의 중요성이 새로운 미니멀리즘을 어떻게 녹여낼지 기대되는 순간이다. 


특수성 속에 보편성, 종묘

"종묘가 서양인 눈에도 확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은 ... 한국적 특수성 속에 이미 삶의 보편성이 깊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 특수성과 보편성을 연결하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태도, 이러한 건축을 나는 종묘에서 본다. 종묘는 참, 위대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성과 보편성이 내재된 것이 바로 세계적인 것임을 작가는 말한다. 종묘에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 졌다. 

 


영추문 옆 효자로
나에게 '효자로'는 통인시장으로 가는 설렘의 길이다. 하지만 효자로 옆 '영추문'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었나, 자문하게 되었다. 

"영추문 길은 경복궁역에서 시작해 은밀한 지하도를 거쳐 당대를 풍미한 뭇 선사의 부도와 탑이 진열돼 있는 정원을 나와 긴 돌담길을 하염없이 걸어도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길과 같다."

이번 주말은 영추문 길을 걸어 통인시장으로 가볼까 한다. 

 

통인시장에서 인왕산까지 걸어가는 길
"인왕산에는 누상동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옥인동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두 줄기는 오늘날 옥인동 47번지 일대에서 만나 천계천으로 흐르는데 이 계류가 바로 옥계다. ... 
양란으로 파괴된 경복궁을 버리고 임금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경치 좋고 땅값 싼 곳으로 중인이 몰려들었다. ... 약 60여 개 정도의 시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시사가 바로 송석원시사다."

 

기름 떡볶이와 효자 베이커리 그리고 볼거리 많은 골목길 때문에 통인시장을 자주 간다. 효자 베이커리에서 인왕산 수성동 계곡까지 걸어갔던 길이 바로 누상동, 옥인동이다. 시사가 많았던 역사가 있는 만큼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저 걷기 좋고, 다시 걷고 싶은 길이었는데, 그곳이 송석원 시사가 있는 곳이었다니! 역시 알수록 다르게 보인다.


불공평의 재미, 창신동 헌책방
"헌책방에서는 다르다. 부르는 게 값일 수 있고, 깎는 게 값일 수 있다. ... 합리적인 가격 결정보다는 비합리적이고, 심정적인 가격 결정이 이루어진다. ... 화폐가치가 똑같은 책인데도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헌책방에서는 손해 보는 이도 있고 득을 보는 이도 있다. 한마디로 불공평하다."

 

헌책방에 가본 적이 있던가. 강남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꽤 자주 가던 시절이 생각나긴 했지만, 진정한(?) 헌책방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헌책방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지게 하는 구절이다. 동시에 아이유의 'Coin'을 무심히 흥얼거리게 되었다. '세상이 원래 불공평해 So 더럽게 재미있지~' 

 

하지만... 아쉬운 편집 
1. 책 중간중간 인용된 구절에 한자 독음이 없어 읽는데 속도가 붙질 않았다. 

2. 글에서 언급되는 주요 장소에 대한 이미지 자료가 하나도 없어 일일이 찾아봐야 했다. 특히, 156페이지에는 '양화진은 지금 절두산 성단이 있는 자리이고, 오른쪽 그림은 양평동 쥐산 풍경이다.'라는 부분에서 마치 그림이 있는 것처럼 묘사된 부분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오른쪽 그림이 어디 있나 한참 고민했다.)

3. 글 작성일자가 적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글에 '얼마 전'이라 명시된 부분은 기준이 없어 아리송했다. 

 


장소에 얽힌 이야기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그 장소만의 특별함을 부여해주어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곳을 걸을 때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장소의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그 장소의 역사에 나의 역사도 녹여내고, 새로운 역사를 내 안에 담아내 보고 싶어 진다. 


"선유도 공원은 '지금, 여기'의 인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성공적으로 살아내고 있다. ...
과거는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선유도 공원은 웅변한다.
미래는 곧 우리 앞에 놓인 과거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g******o 2021.05.1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라진 서울을 걷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서울은 복잡미묘한 도시이다. 빌딩숲으로 빼곡한 도시의 풍경과 멋드러진 야경, 번드르르한 것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음습하고 피폐한 낡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곳. 그곳에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있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작가의 시선은 독특하다. 감성으로의 접근과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공존하며 그것은 곧 조금은 색다른 예술가적 기질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서울은 복잡미묘한 도시이다. 빌딩숲으로 빼곡한 도시의 풍경과 멋드러진 야경, 번드르르한 것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음습하고 피폐한 낡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곳. 그곳에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있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작가의 시선은 독특하다. 감성으로의 접근과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공존하며 그것은 곧 조금은 색다른 예술가적 기질로 드러난다. 서울의 도처를 탐색하며 우리 기억 속에 잔존해있는 문학적 감성을 들춘다. 그곳에는 오랜 문학가들과 함께이다.


김소월, 신동엽, 김훈, 박완서, 함민복, 보들레르, 박목월, 기형도.. 듣기만 해도 걸출한 문학가들과 그 길을 걷노라면 곳곳의 모든 지역들을 허투루 볼 수가 없다. 압구정, 대학로, 삼청동, 신촌 등 서울을 대표하는 곳들이 자본주의로 인해 잠식되었을지라도 작가의 시선과 함께라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소중한 발자욱이 남아있는 곳들이다.


'서울서울서울~'이라는 조용필님의 노래가 생각난다. 내 발길이 닿았던 곳들과 작가의 시선이 오버랩되며, 괴물같이 커져버린 서울을 다시 한번 마주한다. 극심한 교통체증과 비대해져버린 자본의 손길, 뿌연 하늘이 일상이 되어버린 서울의 모습의 이면을 생각해본다.


징그럽기만 했던 서울이 이토록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니. 작가를 따라 걸어본다. 서울의 거리를. 그가 이야기해주는 그 길들을 따라. 그의 시선과 발길이 머문 그곳에서 서울을 다시금 보라. 어쩌면 장대한 스토리로 가득찬 세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김소월이 꼭 이런 전설을 따른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시에서도 왕십리는 쉽게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정한으로 가득 차 있다. 왕십리는 예부터 남태령 고개와 함께 서울의 관문으로 통했다. 시의 화자도 아마 왕십리에서 누군가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그 이별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책 속에서...>


'서양인은 선적인 길 찾기를 하고 한국인은 점적인 길 찾기를 한다. ...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옛말은 점적인 길 찾기의 길 없음, 즉 길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길이 될 수 있는 복잡한 체계에 대한 경고다.' <책 속에서...>
g****i 2021.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억 속에 살아남은 서울
"기억 속에 살아남은 서울" 내용보기
에세이의 묘미는 글쓴이가 관찰한 것, 관찰하면서 가진 생각과 정보의 특별함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겪어보지 못한 일상의 모습, 겪어봤어도 글쓴이 만의 특이한 생각들 그런 것이 재미있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에세이를 많이 찾습니다. 집돌이지만, 가끔씩 나가면 서울의 핫플레이스들 근처를 배회하기 좋아해서, 다시 방문해 걸을 때 좀 색다른 감정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기억 속에 살아남은 서울" 내용보기


 

에세이의 묘미는 글쓴이가 관찰한 것, 관찰하면서 가진 생각과 정보의 특별함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겪어보지 못한 일상의 모습, 겪어봤어도 글쓴이 만의 특이한 생각들 그런 것이 재미있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에세이를 많이 찾습니다. 집돌이지만, 가끔씩 나가면 서울의 핫플레이스들 근처를 배회하기 좋아해서, 다시 방문해 걸을 때 좀 색다른 감정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책을 골랐습니다.

현재의 서울을 거닐면서 볼 수 있는 풍경에서 옛 서울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것도 있고, 전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있었죠. 사라져서 안타까운 옛 풍경의 이야기는 서울에 살거나 많이 다녀 익숙한 사람에게 그리운 모교를 떠올릴 때와 같이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태어나서 쭉 서울에 살았어도 구석구석을 다 다녀보지 않았지만, 읽으면서 살던 동네에서 시작해 자주 다니는 곳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누가 읽든 독자의 평생보다 더 오래된 지난날의 서울은 곳곳마다 그들만의 자화상이 있었습니다. 선조들이 이름 지어주고 우리가 애용하듯이 의미를 붙여준 장소들,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에 상처 입은 곳들 모두 지금은 사라진 서울이었습니다.

여유로울 때 서울 어딘가를 걷다가 책에서 소개한 곳에 멈춰 서서 옛 모습을 그려보면서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서울을 감상하기 바랍니다. *리딩투데이 신간살롱 지원도서

p******6 2021.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라진 서울을 걷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건축하는 시인이 들려주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맛일까? 코로나 이전 주말의 고속도로 풍경은 답답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빠져나가는 자동차들은 어딜 그렇게 가는 것일까? 저자가 들려주는 서울 거리의 이야기들은 사연이 없는 곳이 없었다. 매연에 찌든 도시가 아닌 자신이 사는 곳의 '옆'을 자세히 보라고 권하고 있다. 무심히 걷는 이 거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스며
"사라진 서울을 걷다" 내용보기


 

건축하는 시인이 들려주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맛일까?

코로나 이전 주말의 고속도로 풍경은 답답했다. 서울과 수도권을 빠져나가는 자동차들은 어딜 그렇게 가는 것일까?
저자가 들려주는 서울 거리의 이야기들은 사연이 없는 곳이 없었다. 매연에 찌든 도시가 아닌 자신이 사는 곳의 '옆'을 자세히 보라고 권하고 있다. 무심히 걷는 이 거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는지 느껴 보라고 권한다.

마포를 시작으로 대학로에 갔다가 인사동을 지나 종묘를 거쳐 신촌, 서촌까지의 일상 여행을 떠나보자.
사라진 아니 사라져가고 있는 서울의 거리들의 풍경을 저자의 스케치로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저자의 스케치 보는 맛이 일품이다.


 

헌책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소소한 발견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창신동의 헌책방 골목은 이제는 문구거리로 모습을 바꿔 나가고 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이야기는 압구정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그 거리의 풍경일 것이다.

나의 20대의 추억은 종로에 있다. 지금은 그 맛이 사라져가고 있는 피맛골과 이어지는 인사동!
피맛골은 조선시대 때 큰길의 양반들을 피해 다니기 위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평민들이 다니던 뒷골목인데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주점들을 지나 단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인사동 골목들이 사라져 가고 있어서 안타까움이 크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란 시처럼 내가 사는 곳의 거리를 걸어 다녀야겠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기 위해 이제 틈틈이 주말마다 걸어서 내가 사는 동네를 마실 삼아 걸어 다녀봐야겠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걷는 주변을 잠시라도 두리번거릴 수 있는 일상 여행을 추천해본다.


 

g*****a 2021.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