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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홍성사에서 나온 <꿈꾸는 인생>을 읽고는 생각했다. '이건 뭐 쓰레기장도 아니고 완전 시궁창이구만.' 이번에 나온 <부서진 사람>을 읽고는 예전의 그 생각이 떠올랐다. 시궁창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인생을 조금 더 알아버렸을까, 예전의 느낌은 아니었다.(그래. 인간의 마음이란 원래 시궁창이 아니던가. 브루더호프의 영광은 그걸 보여주었다는 게 아닌가.) 시궁창이라함은 한스줌퍼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한스줌퍼는 브루더호프를 시작한 에버하르트의 사위이자, 이책의 주인공인 하이너의 매형이다. 에버하르트와 아들 하이너 모두 한스의 독재성향을 알면서도 그를 리더로 세웠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그가 브루더호프의 리더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소동이 없었을까? 브루더호프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까? 이 지경이 되지 않음이란 무슨 말인가? 하이너가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인가? 하이너는 왜 고통받았는가? 그래. 하이너는 공동체를 떠났다면, 공동체가 깨지도록 두었다면 고통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추방당했을 때도 있었다. 한스가 하이너의 고통을 더했겠지만 그가 없었어도 그는 고통받았을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부서진 사람이 끝이 없었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은 항상 부서지게 마련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게 브루더호프의 구호아닌가. 말년에는 브루더호프 뿐 아니라 베트남 전쟁, 스리마을 섬 원전 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도 그의 마음을 부수었다. 사랑의 군영에는 오직 상처 입은 병사만이 복무할 수 있으니 하이너는 이제 복무를 마쳤다. 아니, 현세에서의 복무를 마쳤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죽은 그가 부럽다. 고통이 많았으나, 심히 많았으나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터널은 길었으나 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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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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