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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위치한 사찰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종교와 상관없이 사찰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찰을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어쩌다 산행 중 만나게 되면 가능한 그곳에 조금이나마 머문다. 하다못해 물 한 바가지라도 마시고 나온다. 사찰에 대한 지식이 빈약한지라 남들 마냥 거창한 것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전각들을 둘러보고 사찰이 안고 있는 풍경을 보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에는 그저 딱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찰에 대한 책은 가능하면 찾아서 읽는다. 가보지는 못할지라도 활자와 사진으로나마 사찰을 보고 읽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이 책은 절집의 전각에 붙어있는 글씨에 대한 책이다. 이를 주련(柱聯)이라 한다. 사찰에는 전각마다 불교의 진리나 선지식들이 깨우친 글들이 적혀있다. 주련을 번역한 제운 스님은 이를 두고 ‘단박에 혀에 착 감기는 맛이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는 쓴 맛과 같다’며, ‘주련의 일구(一句)를 보고 철학을 하는 사람은 사유를 할 것이요, 믿음을 구하는 사람은 신심을 북돋을 것이요, 나아가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을 치료하는 약으로 쓸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귀결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련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한문으로 적혀있고, 그 내용도 불교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혹 사찰의 어느 전각에서 마주친다 할지라도 모르거나 아니면 그저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사찰의 주련들을 모아 놓은 이 책에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곳곳에 위치한 43개의 사찰을 소개하고 있다. 사찰이 품고 있는 역사와 그 사찰에서 수행한 선지식들에 얽힌 이야기 혹은 풍광을 들려준 다음, 전각마다 걸려있는 주련을 소개하고 있다. 더하여 한 장의 흑백사진은 각 사찰만이 간직하고 있는 내력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서 주련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그 절이 주는 맛에 빠져든다. 서산 연암산 천장사 입구, 절집임을 알려주는 푯말에 적혀있는 ‘이곳은 참선 수도하는 도량,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란 글에서는 비록 책으로 찾는 절집이지만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광릉 운악산 봉선사는 아주 오래전, 재수하던 시절 그곳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봉선사 대웅전에는 윤허스님이 쓴 ‘큰법당’이란 편액과 한글 주련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는 없다. 아마 주련에 대해 알지 못해서였는지, 아님 그만큼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글 주련이라는 데 눈길이 간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는 추사와 초의선사의 일화가 얽혀있는 사찰이다. 그곳 대웅전에 있는 주련 중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온다. 月印千江一體同(월인천강일체동, 달은 천 갈래 강에 비쳐도 본디 하나라네). 천 개의 강에 달은 각기 떠 있지만 그것은 본래 하늘에 떠 있는 똑같은 달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본 강에 떠있는 달이 진짜 달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말한다. 진실은 하나일 텐데 각기 자신이 본 것만이 옳다고 우기는 요즘, 대흥사 대웅전의 주련은 아무 말 없이 강물에 비친 달이 어디에 있는 달인지 살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며 세운 화성 화산 용주사 천보루 기둥에 매달린 주련 중 한 구절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不待東風自有春(부대동풍자유춘, 동풍은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되면 스스로 불어오네). 나이가 들면 조금은 느긋해질 줄 알았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기다릴 줄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꽃과 나무를 보면서 자연에 순응하고자 했지만, 그럼에도 젊은 시절과 다름없이 여전히 급한 나를 보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련은 아니지만 여주 봉미산 신륵사에서 만난 나옹선사의 시는 마음을 찌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 중 가장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이 삼독(三毒)이다. 탐욕(貪欲), 진에(瞋?), 우치(愚癡)의 세 가지 번뇌로, 줄여서 탐진치(貪瞋癡)라 한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컫는다. 만족할 줄 모르고, 미움과 불만과 싫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번뇌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런 삼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으로 불가에서 제시하는 팔정도를 입에 달고 살지만, 마음은 따로 논다. 고창 도솔산 선운사의 전각들에는 주련이 없다고 한다. 참선도량이기 때문이란다. 불립문자교외별전(不立文字敎外別傳). 도는 본래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문자가 오히려 수행에 걸림돌이 된다는 선종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책을 읽다보면 사찰이 저마다 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책에 나와 있는 사찰 중에는 가본 곳도 제법 되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그럼에도 낯이 익는 것은 사람들 입에 널리 회자되고, 많은 책들에서 소개되는 유명사찰들이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절집의 내력이나 풍광보다는 주련에 집중하고 싶었다. 잘 알지 못하기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주련에 대해 알 수 있게 되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의 제목은 [주련]이지만 ‘선지식과 역사를 만나는 절집기행’이란 부제마냥 각각의 사찰에 대한 답사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주련은 단지 각 사찰의 이야기가 끝나는 마지막에 모아 놓은 것이 아쉬웠다. 더욱이 책을 읽는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 것은 수많은 오탈자이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오자(誤字) 대부분이 조사인지라 읽는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교정상의 실수라고 보기에는 그 횟수가 너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