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백제 왕도 공주> 충청남도 역사 문화 연구원 엮음 메디치
역사가 생생히 살아 있는 도시 공주에는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다. 손 내밀면 잡힐 것 같은 역사의 진실이 곳곳에 흐르고있다. 공주를 적시며 흐르는 강물이 있고, 적당한 높이로 에워싸고있는 산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품어준 사람의 삶은 언제부터 펼쳐져왔을까.
1964년부터 시작된 공주 석장리 발굴조사에서 뗀석기인 주먹도끼가 발굴 되었다. 구석기 시대부터 우리나라 대한반도에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오랫동안 일제의 강제 식민사관으로 역사 교육이 진행되어왔다. 선사시대인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유리역사를 왜곡하고 세뇌를 시켜온 것이다. 하지만 공주석장리 발굴을 시작으로 단양수양개유적과 제천 점말동굴유적이 발굴되었고 연천 전곡리선사유적지 발굴, 제주도 빌레못동굴구석기유적 발굴을 하며 대한반도전역에 걸쳐 구석기시대가 분포되었음을 확인했다. 이 책에서는 공주가 선사시대 유적지를 품고있음을 자세히 밝힌다.
역사의 시간은 흐르고 흘러 공주에는 웅진백제가 세워졌다. 한성에서 번영하던 고대국가인 백제가 고구려에 패퇴하여 웅진까지 가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백제는 남쪽나라 금강이 흐르는 웅진으로 도읍을 천도했다. 백제를 화려하게 부흥시킨 무령왕릉도 웅진에 조성되었다. 이 책에서는 백제의 부흥에 공산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최후를 맞이했을 때 어떤 유물을 숨겨 놓고 역사 속에 스러져 갔는지 하나하나 찾아내어 알려준다.
이 책에서는 공주에서 있었던 중요한 발굴이야기들을 모아서 숨어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인다. 너무나 유명한, 쏟아지는 빗 속의 17시간 무령왕릉 발굴이야기를 전한다. 입구를 지키는 진묘수와 무덤주인도 확인되는 완벽한 상태의 무령왕릉을 발굴하는 일은 너무 급작스럽고 당황스럽게 진행되었다. 꽁꽁닫아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벽돌은 한 장 한 장 걷어져 왕릉의 문은 열렸다. 공기가 새어나오며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을 많은 분들이 함께 지켜보았다. 당시 발굴단장이셨던 김원룡단장과 김영배국립공주박물관관장이 첫발걸음을 릉안으로 내딛으셨다. 그 다음은 혼돈이 펼쳐졌지만 최선을 다한 열일곱 시간동안의 발굴이었다. 발굴의 abc를 지키지 못했다는 발굴단의 자책과 아쉬움이 가득 남은 무령왕릉 발굴이었지만 이후 경주의 왕릉발굴 때에는 고고학 발굴의 abc를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령왕릉의 모습과 형태는 지금 공주 송산리고분군 전시관에 원래의 모습그대로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되고 있어서 답사코스로 인기가 있다. 고대국가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의 무덤양식은 서로 달라 공부할 때마다 어려움을 느낀다.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해주니 조금 쉽게 이해를 한다.
충청남도 공주시를 생각하면 바로 백제의 역사가 생각난다. 하지만 공주가 품고 있는 역사는 백제의 역사만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만 년 전의 역사가 숨쉬는 위대한 공간이다. 아직도 어딘가에 왕릉이 역사를 품고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걸어다는 는 모든 곳이 살아있는 박물관인 우리나라 대한반도 땅, 그 중에서도 공주는 이미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2015년에 세계유산백제역사지로 등재된 것이다. 공주시의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터, 능산리고분군, 나성, 익산시의 왕궁리 유적, 미륵사터까지 총 8개로 구성된 연속 유산이다. 산과 들의 땅과 강과 바다와 습지의 물, 하늘과 구름과 별과 달의 공기가 품고 있는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기르려면 답사가 최고의 방법이니, 역사에 관심있는 분은 이 책을 손에 들고 공주, 부여로 한 번 가야하겠다. (저는 몇 번 다녀왔어요. 방긋)
고맙습니다.
저는 네이버카페<북뉴스>를 통해 <메디치>에서 책을 받이 이 글을 썼습니다.
|
|
신라 천마총 발굴 이후 공주 일대 유적 발굴은 우리 역사를 새로 쓸 만큼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된 문화유적 발굴의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일거에 사그러지고 말 많은 유적 유물이 발굴됐다. 이곳이 삼국시대 백제의 도성(수도)였기에 삼국시대 유물은 물론 수많은 구석기 유물까지 쏟아져나와 당시 발굴팀은 물론 모든 국민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 '쾌거'로 볼 수도 있을 듯싶다. 이 책의 저자(충남역사문화연구원)는 '우연'으로 표현하지만 독자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발굴 시도나 발굴을 계속하면서 발견한 무령왕릉의 발굴은 우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적 발굴팀이 유적이 유무를 미리 알고 계획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독자는 우리의 역사의식이 식민사관에 머무르지 않고 삼국시대의 유적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백제 문화의 실체를 책에서만 봐왓지만 믿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저자의 '우연' 표현은 좀 더 극적인 장면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독자는 국민들이 백제의 실체를 알고 믿었기 때문에 발굴이 시작되고, 결국 그 효과를 본 것이란 생각이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오랫동안 식민 지배함으로써 영토, 민족, 심지어 역사까지도 그들의 뜻과 사관에 맞게 재구성하고 싶었지만 우리 국민은 그 식민사관을 믿지 않았고, 결국은 신라에 이어 백제 문화의 융성함을 증명해주는 유물 발굴이 이뤄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어본다. 이로써 오랫동안 짓눌러 왔던 일제 식민사관은 서서히 꼬리를 감추게 된다. 예컨대 식민사학자들은 한반도에 구석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일제의 사관에 따라서다. 우리 민족이 뒤늦게 한반도에 들어와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조작'일 뿐이라는 것이 대거 발굴된 구석기 유물이 입증해주었다. 또 백제의 의자왕이 방탕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역사에 기술해 놓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승자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고 역사란 게 입증됐다.
이 책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는 흥미로운 발굴 이야기와 슬픈 역사로 가득하다. 이 지역의 주인인 백제인들이 나라의 멸망과 함께 유적으로만 남아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기에 슬프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 역사와 우리 선사 시대의 유물도 많이 발굴돼 우연과 의지가 만들어낸 역사적 발굴이라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공주가 좋다’ 시리즈 1권인 이 책은 백제가 한성에서 밀려 내려와 공주를 수도로 삼았던 웅진백제 시대만 다룰 것 같지만, 공주의 시간은 더 길고 오래 지속된다.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쓴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한반도에 구석기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당시의 식민사관적 통념에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일궈낸 발굴과 고고학의 성과이기도 하다. 석장리 구석기 유적도, 일제강점기 때의 송산리 고분군 발굴도 모두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공주를 둘러싼 우연의 결정적 장면은 무령왕릉 발굴이었다. 한국 고고학사의 일대 사건으로 불리는 무령왕릉 발굴은 백제와 우리 고대사의 빛나는 영광의 시간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처럼 역사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시기인 선사시대를 비롯해 삼국시대의 백제, 심지어 가까운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발굴로 밝혀진 공주의 역사는 유구하고도 찬란하다. 장선리, 수촌리, 공산성, 송산리, 정지산, 대통사터 등 흥미진진한 발굴의 현장에 아로새겨진 공주의 뿌리 깊은 역사를 돌아보는 탐험을 할 수 있다.
마을, 도시, 지역, 국가…. 한 장소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역사서에 남은 문장들을 신중히 판단해야 하고, 남은 유물과 유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역시 신중히 헤아려 들어야 한다. 생활 속에 이어져오고 있는 것들도 제대로 들여다보는 눈이 있으면 역사의 공백을 맞추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발굴은 과감하면서 치밀한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발굴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실상을 이해하도록 돕고, 또 부족하거나 유실된 기록으로 인해 그 실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역사를 온전히 파악하도록 한다. 또한 왜곡된 기록에 의해 잘못 전해졌던 역사를 바로잡는 데도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된 우리 역사의 실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발굴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고대사의 사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정도에 불과한데, 너무 간략한 내용이고, 또 지금 눈으로 보기엔 뭔가 황당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몇몇 대목에서는 사료로서의 가치에 의심 어린 시선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발굴을 통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또 중국 역사서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되었던 모습들이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았다.
삼국시대 이전의 일이라 사료에는 아예 없는 얘기들이지만 장선리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낸 것도 그러하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 편에 실린 수수께끼 같은 문장과 장선리에서 발견한 마한의 토실 유적을 연결지은 것은 오롯이 발굴과 고고학의 힘이었다. 나뉜 칼 반쪽으로 자신이 아들임을 입증한 고구려 유리왕 이야기나 멀리 떠나는 정인에게 손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들은 그럴듯한 설화로 치부됐다. 그러다 공주 수촌리 2지역 4호 무덤과 5호 무덤, 나중에 부부의 무덤으로 확인된 곳에서 반으로 나뉜 대롱옥 유물이 각각 발견되면서 그것이 당시 유행했던 부절(符節) 문화의 징표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발굴과 고고학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 장면과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한 장소의 역사를 더 입체적으로, 더 삶에 육박하게 느끼게 만들어준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발굴 장소들의 이름과 그곳에 담긴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공주를, 또 공주가 속한 호서와 충남 지역을 더 깊고 그윽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무령왕릉 발굴 이야기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송산리 고분군 발굴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길고 긴 이야기가 있다. 송산리 고분군 발굴 당시 공주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 이야기는 지금도 그 진위가 알쏭달쏭하다. 그는 정말 무령왕릉과 함께 또 하나의 벽돌무덤이었던 송산리 6호분을 도굴한 주범이었을까? 어쨌든 그도 무령왕릉은 모르고 지나갔다. 대한민국 발굴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한 순간이 그래서 가능했다. 무령왕릉 발굴의 상세한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 1971년 7월 6일부터 시작해 8일에 절정에 달한 당시 현장의 흥분이 고스란히 따라온다.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도 얼마나 놀랐을까. 1500년을 완전하게 닫혀 있던,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돼 정말로 영혼의 거처 역할에 충실했던 곳에 처음 들어가다니…. 그들의 눈앞에 지금은 공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진묘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왕릉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지석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었기에 그 흥분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겠다며 몰려와 청동숟가락을 밟아 부러뜨리기까지 한 혼란의 시간들이 우스꽝스럽지만 한편 이해가 간다. 그것은 분명 대한민국 발굴사의 일대쾌거라고 할 만한 순간이었다. 백제의 미의식과 기술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 담긴 또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따라 가는 것도 이 책의 취지이자 미덕이다. 왕이 왕비에게 선물했던 은제 팔찌의 이야기는 로맨틱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중국에서 온 동전들과 일본에서 온 금송 목관 등은 당시 백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교역사의 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온 것이 있으면 간 것이 있고, 사람과 사연들도 오갔을 것이다. 무령왕비의 지석이 정지산에서 발견된 유적과 이어지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오래 전 왕과 왕비는 어떤 장례 절차를 거쳤을까. 과감한 상상력이 더해져 27개월의 그 기간을 상상해본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문화가 존재했고, 어떤 삶의 양식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사라진 것들과 만나게 한다. 공주를 더 깊게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주가 좋다〉는 공주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기 위해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기획하고 엮어낸 역사문화 교양 시리즈이다. 1,5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고대 웅진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한편, 호서의 중심지이자 감영도시 공주에 새겨진 300여 년 조선의 역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근대 공주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1권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2권 《호서의 중심 충청감영 공주》 의 출간을 시작으로 후속권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저자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엮음)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수집·조사·발굴하는 연구기관으로 2004년에 만들어졌다. 충남과 옛 호서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서 《충청남도지》 25권, 《백제문화사대계》, 《내포문화총서》 등 충남의 정체성을 밝힌 연구서를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지역문화 소개 책자 등 다양한 종류의 연구 및 출간 사업을 진행했으며, 문화재 발굴과 정비 복원,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의 역사 대중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문화재 발굴 사업 중 공주 지역의 장선리 마한 토실 유적, 수촌리 고분군 등의 발굴을 통해 백제 왕도가 되기 이전 공주의 역사 환경을 밝혔고, 공주 구도심의 대통사터와 정지산의 제향시설, 무령왕릉 주변의 발굴 조사로 백제사의 지평을 넓혔다. 땅 속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훼손과 멸실 위기에 처한 충남의 여러 문화자원을 찾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석장리와 무령왕릉 발굴로 한국 고고학의 한 획을 그었던 대대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의 백제에 이른 공주의 역사를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소 따분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저 그런 기우였음을 책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고고학의 새로운 발견,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가 없다는 식민사관의 장벽을 무너뜨린 대대적인 발굴!! 석장리 발굴!! 구석기시대 유물 주먹도끼가 발굴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역사적 지식이 짧고 얕은 이 사람도 아는 내용이 나오니 그저 반갑더웠다.
실사위주의 문화재 사진으로 구성된 역사책들 왠지 따분하게 느껴졌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역사공부를 하다보니 관심을 갖게 된 영향도 있지만, 내용 자체가 지식전달의 딱딱한 문체가 아니기도 하고, 흥미로운 소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유적지를 찾아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마한의 생활상을 담은 중국의 역사서의 한 구절이지만, 장선리 유적 발굴 이전에는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니...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복원, 전시하고 있는 공주 장선리 유적의 토실 모형을 보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데, 여전히 저 큰 규모의 지하 건축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는지 미스테리라고 한다. 이렇게 역사의 뒷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수촌리 유물이 전하는 사랑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서로의 사랑의 징표로 나눠가진 유리옥을 무덤에 함께 묻어 놓았던 것을 발굴하고 그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 설명하는 부분 등은 마치 역사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도 맛볼 수 있었다.
웅진 백제의 심장, 공산성과 백제의 중흥을 이끈 무령왕에 얽힌 이야기 또한 역사적 호기심과 그 재미를 증폭시켜준다. 수많은 고증자료들과 문화재 실사와 발굴현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흥미로운 역사보따리나 백제역사연표 등 참고문헌까지 백제를 알고 싶다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후기입니다.
|
|
'공주 석장리'는 지금의 충남 공주 석장리동에 있는 구석시 시대의 유적지이다. 공주라는 도시는 역사문화의 도시로 삼국시대의 백제 웅진이라 불리기도 했다. 한국 고고학에서 한획을 긋는 발굴이 두 건이 있는데 석장리와 무령왕릉 발굴이 그것이라 한다. 먼저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은 한반도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구석기 문화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964년 늦은 봄 역사책에 나오는 뗀석기가 한반도에서도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뗀석기는 구석기시대의 도구로 금강변의 한 언덕에서 4점의 뗀석기와 10여 점의 석기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이 석장리 유적 발굴은 당시까지 학계에 팽배해 있던 가설 '식민사관'을 단박에 타파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수촌리 유적 발굴에서는 지역공동체 내에서 독자적이고 차별적인 지위를 인정받은 지방 세력가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품을 학계에서는 위세품이라 하는데 이런 위세품들은 금동관과 금동신발 외에도 많이 발견되었다. 정교한 금귀걸이나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장식품들 등도 출토했고 백제시대의 토기들도 다양하게 발굴했다.
백제의 중흥을 이끈 무령왕의 고분은 고고학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무덤의 축조 양식과 사용된 재료는 당시 기술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무덤 속의 껴묻거리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누렸던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사회적 배경, 그 나라의 문화, 더 나아가 외국과 교류 관계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송산리 고분군은 일본인 교사가 공주에 거주하며 개인적으로 백제의 유구와 유물을 다양하게 조사, 연구했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송산리 6호분에 들어갔고 자신이 첫 발견자라고 자신의 책에도 기술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임의로 들어가서 조사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약 40년 후 완벽하게 보존된 무령왕릉이 우리 손으로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백제 역사의 진면모와 만나는 우리 고고학과 역사학이 가장 빛나는 성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71년 송산리 고분군의 6호분 뒤쪽에 배수로 공사를 하다 발견된 것이 무령왕릉이다. 아무런 훼손의 흔적이 없는 무덤이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체계적인 발굴조사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아 졸속으로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무령왕릉은 발굴 그 자체로 한국의 고고학계에 큰 의미를 남긴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의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군의 관불리 유적과 부소산성 등 총 8개로 구성된 연속 유산으로 유네스코세계역사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었다. |
|
역사 관련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거나 공주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를 물어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싶어진 것은 '백제'라는 키워드 때문이었다.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거워 요즘 역ㄱ사 관련 책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하게 역사에 대해 적어 있는다는 것이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한국사 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 억지로 외우기 보다는 스토리를 말하며 외워지게 되는 부분이 '삼국시대'부분이라고 생가한다. 그리고 그 삼국시대 중 특히 '백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기장 큰 이유는 좋아하는 사극이 백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더불어 그 사극에서 주인공들이 입고 있던 옷이나 활동한 건물등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백제의 문화제, 특히 장신구들의 아름 다운 모습이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백제에 대해 알아가고 어린 시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보았던 그 추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조금은 설레이면서 기대렸다. 백제시대라기보다는 공주라는 지역에서의 역사가 중요 초점이지만, 내가 원하는 그리고 궁금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확인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충분히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잘 읽혔다기보다는 첫 시작이 궁금증과 관심을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첫 시작은 우연의 사건이 역사가 된 이야기였다. EBS에서 최태성의 강사님의 강의를 들으며 뗀석기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 특별하고 의미이다는 것과 우연의 과정이 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의에서 들은 한 두 줄의 문장이 아니라 이렇게 장으로서 세심하게 안내해주니 새롭고 그 가치와 내용에 대해 자세히 읽으가니 그냥 그런가보다 라는 느낌으로 지나갈 때 와는 달랐다. 하지만 한국사 시험을 대비하듯 무조건적으로 외우고 기억하려 할 필요하 없다. 책을 대하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ㅔ 역사 이야기를 알아가듯 읽으면된다. 그리고 뗀석기 부터 시작해 무령왕릉에 대한 부분, 주로 문화재라는 이름이나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사진이 제시되어 있어서 좋았다. 뗀섹기를 이렇게 큰 사진으로 본 것도 처음이고 무령왕릉에 대한 부분은 어렸을때 관련영상이나 책으로 보았던 내용이 다시 기억나고 헷갈리던 부분에 대해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흥미진진 역사 보따리'라는 코너속 코너 같은 부부의 내용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세히 읽어보시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공주에서 있었던 중요한 발굴이야기들을 모은 내용이 이렇게 역사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만큼 역사에 대한 연구와 기록에 있어 발굴이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자세하고 세세한 내용 까지 잘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고 노력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은 '공주가 좋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현재 1,2 두 권의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또 어떤 책이 이어서 나올지 기대되고 궁금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백제왕도공주, #역사, #백제, #웅진, #백제시대, #뗀석기, #역사공부, #역사책, #한국사,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독서, #도서, #지원도서,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메디치, #메디치미디어, #협찬도서, #도서추천, #도서소개, #리뷰, #책, #책추천, #책리뷰, #추천도서, #독서기록, #서평, #리뷰단, #리뷰어, #서평단 |
|
4년 전쯤, 날씨가 화창했던
조선시대 건물터도 발견된 곳이에요 고려 현종이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피난 과정에서 잠시 머물렀고, 조선 인조가 반정으로 피난 갔던 곳이기도 해요 풍수지리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정지산 유적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유적지들을 알차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
|
경주 여행을 갔을 때 월성 발굴지역에서 한참 발굴 중인 현장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뙤약볕 아래에서 힘들게 붓으로 흙을 세심하게 파내는 모습을 보며 그림자 하나 없는 그 뜨거운 열기를 다 받으며 붓질을 하는 모습이 숭고하게 보여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었는데 <역사의 보물창고 백제왕도 공주 웅진백제 발굴 이야기>는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사학자에 뜻을 둔 아이와 부모가 보기에도 더없이 좋을 책이라 단숨에 읽게 됐던 것 같다.
문화재 발굴에 대한 책이 많지 않아 그동안 발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해볼 기회가 좀처럼 없었기에 그 어느 소설보다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삼국 중에서도 왜곡된 점이 많아 미처 알지 못했던 백제의 찬란한 문화재와 직접 보지 못했던 현장을 사진으로 만나 생생함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고학이나 문화재 발굴에서 백제를 떠올리면 훼손되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드러낸 무령왕릉을 꼽을 수 있지만 당시의 발굴 기술력 때문에 졸속 발굴이라는 오점을 남겨 안타까움으로 남은 이야기와 우연히 세상에 알려진 송산리 고분군 이야기, 식민사관에 가려져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없었다는 역사 왜곡이 공주 석장리 유적지로 인해 그 모습을 드러낸 이야기, 무엇보다 개미굴 주거생활의 비밀을 간직한 공주 장선리 유적지의 이야기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실린 확인할 수 없었던 마한의 거주 모습을 장선리 유적지를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어 상상이 아닌 구덩이를 통해 마한 사람들의 주거 생활을 복원하여 옮긴 모습으로 그들의 특이한 주거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이어진 개루왕이 처형되며 그의 아들에게 이어진 웅진 천도의 비밀을 유추해볼 수 있는 수촌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금동관과 금동신발로 미루어 웅진에 천도를 결정한 것이 공주 지역을 호령하던 수장층이 뒷받침이 된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것도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많은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땅속에 묻혀 있어 그 빛을 보지 못한 채 잠들어있는 유물의 발견으로 그저 신화적인 측면에 머무르던 이야기가 실제 했던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질 때의 그 느낌은 역사를 사랑하는 학자들이라면 잠 못 이룰 가슴 떨림으로 다가올 것 같다. 비록 발굴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고 상상했던 것만큼 즐거운 기분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시간과의 싸움이 될지라도 단 하나의 유물과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 연관될 때 맛볼 짜릿함으로 모두 불식되지 않을까? 발견되는 백제의 유물 또한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니 선조들이 만든 유물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
발굴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매력적인 것 같다.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
나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보다 이 땅에서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시대별로 나라별로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점도 있고 각 나라마다의 특징이 약간씩 가미되어져 그들만의 특별한 문화와 양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참 흥미롭고 특이하다. 이런 재미난 옛일들을 현대에서 알아내는 과정들 중에서도 발굴의 과정은 늘 궁금하다. 파고 또 파내어 알아가다보면 그 옛날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삼국 시대중 제일 먼저 국가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부흥을 일으켰던 백제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발굴)을 담은 이야기로 실제 장소와 문화재의 사진을 풍부하게 담아 더욱 더 실감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웠으며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삼국 시대 중 백제의 이야기를 우리는 다른 두 나라에 비해 많이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남아 있는 자료와 문화재들이 비교적 적은 탓도 있는 것 같고 역사적인 수난을 겪은 탓도 우리의 관심이 턱 없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옛 우리 조상들은 무덤은 죽은 자들의 집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생전의 흔적과 각자의 취향과 지위, 형편에 맞게 특별하게 하는 데에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마다 발굴을 하다보면 그 시대의 특성과 양식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 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수 있다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령왕릉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학생 때 배워서 아는 내용이기도 한데 이 책 안에서 실제 사진을 보며 설명을 들으니 더 잘 이해가 되고 내용이 와 닿았다. 우리는 무령왕릉을 통해 백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배웠다. 당시 백제는 중국, 일본과의 활발한 교류가 일어났었고 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며 막강한 국력을 떨친 것을 보니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주변 나라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우리의 것을 원래 자기들 것인 것 마냥 왜곡하고 거짓을 일삼는다는 최근의 뉴스들을 들어서인지 이런 역사적 증거가 있음에 얼마나 당당해지고 뿌듯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에게 잘 전달되어 질 수 있도록(물론 그분들이 의도하신 바는 아니었겠지만) 장례부터 무덤에 사용한 벽돌 하나 까지 정성을 들이고 혼을 불어 넣은 듯한 노고에 너무 너무 감사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송산리 고분 발견 당시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의 방해와 도굴, 사실 왜곡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정말 분통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오판으로 무령왕릉은 그 당시의 위기들 속에서 벗어나게 됐을 때 정말 큰 안도의 한숨이 나오며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정말 다양하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이 책속에 담겨져 있다. 아직 백제라는 시대의 이야기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적고 전달되었던 내용이 적어 안타까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책 속에 있었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고분들도 남아 있는데다 추가적인 발굴 예정이 있고 일대가 사적지로 등록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올해 백제 웅진기 왕릉의 구조와 상장례 문화 구명을 위한 발굴조사가 시행 예정이었다 하는데 코로나를 이유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시대의 이야기를 알 수 있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희망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제 시대의 물건들과 기록들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정말 섬세하고 화려한 듯 하나 기품이 넘치고 우아하며 세밀하기가 정말 대단하다 싶으며 감탄만 나올 뿐이다. 우리 나라의 모든 것들이 다 살펴보면 중요함이 덜하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이 백제라는 나라의 것은 특히 이런 쪽으로 더 특별함이 느껴진다. 하루 빨리 이 특별함을 더 많이 느껴 보고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사는 곳은 신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주와는 가까운 덕에 수시로 자주 들리고 궁금하면 찾을 수 있었다. 그만큼 백제에 대한 궁금증도 너무 많아졌고 실제로 가서 보고 싶어졌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졌다. 조만간 아이들과 함께 가족 여행지로 삼아 미리 충분히 공부하고 알아본 뒤에 방문을 할 예정이다. 아마 책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길 바라며 이렇게 마음 먹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이 책이 너무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