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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반야심경1_혜범 스님_문학세계사 반야심경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사실 한 때 불교 종교 활동을 하며 피아노 반주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불교의 매력이라고 하면 좀 옳 지않은 표현일까요. 스산한 바람이 불고, 고요하며 숲속의 피톤치드 향내를 맡을 수 이었던 절은 제 마음의 안식처 같았습니다. 그 절 안에 불자들과 스님이 한 방에 모여 반야심경을 읊고 찬불가를 부르며 좋은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각 종교마다 분위기의 차이란게 있었습니다. 불교는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넉넉함이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일단 이 소설은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더라고요. 아무래도 종교 소설이다 보니 반야심경의 정신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자어가 많이 나오고 불교경전의 구절들이 보이며 절 안에서도 가계도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쉽게 말해 스님들에게도 위 아래 라는 것이 있던 것 같았어요. 제대로 그 뜻을 알려면 한자 사전을 찾거나 불교구절을 검색하여 뜻을 파악해야 될 것 같습니다. 상세한 뜻을 모르더라도 내용상의 전개를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장르 소설이라기 보다 휴먼다큐적이면서도 다양성이 돋보였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인공 해인의 고통과 상처로 부터 시작되는 과거의 자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사실 소설이었지만 혜범 스님의 자전적인 면도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큰 교통 사고를 당하시어 7차 8차 11차에 이르는 큰 수술을 치르며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셨더라고요. 그 책에 나오는 의학 전문 용어나 병원에서의 상황들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상세함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해인의 가족사도 엄청난 비밀이 있었습니다. 과연 행복이란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은 불심 안에 있는 것일까요. 반야심경의 정신일까요.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의 의문사 속에는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그 궁금증은 이 책에 몰입을 하게 하는 묘한 끌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상처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구도소설의 정수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인생의 철학을 사유할 수 있는 참 소설이었습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반야심경1#혜범스님#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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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교사상이 참 좋다. 작은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꿈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교회나 성당보다 절이 편했던 것 같다. 향냄새도 좋았고, 읖조리는 성불도 듣기 편했고, 자연속 나무들을 보는 것도 좋아 지금도 자주 찾는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어서 이제 관심을 좀 가져보려고 한다. ![]() ![]()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또 가장 많이 유통되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다. 정확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서 보통 「반야심경」이라 줄여서 부르고 있다.
「반야심경」은 불과 260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경문이지만, 대·소승 경전의 내용을 간결하고도 풍부하게 응축하고 있어서, 예불이나 각종 의식에는 물론 식사 때에도 지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종파적으로 공통으로 독송하는 경전이다. 불교에 입문하지 않더라도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에 앞서 외워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불교 입문서로서의 대표성도 가지고 있다
부처가 설법한 내용이 담긴 책을 경전이라고 한다. 대승, 소승 경전의 방대함이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아 팔만사천 경전이라 부른다. 팔만사천 경전의 진수를 모아 270자로 요약해서 세상의 진리를 밝힌 경전이 <반야심경>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은 승려는 물론 불교 신자와 일반인들도 탐독하는 불교 경전의 대명사이다. 『소설 반야심경』은 오랫동안 불교에 정진해 온 혜범 스님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부처의 뜻을 담고 있다. 소설 구상과 집필에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 ![]() ![]() 불경 <반야심경>을 소설로 엮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관계된 장편 구도求道소설이다. 한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반야심경이 주는 삶의 심오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소설 반야심경』은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 밖의 고통과 방황을 통해 내가 나를 찾아가는 세상 고해 속의 항해 일지이다.
주인공은 기억도 나지 않는 교통사고에 다발성 골절에 시력까지 잃은 채로 병실에서 눈을 뜨게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통증으로도 고통스럽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환경에 좌절감이 든다. 예기치 않은 사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 때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살아남은 것들은 다 거룩해" 이 한마디로 어쩌면 위로가 되기도 한다. ![]() ![]()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주인공. 새로운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지효 스님이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이름을 바꾸듯이 내 인생도 새롭게 만들면 좋겠다마는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하지만 새로운 희망은 생겨나는 듯하다.
해탈하다. 해탈한다는 건 뭘까? 해탈이란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데 그냥 들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겨우 좌절과 절망을 수용했다는 주인공의 말에 나는 어떠한 상태인가 고민하게 된다. 내 맘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지. 나이 마흔에 이제 그정도 알게 된 듯.
낯선 불교 용어가 많아서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ㅎ 성불은 보살(菩薩)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덕을 완성(完成)하여 궁극적(窮極的)인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실현(實現)하는 것을 말한다는데 불교안에서는 '성불하세요'가 하나의 인사인 듯하다.
하루 아침에 장님에 곱추, 절름발이. 장애를 갖게 되었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산다는 거 모든 것이 고(苦)이다. 그럼 이제 깨달았으니, 모든 게 즐거움, 축복이 되어야지 갑작스레 닥친 불행에도 불구하고 삶의 지혜와 진리를 깨닫고 일어서는 주인공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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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혜범스님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쓴,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모든 사람이 겪는 생로병사에서 불행/불운이 아니라 이를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스님의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친근하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이 책의 제목이 소설 반야심경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처의 설법 중 진수를 모아 270자로 요약해 세상의 진리를 밝힌 '반야심경'처럼 사고를 겪으며 깨달은 스님의 깨달음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담긴 제목이다. 삼촌 스님의 죽음과, 교통사고로 인한 실명까지 해인스님에게 닥친 시련들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깨닫는 장면들을 몇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삼촌 스님의 죽음 이후 교통사고 후 삼촌스님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무로 돌아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모습
"무소유"가 떠오르는, 이것은 부처님이 의도한 인연이고 부처님의 은혜라는 스님의 해탈한 듯 한 가르침까지 한구절 한구절이 전부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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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서평을하면 요즘 나에게 딱 필요한 말 인것 같았다. 세상이 정해진대로 살아가야할 것 같은 강박이 나를 너무 힘들게한다 이 나이에는 무엇을 하고 이 나이쯤에는 무엇을 해야만한다라는 사회적통념이 너무나 무섭고 버겁다 그런 말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혜범스님말씀처럼 이세상의 주인은 나이니 내가 고삐를 잡고 주도적으로 살아가야겟다고 생각했다 눈치보지말고 나의 시간과 다른사람들의 시간의 다름을인정하고속도보다는방향을잘맞처 살아가야겠다 다른종교에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유독 불교는 마음으로부터 모든것이 나온다는 말이 많은 것 같다 내몸이 내것이면 내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하는데 그렇게하지못하면몸은그냥 껍데기에 불과하다라고말씀하셨다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내몸이내것이지만내마음대로되지않나? 오늘서평을올려야지밀루다 급하게올리는나처럼 또. 공부해야지하다가 시험에 닥쳐서 하는 나처럼 그래서 나는 생로병사뿐만아니라 마음먹은것을 내마음대로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의 바다에서 사는 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1,2편어려운단어와 내용이 나와 찾아가며 읽느라 조금 시간이 걸린 책이였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혜범스님의이야기를 더 이해할수잇어서좋았다. 소설로좋은내용을다가가쉽게접하는것도좋았던부분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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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몹시 힘든 일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고, 자식을 낳아 잘 키우고,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은 모두 인생의 고통이 된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종교, 심리학, 의학, 경제학에서 답을 찾기도 하지만, 녹록치 않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반야심경」이 내놓은 답은 “해답은 없다”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답을 찾기 위해 고통받지 말고,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라고 조언한다. 존재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고, 인생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마음이 지치고 심란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야심경을 찾는다.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자 괴로움을 없애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문으로, 외우면 외울수록 또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고 실천할수록 궁극적 자유를 얻도록 돕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유형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당신도 「반야심경」 속에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얻을 수 있기를 독자는 바란다.
이 작품 『소설 반야심경』은 1990년대 100만 부가 팔렸던 장편소설을 제목만 남기고 새로 썼다. 부처님 오신날(19일)에 맞춰 출간한 구도소설이다. 부처님 오신날에 맞춘 것이긴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등 불안정한 시국에 지치고 점점 불안감 우울감이 심해지는 요즈음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 줄 소설로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독자는 불교신자도 아니지만 위대한 종교는 인간이 갖고 있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 위로를 주고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다 주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서둘러 이 책을 찾아 읽게된 이유다. 비승비속(非僧非俗), 속세와 산중을 넘나드는 해인의 만행(萬行)이 서울역 지하도, 한센병 집단 거주지, 재활병원 등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저자 혜범이 원주 송정암에 주석하는 수행자다. 소설 제목이 된 「반야심경」은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지고 또 가장 많이 유통된다고 한다. 정확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으로서 보통 「반야심경」이라 줄여서 부르고 있다. 「반야심경」은 불과 260자밖에 되지 않는 짧은 경문이지만, 대·소승 경전의 내용을 간결하고도 풍부하게 응축하고 있어서, 예불이나 각종 의식에는 물론 식사 때에도 지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종파적으로 공통으로 독송하는 경전이라는 게 불교계의 조언이다. 불교에 입문하지 않더라도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에 앞서 외워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불교 입문서로서의 대표성도 가지고 있다. 「반야심경」은 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데, 그 가운데에서 일반적으로 독송되는 것은 당의 현장이 번역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전의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하'는 '크다'를 뜻하는 말이고, '반야'는 '지혜'를 뜻하며, '바라밀다'는 '완성'을, '심'은 심장 또는 정수를 뜻하는 말이므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뜻으로 풀어보면 '위대한 지혜의 완성과 그 정수를 담은 경'이 된다. 그래서 어떤 번역본은 「대명도경(大明度經)」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명(明)'은 지혜인 '반야'를, '도(度)'는 피안에 도달한다, 완성한다는 뜻으로 '바라밀다'를 의역한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약본으로서, 부처님이 관자재보살을 예로 들어 사리불에게 반야사상을 설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광본에 따르면 부처님은 왕사성 영취산에서 삼매에 들고, 그 삼매 속에 관자재보살이 옛날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때 사리불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관자재보살에게 보살이 행할 바를 묻고, 이에 대해 관자재보살이 약본의 내용을 그대로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부처님의 삼매 속에서 관자재보살이 설법을 행하는 형식인 것이다. 「반야심경」은 흔히 인도의 우수한 학승들이 반야계 경전뿐만 아니라 팔만대장경의 8만 4천 법문을 260자 안에 요약한, 전무후무한 경전이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불교사상의 정수를 오롯이 담아냈다는 말인데, 음미할수록 한 자 한 자가 놀라운 짜임새로 구성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선 공사상의 핵심을 정교하게 변증하는 앞단계가 있고 이어서 바라밀의 경지를 웅장한 톤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그 결론으로 진언의 내용이 풍부한 울림으로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불교용어도 잘 모르는 독자로서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지식을 위해 반야심경에 대한 백과사전을 찾아봤다. 마침 우리말로 된 반야심경이 있어 여기에 옮겨 적으니 소설의 이해와 반야심경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 적어본다. 우리말본 가운데 청담스님이 번역한 「우리말 반야심경」이다. 다소 길어 발췌해 싣는다. "관자재보살이 지혜로 도를 닦아 '참마음 자리'를 깨닫고 보니, 물질, 느낌, 따짐, 저지름, 버릇 등의 다섯 가지 '마음'의 고난에서 벗어났느니라.사리불이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므로 물질이 바로 허공이며 허공이 바로 물질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의 느낌과 따짐과 저지름과 버릇들이 바로 부처님의 밝은 지혜이며 부처님의 광명지혜가 바로 중생들의 나쁜 생각이니라. (중략) '마음'은 본래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 반야바라밀이 되어 아무 데도 걸린 데가 없으므로 겁나는 일이 없으며 꿈같이 허망한 생각이 없어서 최후의 열반에 이르게 되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도 이 '마음 자리'를 깨달아 가장 높고 바르고 밝은 지혜로써 생사를 초월했고 자유자재한 경지를 성취했느니라. 그러므로 생각의 주체인 이 마음도 아닌 '마음'이 가장 신비하고 가장 밝고 가장 높은 주문이며, 절대 아닌 절대로서 이 마음은 모든 것과는 다르면서 또한 만물과 둘이 아닌 주문이므로 능히 모든 고난을 물리칠 수 있고 진실하며 허망됨이 없느니라. 이에 마음을 깨닫는 주문을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불경 「반야심경」을 소설로 엮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관계된 장편 구도(求道)소설이다. 한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반야심경」이 주는 삶의 심오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소설 반야심경』은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 밖의 고통과 방황을 통해 내가 나를 찾아가는 세상 고해 속의 항해 일지이다. 부처가 설법한 내용이 담긴 책을 경전이라고 한다. 대승, 소승 경전의 방대함이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아 팔만사천 경전이라 부른다. 팔만사천 경전의 진수를 모아 270자(제목 포함)로 요약해서 세상의 진리를 밝힌 경전이 「반야심경」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은 승려는 물론 불교 신자와 일반인들도 탐독하는 불교 경전의 대명사이다. 『소설 반야심경』은 오랫동안 불교에 정진해 온 혜범 스님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부처의 뜻을 담고 있다. 소설 구상과 집필에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젠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바다로 가면 돼." "바다요? 바다는 왜요?" '살아있으니까." "하필이면 왜 바다예요?" "바다는 아우성치니까." "아....... 우리들 존재의 바다요?" "그렇지, 우리는 자유의 바다 화엄의 바다로 가는 사람들이란다."
바다로 왔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입원해서 7차, 8차, 11차 수술을 했다.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조금만 더 참아봐.'. '산 사람은 살아야지.'였다. 몸이 껍데기라는 걸 알았다. 내 몸인데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몸과 내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병상에 누은 채 이 고통은 무엇이지? 하는 마음으로 『소설 반야심경』을 쓰기 시작했다.{p. 4)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이 소설은 소설 주인공과 저자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그러나 표현하려는 내용은 명확하고 형상화돼 있다. 「서문」부터 한 편의 영화처럼 그냥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평범한 일상이 아닌,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계기 앞에서 독자의 마음은 이미 본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저자의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이미 영화화되었다. 초반부터 장면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보면 이 소설 역시 영화화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해인은 30대 스님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를 오가다가 코마 상태에서 겨우 깨어났다. 그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나는 누구지? 어디에 있었지? 그렇구나, 내 이름이 김산이로구나. 내가 만들었던 날들, 그 낮과 밤들,' 했는데 해인은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겨우 한 잎 과거의 단편 조각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p. 12)
주인공, 소년은 서울 외곽의 Y시에서 태어났다. 소년에게는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선산, 토지를 제법 소유한 외조부가 있었다. 그 외조부가 물려받은 선산이 신도시 도시 개발 계획에 들고, 미리 신도시 계획을 안 무리들이 외조부에게 토지를 매매하라고 권유하지만 외조부는 거절한다. 이후 외조부는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용공 세력들의 활동 자금을 댄 것으로 용공 세력으로 몰리고, 끌려가 몸이 으스러져 폐인이 되고 의문사를 당한다. 그런 과정에서 소년의 이모는 실종된다. 소년의 아버지는 경찰관, 경사다. Y시의 변두리, 별 볼 일 없는 파출소의 차석으로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위에서 덮은 외조부가 의문사한 사건의 궤적을 추적하며 수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아버지는 평상시와 같이 근무를 하다가 삼도 경계선의 다리에서 음주 차량을 적발한다. 운전자는 음주 측정을 거부한다. 운전자와 일행은 별장으로 놀러 온 ‘블루 하우스’의 사람들이었다. 파출소 소장과 차석인 소년의 아버지는 탑승자 세 명을 전원 파출소로 연행한다. 그러나 곧이어 연락을 받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에 의해 음주 운전자들은 풀려나고 블루 하우스에 있는 이들에게 어처구니없게도 괘씸죄에 걸려 파출소 소장과 차석인 소년의 아버지는 폭행과 굴욕을 당한다. 그리고 며칠 후, 녹화 사업의 일환으로, 괘씸죄에 걸린 소년의 가족과 파출소 소장의 가족들은 총을 들고 방역복을 입은 사내들에 의해 감염병 바이러스 연구소로 강제 이주당해 한센병 집단 수용 지역으로 수용된다. 그곳에서 소년은 유년 시절의 갖은 역경을 겪는다. 소년의 어머니는 승려인 소년의 삼촌에게 비밀리에 연락하여 미감아인 소년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승려인 삼촌은 대구 모 사찰의 주지일 때 만났던 군부 세력의 실세인 2인자의 부인이었던 보살에게 찾아가 청탁을 한다. 그렇게 삼촌, 지효 스님은 소년만 한센병 집단 거주 지역에서 겨우 빼낼 수 있었다. 주인공 소년은 한센병 집단 거주 지역을 빠져나와 거처를 관음사로 옮긴다. <2권에 계속>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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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76년 입산하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혜범 스님의 구도 소설이다. 1991년 대전일보 신춘 문예 단편 소설 <바다 , 물 , 바람>이 당선되었고, <시절 인연> <소설 미륵> 등 구도소설을 펴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한 스님의 기구한 이야기르 통해서 삶의심오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소설 반야심경>은 마음을 비우고 나를 찾아가는 구도 소설이다. 세상의 불운과 고통 속에서 가륻ㅇ과 방황을 끝내 깨달음 과 치유를 얻는 과정을 그린 구도소설이다. "어느 누구도 생노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와졌는가에 있다. 불운하다고? 불행하다고? 인생을 등에 지면 짐이 된다. 인생을 가슴에 품으면 수행이 된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삶은 곧 길이다. 이 책 추런사이다. "승려로 정진하던 혜범스님은 염불의 대명사인 반야심경을 소설로 엮어 우리의 막힌 귀를 열어주고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일독하기를 권한다" 고 승려시인 이향봉 님의 추천사가 붙어있다.
"뭐 하다 스님이 되었는 데요 ?" "더러운 일... " 가슴에 커다란 돌 하나씩 달고 다니는 이들이 스님네 들이신가? 그 돌덩이 같은 업보를 꽃으로 만들려 하는 사람들이다. 던지는 말마다 화두 같고 나오는 법문 마다 이 세상의 말이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조심조심 살았어요, 그나저나 범인들을 잡으면 어떡할 건데요." 대화들이 하나도 가벼운 것이 없다. 그래서 승가에 몸을 담게 되신 분들이랄까? 병원에서 있을 때는 또다른 공부가 되는 것일까? "마음이 몸뚱아리의 주인이고 씨앗이여, 비몽사몽 간에 눈에 보이는 것들 다 헛 것인데 뭐." "생명은 크던 작든 다 빛나는 거야, 내가 밝으면 상대가 밝고, 모든 생명이 밝은 거야, 너는 왜 너를 파괴하며 살려고 하니?"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지내며 아이들한 두들겨 맞고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기 살다가 네가 죽겠다 하시며 삼촌 스님을 따라가라고 아들의 등을 떠미는 장면이 아프다. 한센병 환자인 아버지의 눈물을 뒤로 하고 차마 죽지 못한 채로 삼춘을 따라나서는 괴로운 중생의 모습이다.
"절에서 살기는 힘들거다. 아마 거의 다시 태어나야 할 걸, 이 세상이라는 법당에 대들보가 되도록 해라."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주인 처럼 살다 나그네처럼 떠나라 바로 지금이지 다시 다른 시절은 없다. " 그렇게 승가 생활을 하지만 ... 전간증 환자인 주제에 도를 구한답시고 보낸 지난 시절도 대형 고통사고로 병원에서 사는 신세인데다가 장님에다가 팔 다리도 불편하니 온갖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안구 기증자가 나타나지만... 해인은 통증에 포위된 채 칠흑 같은 어둠을 견디며 머릿속에서 엉겨붙고 풀리지 않은 추억으로 복잡한 자신을 다 지나간 일이라고 다독인다. 점점 회복되고 수술을 앞둔다. "아무도 위로해 주지않고 그저 너무 아파 비명을 내지르고, 통증을 견뎌 내려 안간힘을 쓰지. 이 세상에서 너만 고통 받는게 아니야 너만 비명 지르고 있는게 아니라고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고 이놈아" 우리가 환경과 조건 지어진 것에서 조건 지워지지않는 곳으로 가고자 함이 바로 수행, 해방 , 개달음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도망을 가든 아니든 희망을 버려서는 안돼 세상살이에 곤람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근심과 걱정, 고통과 두려움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한 세상이다." "괴롭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생로병사 애별리고라 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외로운 것이다. 자연의 이치이다. " "수행이라는 것은 모르는 걸 아는 데 있지만 알고 있는 걸 바르게 행하는 것이 먼저이다." 꼭 인생이 고통스러워야 도를 구하는 가 아니다. 좀더 마음을 편ㅁ안하게 하고자 도를 구한다. 세상에 여러가지 못된 일이 있고 괴로운 일도 있지만 악의 뿌리가 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훗날 짐이 되는 달콤한 유혹을 미리 경계하고 오늘의 시간들을 조심조심 살아가야 한다. 이책을 읽고 나서 나 만의 경전을 써 보고 있다. "풍요롭다고 다 자랑하지 말며 가난하다고 구차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잘 나가던 이들도 쇠락하여 슬슬해지기도 하고 과거에 힘들게 살 던 이들도 다시 복을 쌓아 잘 살게 되기도 한다. 인생은 괴로움이라 하나 자제력을 기르고 나와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내 마음에 자비와 사랑을 키우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의 제공한 책으로 개인적인 견해를 적은 글입니다. >
소설 반야심경 혜범스님 문학셰계사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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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을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실천은 못하고 있었다.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생각은 그저 생각만으로 머물고 있었다. 그 '언제 한번'은 어쩌면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반야심경'은 팔만사천경전의 진수를 모아 270자로 요약해서 세상의 진리를 밝힌 경전이라는데, 해당 종교인도 아니면서 그 책을 마음처럼 쉽게 펼칠 기회가 생기겠는가. 하지만 소설이라면?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혜범 스님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스님이 소설을 쓰시다니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독자의 시선에 맞게 이야기를 잘 녹여냈으리라 생각되어 기대감이 생겼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기도 했고, 지금이야말로 종교를 매개로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보내기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독서의 시간이 되겠다 싶어서 이 책 『소설 반야심경』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저자는 혜범 스님. 1976년에 입산했다. 1991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바다, 뭍, 바람」이 당선되었고,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다. 『남사당패』, 『시절인연』, 『소설 미륵』 등 다수의 책을 출간하여 '대일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강원도 원주 송정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책날개 중에서) 이 소설은 고통, 즉 색, 공에 대한 이야기다. 픽션이지만 어떤 한 눈이 먼 스님을 소재로 한, 그러나 픽션, 허구이다. 논픽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그리움이 되지 못하는, 그리움이 되게 해서는 안 되는 병상기록, 나의 실제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픽션, 허구이다. (6쪽) 소설의 본문을 읽기 전, 그러니까 이 책은 서문 처음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젠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바다로 가면 돼." "바다요? 바다는 왜요?" "살아있으니까." "하필이면 왜 바다예요?" "바다는 아우성치니까." "아……. 우리들 존재의 바다요?" "그렇지. 우리는 자유의 바다, 화엄의 바다로 가는 사람들이란다."
그렇게, 바다로 왔고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입원을 했다. 7차, 8차, 11차 수술을 했고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조금 만 더 참아봐.', '산 사람은 살아야지.'였다. 몸이 껍데기라는 걸 알았다. 내 몸인데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몸과 내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병상에 누운 채 이 고통은 무엇이지? 하는 마음으로 『소설 반야심경』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4쪽) 서문 처음부터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냥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평범한 일상이 아닌,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계기 앞에서 이 책이 이미 내 마음 한가운데로 훅 치고 들어왔다. 그렇게 본문, 그다음 이야기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저자 소개에 보면 장편소설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이 영화화되었다는 것이 있다. 초반부터 장면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보면 영화화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해인은 30대 스님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를 오가다가 코마 상태에서 겨우 깨어났다. 그 장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지? 어디에 있었지? 그렇구나, 내 이름이 김산이로구나. 내가 만들었던 날들. 그 낮과 밤들,' 했는데 해인은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 겨우 한 잎 과거의 단편 조각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12쪽) 저자 혜범 스님 본인의 경험담이 녹아들어 소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는 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장을 펼쳐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선입견이 작용했나 보다. 하지만 일단 펼쳐들면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느낌이다. 읽어나가다 보면 장면 하나하나 머릿속에 그려나가며 몰입하게 된다. 읽다 보면 반야심경도, 우리네 삶도, 믿기지 않는 현실과 고통도, 한 데 어우러져 이 두 권 안에 녹아들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2권의 마지막에는 혜범스님 편 반야심경 해제가 수록되어 있다. 소설을 읽고 반야심경과 해제를 읽으니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작가의 말까지 나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 나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방향을 잃고 있는 나를 불러 세운다. 살다 보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깨지 못한 꿈과 같은 세상, 가슴은 막막하고 입에선 단내가 날 때가. 순간, 타사시구자, "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는 화두를 트는 소설의 인물, 캐릭터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276쪽)
우리 모두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의 항해자다. 그 무게가 누구는 무겁고 누구는 가벼운 것은 아닐 터. 살짝 버겁기까지 하던 내 인생의 바다를 이 소설을 읽으며 잠시 잊어본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 무게도 잊고 고통도 잊어본다. 구도의 길을 함께 가보는 듯한 어렴풋한 느낌을 선사해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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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해은 스님이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한다. 스님은 겨울 빙판길 교통사고로 만신창이 되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상태다. 눈까지 다쳐 맹인이 된 처참한 육체를 보면서 자신 신세에 대해 온갖 번뇌망상이 휘몰아친다. 거기에다 드러나지 않았던 부조리한 세계의 사리사욕과 얽히면서 허무와 절망의 세상에 놓인다. 너무나 험난한 인생 이야기다. 아빠 엄마가 나병이라 불렸던 한센병으로 격리되고 소년 해은은 미감아로 온갖 고생하다가 입산했지만, 또 다시 교통사고로 중환자가 된다. 현세 아무런 해고지, 나쁜 일 한 기억이 없는 그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전생의 업보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나락에 굴러떨어진다. 아빠, 엄마, 삼촌 스님, 노스님을 회상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이 명멸하며 깨달아가는 구도소설이다. 지루해지기 쉬운 구도소설에 여러가지 복선을 깔아 넣어 몰입감있게 진행하면서 눈길을 떼기 어려웠다. 나병에 대한 내용과 나병환자 시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시설 수용 인원수까지 숫자로 명시되어 있다. 사실인지 허수인지 잘 모르지만 진실처럼 느껴지고 해은 스님에 감정이입되어 웃다가 울다가... 가슴아파하다가, 억울해하다가,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태껏 욕심부리고 낙심했던 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숙연해지게 만든다. 어디까지가 팩트고 허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해은 스님과 혜범 스님께 합장 올립니다. 2021년 부처님 오신날 즈음, 좋은 말씀, 좋은 가르침 많이 듣고 갑니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톱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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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도가 아니다. 지금은 불교에 대한 관심 및 호감이 좀 생겼지만, 그렇기에 이 책도 본 것이지만,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 불교는 매우 긴 경전을 갖고 있다. 그걸 압축하여 만든 게 바로 '반야심경'이다. 반야라는 것은 사물에 대해 제대로 깨닫는 지혜를 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반야심경이 무엇인지 몰랐다. 불교에 대해 거의 처음 뭔가를 접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부터 본 것은 여러 장단점이 있었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딱 접하게 된다. 단어 뜻도 생소하고, 불교 문화에 대해서도 모르니까 이게 어떤 맥락인지 대강 짐작할 뿐인 것도 많았다.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쭉쭉 넘어가며 읽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이미 어떻다고 규정해놓은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의 이야기로 하나씩 접하며 읽어나갔다. 경전 형식은 아무래도 딱딱하다. 다른 말로 하면, 논리적이다. 그에 비해 이야기는 삶에 가깝다. 불교 경전과 기독교 경전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특히 예수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무얼 했고, 누굴 만났고 등등. 그러면서 배신도 당하고 죽음도 당한다. 교리라기보다 이야기로 전해진다. 논리적이진 않을 수 있지만, 삶에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이게 얼마나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르겠다. 저자 서문에도 밝혔는데, 그런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수용하면 된다. 그게 픽션이면 어떻고, 논픽션이면 어떤가. 세상에 픽션이 어디에 있고 논픽션은 어디에 있나. 둘은 섞여 있게 마련 아닌가. 그게 삶이다.
실제 스님이 쓰신 이야기다. 실제로도 저런 대화를 주고 받을지, 소설이니까 저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에게 하나의 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 역시 상일 뿐. 내 마음에 깨어 있자.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이 참이다. 생로병사, 고통은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는 거다. 그게 삶이다. 그 고통 가운데서도 깨어 있고, 깨어 있자. 그게 우리의 해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