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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반야심경
이 세상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욕심이고 욕망이다. 절에 들어가서 수행한다고 다 해결이 되면 얼마나좋을까?
그렇다고 승려가 된다고 다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깨닫겠다고 승가에 들어가지만 숨겨둔 처가 있기도 하고 신도님들이 시주한 뭉치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 가치와는 멀리 떨어지는 고통의 길을 걸어온 스님네 고된 운명에 지쳐 병원에 누워 이제 다시는 절로 들어가지 않을거라고 다짐하는 주인공 스님네에게 병수발드는 여인네 엉킨 운명의 실타래로 엮인 그녀가 함부로 지껄인다.
"깨달아 부처 되겠다는 욕심 좀 부리지 말고 부처는 개뿔, 사람 마음대로 다 되면 그게 사람인가? 헛된 욕심 부리지 말고 먼저 사람이나 되라구! 중놈들이라는 것들이 자기 마음 자리도 밝히지 못하는 것들이 주제에 꼴깝이나 떨고 다른 사람의 스승 노릇을 하려하는지!
여인네가 똑부러지게 불교를 비판하니 스님의 한탄이 흘러나온다. "업보라지만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어 해탈을 이루지 못한 죄 작지 아니하다. 시줏밥만 축내는 가짜 중노릇이지."
여인의 일갈이 계속된다. "집 사느라 차 사느라 대출금 독촉에 시달리는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 깨달음이니 자비니 순 입으로만 나불대는 땡땡이 중들!"
이 보살아, 너도 입으로 구업을 짓고 있다는 걸 몰라?
큰 스님은 말씀 하신다. "부처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먼저 사람이 되는 거야, 인즉시불, 헛것의 세상, 허상에서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변화와 발전을 일으키는 사람, 그 사람이 부처야, 부처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깨달아가는 삶의 기쁨을 느끼거라. 비심비불, 마음 아닌 것은 부처가 아니다. " "사랑은요?" 이 말에 노스님은 씩 웃는다.
이놈, 사랑을 아는 거냐? 사랑만한 수행이 없단다. 성장통이지, 이별을 해 봐야 절망이 뭔지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지, 사랑을 해보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렇게 살아본 사람 만이 진짜 인간이 다.
스님은, 기구한 운명 때문에 불가에 귀의 하였다. 어린 시절, 불량배들에게 두들겨 맞는 아이를 위해 때리지 말라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걸핏하면 불려 나가서 죽지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고 도둑질을 시키는 걸 거절하면 담배불로 지지고 그 고통 속에서 한센병 아버지와 어머니가 현실을 보고서 삼촌을 따라 절에 들어가라고 했다. 눈물로 헤어진 부모님 돌아가신 부모님을 바다에 뿌리고 돌아오는 길에 빗길에서 난 교통사고 그 차의 주인공이 예전에 때리지 말라고 하며 보호해 주었던 아이의 여동생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눈까지 멀어서 병원에 누워 삐걱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홀로 길을 걸어나가는 데 눈도 다시 좋아진다.
인생은 왜이리 곱지 않은지 왜 이리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 지 무리들이 약한 아이를 함부로 짓이기는 것 아무리 해도 편치 않은 인생의 얽힌 길에 서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이 소설은 누구나 한번 읽어보았으면 한다.
<이 글은 출판사의 제공한 책으로 개인적인 견해를 적은 글입니다. > 소설 반야심경 혜범스님 문학셰계사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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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반야심경2_혜범 스님_문학세계사 인생이 반야심경안에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불교인은 아니지만 불교가 가르치는 정신을 짧게 느껴본 적이 있다. 얼마나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사실 이 말을 들으면 그저 부끄러워 진다. 소설의 주인공 해인은 아픈 사람이다. 스님은 30대의 젊은 사람이다. 인생이 반야심경에 녹아든 모습을 보며 삶의 끝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교통 사고의 고통 속에서도 꿋꿋히 이겨내는 정신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반야심경은 8만자가 넘는 불교경전을 짧게 축약한 내용이라고 한다. 반야심경 대승불교 반야사상(般若思想)의 핵심을 담은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으로 완전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 그 뜻은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심(心)’은 일반적으로 심장(心臟)으로 번역되는데, 이 경전이 크고 넓은 반야계(般若系) 여러 경전의 정수를 뽑아내어 응축한 것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출처. 다음사전 불교행사에 참여했을 때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매일 독송을 한 것이 반야심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소설은 반야심경이지만 문학적 특색을 고루 갖추어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다. 혜범스님의 장편소설'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사람' 은 영화화까지 되어서 문학을 넘어 대중성까지 아우르는 스님의 필력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스님이라고 그저 멀기만하고 어려운 분이라고 선입견을 가졌었는데 스님도 인간미 있고 우리에게 친근하며 평범한 사랑임을 소설을 통해느꼈다. 속세에 가족과 친구가 있고 고통 속에서도 지혜와의 사랑도 있었다. 꾸밈없이 써내려가는 글을 통해 반야심경의 정신을 배우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용기에 감정이입하여 결국은 깊은 감동만 남은 것 같다. 이 소설도 좀 더 대중화 되어 윤색과 각색을 통화 영화화 되어 많은 이들에게 불교의 숭고한 정신을 깨우치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반야심경2#혜범스님#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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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용어가 낯설고 어렵지만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아서 2권까지 왔다..! ![]() ![]() ![]() ![]()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참 되새겨진다. 삼천 대천세계가 다 해인이고 화엄이거늘.... 멀리 떠날 필요없이 내 주변에서도 충분히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 같다. 지금 내 자리에 감사하라는 뜻 같기도 하다. 주인공의 손과 발, 팔과 다리에 제법 힘이 붙을 정도로 회복되어 가고, 각막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찰나생, 찰나멸이라. 내가 없으면 꿈도 없다. 꿈이 없으면 모두가 찰나이다. 삶은 그냥 한바탕 꿈의 찰나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는 것 같다. ![]() ![]() 사는 것도 꿈, 죽는 것도 꿈 삶의 의미를 찾지 말고, 그저 하루 살아갈 뿐! 오늘 하루도 잘 살았으면 그만인 것. 내가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 때 다른 행동을 했더라면 과거를 생각해봤자 무의미한 행동일 뿐 그냥 오늘 하루만 생각하면 편안하다. 하루만 생각하니 물욕도 없어지고, 걱정도 없어지고 ㅎ 전에 유퀴즈에서 스님 한 분이 나오셨는데, 우리의 육신은 그저 아바타라고 말하셨다. 화가 나는 것도 다 아바타가 화가 난 것일 뿐이라고 ㅎㅎ 그 땐 막 우스개 소리로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제 3자로 보는 시각을 말씀하셨던 것 같다. ![]() ![]() 결말에서 주인공은 개안하게 된다. 앞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희망적인 결말이라 좋다 ㅎㅎ 힘든 위기를 잘 버티고 버텨서 좋은 결말이 온 것 같다. 나도 잘 버텨봐야지! 인생이 고(苦)라고 생각하니, 지금 나의 힘듦이 아주 작게 느껴진다. 현재에 감사하면서 즐겁게 살아야지. 모든 생명들과 공생하면서. 2권에서는 혜범스님 편 반야심경 해제가 실려있다! 펼친 반야심경은 내가 아직 이해하긴 어렵지만 불교를 공부하기엔 좋은 내용이다. 소설보다 이 내용이 더 좋은 거 같기도 ㅎㅎ 이 구간은 자주 읽어봐야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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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혜범스님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소설, 해인스님의 사고 후, 스님의 일생의 고난을 겪으면서 얻은 깨달음을 독자들과 나누고 있다.
사고로 눈이 먼 해인스님은 사건 및 유년기의 고난을 되돌아보며 깨달음을 얻은 후 눈을 뜨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난다. 마지막의 저자의 말에 의하면 '마음의 창'인 눈이 멀면서 욕망과 물질의 굴레를 벗어나 보람 있고 값진 삶을 생각 해 볼 수 있게 함이었다고 한다.
또한, 2권에는 소설이 끝난 후 실제 '반야심경'과 반야심경의 혜범스님 버전 해석이 들어있다
실제 부처님의 설법 중 주요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 반야심경이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해인스님의 내용이 당연히 떠오르게 된다.
실제가 없으나 있는것, 모순적이며 뜬구름 잡는 이야기같지만 실명을 하고 본질을 보게 된 해인스님을 생각하면 어렴풋이 알것도 같다. 앞으로 반복하여 읽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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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보면그사람의마음이보인다라는말이있다 근데 그것을보지못하고보이지않는다면어떻게될까? 나는오히려더 선입견에 없는세상에서살수잇을거라는생각이들엇다 그러면서 내마음의소리에 더집중하며살아가게될것같다 도일체고액이라는것은일체의 고액(고난,고통)을건너 해탈의 열반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해보이는사람도 그렇지않은사람도몯다바다로건너가는고해으이항해자일것이다 각기다른고난으로힘들게살아가고있는우리들을서로조금씩보듬고살아가면 다들원하는세상에서항해를마치면좋겠다라는생각에소개하였다 혜범스님께서크게사고가나셔서11차까지받는 대수술을 하였다 그래서병상에서누운채 '이고통은무엇이지?'하는마음에쓰기시작하신글이다. 어렵긴하지만그래도읽으면서많은생각을하고 다양한지식을얻을수잇어서좋았다 2편에마지막에는반야심경에대해자세하고쉽게풀이를 해놓으셨다 읽으면서 책에서말한것이이런의미였구나조금은 알수잇었다 마지막으로 혜범스님께서하신말이 기억에 났다 욕망은삶의동력인가?괴로움의뿌리인가? 나는양날의검이라고생각한다. 삶의동력이라고생각하면추진할수있는힘을얻어그것을 욕망이라부르지않고목표라고생각이든다 하지만그것이 괴롭다면욕망이고욕심이라고생각한다 가끔은 나도완벽하게 모든것을 잘해내고싶은욕망때문에괴롭고힘들긴하지만 그래도 그것으로인해내 삶에긍정적인부분이많아진걸보니삶의동력이라고도할 수 있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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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당 지월 노스님의 상좌가 된 소년은 ‘해인’이라는 법명을 받는다. 소년은 가호적과 주민등록증도 새로 만들어 신분 세탁을 하고 사찰에서 무탈하게 성장해 고3이 된다.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아침이면 문을 열고 들여다보던 노스님이 돌아가시고 노스님은 해인에게 4년 치의 대학 등록금과 함께 추사 김정희의 난(蘭) 그림을 유산으로 전해 준다. 해인은 의대에 들어가 승려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형 성운은 그 노스님에게 물려받은 통장과 도장, 추사의 난 그림을 가지고 도망을 간다. 그쯤 해인은 괴로움으로 울다 큰 사형 성운 스님의 은처, 자비행 보살의 딸, 반야 지혜를 아무도 몰래 사랑한다. 세상은 바람 불고 춥고 어두웠다. 숨겨야 하고, 비밀스러워야 하는 절집 사랑, 만남에 세 살 어린 유년 시절부터 같이 자란 지혜는 늘 해인을 안타까워한다. 빈털터리가 되어 실망한 해인은 괴로워하다 도망치듯 3년, 천일을 기약하고 무문관 선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산 나그네, 선방 나그네가 된 해인은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고, 삼촌, 지효 스님의 위독함을 전보로 받는다. 지효 스님은 죽기 전에 남산 타워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어이없고 황망해하던 해인은 삼촌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다. 남산 타워와 청계천을 구경시켜 준 해인은 삼촌 지효 스님과 쓰러질 듯 서울역 지하도로 들어가 노숙 생활을 한다.
삼촌은 승복을 버리고 노숙자들에게 얻은 옷을 입고 야인으로서 지하도에 앉는다. 그리고 역 광장에서 노숙자들이랑 술을 마시다 입적한다. 그때 같은 노숙자가 준 불온서적을 소지한 죄로 인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류를 살고 나온 해인은 사제 스님인 도연의 도움으로 무연고 사망자인 삼촌의 시신을 찾아 동해안 바닷가로 가서 엄마 아빠의 유골로 만든 염주까지 배를 빌려 바다에 던져 준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실명한다. 몸을 뒤척이게 하는 오랜 병상 생활로 꿈틀거리던 해인에게 사제 스님인 도연과 배우가 된 지혜는 극진히 병간호를 한다. 각막에 손상을 입어 두 눈을 잃은 해인은 살아 있는 게 악몽이라며 어찌할 수 없음에 버둥거리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고 먹먹해진 채 병상 생활을 이어가고 마침, 같은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의 지정 각막 기증으로 각막 이식수술을 한다. 그러나 국립 재활병원의 3개월 입원 기간 제한으로 만신창이가 된 해인은 강제 퇴원을 당해 국립 재활원을 나온다.
해인은 병상 생활 중 한 불자인 간호사를 만난다. 간호사는 해인에게 자신의 오빠라며 한 불자를 소개해 준다. 그는 국가 기밀 기관의 차장으로 은퇴한 국가 고급 정보원이었다. 해인은 그에게 그간 일어난 자신의 개인사를 조사하게 한다. 그에게서 그간 불행에 얽힌 두 가족사의 비화를 들을 수 있게 된다. 한센병 집단 거주 지역에 있을 때 다리를 저는 한 친구, 박문수가 맞는 걸 보고 ‘형들 때리지 마’ 하고 나섰던 게 이 모든 불행의 단초였다. 그 친구는 바로 아버지와 함께 감염병 바이러스 연구소로 강제 이주 당한 아버지의 선배, 파출소 소장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구해 준 은인이었던 해인의 눈을 멀게 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교통사고 유발자가 바로 어릴 적 양명원에서 탈출시켜 주었던 친구인 박문수의 동생 박보현이었다. 모두 다 세상의 운명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사형인 성운 스님이 훔쳐간 돈으로 절을 지어 불사를 하기로 한 땅을 해인의 명의로 매입한 사실도 국가 고급 정보원이었던 이에게 확인한다. 그러나 ‘지금 너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닦는 일이다.’라던 은사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비승비속으로 인연으로 빚어진 이 모든 인과(因果)는 실존(實存)이다’라고 하며 평생 크지 않은 오두막 같은 절을 짓고 기도하며 살기로 결심을 한다. 해인은 아버지와 함께 한센병 집단 거주 지역으로 내몰렸던 친구 문수가 암에 걸려 죽음에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비가 내리는 데도 해인은 대학로 S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친구 박문수를 찾아가 면회를 하고 교통사고 가해자이면서 실명의 원인이 되게 한, 뺑소니를 쳤던 박문수의 동생 박보현에게 자수를 권하고 나온다. 병원을 나오던 해인은 ‘그래. 우리 인간은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길바닥에서 충격을 받은 뒤 갑자기 눈이 벌에 쐰 듯 통증을 느끼다가 눈을 뜨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혜범 스님은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반야심경』은 인간 본성의 탐구, 인간의 구원 문제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에 초점을 맞춘 그의 소설은,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인간의 삶과 구원 등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룬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굴곡진 인생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함께 슬퍼하고 좌절하고 번민하게 된다. 그러나 갑작스레 닥친 불행에도 불구하고 삶의 지혜와 진리를 깨닫고 일어서는 주인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올 수 있다. 경전의 신비고 이 소설의 힘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혜범 스님의 이 소설을 읽다보니 70년대 한국 불교소설의 백미로 평가받는 김성동의 『만다라』가 기억난다. 저자가 20대 젊은 날에 겪은 삶에 대한 번민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잿빛 노트’이면서, 당시 산업화의 병폐가 나타나고 있던 한국사회와 속세의 가치를 탐했던 불교에 대한 직관적인 비판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내용들을 모른다고 해서 작품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만다라』는 불교라는 상자 안에 인생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아,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이며 맹목적으로 불교의 교리가 주입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다라』는 작품에 사용된 불교용어들을 접어두고 읽더라도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때문에 『소설 반야심경』과 『만다라』는 2021년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힐링’ 이상으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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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소설 반야심경>을 통해 경전에 담긴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전 대신 소설을 통해 배운 것 같아요. 주인공 선재가 겪은 불운은 우연이 아니었어요. 세상만사 우연이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소년 선재가 관음사로 가서 지월 노스님과 인연을 맺고 스님의 길을 가기까지... 그 과정에도 수많은 인연들이 있었어요. '반야'가 지혜라는 뜻을 가졌다는 걸 알고나니, 선재가 관음사에서 만난 소녀 지혜와의 인연이 어떻게 먼훗날까지 이어져왔는지를 알 것 같아요. 기구하고 고독한 운명을 살아야 했던 선재, 아니 해인 스님. 교통사고로 인해 온몸이 으스러지고 실명에 이르자, 해인은 절망했고 방황했어요. 인간적인 고뇌. 스님이라고 해서 평범한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해인은 육체적 고통 속에서 과거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렸고, 감춰진 진실까지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진실이란... 밝혀내기 위해 그토록 애썼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저자 혜범 스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소년 선재에게 노스님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2권 마지막 부분에 혜범스님의 반야심경 해제가 실려 있어요. 지혜로써 도를 닦는 일은 곧 마음의 고난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 경전에 담긴 용어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반야심경의 기본은 배운 것 같아서 좋았어요. 결국 깨달음은 경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있다는 것을, 혜범 스님은 이 소설을 통해 알려주셨네요.
"스님, 어찌하면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는지요?"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네?" "마음의 눈을 뜨려면 그건 간단하지.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보면 되는 거란다." 알음알이에 빠지지 마라. 참된 수행을 해야만 깨달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번뇌망상은 우리와 한 묶음, 번뇌가 바로 보리인 것이야. 화두, 그 물음과 해답을 통해 자유의 길로 가는 것이지." "...... 스님, 번뇌를 끊을 수가 없어요. 어찌하면 이 번뇌를 끊을 수 있어요?" "세상을 다시 봐라. 번뇌라 보면 번뇌지만 보리라 보면 보리 아닌 것이 없어. 번뇌를 끊으려 하지 말고 번뇌와 부딪혀 싸워서 그 번뇌를 부숴버리면 자유 그리고 해방이 돼." "네......?" "...... 부처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먼저 사람이 되는 거야. 인즉시블 人卽是佛 , 헛것의 세상, 허상에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변화와 발전을 일으키는 사람, 그 사람이 부처야. 사람이 부처를 만드는 것이지, 부처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깨달아 가는 삶의 기쁨을 느끼거라. 즉심즉불 卽審卽佛 비심비불 非心非佛 , 그 마음이 곧 부처이며, 마음 아닌 것은 부처가 아니다. 직지인심, 견성견불. 심의수불임을 명심해라." "사랑은요?" 해인이 다그쳐 묻자 노스님은 씩 웃었다. "너 이놈, 사랑을 하는 거냐? 사랑만한 수행이 없단다. 성장통이라고 하잖아. 이별을 해봐야 절망이 뭔지,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지. 사랑을 해보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거야." (129-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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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반야심경>을 읽는 동안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따금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왜 살고 있는걸까? 우리가 삶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일까? 그것을 얻게 되면 과연 행복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에 제대로된 답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억지로 생을 마감할 수 없으니 살 수 있을 때까지 살아야 했다. 삶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모두 다르겠지만, 그래도 무미건조한 우리네 삶 속에서 작은 행복감이라도 느끼기 위해서는 각자 얻고자 하는 바 하나씩은 마음에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속세의 삶으로 어느새 돌아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 반야심경>은 강선재라는 아이의 삶을 보여준다. 억울한 상황에 놓여 병든 마을에 부모와 함께 갇혀 살다가, 아들만큼은 제대로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 따라 부모 품을 떠나 삼촌이 있는 절로 들어간다. 삼촌은 선재에게 김산이란 새로운 호적을 만들어 주었고, 해인이란 법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던 중 삼촌은 암에 걸려 세상을 등진다. 삼촌을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해인은 중환자실을 거쳐 겨우 살아났지만 실명을 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해인이 스님이었기에 수양의 길을 걸었던 자로서, 덤덤하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해인 역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어 벌어지는 갖가지의 비참한 상황을 감내하기엔 너무나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고, 병원 내에서 자살 기도를 하기에 이른다.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인간의 나약함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결말은 다소 희망적이었으나 그 과정은 참담했다. 불교에선 욕심을 버리고 살라 가르친다. 이 책은, 불교의 가르침 대로, 공수래 공수거 인것을 재물과 권력을 지나치게 탐하지 말고, 사람답게 살다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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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온다고 했다. 비우지 못하고 채우려 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소설 반야심경 2권은 우리가 항상 생각하는 불운과 불행에 대한 답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불운하다고? 행복하다고? 인생을 등에 지면 짐이 되지만 생(生)을 가슴에 품으면 수행이 되는 거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삶은 곧 길이다. 우리는 서로 함께 걸으며,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거다. 사람 사게 수행이야."-P11 내 몸이지만 내가 맘대로 할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처절했던 해인 스님은 삶의 끈을 놓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도 내 몸이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해인 스님은 회복하면서 부모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가고 자신을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했던 사건 관련을 알아가게 된다. 인연의 질긴 끈으로 이어진 의문사건들이 하나씩 풀려나고 몸에 갇혀던 정신적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 소설반야심경 2권이라 할 수 있다. 책 뒤편에 실려있는 해범스님의 반야심경 해제와 펼친 반야심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될 듯 하지만 참 어렵다. 기독교의 모태신앙이지만 아마도 날라리 같은 신앙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나이가 들어 그런가 불법에 대한 관심도 많고 이해하려 노력을 하는 편이다. 소설 반야심경을 읽으면서 기독교의 교리와 비슷한 점도 많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실질적인 이야기로 전개 되어 많은 공감을 갖게 되었다. 육신의 고통속에서 마음의 고통의 치유까지 벌어지는 해민 스님의 삶에서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 이해할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