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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와 베이컨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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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재기가 번뜩이는 시를 쓰던 시인들도 나이 먹으며 시가 풀어지는 경우를 왕왕 본다. 언어가 풀어졌다는 것은 사유가 풀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유가 풀어졌다는 것은 현실과 긴장할 태세를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슬픈 일이다.   다행히도(?) 김승희의 시는 여전히 '까칠하다'. 세상에 달관한듯 혹은 이 '풍진 세상'에도 희망이 널려있는듯 헛된 제스처를 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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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날 재기가 번뜩이는 시를 쓰던 시인들도 나이 먹으며 시가 풀어지는 경우를 왕왕 본다. 언어가 풀어졌다는 것은 사유가 풀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유가 풀어졌다는 것은 현실과 긴장할 태세를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슬픈 일이다. 

 다행히도(?) 김승희의 시는 여전히 '까칠하다'. 세상에 달관한듯 혹은 이 '풍진 세상'에도 희망이 널려있는듯 헛된 제스처를 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에게 세상은 "모자이크의 모서리가 딱 아귀에 맞지는 않는"(<지상의 짧은 시>) 존재이다. 이리저리 부서진 파편들로 구성된 세계, 하지만 서로를 날카롭게 겨누며 찔러대는 모서리들은 화합은커녕 봉합할 가능성도 상실한채 지속된다. 이지러지고 뒤틀린 간극이 세계의 본질이라는 통찰은, 여전히 그가 현실과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저녁에 해떨어지는 시간에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지금, 여기는, 지상이라고"(<지상의 짧은 시>). 그의 시에서 강조되는 것은 '지금', '여기'이며 여전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상'이다 . 이러한 실존적인 토대 위에서 그의 시는 어느 한 군데는 부서진 모서리들을 호명하며 그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11번째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은 결국 모서리들의 이야기다. 이는 표제시에 해당하는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서부터 그 윤곽이 드러난다.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서 시적 주체는 "진심"과 "본심"을 구분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진심'이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본심은 결국 내가 해명해야할, 나조차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Je ne sais quoi). '단무지와 베이컨'은 진실하다. "단무지는 뼛속까지 노랗고 베이컨은 앞뒤로 하양 분홍줄무늬"(<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같다는 측면에서 단무지와 베이컨은 진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는 본심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친근하고 낮은 가난의 막통 속에 절여지는 단무지"(<단무지는 단무지 사바다는 사바나 단무지는 사바나>)나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넙적하게 짓눌린 베이컨은 사물이 지닌 고유한 속성을 상실한 대상이다. 그래서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의 위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이상 읽어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의 폐허를 오롯이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존재는 참담하다. 그것이 진심이어서 진실이어서 그 참담함은 묘한 비감을 거느린다. 그것은 '지상'의 무게를 그대로 대리한다. 이를테면 약 먹고 죽으려다가 연탄불 꺼트린 것이 생각나서 불 피우느라 호들갑 떨따가 죽지도 못하는 얼척없는 사람같이.(<'연탄불 꺼트리지 마라' 포스트잇>)

 지상의 귀퉁이에서 물이 들어 제 속성이 되어버린, 멀쩡하지 않은, 그래서 진심만 남은 모서리들의 이야기는 그러나 아직 해명을 요구한다. 시인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라고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나는 그 '이후'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l*****4 2021.05.1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