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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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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길은 자연풍경과 서로 어울렸다. 길은 자연경관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달랐다. 도로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꿨다. 도로는 자연 본래의 풍경을 개조했을 뿐 아니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 먹이를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불곰과 순록, 연어, 늑대 가은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이주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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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길은 자연풍경과 서로 어울렸다. 길은 자연경관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는 달랐다. 도로의 출현은 모든 것을 바꿨다. 도로는 자연 본래의 풍경을 개조했을 뿐 아니라, 계절이 바뀜에 따라 먹이를 찾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불곰과 순록, 연어, 늑대 가은 거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이주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p. 21)

 

 

길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길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다. 길의 앞에는 여행의 목적지가 있지만, 뒤에는 최초로 그 길을 만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보다 먼저 동일한 길을 걸었던 모든 이가 있다. 따라서 길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다. 그것은 노동과 삶, 탐험과 이주에 대한 이야기이며, 실타래에 감긴 실처럼 지구를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둘러싸고 있는 망(網)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다.” (p. 30)

 

 

대개 도보여행길은 오래된 옛길의 경로를 따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간의 의도에 따라 계획되고 설계되고 개조된 길이다. 도보여행길의 배후에는 의도된 생각이 숨어 있다. 그것은 집단의 이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닌, 한 개인 또는 다수의 결정에 의한 의도적 행동의 결과다. 도보여행길은 어디나 비슷한 형태를 띠며, 모든 사람이 잘 알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p. 55)

 

 

겨울이 오면 길은 눈으로 덮였다. 그러면 길이 사라졌다. 오직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람만이 개울을 따라 선을 그리며 이어진 자취와 눈의 무게에 눌려 축 늘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난 빈 공간으로 미루어 그곳이 길이었음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이 녹으면 얼음장 같은 지표수가 흐르기 시작하고, 그 뒤에는 땅이 녹아 마르면서 지난해에 노랗게 죽은 잔디가 되살아나고 흰색과 파란색의 우드아네모네와 백합이 계곡을 에워싸며 희망의 향기를 내뿜는다.” (p. 100)

 

 

이 과정은 세상의 신비함이 어떻게 벗겨지고 해명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어쩌면 우리가 어렸을 때 걸었던 길들을 다시 걷고 싶을 때 굳이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기억을 되살린다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당신은 오히려 당신을 한 개인으로 만들어내고 당신에게 아주 멋진 경험을 선사했던 곳이 사실은 매우 평범한 장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법은 바로 그 평범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가 때때로 어른이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옛날의 향수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왜 우리는 지금 성인으로서 사는 시간보다 더 단순하고 더 구체적이었던 과거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걸까?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아이들의 눈과 평범한 것에 몰두할 줄 아는 그들의 능력이 아쉬운 것은 아닐까?” (p. 208)

 

 

우리는 길을 어딘가로, 미래를 향해, 우리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경로로 생각한다. 그러나 길은 뒤쪽, 우리가 그동안 지나온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보편적인 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우리를 만든 자연환경과 사람들, 우리 조상들을 지나쳐 걷는 것이며, 노동과 여가, 호기심, 일상에서의 탈출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p. 262)

 

 

숲 속 길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책을 읽으면서도 산책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책 속 사진들이 컬러로 인쇄되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점이었다. 푸르른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글과 함께 초록 가득한 사진이 함께 였다면 더욱 마음이 편히 쉬었을 것 같다.

 

자연을 걸으며 걷기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을 들려주는 책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숲을 걸으며 그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싶고, 냄새를 맡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된다. 걷기에 관한 에세이를 찾고 있다면, 자연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 <두 발의 고독>을 추천한다.

이 책을 펼치면, 제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음에도 누군가와 함께 산을 오르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c********i 2021.06.22.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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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서 돌아오다
"다시 걸어서 돌아오다" 내용보기
자원이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 농사를 짓고 사는 궁벽한 시골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은 농사짓는 어른들 일손을 거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남아들은 꼴을 베어 소여물을 주고 여아들은 빨래터로 가 빨래를 씻어 넌 뒤 걸어서 학교를 향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퇴비증산을 위한 울력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두 발로 걸어 양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풀을 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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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이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 농사를 짓고 사는 궁벽한 시골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은 농사짓는 어른들 일손을 거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남아들은 꼴을 베어 소여물을 주고 여아들은 빨래터로 가 빨래를 씻어 넌 뒤 걸어서 학교를 향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퇴비증산을 위한 울력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두 발로 걸어 양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풀을 베고 모으는 일에 나서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걷고 움직이는 일상을 들여다본다.

 

   느닷없이 쓰러져 정신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간 저자는 뇌전증 진단을 받고 의사의 권고대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였다. 지금껏 차를 운전하며 생활했던 이에게 운전 금지는 여러 불편함을 가중시킬 수 있었지만 저자는 생각을 달리하여 이동 방법을 바꾸었다. 직립 보행으로 원하는 일들을 처리하며 지냈던 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생활을 떠올리며 생필품을 사러 갈 때에도 걸어서 다녀오는 방법을 고수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 길을 되짚어 걸으며 문명의 이기에 짓눌려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저자는 걷는다.

 

   부모와 두 여동생이 함께 오두막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 보금자리가 깃든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던 남매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울울창창한 숲 사이로 난 외길에 선 남매는 배낭을 메고 서로 손을 잡고 집 뒤쪽 숲속으로 걸어갔다. 길을 걷다 보면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기는 일은 길을 떠나는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사느라 자주 만나기는 힘든 남매이지만 그 시절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한 장에는 가족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

 

   처음부터 있던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길을 찾을 때가 있다. 산길을 걷다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잡목으로 우거져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길로 빠졌을 때 두려움이 밀려든 경험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출구를 찾기 힘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길을 걸어 평지와 이어지는 길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곱절로 든다. 저자는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노르웨이 하르당에르고원을 가로지르는 옛 산길을 탐사하며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험한 산길을 걷는 아이들 역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걸음으로 저마다의 보폭을 유지하며 걸었다. 벼랑에 난 틈새에 쌓아올린 돌무더기는 주위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표식으로 이정표 기능을 하였다.

 

   저자는 탐사 중 떠오르는 중요한 생각을 메모하며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걷기를 즐겼다. 오슬로 인근의 노르마르카숲을 걸을 때에는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길을 택해 기존의 탐방로가 아닌 길을 찾는 모험도 감행하였다. 개울은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길을 따라 쉼 없이 흘러 강에 이르고 바다로 흘러간다. 누구든 산길을 걸었다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 힘에 부쳐 주저 않고 싶은 순간이 올 때면 반환점을 지났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산길 중간을 넘어섰다는 말은 하산할 때와 멀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닿을 듯 힘이 드는 순간, 너럭바위에 앉아 오던 길을 내려다본다. 오랜 시간 속 풍화를 견딘 표적은 바위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돌 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의 원색적 빛깔은 자연 속에 함께하는 설렘을 선물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름이 깊을 때면 동네 뒷산을 찾는다. 특별한 장비 없이 황톳길을 걸으며 마음을 어지럽힌 일들을 불러내 내적 소통을 꾀하며 한 걸음씩 움직인다. 인기척에 놀라 소나무 위로 내달리는 청설모에게 따스한 한마디를 건네며 가슴속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떼어 낸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새롭게 들어오는 경험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주는 통찰의 힘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들판으로 가는 길, 길가에 우거진 풀숲은 짧게 자른 남동생의 머리처럼 민숭민숭함을 드러내며 진한 풀냄새를 풍긴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에는 연두 빛깔의 벼들이 청초하게 자라나 걷는 이의 마음을 싱그럽게 물들인다.

n*****9 2021.06.13.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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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얻는 기쁨 [인문-두 발의 고독]
"걸어서 얻는 기쁨 [인문-두 발의 고독]" 내용보기
걷는 게 여러 모로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것 또한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실천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많은 상황들을 앞에 놓고 보면, 우리가 가진 의지라는 게 하다못해 사소한 취향이라는 게 참 제멋대로의 속성임을 알게 된다.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글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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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게 여러 모로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것 또한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좋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실천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많은 상황들을 앞에 놓고 보면, 우리가 가진 의지라는 게 하다못해 사소한 취향이라는 게 참 제멋대로의 속성임을 알게 된다.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글은, 그리고 글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태도는 퍽 대단하고 근사하게 보인다. 할 수 없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따라서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글을 읽어 나갈수록 자꾸만 든다. 작가처럼 내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품고 있는 시골의 오두막도 하나 있었으면, 같은 생각을 갖고 언제든지 같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욘과 같은 친구도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헛되이 새기면서.  

 

본문에 들어서기에 앞서 서문 형태의 글이 4편 실려 있다. 작가가 어쩔 수 없이 걷기에 빠지게 된 계기와 막상 걷기 시작하면서 길과 시간과 자연에 대해 얻은 생각들이 간략하게 나타나 있다. 보통 이런 짜임을 취한 책에서는 이 부분의 글만 봐도 본문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책 한 권을 다 읽은 느낌들을 받게 마련인데(그동안 내가 이런 안타까운 느낌의 책만 봤던가?) 이 책은 달랐다. 마음의 준비를 해서 본문을 펼쳐 보라는 듯, 작가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내용과 과정을 알고 싶다는 의욕이 강하게 일었으니까.     

 

본문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에는 2~3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어떤 일관된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시간 순서나 여행 순서에 따라 글을 쓴 게 아니라는 뜻이다. 회오리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 생각이 고리에 고리를 물고 이어지듯, 그 고리가 다시 더 큰 고리로 확장되어 퍼지듯 전개되는 글이다. 이런 형식의 글에 낯선 사람들 중에는 글 자체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읽기 쉬운 게 아니라고, 한 말  하고 또 하는 것 같다고, 이 단락에서는 이 편에서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명확한 주제를 잡아 내기 힘들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원래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빙빙 도는 게 아니던가. 빙빙 돌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다. 한번 뻗어 나간 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래서 기억 밖으로 날아가버리는 생각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이처럼 이 책에서는 작가가 꼭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따라서 글로 나타낸 듯하다. 이마저도 작가의 노련한 편집 기술이 글의 짜임에 적용된 것이겠지만.

 

나는 이 짜임에 충분히 빠져든 채로 글을 읽었다. 앞쪽에서 읽은 이야기를 다시 읽어도 괜찮았다. 이건 마치 “누구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거나 “누구든 같은 길을 두 번 걸을 수 없다(259쪽)”고 하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알아낸 것 같다. 시간의 역사에서, 자연의 역사에서, 길의 역사에서 똑같은 되풀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귀한 가치를 내가 직접 걸어다니면서 알아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렇게 작가가 들려 주는 이야기로도 충분했다. 오죽하면 노르웨이 트래킹을 내가 해낸 듯한 고단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이니.        

 

길에 대한 은유적 암시들은 의미하는 바가 명백하고 이해하기 쉽다. 어느 면에서 인생은 모두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자식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선택이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125쪽)”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 게 가장 좋을지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 물음은 저마다의 생을 향해서도 같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정답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을 테다. 그러니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 가까이에 닿아 머무는 일을 즐겨하며 자신과의 대화로도 자신을 키울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안으로 걸어들어가도 좋겠다. 기꺼이 들어서 보시기를.

YES마니아 : 로얄 j***6 2021.06.16.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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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다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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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 농사를 짓고 사는 궁벽한 시골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은 농사짓는 어른들 일손을 거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남아들은 꼴을 베어 소여물을 주고 여아들은 빨래터로 가 빨래를 씻어 넌 뒤 걸어서 학교를 향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퇴비증산을 위한 울력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두 발로 걸어 양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풀을 베고
"걸어서 다시 돌아오다" 내용보기

  자원이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 농사를 짓고 사는 궁벽한 시골 살림살이에서 아이들은 농사짓는 어른들 일손을 거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남아들은 꼴을 베어 소여물을 주고 여아들은 빨래터로 가 빨래를 씻어 넌 뒤 걸어서 학교를 향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퇴비증산을 위한 울력에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야 했다. 두 발로 걸어 양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풀을 베고 모으는 일에 나서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걷고 움직이는 일상을 들여다본다.

 

   느닷없이 쓰러져 정신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간 저자는 뇌전증 진단을 받고 의사의 권고대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였다. 지금껏 차를 운전하며 생활했던 이에게 운전 금지는 여러 불편함을 가중시킬 수 있었지만 저자는 생각을 달리하여 이동 방법을 바꾸었다. 직립 보행으로 원하는 일들을 처리하며 지냈던 석기 시대의 수렵·채집 생활을 떠올리며 생필품을 사러 갈 때에도 걸어서 다녀오는 방법을 고수하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 길을 되짚어 걸으며 문명의 이기에 짓눌려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저자는 걷는다.

 

   부모와 두 여동생이 함께 오두막에서 지냈던 유년 시절, 보금자리가 깃든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던 남매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울울창창한 숲 사이로 난 외길에 선 남매는 배낭을 메고 서로 손을 잡고 집 뒤쪽 숲속으로 걸어갔다. 길을 걷다 보면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기는 일은 길을 떠나는 자녀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사느라 자주 만나기는 힘든 남매이지만 그 시절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한 장에는 가족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

 

   처음부터 있던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되새기며 길을 찾을 때가 있다. 산길을 걷다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잡목으로 우거져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길로 빠졌을 때 두려움이 밀려든 경험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출구를 찾기 힘든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길을 걸어 평지와 이어지는 길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곱절로 든다. 저자는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노르웨이 하르당에르고원을 가로지르는 옛 산길을 탐사하며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험한 산길을 걷는 아이들 역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걸음으로 저마다의 보폭을 유지하며 걸었다. 벼랑에 난 틈새에 쌓아올린 돌무더기는 주위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표식으로 이정표 기능을 하였다.

 

   저자는 탐사 중 떠오르는 중요한 생각을 메모하며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걷기를 즐겼다. 오슬로 인근의 노르마르카숲을 걸을 때에는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길을 택해 기존의 탐방로가 아닌 길을 찾는 모험도 감행하였다. 개울은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길을 따라 쉼 없이 흘러 강에 이르고 바다로 흘러간다. 누구든 산길을 걸었다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 힘에 부쳐 주저 않고 싶은 순간이 올 때면 반환점을 지났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산길 중간을 넘어섰다는 말은 하산할 때와 멀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이 턱에 닿을 듯 힘이 드는 순간, 너럭바위에 앉아 오던 길을 내려다본다. 오랜 시간 속 풍화를 견딘 표적은 바위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돌 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의 원색적 빛깔은 자연 속에 함께하는 설렘을 선물한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름이 깊을 때면 동네 뒷산을 찾는다. 특별한 장비 없이 황톳길을 걸으며 마음을 어지럽힌 일들을 불러내 내적 소통을 꾀하며 한 걸음씩 움직인다. 인기척에 놀라 소나무 위로 내달리는 청설모에게 따스한 한마디를 건네며 가슴속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를 떼어 낸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새롭게 들어오는 경험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주는 통찰의 힘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들판으로 가는 길, 길가에 우거진 풀숲은 짧게 자른 남동생의 머리처럼 민숭민숭함을 드러내며 진한 풀냄새를 풍긴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에는 연두 빛깔의 벼들이 청초하게 자라나 걷는 이의 마음을 싱그럽게 물들인다.

n*****9 2021.06.1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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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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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략 절반은 수도권에서 살아간다. 나머지 인구도 도시에 많이 산다. 도심의 공기와 바쁨은 보다 더 빠르고 편한 이동을 원하고 사용한다. 걷기 보단 뛰고, 뛰는 것보다는 타고 다니길 선호한다. 느림의 미학이 아닌 초격차를 원한다고 해야 할까.     경쟁에 치이고 힘든 삶이다. 그래도 누구나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것, 바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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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대략 절반은 수도권에서 살아간다. 나머지 인구도 도시에 많이 산다. 도심의 공기와 바쁨은 보다 더 빠르고 편한 이동을 원하고 사용한다. 걷기 보단 뛰고, 뛰는 것보다는 타고 다니길 선호한다. 느림의 미학이 아닌 초격차를 원한다고 해야 할까.

 

  경쟁에 치이고 힘든 삶이다. 그래도 누구나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것, 바로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걸음을 전진시키며 목표를 향해 가기에 자신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한다.

 

  책의 저자도 성실하게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은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패스트푸드 같은 삶에서 삶의 여유를 누리는, 슬로푸드 같은 삶으로 달라져야만 했다.

 

  언제부터 길이 생겨났을지 알 수 없다. 가이드의 인도를 따라서 트래킹을 시작해보면 아득히 먼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길은 듣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하므로 더 그런 것은 아닐까.

 

길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30

 

  나만이 걸어온 혹은 네안데르탈인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발로 일어서기까지 걸렸던 수많은 시간과 직립보행이 가능해지고 나서도 생존을 위해 나아가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일까. 아마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부터 안주하는 삶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즈음부터 어딘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정주하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가만히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노마드적인 모습을 이제는 사이버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워진다. 아니, 저자의 말을 잠시 빌려와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스마트폰은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음에도 이제는 더 이상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황된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걸을 때, GPS는 지도나 당신의 방향감각, 지형을 읽고 길을 추적할 줄 아는 능력보다 신뢰할 만하지 않다. 148

 

  기억 속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우리의 감(어쩌면 DNA 안에 내재된)은 기계보다 정확할지 모른다. 다만 사용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사용할 일이 없어져서 녹슬어버렸다고 생각될 뿐이다. 감사하게도 이 숨겨진 능력을 붐업 가능케 하는 오리엔티어링(지도와 나침반만을 통해서 길을 찾는 레포츠)이 있다.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모질게 만난 현실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은 인간 본연의 휴머니즘이라 생각한다. 추억의 오두막을 그려보며 트래킹을 하고 여행을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준비시킨다. 그리고 소설 오두막처럼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 걷는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본향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누군가가 죽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202

 

  녹색을 머금고 있는 지구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놓인 길은 누군가가 지나갔던 흔적이다. 거기에 나의 발을 올려놓아본다. 그 길을 따라 걷게 되면 목적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니, 천천히 걷다보면 고독 속에서 삶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노르웨이의 숲,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역시 저자의 말을 귀담아 듣게 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다. 206

 

  여행을 떠나게끔 권하는 저자의 글을 읽었다. 역시, 주변부터 두 발로 걷고 싶어진다.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며 오늘은 어떤 햇빛이 내려쬘지, 구름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고 싶어진다. 서두르다가 놓치지 말아야겠다.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들을 또한 코로나로 보다 더 밀착해서 보낸 공간의 기억들도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d****o 2021.06.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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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病, 걷기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라는 천우신조의 적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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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더위가 느껴지는 날씨라는데 바람이 엄청 분다. 금방이라도 태풍이 몰려올 것처럼. 때 이른 장마를 예고하는 것처럼. 이 세찬 바람소리가 싫지 않다. 혹 이곳이 여느 대도시와는 다르게 고층 빌딩들이 없는, 작은 동네라 그런 건가. 어떤 장애도 없이 완만한 산을 가뿐히 지나온 것 같은 바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그 안에서 물러 터지고 튼 살을 보게 된다. 우리가 거쳐 온
"병病, 걷기로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라는 천우신조의 적신호" 내용보기

 초여름 더위가 느껴지는 날씨라는데 바람이 엄청 분다. 금방이라도 태풍이 몰려올 것처럼. 때 이른 장마를 예고하는 것처럼. 이 세찬 바람소리가 싫지 않다. 혹 이곳이 여느 대도시와는 다르게 고층 빌딩들이 없는, 작은 동네라 그런 건가. 어떤 장애도 없이 완만한 산을 가뿐히 지나온 것 같은 바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그 안에서 물러 터지고 튼 살을 보게 된다. 우리가 거쳐 온 인생의 그 다채로운 풍화를. 짙은 바람과 함께 짙은 오후를 연다.

 

 길의 역사를 읽는데 바람만 한 것이 있을까. 어디 바람뿐이랴. 나무 한 그루, 풀을 뜯는 소, 우리 인간들 심지어 돌무더기 같은 무생물까지. 그 모든 것들의 인연과 팔색조인 계절의 변화를 길은 가장 먼저 목격한다.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자연에 끼어듦으로써 언제나 작은목격자로서의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길과 인간은 인연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담는 그릇이 아닐까.

 

 길이 있기 전의 길은 어땠을까. 길의 의미는 우리가 그 길을 체험하고부터 걷는 행위그 자체에 있었는지 모른다. “길은 혼돈 속의 질서라고 했던가. 아무런 목표 없이 다만 걷기. 그렇게 걸으며 떠오르는 상념의 정체를 밝혀 정리하면서 비로소 인간의 이 탄생된 건 아닌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역사인 길은 크고 작은 인간의 체취를 느끼며 더딘 숨을 쉰다. ‘걷기라는 느림의 미학이 발동하는 순간, 나도 느리게 자주 걷는다, 내 두 페달과 함께.

 

 “그냥 걷기 위해 걷는 생명체인 인간에게 문명은 능동적 걷기의 방향을 잃고 점차 길의 미아가 되어가고 있다. ‘Come back home!’ 그로 인해 돌아오라는 순박한 길의 외침을 집 나간 탕자가 된 인간들은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이제 빠름과 편리함을 추구하게 된 인간은 가장 먼저 걷기를 포기한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길은 더 이상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높이 솟은 빌딩과 우후죽순으로 건설되는 아파트, 상가 등등의 건물들을 보라. 온갖 건축물들에게 잠식당한 길은 자유와 인간의 체취와 멀어진 대가로 호흡 곤란과 대기오염의 수혜자가 돼 버렸다. 결코 고맙지도 반갑지도 않은 이 수혜의 역사마저도 의 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자신에게 점점 멀어지려는 인간을 인내하며 묵묵히 기다려 왔다. 뛰는 삶에 지친 인간들이 마침내 자신에게 회귀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일상의 더께가 삶을 구성한다고 보면 어릴 적 기억은 성인 이후의 그것보다 압도적이다. 고향에서 찍은 사진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매개체가 된다. ‘어머니는 현실에 안주하느라 자주 잊었던 향수의 대표 이미지로 그 중심엔 고향의 풍경이 있다. 이는 를 존재하게 해준 어머니로부터 태초의 지맥地脈을 느끼며 살던 원초적 삶으로의 복귀이자 귀소 본능을 자극한다. 이로써 부모에게 자신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는 성장해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고 그들과 함께 고향을 걷는다. 내 선조와 부모들이 그랬듯, 자식들과 공유하는 시간은 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우리는 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우여곡절을 지나 자신의 삶이 두 발에 오롯이 담겨 있음을 터득하게 된 자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무한 걷기로 자신의 기원을 증명하고 싶지 않을까. 기동성 갑인 바퀴로는 도저히 갈무리되지 않는, 이동 수단이 대체하려야 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법칙 아래. 삶이 있는 곳엔 언제나 걷기가 함께였다는 기정사실은 기계적 편의에 의존해 사는 동안엔 좀처럼 인지하기 힘든 일이다.

 

 병은 현재의 삶에 제동을 건다. ‘죽음과 동떨어져 살다가 을 얻으면 사람은 잠시 멍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측근의 죽음을 목도하거나 그에 임박하지 않는 이상 죽음은 나와는 먼 별개의 것 또는 남의 일로만 여기기 십상이기에. 병을 알게 된 직후의 혼돈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다듬어지기 마련이어서 여유와 쉼이 빠진 삶을 버텨오던 병자는 어느덧 깨닫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너무 달리기만 했다는 것을. ‘은 그를 깨우치기 위한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적신호라는 것을.

 뇌전증 진단과 함께 운전면허 취소라는 자신의 위기를 전화위복시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함이 때론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기적을 만드는 것 같다

 

 고독으로 점철된 우리네 삶은 걷는 데 부지런한 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어떤 철학을 담는다. 건강이라는 덤과 함께 덧없던 삶을 걷어낸 자리에 발은 자신들을 부단히 움직여 실속을 채운다. 짓무르고 짓무르다 굳어진 옹이를 훈장처럼 달고그렇게 두 발의 인문학으로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난 사람을 겪으며 나는 다시금 나에게 말을 건다. 그저 걸어 보라고. 그러면 한결 나은 삶에 가까워질 거라고.

 

  지금, 길은 석양을 머금은 채 저녁의 삶을 알리고, 나는 또 다른 길과의 인연을 기다린다.

a*********9 2021.06.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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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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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걷기 예찬론자이다. 뇌전증을 앓고 나서 운전 면허증이 박탈되고, 어쩔 수 없이 걸어다니는 생활을 마주하게 되면서, 걷기에 대한 희열과 거기서 보여지는 풍경에 대한 예찬, 때론 모험과 탐험, 발견에 이르기까기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모든 일들을 사랑하게 된다. 나 또한 요즘 걷기라는 즐거움에 몰두해 있어서인지, ‘두 발의 고독’ 이라는 제목은 묘한 동질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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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걷기 예찬론자이다.

뇌전증을 앓고 나서 운전 면허증이 박탈되고, 어쩔 수 없이 걸어다니는 생활을 마주하게 되면서, 걷기에 대한 희열과 거기서 보여지는 풍경에 대한 예찬, 때론 모험과 탐험, 발견에 이르기까기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모든 일들을 사랑하게 된다. 나 또한 요즘 걷기라는 즐거움에 몰두해 있어서인지, ‘두 발의 고독’ 이라는 제목은 묘한 동질감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베낭을 꾸리고 어디로든 나가서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드는 책이다. 북유럽의 작가라는 희소성과 더불어, 생전에 가보지도 못한 가보기도 힘들 것만 같은, 노르웨이의 숲과 오두막이 있는 오솔길을 작가와 함께 걷다 온 느낌이 들었다. 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인 새벽녁, 어떤 동물들이 숲속을 오갔는지 궁금해져서 작가와 함께 새벽길을 나가보기도 싶고, 나침반과 GPS 없이 길이 없는 길을 찾아서 하루종일 숲속을 헤메이고 싶기도 하다. 걷는 동안에는 생각이 자유로워져서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어릴 적 추억, 현재의 복잡한 일 등 여러가지 주제가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나는 걷고 있다.

지난 여름 참 많이 걸었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나의 일과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정이였다. 그렇게 걷고 땀을 흘리고 시작하는 하루는 왠지 모를 설레임과 풍만한 감정을 안게 해 주었다. 요즘 날씨가 추워져서 밖에서 걷기 힘들어져 몸과 마음이 무기력하기만 하다. 건물안을 빙글빙글 돌아도 무감하고, 애써 주말에 시간을 내어 걸어도 흥겹지가 않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혼자서 걷는 모든 길들은 수많은 영감과 안위와 휴식을 준다. 

걷기가 휴식을 준다니 놀랍다. 지리산 종주를 했을때의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휴식같은 책을 만난 기분이다. 

 

YES마니아 : 로얄 c*****e 2022.02.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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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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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에 걸렸다. 자동차 열쇠를 없애버렸다. 나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새 사람이 되었다.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그것은 해방된 삶이었다. 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다.” (본문 중에서)   최근에 읽은 책 ‘두 발의 고독’의 저자는 뇌전증에 걸린 후 자동차를 버리고 걷기 시작했다.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서 다녔다. 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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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에 걸렸다. 자동차 열쇠를 없애버렸다. 나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새 사람이 되었다.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그것은 해방된 삶이었다. 이것은 계시이자 구원이었다.” (본문 중에서)

 

최근에 읽은 책 두 발의 고독의 저자는 뇌전증에 걸린 후 자동차를 버리고 걷기 시작했다.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서 다녔다. 심지어는 맨발로 걷기도 했고, 익숙한 길은 눈을 감고 걷기도 했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빨리 걷기도 했고, 집 주변을 걷거나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눈이 많이 내린 후에는 눈에 찍힌 동물들의 발자국을 쫓아다니며 동물들의 길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의 걷기는 질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질병 덕분에 그는 해방되었고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걷기를 시작하는 동기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길에서 만난 길동무들은 대부분 걷기 시작한 삶의 계기가 있다. 질병 치료 후 회복을 위해,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외로워서, 우울감이 심해서, 간병으로 지쳐서, 사업 실패 후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은퇴나 퇴직 후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 자식들의 투병을 지켜보기 힘들어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 등 각자 간절한 사연이 있다. 삶 속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며 심신이 지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매우 소극적이고 근심 가득한 사람들의 태도와 표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지켜보았다. 걷기는 심신 건강의 유지와 회복에 효과가 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매우 쉬운 운동이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몸이 먼저 회복되면 마음도 천천히 기지개를 피며 되살아난다. 그 이유가 바로 삶의 주도권이라고 생각한다. 잠재되어 있던 내면의 힘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문 밖으로 나와 걷게 만들며, 회복을 돕게 된다. 걷기 모임을 소개시켜 줄 수도 있고 같이 걷자고 얘기를 할 수는 있어도, 억지로 걷게 할 수는 없다. 소를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만 자신의 몸에게 명령을 내려서 걷게 만들 수 있다. 심신의 소진 역시 자신이 만든 것이기에, 회복 역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걷기는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걷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오는 일, 한발 앞으로 내딛는 일, 반복적으로 두 발을 움직이는 행동을 하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주인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 행동들이다. 수동적이고 의타적이고 포기한 삶을 능동적이고 자립적이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게 만들어 주는 자기 개혁의 방편이 바로 걷기.

 

걷기위해서는 반드시 이 필요하다. 집 문을 나서면 수많은 길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집 근처에 가까운 전철역이 두 곳이 있다. 예전에는 D역으로 자주 갔었는데, 요즘 재개발 중이라 길이 복잡하고 불편해서 J역으로 가는 편이다. J역으로 가는 길도 여러 길이 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선택한다. 길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니 길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거나 길을 만들고 조성한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이다. 오히려 그 에너지를 어느 길을 선택하는 것이 편하고 좋은지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길이 변하고 사라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불편하다고 집안에만 머물 수는 없다. 자신의 할 일은 과는 전혀 상관없는데도 가끔은 에 대한 변명과 불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은둔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변하는 것이 의 사명이자 역할이다. ‘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자 책임이고, 을 걷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은 일반적으로 통행로를 의미한다. ‘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만들어졌고, ‘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누군가가 그 길을 앞서서 걸었다. 앞서서 걷었던 사람이 있기에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은 역사다. ‘이라는 단어는 상징적인 의미로 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역시 매 순간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내린 선택과 결정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나이다. 지금 내린 선택과 결정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미래의 나가 된다. 문 밖을 나서면서, 다시 얘기하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수많은 길 중에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해서 한 길을 선택해서 걷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길을 만들고 수정하고 보완해나간다. 그것이 우리네 삶이다. 길이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지듯 우리네 삶도 시행착오를 통해 서서히 균형을 잡아간다. 선택의 결과가 두려워서 선택을 하지 못하거나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삶은 오류성상호작용성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류성이란 인간은 불완전하며 세상을 인지하는데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어서 전체를 볼 수 없고 부분만 본다는 의미다. ‘상호작용성은 다른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행동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자신의 오류를 비추는 거울이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오늘 걸은 길이 자신이 원한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된다. 굳이 그 길을 고집할 필요가 전혀 없다. 동시에 길 위에서 만나는 길동무들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오류를 바로 잡을 수도 있다. ‘오류성상호작용성의 과정이 바로 수양이고 성숙이고 익어가는 과정이다. 익어가기 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걸어야 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것은 수동적인 숙명이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는 능동적인 자신만의 결정이다. 자신이 유일한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 좋은 문구가 있다. 그 문구 중 개울으로 바꾸어 읽어보니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개울과 길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둘 다 동일한 작동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울은 힘들이지 않고 지형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리고 똑바로 일직선을 그리며 흐르지 않는다. 또한 가장 짧은 거리나 빠른 길을 골라 가지도 않는다. 개울은 저항을 최소한으로 받는 길을 따라간다. 물은 평형상태를 추구한다. 균형을 이루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흐른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개울은 흐름을 멈출 것이다. 그래서 개울은 호수를 만나면 사라진다. 강 또한 바다를 만나면 흐름을 멈춘다. 물은 평형상태에 도달하면 속도를 잃고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평형상태에 도달한 물은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이것은 길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제껏 함께 걸었던 발걸음을 멈추고 저마다 자기 방향으로 흩어져가기 때문이다.” (두 발의 고독, 토르비에른 에켈룬)

h**********1 2021.1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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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걷으며, 철학자 처럼 생각하기.
"두 발로 걷으며, 철학자 처럼 생각하기." 내용보기
솔직히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과 막막한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 나가는 바람에 중간에 요즘 베스트셀러 소설을 한 권 읽고 다시 이어 읽었다. 책의 주제가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니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겠느냐 묻는 다면? 기꺼이 읽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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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 책은 그렇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과 막막한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 나가는 바람에 중간에 요즘 베스트셀러 소설을 한 권 읽고 다시 이어 읽었다. 책의 주제가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니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겠느냐 묻는 다면? 기꺼이 읽어보라고 권할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모두에게 해당되겠지만, 특히 삶에서 무언가를 채우기를 원하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엉뚱한 것들을 마구 채워서 지쳤다면 이 책에서 그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르비에른 에켈룬이라는 사람이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이 책의 시작은 저자가 어느 날 뇌전증을 진단받아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서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걷던 오두막이 있던 숲길, 친구 욘과 함께 노르마르카숲길을 걸으며 인간이 걷는다는 행위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걷는 이유에 대해 사유한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정비되고, GPS가 발달하기 전에도 인류는 걸어서 이동을 했다. 숲을 걸었고, 산을 넘었다. 그리고 많이 사람이 걸었던 숲에는 길이 생겼다. 어떤 길은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에서는 두 갈래의 길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리고 그 길을 선택하여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이 내용을 단지 아무도 가지 않는 나만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길은 혼돈 속의 질서라고 말하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그 길을 선택하여 통과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여 성공했다 거나 특별해지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길이든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너무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특별한 것만을 찾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문제는 어떠한 길을 선택하느냐가 아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경험,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만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동물들과 곤충, 새들도 이동하는 길이 있었다. 저자는 높은 산, 숲에서 까마귀를 보며 그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나 인간인 우리는 볼 수 없다는 것.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공손하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물었을 것이라 말한다. 이 책에서 걷는 길은 대부분 자연 그대로의 숲길이다. 인간이 길을 내고, 인공위성을 쏘아 지구상의 모든 길을 알 수 있으나, 동물들은 자연 그대로를 바라보며 그들의 길을 내고, 이동하고 있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자연은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오랜 세월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의 맹그로브나무를 보며,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오두막과 숲길을 걸으며,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걸었던 길,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어릴 때에는 특정한 풍경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서서히 커가면서 주위의 풍경들이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며, 점점 그 풍경은 수많은 풍경 중에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에서 조금은 서글픔을 느꼈다. 하지만 어릴 적 잊지 못하는 그 풍경이라는 것이 대단히 특별한 것이 아닌, 사실은 매우 평범한 장소였다는 사실에서 지금 내 삶의 장소 한 곳 한 곳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결국에는 삶의 모든 풍경과 길들을 기계와 편리함이 아닌 나의 모든 감각으로 세세하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의 여는 말에 저자가 운전을 못하게 되면서 맨발로 걷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눈을 감고 온몸의 신경을 발에 집중하여 감각을 곤두세워 걷는 장면을 읽으며, 어쩌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편리함이 내 편안함을 느끼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것. 그 것이 바로 두 발로 걷는 고독의 시간이자 본질에 집중하는 치유의 시간이 아닐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c*****1 2021.06.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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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보는 눈이 바뀔 때, 두 발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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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의 책이 유달리 마음에 쓰였던 것은, 저자의 상황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두 발의 고독이라는 고독한 제목의 이 책은 저자가 뇌전증에 걸려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고 난 후, 두 발과 두 발로 직접 걸을 수 있는 길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나 역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관절에 통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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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의 책이 유달리 마음에 쓰였던 것은, 저자의 상황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두 발의 고독이라는 고독한 제목의 이 책은 저자가 뇌전증에 걸려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고 난 후, 두 발과 두 발로 직접 걸을 수 있는 길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나 역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관절에 통증이 와서 제대로 걷지 못했었다. 병명이 나오지 않는 통증에 진통제만 먹으며 버티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만큼 사람의 다리와 걸음걸이를 유심히 바라본 적이 없었다. 내가 환자라는 사실보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더 커서, 고통보다는 상실을 더 크게 느꼈다.  

 

그 후로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걷는 행위에 얼마나 다양한 양태가 있는지 깨달았다. 모두 비슷하게 걷는다고 생각했지만, 종종 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 사람들의 뒤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절뚝이거나, 위태하게 휘청거리며, 혹은 초록색 깁스를 두른 채 속도의 사각에서 보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간이 얼마나 야박한지 체감하고,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소중함을 느꼈으며, 잠시라도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 그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통증은 시간과 함께 사라져, 다시 바쁘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되면서 그 경험들 역시 ‘그 땐 그랬지.’하며 흘려보내게 되었다. 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을 만큼 절절했던 통증은 그렇게 사라졌다가, 종종 다시 돌아왔다. 한 번 고장 난 부분은 고쳐도 다시 고장 나기 쉽다고 했던가. 딱 그 짝이었다.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자신 혹은 가까운 지인이 장애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머리론 알고 있어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 절절함을 체험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체득한 순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는 여러 갈래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 인간 그 너머의 존재에 대한 원망, 정상적인 것에 대한 부러움 혹은 체념,  그리고 새로운 시각에 대한 고찰.

 

저자는 뇌전증에 걸린 이후,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자신에 대해 집중하고 더 나아가 ‘두 발’과 그 두 발이 만들어낸 길에 대해 고찰한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운전면허증이 박탈되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게 질병 그 자체보다 자신이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수 없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저자는 그 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일에 집중한다. 어쩌면 집착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상실이 빚어낸 집착 말이다. 여행지에서 식료품을 사기 위해 가장 큰 배낭을 메고 6.5 킬로미터의 거리를 세 시간이나 걸어 다니거나, 오두막에 걸어서 도착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드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는 그렇게 걸어 다니는 모든 순간을 고찰하여 책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물리적 의미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최초의 길은 대략 5억 6,500만 년 전에 달팽이 비슷한 생물체가 만든 궤적이 담긴 발자국 화석이다. 자기의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역사적 의미에서 최초의 길은 누군가가 걸어가면서 만든 흔적일 것이다. 길을 만든다는 자각도 없이, 발이 지면을 밟으며 누른 풀의 자국. 거기에 더 많은 발자국이 더해지면서 더 이상 풀이 자랄 수 없게 되고, 그래서 누렇게 흙이 드러나 마침내 이름을 붙이기 적합한 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긴 길에 사람들은 의미를 담았다. 죽음을 먼 길을 떠난다고 표현하며, 시인 프로스트는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지었으며, 수많은 작가들이 산책을 하며 사색을 즐겼다. 길에 관한 수많은 유명인들의 인용문을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저자가 책 한권에 펼쳐놓은 사색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내가 이 여행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길의 역사는 길 그 자체의 길이보다 더 길다는 사실이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문장인지 감탄했다. 길 위에서 느꼈던 감동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내게는 의미 있는 곳이야.’하고 에둘러 말할 따름이지.

 

a***a 2021.06.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