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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에 태어난 시인이 쓴 글을 읽는다. 힙하다라는 개념을 정의해본다. 문보영시인은 힙하다.
사실 글만 읽으면, 작가는 내 머릿속 이미지 속에서 태어난다. 내가 읽은 글에서 떠오르는 감상들과 상상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검색창에 문보영 시인이라고 쳐본다. 그러면 그녀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이 함께 뜬다. 블로그를 읽게 되면 아마 오늘 계획한 일상을 다 미루고 노트북 앞에만 앉아 있을 것 같아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본다. 이미지보다 글이 더 끊기 어렵다. 내겐 그렇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니 발랄하고 경쾌한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시인의 표정이 너무나 싱그러워서 나도 함께 시인처럼 코 찡긋을 하며 웃어본다. 문보영 시인의 실체와 내가 읽은 글을 연결 시켜본다. 잘 안된다.
시인의 전략일까? 글과 당사자를 연결시키기 어렵게 해서 현실에서 만난다면 문보영 시인이죠?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없게 소위 말하는 시인이 추구하는 은신술같은...
그녀의 글은 내게로와 북처럼 울리는데, 인스타 속 시인의 모습은 꽹과리 처럼 다가온다. 경쾌하다는 표현이다.
<준최선의 롱런>으로 시인을 처음 만났다. 내가 들고 읽은 것은 에세이인데, 책 날개에 시인 이라고 소개되어 있어 그것이 좀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시인의 에세이. 시인은 시를 더 많이 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부지런히 에세이도 쓰시는군. 무엇보다 제목에 꽂혔다. 이런 표현은 90년생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가!(하는 낡은 감상도 덧붙여) 그리고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며 독보적인 시인의 세계를 확인하고(뇌이쉬르마른도 여기서 먼저 만났다. 친구 편에 나온 '피흘리는 마음'이라는 이름도 계속해서 남아있다. 이후 <일기시대>에는 친절히 뇌이쉬르마른의 정체에 대해서도 책 앞에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또 책기둥을 읽었다. 책기둥 다 좋았지만, 역시 제목으로 등장한 책기둥이 가장 좋았다(기 보다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유일한 시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시다. 내 꿈속에서 만나는 장면들과 근접했다. 머릿속에 구체적인 장면이 잘 그려진 시다.)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를 읽었고 (많이 버리고 많이 쓰는 참 작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을 읽었다. (여기서 등장했을까? 남자친구를 만나고 남자친구 집에서 남자친구 물건을 하나씩 챙겨서 가져오던 이야기도 오랫동안 남는다. 그런 이야기들이 와닿는다. 왜?)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일기시대> 나는 시인의 일기딜리버리를 받아본 적도 없지만, 왠지 시인의 일기가 친근하게 여겨졌다. (시인이 이전 작품 속에 간간이 일기이야기를 언급해서 그런걸까. 때로 나는 고등학교 1학년 11반일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아주 가깝게 여긴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최근 그녀의 결혼을 계기로 재회하게 되었는데, 내가 그녀를 가깝게 여기는 것만큼 그녀는 나를 편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상대방이 허락도 안했는데 나혼자서 가깝고 또 상대방이 정한 선보다 더 친밀하게 대하는 걸까? 문보영 시인의 일기가 내게 그렇다.)
보통 책을 읽을 때, 주문한 책,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서평단 책을 두루두루 꽂아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읽는다. 이책을 읽다가, 저책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다시 저책을 읽다가, 아주 다른 책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책은 동시에 여러권을 읽을 수 없기에 취한 방법이다. 또는 중간부터 읽거나 하면 책 읽는 속도가 아주 올라가면서 책효율이 늘어난다. 5권의 책을 읽다보면, 책 읽기를 쉬고 싶을 때가 온다. 그럴때 문보영 시인 책을 택한다. 그러면 나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고, 쉴 수 있게 된다. 문보영 시인의 책은 내겐 휴식이다. 시인의 작품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도 시인의 책은 그런 마음 상태로 날 이끌기 때문에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친구들과 너무나 가까워져버려서 그 관계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내가 그녀들과 나눈 필담들. 말로하면 버버버 하게 되는 내용들을 글로 써서 주고 받으면 그게 그렇게 잘 전해졌다.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쓰기를 시작한 것 아닐까? 말보다 편한 글. 말보다 잘 전해지는 글. 아니면 최근 집에서 찾아서 가지고 온 유년시절 6년간의 일기. 그럼 사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쓰는 사람이 된 걸까? 6학년은 그럴수 있다 여기고 1학년 충효일기장을 보아도 두장씩 쓴 페이지가 자주로 등장한다. 그때부터 쓰면서 나를 증명하는 삶을 시작한걸까.
일기와 가까운 나는 이번 신작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가 그런면에서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다 읽어버리면 아쉬울까봐 처음부터 읽다가 중간을 건너뛰고 읽었다. 그러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중간 부분이 남아있으니 읽을 것이 있다.
그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 읽어 버렸다.
<묵혀 두었던 옛날 시들을 읽어 보는 데에 며칠이 걸렸다. 어디 가서 숨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후련했다. 나에게 나다운 것, 때 묻지 않아서 오히려 잘 쓰던 어린아이와 같은 시절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 처음 썼던 나의 시들이 너무 구려서 기뻤다.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어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거친 재능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애당초 그런게 있었던 적이 없으므로. 나는 사실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p144>
<예전에 낙엽 선생은 이런 말씀을 했다. "너는 가끔 엽기적인 시를 써. 그런데 엽기적인 고수가 있고 엽기적인 하수가 있는데, 좋은 시인이 되려면 엽기적인 고수가 되어야 한다." p145>
시인의 스승이었던 낙엽 선생은 문장 속에서 엽기라고 명명했지만, 문보영 시인의 글은 그냥 문보영 시인 그 자체다. 차마 용기가 없어서 콜링포엠을 신청하진 못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콜링포엠의 상황을 그려본다. 시인에게 어울리는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시인의 목소리. 이 한 줄이 시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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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이 아닌 일기시대 라는 말을 보니까 일기 쓰고 싶어졌다. 장막으로 끝날 것 같은 단면이 아니라 연속되고 지속적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단어였다. 삶이란 게 하루 하루가 끝이 아닌데, 마치 끝인 것 처럼 느껴져서 그 하루의 마침표를 찍고 다신 돌아보지 않는 의미로 느껴졌던 일기장. 끝내고 넘어가고 싶으면서도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계속 일기를 무시해 왔는데, 다시 일기를 쓰고 싶게 만들어졌다. 일기를 쓰면서도 일기라는 형식에 맞게 쓰려고 했는네, 일기에 형식이 어디있겠나만 (하루의 일과를 나열하고 그 느낌을 써야 한다는 나만의 형식이 존재한다). 나아감을 위해서 형식을 버릴 수 있도록 체계에 대한 압박감을 줄여야겠다. 줄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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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를 쓸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어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타인을 만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기에는 늘 타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을 때도 비슷하다. 책에 적은 것처럼 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p.12)
문보영 / 일기시대 / 민음사 / 280쪽 / 2021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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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추천도 받고, 선물도 해준 책이다. 책 곳곳의 문장들이 인상적이어서 자주 펼쳐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책 내용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지만 배송 온 책에 기스가 정말 많이 나 있었다. 양장본인데 보기 조금 흉할 정도여서 꽤나 아쉬웠다. 책 검수를 조금 더 꼼꼼하게 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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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책기둥>을 통해 알게 된 작가인데, 시도 잘 쓰고 에세이도 잘 써서.. 정말 놀랐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정말 제 스타일이고 어디 기록해두고 싶을 정도이네요. 올해 산 책 중에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 고민중이시라면 바로 구매하시기를.. (어떻게 "을"의 입장을 이렇게 유쾌하게 쓸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개소리(?)가 되기 십상인데 어떻게 문보영 작가가 이야기하면 사랑스러울까,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
|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인 민음사 tv의 말줄임표 시즌 2에서 제작기가 생생하게 소개되어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문학론 에세이집이라니! 솔직히 현대 문학도, 시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오로지 민음사 tv의 김화진, 정기현 편집자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을 쌓았던 책인 것 같아요. 그래서 출간 후 구입을 하게 되었고, 한 장 한 장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와 시인, 특히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문학시간이나 수능문제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젊은 시인과 시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책을 제작하는데 있어서는 집필하는 작가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수많은 사람들...(편집자나 북디자이너나 마케터 등등...)이 협업해서 하나의 멋진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네요.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차근차근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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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문보영 시인은 한번도 접해본적이 없는 작가님이고,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시인이 쓰는 일기가 궁금했다. 또 출판사인 민음사 티비에서 매일과 영원 시리즈를 기획하고 편비하는 과정까지 모두 나오게 되자 구독자로서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구매하게 됐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구매하게 돼서 설렌 마음이었는데, 작가가 나와 비슷하게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부분에서 공감도 되고, 특히 일기 마지막에 적혀있는 취침시간을 볼 때마다 뭔가 깨알같이 재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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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는 어렵다고 느껴져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시인의 에세이는 좋아한다. 막연히 시는 항상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딘가에서 시는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내가 시는 어렵게 느끼지만 시인의 에세이는 좋아하는 까닭이 시인들의 그 자유로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에세이는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보다 훨씬 더 얽매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일기시대>라는 제목에 맞게 읽는 내내 문보영 시인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일기는 시가 될 수도, 소설이 될 수도 있으며,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 읽고 나면 나도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 있는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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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보영이다. 2년전 백석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 누워있던 '준최선의 롱런' 을 조우하고 오랜만에 말장난의 '중가' -대가 라고 말하기엔 너무 우쭐해질거같아- 를 만난듯했다. 그 뒤 문보영은 내 삶 속에 침투하게 되는데,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게다가 일기 딜리버리라는 기상천외하고 매력적인 구독경제까지...글쟁이, 종합 엔터테이너 그리고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한여름 소나기처럼 퍼부어대고 있다. 비록 이전 시집 배틀그라운드는 내게 아직까지는 활자의 나열로만 받아들여지지만-마치 '몬'보영이 쓴것 같은- 첫 만남이 에세이여서 그런지 일기시대는 매우 문보영 스러워 즐겁고, 이상하고, '시인님 건강하세요' 라고 혼잣말하게 된다. 또한 문작가의 유튜브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 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책 속의 모든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영상화 되는 요상한 경험을 하게 되니 이 책을 읽는 분들은 꼭 문보영의 유튜브를 보길 권장드린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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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에세이를 지금껏 다 봐서 이번에도 구매해서 읽었다. 시인의 에세이는 와닿는 문장이 많아서 좋았기에 이번에는 어떤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일기 시대인 것도 읽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이다. 남의 일기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므로. 이번에 와닿은 문장은 이것이다. <좋은 시인이 되려면 엽기적인 고수가 되어야 한다.> 뭔가 알 것 같은 말이면서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