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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서>를 인용하는 책이 많은데, 그 분들은 다 원문을 보시는 걸까? 하고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우리 출판계에 내가 바라던 책이 나왔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사실 1년전이다. 물론 나 역시 이 책의 1권 절반도 미쳐 읽지 못했다. 3권 역시 드문드문 읽고 싶은 곳을 펼쳐내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꼭 사고 싶었다. 아니 사주고 싶었다. 우리 출판계 문화에서 꼭 필요한 책인데 나라도 이런 책을 사서 도움이 되고 싶었다. 결국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책인 듯, 아니면 나처럼 아직 다 읽지 못한 것인지 내가 첫 리뷰를 작성하게 됐다.
<한서 열전>을 속에는 여기에 보존된 전한시대와(반고가 후한 시대 사람이라 전한의 역사와 중간의 신나라 역사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 역사에서 매우 짧은 외척의 난동으로 기록된 신나라의 문화가 2,000년을 넘는 시공을 넘어 오늘날 동아시아 문화 전반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나라는 분열을 끝내고 통일한 진을 이어 중국 역사에서 꽤 긴 시간동안 통일된 제국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분열보다 통일을 지향하며 중앙집권제와 지방자치제를 병행하는 정치 체제, 능력을 중시하는 관료제와 개인의 개성 발휘를 중시하는 선비 문화, 각종 의례와 의식에서 천벌을 두려워하고 음양오행을 따져 앞일을 가늠하는 민간 신앙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문화의 원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마천의 사기가 중국의 더 오랜 기간의 역사를 그만의 역사 편제 방법으로 궁형의 치욕을 이겨내고 드라마틱하게 써내려 갔다는 장점이 있어 더 유명하고, 국내에서도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이 완역서를 내고, 또 그를 해석한 책까지 합하면 수십, 수백종의 책이 나와 있는 것에 반해 한서는 그러하지 못하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동양의 전통문화를 깊이 있게 파악하는 데 지침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사실 <한서>는 반고의 아버지인 반표부터 반고를 거쳐 특이하게도 당시 동양에서는 드문 여성인 반소의 손을 거쳐 당대 대학자인 마융의 동생인 마속까지 반씨 부자와 여동생, 마속이 함께 집필을 완성한 책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했던 반소는 40대 후반에 가업을 물려받아, 「천문지」와 표 등 남은 골치 아픈 부분을 거의 다 썼다. 어려운 대목은 소문난 학자인 마융과 함께 읽었고, 마융의 형제 마속이 집필을 보좌했다. 이렇게 40여 년에 걸쳐 반표, 반고, 반소, 마속의 손을 거쳐 총 100편 120권의 『한서』가 세상에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일이었다.
반고는 사마천을 존경했지만,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편벽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리하여 한창 『사기 후전』을 집필하던 중에 이웃의 고발을 당하게 된다. 국가의 역사는 조정에서 집필해야 마땅한데 혼자 마음대로 쓰다니 불경하다는 것이었다. 반고가 옥에 갇혔을 때 반고의 동생이자 반소의 오빠인 반초가 나섰다. 반고는 한나라의 영광을 위해 역사를 집필하는 것이라는 반초의 상소에 황제는 그제야 반고의 능력을 알아보고 황궁으로 불러온다. 개인의 저작인 『사기 후전』이 국가사업이자 중국 최초의 관찬 역사서로 공인된 <한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사마천의 풍자와 낭만의 자리를 검증된 사실과 사료가 채우게 되었으니, 나처럼 『사기』를 읽은 사람은 <한서>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 관점을 확장하면서 종합적인 시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비판한 사기보다 한서는 더욱 한나라 입장과 중화주의 사상이 녹아 있는 것은 감안하고 읽어내려가야 한다.
또 하나 <한서 열전>은 바로 그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전기도 수록하고 있다. 반고가 사마천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이라 가능한 스토리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가 몇 번이나 울음을 삼키면서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기로 결심했는지를 적은 편지글이 바로 반고의 손을 거쳐 <한서 열전>에 보존되어 있다. 사마천에게 형벌을 내린 바 있는 한 무제 앞에서 온갖 농담을 하고, 술에 취해 난리를 치고도 총애받은 동방삭 또한 <한서 열전>에 등장한다.
우리가 많이 쓰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최초로 쓰인 책이 바로 <한서 열전>이다. 실사구시는 경제의 아들이자 무제의 이복 형제였던 하간헌왕 유덕이 사물의 실제 상태와 상황을 살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애썼던 태도를 말한다.
숱한 역사 인물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한서>가 세상에 나오자 중국의 많은 인물들은 이 책을 무척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송대 사람들은 특히 <한서>를 열심히 읽었다. 구절을 안주 삼아서 벗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밤을 새고, 왔다 갔다 하는 이동 시간이 아까워서 소 등에 타서도 읽었다고도 한다. 중국이 낳은 천재 시인 소동파는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한서>를 사랑해서 전체 100편을 최소 세 번 베껴 썼으며, 줄줄 외우고 다녔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조선 사람들도 <한서>를 애독했다. 조선의 창업주 태조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직후에 <한서 열전> 중에서도 「곽광전」을 읽었다고 전한다. 권신이냐 충신이냐로 늘 토론에 올랐던 대장군 곽광을 생각하면서, 이성계는 고려 우왕을 폐위시키기로 결심했다. 우리 역사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조선의 <한서> 독자는 정조라고 한다. <사기>와 <한서>에서 명편을 뽑은 『어정사기영선』을 간행해 사고에 두고 학업 성적이 뛰어난 선비들에게 하사하면서 읽기를 권했다. 정조 자신은 이 책을 정치학 교과서로 삼았을 뿐 아니라 힘 있고 명료한 글을 쓰기 위한 문장 교본으로도 삼았다.
역자 신경란님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대 중국어 문법 및 서지학을 공부했다. 집에서 한문을 익힌 인연으로 일찍이 동양 고전 읽기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난징에서 중국 고대문학·고대사를 공부하는 두 자녀와 함께 동양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세 모자녀의 토론과 협업의 산물이다. 반고의 한서처럼 말이다.
3권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바로 한 황실의 외척이다가 신나라를 세운 왕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왕망이 외척으로 벼슬길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에는 자신을 절제하는 데 힘쓰며 명예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집안에서는 효성스럽다는 칭찬을 들었고 (조카의) 스승과 벗에게는 인을 베풀었다. 황제를 보좌하는 자리에 올라 성제와 애제 때에 황제를 위해 공을 세우며 정도에 따라 행했으므로 무슨 일을 하거나 칭찬을 받았다. “(경과 대부의) 가와 (제후의) 국(國)에서 반드시 이름을 얻는데”, “겉으로는 인을 취하면서 행동은 인에 어긋나게 한다.” 라고 한 것은 설마 왕망을 이른 말일까! 왕망은 본래 불인한 데다 간특한 재주까지 있었다. 백부와 숙부 네 명이 지냈던 권력을 이어받았을 때 한나라 황실이 중도에 쇠약해지면서 황위를 이을 후사가 세 번이나 끊어지는 일을 겪었다. 태후가 장수하면서 권세를 잡고 있었으므로 간악한 행위를 마음대로 저지르다가 결국 황위를 찬탈하고 권력을 훔치는 죄를 지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천시가 맞아떨어진 면도 있었으니,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p.1069, 반고의 찬 <왕망전 하>
이 밖에도 유림전, 화식전, 외척전, 흉노전 등을 통해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름해 볼 수 있고, 여러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얼마 전 신복룡 교수님이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완역본을 구매했는데 그 책과 쌍벽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동서양 인물 대전이라고 할까? 내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100살까지 그것도 건강하게 반드시 살아야겠다. 집에 읽는 책 다 읽으려면.
책 두께가 압권이다. 집에 있는 수많은 벽돌 책 중에서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 후한의 반고 및 그 가족들이 써내려간 전한의 역사서 한서 열전 3권 리뷰입니다. 그동안 전한의 역사를 다룬 한서는 사기에 비해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및 한국의 전통왕조의 격식과 예절의 시작은 모두 한나라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통시대의 관직, 예법 등을 볼려면 한서는 꼭 필요한 책입니다. 또한 한서열전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큰 교훈과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 황제에게 직언하는 몇몇 유명한 에피소드들은 대개 비유적으로 설명해서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경우다. 이 책에선 황제가 직언하라고 자리에 앉힌 사람들이지만 돌려 말할 줄 모르는지 목숨 걸고 직언하는 느낌이다. 학문의 계보 같은 지루한 내용도 있지만, 가혹한 형벌로 다스린 관리들의 기록인 혹리전, 부자들을 다룬 화식전, 법을 어기지만 의리있는 유협전, 황제의 총애를 받는 남자들을 다룬 영행전 등 다양한 주제의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