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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같은 조상ㆍ언어ㆍ종교 등을 가진, 원시 사회나 미개 사회의 구성 단위가 되는 지역적 생활 공동체.
인터넷에서 ‘부족’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글이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인류는 모둠 지어 살았다. 대개가 부모, 자녀처럼 혈연으로 엮인 경우였을 테고, 오늘날과 같은 변변한 교통수단이 존재치 않았음으로 집단의 크기는 크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접한 역사는 ‘단군’을 시조로 한 단일민족에 대한 강조로부터 시작했다. 무려 4천 년도 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씨가 제대로 뿌리내린 덕인지, 살면서 상대를 나와 같은 부족에 속했다고 여겨본 경험은 드물다. 솔직히 부족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이를 대체할 숱한 집단들이 등장했기 때문 같다. 그럼에도 저자는 굳이 이 단어로 대한민국을 수식했다.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했다.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의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이다. 경제는 어렵다고는 하나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적 태도를 만난다. 때론 폭력이 우리나라 특유의 어르신 공경 문화, 예의범절 등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왠지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 이런저런 문제점 중 저자가 주목한 건 다름을 대하는 태도 같다. 이 좁은 땅덩이 안에 너무도 과도하게 많은 이들이 모여 살아서일까. 자신과 다른 이들을 색출하는 능력이 참으로 뛰어난 우리다. 대한민국을 망국으로 몰고 가는 원인으로 손꼽히곤 하는 학연, 지연, 혈연도 알고 보면 자신과 같은 요소를 지닌 이들끼리의 뭉침을 가능하게 하는데 반해 그렇지 못한 이들을 배척하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개개인간에도 유효한 이들 요소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큰 힘을 발휘 중이다. 조직에서 특정 지역 출신이 승승장구를 하는 일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같은 능력을 지녔다면 아무래도 자신의 후배에게 좀 더 애정이 가는 게 본능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 수준을 뛰어넘어 같음이 모든 판단의 잣대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인데,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축약한 이 단어는 같은 행동도 누가 행하느냐에 따라 다른 판단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날 정치가 내로남불과도 같음을 지적했다. 정권 창출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내가 권력을 장악하면 적어도 저들보다는 나으리라는 확신을 강렬히 표출하고는 한다. 저들이 틀렸다는 관점은 실제 저들이 틀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넘치는 자신감의 발로일 때도 잦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다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일까. 막상 권력의 중심에 선 이들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지어 퇴보한 것만 같은 모습을 선봬 모두를 실망시키고야 만다. 가장 위험한 건 아무래도 닫힌 귀다. 타인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오히려 큰 목소리도 그 의견을 반박하기 일쑤다. 당 차원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다 보면 국정은 아무래도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상대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치중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곤 한다. 꼭 정치가 아니어도 이와 같은 일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용 중인 SNS 상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과 기꺼이 관계맺음을 한다. SNS의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해당 인물이 보여온 성향에 부합하는 정보들을 제시함으로써 개개인이 지닌 의견이 알게 모르게 철옹성으로 변화토록 유도한다. 혹 자신이 상대보다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는 사고까지 가미된다면 그때부턴 대책이 없다. 상대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도 필요치 않다는 사고에 사로잡힌 이에게 관용이나 경청을 기대하는 건 소 귀에 경 읽기 이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애정을 갖고 비판을 했지만 공격으로 저자의 의견이 여겨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이 부족국가라는 증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