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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_005
지은이 : 에릭 와이너 저/ 김하현 역 출판사 : 어크로스
북클러버 5월 도서로 만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라는 책은 작년에 이웃님들의 블로그에서 먼저 만난본 책이었다. 관심이 있긴 했으나 워낙 철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나라서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읽기를 거부(?) 했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 겠다 다짐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만나게 될줄은 몰랐다.
어려운 책이라 생각했기에 북클러버 도서로 선정하면 부담은 되지만 읽어는 질거란 생각에 도서 정할때 찬성을 했고 그렇게 내게론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아직도 책상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얼른 여행을 떠나자고~~
저자의 기차여행(정말 여행기 인지? 아니면 여행기 처럼 쓴 철학책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을 나는 KTX 고속철도 기차로 탑승이 아니라 무궁화호로 탑승한지라... 아직 한창 기차 여행중이다. 빠른 기차는 빠른데로 느린 기차는 느린대로의 매력이 있으니까...
이 책을 막 읽기 시작하던 5월 5일 연휴때 지리산에서 워크샵이 있었다. 보통때의 나라면 빨리가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비싸도 KTX를 예매했을진데 이번 지리산으로 향하는 나의 여정은 느릿느릿, 덜컹덜컹 거리는 무궁화호를 타고 가게 되었다. 오래걸리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오랫만에 창밖을 내다보며 낯선 마을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푸르른 새싹들을 바라보며 봄이 오는 소리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여유로움도 내안에서 퍼져감을 느낄수 있었다. 이른 새벽의 기차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역마다 오고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가방 오르내리는 소리, 그리고 자리를 확인하는 소리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머문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을 향해서...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모습은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기요... 잠시만요.. 저도 좀 태워주세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거 타면 인생의 구비구비 살아가는 인생길을 좀 쉽게, 빠르게 갈 수 있는 걸 알려주는 열차 인건가요?"
기차든 버스든 나는 멀미를 심하게 해서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들어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사람인데 이날은 기차에서 그것도 이른 새벽에 움직였는데도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가득찬 나의 기차는 그렇게 무궁화호 속도로 느릿느릿, 덜컹덜컹 움직이고 있다.
나는 철학자 하면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거 같다. 책상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논하고, 죽음을 이야기 하는 이들이라고...
그래서 철학을 좋아하지 않았고(사실, 어려웠던게 더 크지~!!) 관심밖의 학문이었다. 고백하자면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는것은 부끄럽지만 1도 없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니체, 루소, 공자... 등등... 그저 이름만 알뿐이다. 그들의 사상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관심도 없었다. 먹고 살기 바쁘고 그저 주어진 일 하기도 헉헉 거리는 내가 인생을 논하긴 개뿔~~ 뭐... 이런 생각으로 여짓껏...40평생 아니 50이 다 되어가도록 생각을 한다는것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없이 살아왔다. 그런 내가 요즘 50이라는 숫자가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고, 호르몬(?) 불균형인지 인생을 잘못 살아온 삶의 결과(?) 인지 모르게 날이 갈수록 삶의 태도가 모순적이고, 고집스럽고, 꼰대스럽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라고는 없는 듯한 나를 발견하면서 생각이란게 많아 진듯 하다.
내가 생각했던 그 생각들을 어찌 정의내릴지, 정리를 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리던 내게 삶을 어찌 살아야 하는거라고 안내해주는 것 같았다. 바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그랬다.
철학이라고, 철학자라고 어렵게만 생각했었는데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들을 통해 철학자의 생각, 사상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었고 그들의 저서에서 짧게 짧게 인용해서 갖고온 글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선택한 철학자는 실용적인 철학자를 택했다고 했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간 사람을 그런 철학자를 소개해주고 있다. 의미있는 삶이란 무얼까? 철학자가 살아온 삶의 행태가 사상이 의미있으니 따라 살면 되는것인가? 그건 아닐것이다. 각자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상황이 다 다른것이니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좀더 먼저 살아왔고 철학자라고 하는 이들이 말해주고 있고, 보여주고 있고, 가르쳐주고 있는 삶을 들여다 보면 무언가 하나쯤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거란 생각으로 읽어가본다. 철학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살면서 그가 살아낸 삶안에서 지혜를 찾으려 애쓰다 보면 결국 나도 나란 존재의 삶을 좀 도닥거리며 살아가지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철학자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울수 있는 삶의 지혜는(저자가 정의한)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지혜들만 모아놓은것 같다. 알아서 잘 얻어 먹어보라~~ 거저 주고 있으니... 읽기만 해서 되는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맘을 건드리는 문장들, 상황들이 있다면 잠깐 멈춰보자. 그리고 그 상황에 나를 바라보면 현재의 나를 만나게 될것이다.
목차를 먼저 보자면,
침대에서 나오는것, 걷는것, 보는것, 듣는것, 즐기는 것, 싸우는것, 친절을 베푸는것, 감사하는것, 늙어가는것, 죽는것.... 이 모든것을 철학자 처럼 할 수있다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철학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을...)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 진다. 호기심 자극하는 목차 덕분에(뿐만아니라 저자의 필력 덕분에.... 어렵지만 유쾌하게 쓰고 있다.) 이번 기차여행은 생각했던것 보다 성공적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해서 관심이 조금 있었고 <<월든>>, <<시민 불복종>> 이란 책을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지 하다가, 책을 슬쩍 보니 어려울듯 해서 깔끔하게 포기했던란다. 그러다 올해 3월인가에 출판된 <<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책을 선물 받아 읽고 있는데 그가 쓴 저서에서 유명한 글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어서 그가 숲에서 살면서 자연을, 또 삶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쉽게 접했던 책이고 철학자였다. 그정도의 겉핥기 식으로 만난 소로의 삶이었는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때 비로소 보인다는 말... 우와~~ 넘 멋지다. 이해하려고 머리로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는것. 그러나 그게 쉬운가? 일단 보는 동시에 내 머릿속은 온갖 정보와 그간의 데이터들을 돌려가며 내가 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부터 판단하고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 쉬워 멈춘다 라고 표현하지만 쉽지 않을것 같다. 과연 멈춘다는것, 본다는것은 무엇일까?
옮겨 적고 싶은 문장들이 많다. 소로의 글도 좋았지만 소로의 인생안에서 건져올린 보는 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이 책의 저자의 글, 문장이 정말 주옥같았다. 어려운듯 하지만 어렵지 않고 유쾌한 그의 목소리를 리뷰에 담아 보고 싶은데 나의 글쓰기 실력이 이정도라 ㅠ.ㅠ
내 삶안에도 내가 보지 못했지만 철학자의 삶의 지혜가 분명 한가득이란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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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건 국물은 대충 마셔버리고 생선 뼈다귀 하나라도 꼭꼭 씹어 뱉어야만 맛을 겨우 느끼는. 이문장을 어디서봤더라.아하 솔제니친.!!! 그런심정으로 읽어줘야 뭐하나라도 얻는 책. 철학적 인문학인지 그냥 기차타고 개인의 사유인지 뭔지. 과연 어떤 철학적 사고를 얻을수있을까. 니체 신은죽었다. . 요즘 진정한 책다운 책도 죽었다. 책으로 살지않고 화려한 서평으로 연명하는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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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기본은 질문이다. 철학자들의 질문은 지혜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철학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질문에서부터 시작되는 철학이라는 학문은 우리 사회와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일반 철학 입문서와는 달리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기 쉬울뿐더러 이해하기도 쉽다.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질문을 파악해보고 우리 현실과 대입해볼 수 있다. 에릭 와이너가 기차 안에서 그 속도로 다가오는 철학의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많다고 여겼는데 저자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겨워했다.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를테면 좋은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 ‘5분만 더’라고 외치다가는 중요한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를 가리켜 철학의 수호성인, 질문의 왕, 질문하는 방식을 바꾸어 질문이 끌어내는 대답을 바꾼 사람이라 일컬었다. ‘이제 철학은 우주에 대해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50페이지)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침잠하여 깊이 침묵하는 것. 통찰의 순간이다.
세 번째 철학자는 장 자크 루소다. 소설가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산책자였다. 걷기는 자연으로 회귀를 주창한 루소의 철학에 딱 맞았다. 더불어 저자는 캠핑도 글램핑도 가지 않으며 대자연은 성가시다고 말한다. 산책을 해본 사람은 안다. 마음의 상처, 고통 등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을. 고통이 사라진다. 매 걸음마다 부담이 덜어지고, 누가 내 신발에 공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가벼워진다. 대지의 진지함, 또한 가벼움을 느낀다. 타박. 타박. (106페이지 )
자연주의 철학자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빼놓을 수 없다. 소로는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을 때, 자신과 빛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 때 가장 잘 볼 수 있음을 알았다.(137페이지 )라고 했다. 자신만의 월든을 찾으라는 소로의 충고에 저자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모기도 많을뿐더러 에어컨도 커피도 없다고 말이다. 철학자처럼 되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정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아테네에 있는 저자는 에피쿠로스에게 더욱 깊이 다가가게 된다. 충분히 가졌으나 행복하지 않은 아테네인을 관찰하며 자신의 감각을 갈고 닦았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인생의 커다란 쾌락 중 하나라고 보았다. 고통을 완화하고 쾌락을 증진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외에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도 살펴 볼 수 있다. 니체의 책을 몇 번이고 읽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었다. 저자는 니체는 읽기 즐거우면서 동시에 읽기 버겁다고 했다. 읽기 즐거운 것은 문장의 명료함과 상쾌한 단순함이며, 읽기 버거운 것은 소크라테스처럼 확고한 신념에 의문을 품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불어 철학이 재미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에릭 와이너처럼 철학을 말한다면 재미있고도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저자의 딸은 그에게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누구나 잘 늙어가고 싶다. 보부아르에게 늙어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그 열 가지 방법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과거를 받아들일 것 친구를 사귈 것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습관의 시인이 될 것 아무것도 하지 말 것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길게 말할 필요 없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없앨 수는 없다. 삶을 함께 이어갈 좋은 친구가 필요하고 물러날 줄 알아야 하며, 자리를 넘겨줄 줄 알아야 한다.
잘 늙는 법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죽는 법이 아닐까. 주변에서 죽음 소식을 간혹 듣는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게 잘 죽고 싶다는 거다. 죽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501페이지)
죽음의 존재를 인정하면 삶이 훨씬 풍성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살아있기에 느끼는 감정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삶에 깊은 의미를 갖고,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가치를 말하는 책이었다. 철학 입문서라고 해도 작가의 이야기와 함께 철학자들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현재의 삶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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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개인적인 생각은..... 글쎄요.., 우선 책제목이 기가막히다. 목차도 기가 막히게 잘 구성 되어 있다 책소개도 기가막히게 잘써놓았고 서문도 참 좋다 판매량도 좋고 뭐 나무랄데가 없다 그런데 정작 읽기 시작했을때 그 기대감은 다음장 다음장넘어갈수록 실망하게된다. 다음장그다음장도 기대(?)했던 내용이 전혀 아니다. 나랑안맞는거겠지만...많이 실망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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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다 철학자다.
이제 3부 황혼이다. 이 책은 인생의 각 단계에 필요한 내용에 따라 3부로 나누어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1부 새벽은 만물에 호기심을 갖는 것, 보고, 듣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2부 정오는 즐기고, 관심을 기울이고, 싸우고, 더불어 살아가고, 감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3부는 좀 암울하다. 인생의 황혼기 즉 노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이가 청소년이라면 조회 수만 올려 주고 나가도 괜찮을 것 같다. 노년이라면 꼭 읽어야 하고, 청장년이라면 읽어야 할 것 같다. 노년을 노년에 대비하기엔 늦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남들이 말하는 제2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에 있다. 당연히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과거는 좋았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겠는가?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로 되돌아가겠는가? 젊음을 되돌려 받는다는 것은 좋아 보인다. 어느 소설가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면 다시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체적, 물리적 환경, 성격이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몰라도, 과거 나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간다면 나도 단연코 ‘아니다’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결코 변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능력과 의지는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고 나는 결국 똑같은 삶을 반복해서 지금의 내가 될 것이다.
니체는 똑같은 순간, 똑같은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영원회귀’를 말했다. 양자역학에서도 그대로 똑같은 삶이 반복되는 우주가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조금씩 다르게 사는 삶이 무수히 더 많다. 니체는 조금씩 다른 삶이 아닌 정확히 똑같은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한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똑같은 삶이 그대로 반복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쾌락과 고통, 무의미한 대화나 지루함까지, 같은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삶이 탄생과 죽음의 무한 루프에 갇힌 것이다.
모든 것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고 우리에게 자유의지도 없다면 우리 인생에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너무나 불행하지 않을까? 니체는 그저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는가? 생각해 보라고 한다. 니체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한다. 니체의 말은 어렵다.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좀더 쉽게 생각해 본다. 만일 내가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워서 스스로 삶을 포기할 생각을 한다면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 고통스러운 삶을 다시 똑같이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 고통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앞으로 나의 삶이 어떨지 끝까지 살아보는 게 더 낫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성공한 사람에게도 자만이나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한다. 지금 성공했는가? 명예와 권력과 부를 획득했는가? 그래서 이제 좀 쉴만한가? 아니다. 영원회귀는 성공을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수고는 시시포스처럼 영원히 반복된다.
니체는 우리에게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만약 모든 것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인생에 가벼운 순간이나 사소한 순간은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모든 순간이 동일한 무게와 질량을 갖는다.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작다.” 니체는 현실의 삶의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만을 충실하게 생활하는 데에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젊음을 되찾는다해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것은 내 삶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연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토아학파는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이 사실 우리 통제 밖에 있다고 한다. 부도 명성도 건강도 통제할 수 없다. 자신의 성공과 자식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스토아철학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을 ‘무관한 것’이라 하고, ‘무관한 것’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만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를 입었다면 교통사고와 장애는 나의 통제를 벗어난 ‘무관한 것’이다. 내가 만일 5분만 늦게 출발했더라면, 내가 만일 신호만 잘 지켰더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고통을 더하기만 할 것이다. 내 삶의 통제 바깥에 있는 ‘무관한 것 ’때문에 내가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무관한 것은 무관심, 관심을 끄면 된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지만, 대신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과 같은 우리의 정신적·감정적 삶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을 미리 대비할 수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칠 것. 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 그래서 나는 맨날 지기만 하는 테니스를 오늘도 하러 갈 것이다. 게임의 승패를 떠나서 내가 칠 수 있는 공을 칠 것이다. 그리고 만족할 것이다. 오늘도 블러그에 글을 올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웃들이 내 글을 읽든, 나는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정성을 다할 것이다.
요즘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꼬마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나의 흰머리 때문이기도 하고 꼬마들이 아직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슬프다. 그러나 가끔 TV에서 젊은 리포터들과 인터뷰를 하는 사람과 자막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저렇게 늙어 보이는 사람이 자막에 나오는 나이가 나와 같다니.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늙어 보이고, 늙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누가 봐도 늙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고. 아니 실제로도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노화는 새로운 성격 특성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의 특성을 더욱 증폭한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고 한다. 돈 쓰는 데 신중한 청년은 늙은 수전노가 되고,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은 고집 센 할머니가 된다. 더 나은 모습의 나이 든 내가 될 수는 없을까?
저자는 노화에 대한 지침을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서 찾는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나이 듦을 바라보면서 585페이지에 달하는 《노년》이란 책을 썼다. 보부아르는 늙어가는 것을 분노했지만, 결국에는 나이 듦을 사랑한다. 저자는 《노년》이라는 책과 보부아르의 삶을 바탕으로 ‘잘 늙는 법’ 10가지를 소개한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7. 아무것도 하지 말 것.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무엇일까? 바로 죽음이다. 노화 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죽음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그래서 죽음이 더 두렵다. 몽테뉴는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죽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몽테뉴는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가 독수리가 몰고 가던 거북 등딱지에 맞아 죽었다며 죽음이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내가 테니스를 치다가 공에 맞아 죽는 것을 상상해 본다.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몽테뉴의 남동생 아르노는 스물세 살에 테니스공에 맞아 죽었다.
몽테뉴는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선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시인 호라티우스는 “새로 시작되는 매일매일이 너의 마지막 날이라고 확신하라. 그 뜻밖의 시간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니.”라고 노래했다. 좋은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좋은 죽음은 보통 좋은 삶의 끝에 온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열심히 사는 것도 편안한 노년과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나는 반대로 생각해 본다. 노년을 보내는 마음이 젊은 날의 경험에 대한 평가를 바꿀 수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내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상황을 나름대로 잘 견뎌왔다는 생각을 한다. 부족하고 결함 투성이지만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만족한다. 몽테뉴는 게으름을 피우는 자신을 질책하며 말했다. “우리는 정말 바보다. 우리는 ‘그 사람은 평생을 허송세월했어’라거나, ‘난 오늘 한 게 없어’라고 말한다. 아니, 그동안 살아 있지 않았단 말인가?"
이 책에서 황혼을 맞이하는 방법으로 철학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인생을 수용하며 만족하는 방법을 획득하는 것이다. 운명까지도 수용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면 노년이 고통스럽고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외부 환경을 바꿀 수 없으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죽음의 해결책도 결국은 수용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이 책은 인생의 각 단계에서 필요한 철학적 지식을 3부로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14명 철학자들의 사상이라는 깊은 못에 잠깐씩 발을 담그는 정도로 소개한다. 깊이 발을 담갔다가는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철학 전문서적이 아니고 일반인들을 위한 철학교양도서다. 저자는 자신과 철학자들의 에피소드를 곁들여 어떻게 철학이 삶에 적용되는가를 보여 준다. 저자는 철학이 아직도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서적이면서 자기계발서적 같기도 하다.
우리는 철학을 어렵게 생각한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철학 내용보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한다. '무엇을'이나 '왜'가 아니라 '어떻게'이다. 우리가 만일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삶이 지금보다 좀더 나은 삶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가 다 철학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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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서 진리에 다가갔다. 자신에 대해 성찰했다. 대화는 깨우침을 주고 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자각시킨다. 이 위대한 철학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타인에게도 전하고자 했으나, 변증법을 통한 진실을 받아들이기에 대다수의 대중들은 너무 무지했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 많은 이들은 자각과 성찰 대신 짜증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이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 된다.
대화를 나누어 보면 알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대화다. 말은 발화까지의 그 경로가 극히 짧아서 꾸미거나 가장하기가 어렵다. 자신이 먹고, 입고, 살아온 그대로를 말로 내뱉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약간은 더 나은 모습을 치장하는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는 도구인 '글'과는 성격이 매우 다른 게 말이고, 대화다.
대화를 해보면 나의 무지를 깨닫게도 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확인하게 된다. 불편한 대화를 못 견디는 사람인지, 대화의 좋은 흐름을 위해 감정적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상대방을 간파하는 것은 더 쉽다. 잠깐 얘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이 나와 잘 어울리고, 만남을 가져도 될만한 종류의 사람인지 안다. 사람의 좋고 나쁨과 꼭 같지는 않지만, 그것도 일부 포함해서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관심'을 말한다. 대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관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절을 베풀기는 어렵지 않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관심을 기울이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어 보면 안다. 아이는 순식간에 간파한다. 아빠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지, 아니면 그냥 말을 내뱉고만 있는지 말이다. 관심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별히 관심을 윤리로 포함시켜야 하는 직업군도 있다. 나는 의사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친절한 의사가 되기는 쉽다. 묻는 말에 친절히 답할 수 있다. 그런데, 환자에게 관심을, 따뜻한 '관심'을 주는 의사는 많지 않다. 환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의사의 말투, 행동, 손짓 하나에 그가 관심을 가진 의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환자에게 관심을 갖는 의사는 치료 능력이 뛰어난 의사보다 더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도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아이와 관계가 왜 소원해지는지, 배우자와 대화를 나누기 어렵게 되어버렸는지, 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과 돈과 형식은 갖췄다. 그런데, 따뜻한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갖고 대해주는 것. 이미 과거에도 그러자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나라는 존재 양식에 근본 검토가 필요한 일이니까. 나와 대화를 나눴던 이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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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계에 따라 철학자들을 만나는 기차여행
글쓴이는 익스프레스, 기차를 타고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쫓는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길에서 14명의 철학자를 추려내고 새벽에서부터 정오를 거쳐 황혼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철학자들을 만난다. "철학은 삶의 각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쓴이는 새벽부터 정오를 거쳐 황혼에 이르는 삶의 각 단계에 맞게 철학자들을 선정하고 찾아간다. 가령 "나는 이불 아래 파묻힌 채 나를 때려눕히려고 마음먹은 적대적인 세상을 떠올린다."라고 말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맨 처음 새벽에 둔다. 에피쿠로스처럼 즐기고 루소처럼 걷는 활동을 하는 철학자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정오에 둔다. 후회하지 않는 니체와 늙어가는 것을 이야기한 보부아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 몽테뉴를 황혼에 둔다. 그렇게 삶의 각 단계에 맞게 철학자들을 찾아나선다. 철학을 생각하는 장소는 중요하다. 장소는 생각의 보고다. 집에서 철학자들의 책을 읽는 것보다 철학자들이 실제로 걷고 움직이고 집필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은 남다른 경험이다. 사람들이 굳이 집을 놔두고 집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굳이 여행을 다니며 여러 경험을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글쓴이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으며 때로는 은둔해 있던 에피쿠로스와 그의 정원의 흔적을 찾아 아테네에 가기도 한다. 삶의 정오에 해당하는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를 해보자.
좋은 것이 주어지면 즐긴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나서지는 않는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 나타나길 기대하지 않는 사람 앞에 나타난다. 물건을 찾아다니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 물건들은 그저 우연히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물건이 생기면 감사해한다. 그것이 에피쿠로스의 생각이다. 마치 자연에 어울려 사는 동양의 도가 사상가들 같기도 하다. 제논이란 이름의 페니키아 출신 상인이 배를 타고 아테네의 항구로 향하다가 배가 난파되었다. 우연히 죽은 소크라테스의 전기를 읽게 되었고 결국 스토아 포이킬레(여러 색으로 칠해진 주랑)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은둔하는 에피쿠로스와 달리 공개적으로 철학을 설파했다. 말년을 맞이한 제논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난 정말 좋은 항해를 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려움이 닥쳤지만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맞이했다고 하는 제논의 말, 이 말은 결국 "고난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스토아 학파의 핵심 주제가 된다. 글쓴이는 서양의 철학자에 한정하지 않는다. 그는 공자를 찾아보고 공자의 유교의례에 집중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지만, 친절은 힘든 것이다. 친절에는 감정이입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친절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하다. 공자는 여기에서 유교 의례를 강조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 결혼과 졸업식 때로는 죽음처럼 인생의 전환점에서 우리가 의식을 치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각종 의례는 우리 마음을 꺼내놓고 우리의 감정을 담을 그릇을 제공한다. 글쓴이는 철학자들의 생각과 통찰에서 우리 일상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법을 찾아본다. 쇼펜하우어는 소음에 민감했다. "소음이 평생 동안 매일 나를 괴롭힌다."고 말했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이메일이 발명되기도 전에 어수선한 받은 편지함을 우려하기도 했다. 글쓴이는 오늘날 우리 시대 수많은 정보를 정신적 소음으로 빗대어 이야기한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과도한 양의 데이터(사실상 소음)은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며, 통찰의 가능성을 없앤다. 소음(과도한 정보)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음악(통찰)을 듣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데이터를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한다. 때로는 소크라테스처럼 그저 가만히 서서 자신의 생각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루소처럼 걷고 소로처럼 보고 쇼펜하우어처럼 들으면서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통찰의 시간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준다. 이 책의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추측에, 특히 자신의 추측에 의문을 품을 것을 요구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시몬 베유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특히 베유는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때 찾아온다."고 말했다. 베유의 생각에 따라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지금 무슨 일을 겪고 계신가요?" 짧은 질문 한 마디가 마음을 녹이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고통받는 사람을 우리와 똑같은 그저 어느 날 고통이 특별한 흔적을 남겼을 뿐인 한 명의 인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베유는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 나설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라는 철학을 남긴다. 철학자들의 이런 생각들은 우리 삶에 통찰을 주고 또다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결국 철학의 씨앗은 "나는 궁금하다."는 말에서 출발한다. 짦은 두 마디 말이지만 그 안에 모든 철학의 씨앗과 그 이상이 담겨 있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돌파구는 이 두 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한편,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통찰이 자리잡을 새벽까지 한 자리에서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루소는 그 먼 거리를 걸어다녔다. 쇼펜하우어는 받은 편지함을 경계하며 소음을 멀리하려 했다. 그리고 진정한 지혜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래서 글쓴이는 철학자들을 찾아 그렇게 기차를 타고 움직이면서 때로는 철학자의 공간을 찾아 돌아다녔나보다. 글쓴이는 적당한 유머와 함께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린 딸, 소냐와 하는 대화는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철학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좋게 나이 드는 건 자유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나쁘게 나이 드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고."라고 나이듦에 대해서 정의하는 어린 소냐의 생각이 신선하다. 물론 나쁘게 나이들고 있는 글쓴이의 입장에선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혼자 생각한다. '하지만 삶은 이미 충분히 힘겹다. 그런데 성찰까지! 하라고?' 글쓴이의 반문은 재치있으면서도 우리 현대인을 대변해준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이 철학적 생각을 하기에는 삶이 이미 충분히 바쁘다. 철학자의 생각과 함께 글쓴이의 재치가 어울어져 기차가 목적지를 향해 가듯이 술술 우리 머릿속으로 철학자의 생각을 담아준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애초에 철학이란 것은 궁금한 것에서 출발해서 때로는 소크라테스처럼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루소처럼 걷기도 해야한다. 간디처럼 싸우기도 하고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서 벗어나기도 해야한다. 그런 경험을 바쁜 현대인이 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글쓴이가 대신해서 기차를 타고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통찰하는 여행을 한다. 그래서 글쓴이의 여행을 따라가며 이 책을 읽다보면 글쓴이가 찾아다닌 철학자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생각이 조금은 정리가 될 듯 싶다. 언뜻 괴짜처럼 보이는 철학자의 삶에서 통찰을 찾아내고 현대인을 대변해서 재치있는 문답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소냐와 대화하면서 당황하는 글쓴이의 모습에서 철학은 어렵지만은 않고 그래도 재미있고 유익한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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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지식을 주는 것도, 그렇다고 문장의 흥미를 주는 것도 아닌 아쉬운 책. 대학교 서양철학사정도만 들어도 알 만한 내용과 일화들이라서 더욱 아쉽다. 김영하님의 소개에 이끌려 찾았는데 번역의 아쉬움인가 싶을 정도로 슴슴한 책. 역시 책은 자기가 뒤져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책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책장을 넘기고 있지만 속독이 되어버리는 아쉬움이 크고도 크다. 그렇게나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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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와이너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철학 에세이집이다. 한 철학가의 전문적 책을 사보는게 낫지 않을까 했지만,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 다루는 철학가 각각에 할당된 내용은 꽤 묵직하다. 그래서 만족스럽다. 즐겨찾는 이들의 추천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려보려다 쉬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듯하여(대기자가 항상 있어서) 서점에서 읽어보고 구매하였다. 들어가며에서 저자가 말하듯, 원하면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폰이 가까이에 있고 주문만 하면 책이며 영상물을 구매할 수 있음에도 충족되지 않는 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같다. 지식보다 지혜가, 소유보다는 실천을 필요로하고 있으며 우울감이 전반에 깔려있는 경우 앞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사유한 철학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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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봉이가 반납한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달봉이가 책을 정말 잘못 산거 같다며 나한테 잠시 맡긴 코스모스, 반납한 책중에 Socrates Express를 읽고 있다.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이란 말처럼 세상 누구가 철학을 한다. 지적 호기심과 지혜에 대한 갈망은 바보 멍충이부터 천재까지 비껴가지 않고 공평하다. 왜 그렇지?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처럼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 외엔 특별한 게 없다. 그런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버티고, 변화하고, 시간과 몸뚱이를 쓰며 살아온 현재가 내 수준일 뿐이다.
속도를 체감하고 접하기 편한 기차 여행이란 테마가 나쁘지 않다. 오래전 배낭여행을 하며 컴파트먼트에 쭈그리고 자던 생각이 난다. 책에서 25km의 속도를 표현한 부분보다 처음 테제베를 타고 창밖을 보다 구토가 나올라고 하던 기억, 멀리 평원을 봐야 속이 메쓰껍지 않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이런 경험, 다양한 지식, 사회생활을 한 기간만큼 뭐가 내 안에 담기고, 쓸려나가고, 질질 새고, 한 두 가지는 잘 보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종종 나도 그걸 잘 알지 못하니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요즘은 뵈는 게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게 또 어려서 뵈는 게 없는 나이와는 또 다르다.
사실 나는 책처럼 Express라는 고속기차는 반대. 인생 익스프레스로 B to the D를 초고속으로 보내면 이건 좀 아니지. 안 그래? 어려서 지금 하루 종일 가는 완행열차(비둘기호)를 탄 기억은 어마어마하게 지루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몇 시간 달걀하고 사이다 먹을 때까지만 좋았다.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한 10시간을 지나 도착한 바닷가 야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인생 여행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대신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서 천천히 가야 자세히 볼 수 있고, 자세히 오래 보아야 애정과 사랑이 깃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너무 빨리 지나가는 변화는 체험은 할 수 있지만, 일련의 과정이 생략된 느낌이다.
사실 10여 년 전에는 철학콘서트, 철학사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이렇게 에세이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도 한 가지 변화다. 철학이란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 짜증 나게 하는 과정일 수 있다. 사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는 것이란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모른다는 사실과 진실뿐이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것들이 모여서 음청 시끄럽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 정체성이 돋아나고, 세상에 맷돌에 들어간 녹두가 죽처럼 갈리듯 조금 유순해지고, 인생 불판을 지나며 맛난 빈대떡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누군가는 광각렌즈로 누군가는 협각은 좁은 렌즈로, 누군가는 어안레즈를 통해 더 넓은 부분을 본다. 렌즈로 보이는 사물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렌즈를 장착했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인생처럼 렌즈로 카메라 없이 사물을 보면 가까이 보면 잘 안 보이고, 조금 멀리서 보면 상이 뒤집어지고, 조리개를 닫으면 잘 안 보이고, 배율을 안 맞추면 흐리멍덩하다. 가끔 그것이 내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태도가 아닐까? 삶이 심플하고 명료하면 단초점 렌즈 같다. 크고 해상도가 좋으면 똑똑한 것 같다. 하지만 멀리 보지는 못한다.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는 내가 선택하고 그 방향으로 무엇인가를 축적한 결과다. 현미경부터 우주를 보는 망원렌즈까지 하나로 된 렌즈를 장착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기 어렵다. 사람의 분수와 인간의 하자를 잘 이해하는 지식을 넘어 끊임없는 변화에 멋진 인간이 되긴 위해 부지런히 실천하고 사고하는 철학적 자세가 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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