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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됨'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초청하는 책이다. '여자가 되라'는 것과 '여자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두 가지 메세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전업주부들에 의해 길러져 어쩌면 영원히 아이일지도 모르는 우리들에 대한 반성이다. 또한 전업주부의 삶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만 자아를 규정해가는 삶은 위험하다고 전하는 시도다.
저자는 '자녀를 둔 중산층 한국 개신교 여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모성 경험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중산층이 연구 대상임은 일을 아예 할 필요성이 없거나 또는 절박하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 선택의 여지가 있는 조건으로 제한하기 위함이다. 개신교 여성에 국한한 것은 저자 자신이 목사의 딸로 자라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개신교의 문화적·종교적 조건을 선택함이다)
1) 모성 결여형: 자신들이 미처 못 미치는 이상적인 모성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 자격미달형: 사랑해 마지않는 모성이 있으나 다 실천 못해 미안해하는, 일하는 엄마들뿐만 아니라 경제력, 정보력, 학력 등이 부족한 엄마들이 대거 포함된다. 3) 자유부인형: 가사와 육아에 자신 없고 취미 없다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유형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을 한다'는 점에서 어설프게 둘이 버느니 하나가 최후승리하도록 내조한다는 '전략적' 엄마도 포함된다(이 경우 남편과 자식의 꿈을 자신의 꿈과 동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4) 무한책임형: (현재 일을 하는가의 여부와 관계 없이) 가정일도 손놓지 못하고 직장 일도 모른 척하지 못해서 해도해도 늘 불안한, 더 잘해야겠고 더 완벽해야겠기에 한순간도 쉬지 못하는 유형이다. 자신들이 내면화해온 '엄마의 길'을 무시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하여, 어쩔 수 없이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엄마 됨'을 선택할 만한 유형이다. 5) 천상소명형: 자신이 아프든 행복하든 자신의 감정과는 별도로 엄마 됨은 소명이라 믿는 여성들이다. 그들은 엄마 됨이 하나님이 부여한 창조질서이며 보편 진리라서 이를 이행하는 스스로의 역할에 신적 정당성을 가진다. 아울러 헌신적 신앙이 신자본주의적 경쟁사회의 전제들과 얽혀 '전문직으로서의 엄마'를 수행하며, 이는 직장 여성의 육아 노력(둘 다 하겠다고 양쪽 일을 모두 어설프게 처리하는 선택)에 대한 비하감과 함께 맞물려 표현될 때가 많다. 6) 지상명령형: 아내 역할과 육아 임무에 대한 소명의식은 '천상소명형'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 의식이나 실천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가정사역이 되어 '땅 끝까지' 전파되기를 소원한다.
그런데 모성이 신적 질서가 아닌 문화적 구성이라면? 저자는 기독교 여성들의 엉킨 실존을 풀어보고자 각각 한 장(章)씩을 할애하여 유교, 기독교, 현대적 제도를 살핀다. 특히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통해 내면화한 현대적 가치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충족되어야 하고, '아주 많은 경우 내 아이를 현대시장·관료제가 꼭 필요로 하는, 대체 불가능한 개인으로 훌륭히 길러내는 일이 되었다'는 말이 와닿았다. 또한 '개신교는 전근대적 질서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지만, 19-20세기 서양 개신교 여성의 위치만큼만 개화되었다'는 설명도 공감되었다.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아내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결론이다. 만약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누군가는 돌봄 노동을 담당했어야 했다. 다만 전근대사회에서는 유모나 노비가, 근대사회에서는 전업주부로서의 엄마가, 21세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할머니가 제도적 해결책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편 지금 대한민국 현실은 여자들만 죽겠는 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반가웠다. 아빠는 가정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고, 아이는 경쟁력을 갖춘 개인이 되도록 끊임없이 몰아붙여진다.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제도라면 그 제도를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환경 조건이나 문화적 전제가 어떠하냐에 따라 '엄마 됨' 더 나아가 자기이해를 다르게 경험하고 해석하므로, 사회제도적 장치들이 육아 경험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도울 일이다. '엄마 됨'이란 꼭 한쪽 성에 부과된 의무가 아닌 만큼 누구나 돌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거나, 탁아시설을 마련하는 기업에게는 혜택을 준다거나, 마을이나 지자체 별로 공동육아를 할 수 있다면, 아프거나 미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더 나아가 급진적인 대안도 내놓는데, 군대 문제가 성별 간 첨예하게 부딪히는 만큼 각자의 선택에 따라 군 복무, 공동 식사의 요리, 돌봄 등 2년 동안 공적 노동을 하는 건 어떠하냐고도 제안한다. 실현은 어렵겠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상상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되는 만큼 아예 현실성 없는 제안도 아니다.
저자 자신과 저자의 어머니를 넘어, 여러 여성들의 모성 경험을 나의 경험과 대조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안 팔릴 거지만 필요한 책이니 마음대로 쓰라'고 지지한 출판사도 멋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