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답답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여행은 그 대표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여행은 결국 자신이 떠났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영원한 자유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속세를 떠날수도 없는 일. 물론 속세를 떠난다고 모두 다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따라서 자유를 얻은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출근길 사람들로 꽉찬 지하철에서, 온갖 스트레스가 범벅인 직장에서, 온갖 잡다한 세상일에서 자유를 느끼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자유를 느낄 수 있냐구? 조르바는 바로 이런 자유를 실천한 사람이다. 일상의 생할에서 거칠것없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그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지금 이순간, 무엇인가 부자유스러운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길, 그것이 바로 자유인이 되는 지름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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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배달된 책을 봤을때 요즘의 책들과 달리 두께에...그리고 활자체가 너무 구식인것 같아 조금은 실망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잡지책에서 누군가가 추천하기를...이 책을 읽지 않고 20대를 보냈다고 할수없다길래 어떤 책일까하고 덥석 주문한 책이 "희랍인 조르바"였다. 읽으면서 도대체 어디서 그런 위대한 걸 발견하게 될지 기대하면서 읽었는데...정말 끈기를 필요로 했다. 반이상을 읽었지만 아무런 감동도 없었으므로... 더운 여름...방안에서 읽기엔 어쩌면 무료한...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조르바를 만날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 가끔 그냥 아무생각 없이 예를들어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가다가...길에서 갑자기...책 속 인물이 떠오른 다면 그 책은 정말 뭔가를 이룬 책일 것이다. 지금 세상이 너무 지루하다면... 더 지루하게 이 책을 읽어보길... 아마도 나처럼 끈기를 필요로 할 것이고 다 읽고나서는 조르바를 그리워 할것이다. 중요한 건...끝까지 읽기... 세상을 자유롭게 살다간 조르바를 만나고 싶다.그 삶의 옳고 그름을 떠나...그 느낌을 만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매순간 자문합니다. 조르바, 지금 너는 뭘 하고 있느냐? 자고있네...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너는 무엇을 하느냐? 일하고 있네...열심히 하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하느냐?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자네와 그 여자밖에 아무도 없는 거야. 실컷 키스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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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저자인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같다. 소설의 배경은 지중해의 크레타섬, 대략 20세기 초라고 한다. 35세의 작가인 "나"는 상속받은 탄광을 운영해볼까 하고 크레타섬으로 가는 도중, 운명처럼 65세의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 그를 고용한다. 원래부터 책상물림이며 부처에 심취해 있고 단테를 옆구리에 끼고 읽는 "나"와는 달리, 조르바는 석수장이, 광부, 행상, 대장장이, 전투요원, 밀수꾼 등 온갖 세상 험한 일을 몸으로 부딪치며 겪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으로 다가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경탄한다. 그는 어제 일을 후회하지도,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만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 말로 표현하는 대신 춤을 춘다. 그렇다고 조르바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나"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만물이란 모두 무슨 의미를 갖는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읍니까? 무슨 까닭으로? 그리고 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점차 조르바에 동화된다. "그는 싸우고 죽이고 사랑하면서 내가 펜과 잉크 속에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왔다"며,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한 자세를 후회한다. 조르바는 헤어지기 직전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긴 줄에 매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이를 오고 가면서 그걸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지요."라면서, 그 끈을 잘라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읽어 보았더라면 아마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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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인 조르바는 명쾌하다. 소름이 돋을만큼 단순한 논리로 기존 형식과 역사를 난도질한다.
"난 활자화된 책은 믿지 않아요. 오직 나 자신만 믿어요"
지식인이 유독 많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어짜피 활자화된 거라 자신에 대한 물음을 빼면 껍데기에 불과할테지만...
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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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저자인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같다. 소설의 배경은 지중해의 크레타섬, 대략 20세기 초라고 한다. 35세의 작가인 "나"는 상속받은 탄광을 운영해볼까 하고 크레타섬으로 가는 도중, 운명처럼 65세의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 그를 고용한다. 원래부터 책상물림이며 부처에 심취해 있고 단테를 옆구리에 끼고 읽는 "나"와는 달리, 조르바는 석수장이, 광부, 행상, 대장장이, 전투요원, 밀수꾼 등 온갖 세상 험한 일을 몸으로 부딪치며 겪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으로 다가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경탄한다. 그는 어제 일을 후회하지도,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오늘,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만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 말로 표현하는 대신 춤을 춘다. 그렇다고 조르바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나"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만물이란 모두 무슨 의미를 갖는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읍니까? 무슨 까닭으로? 그리고 왜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점차 조르바에 동화된다. "그는 싸우고 죽이고 사랑하면서 내가 펜과 잉크 속에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몸으로 살아왔다"며,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한 자세를 후회한다. 조르바는 헤어지기 직전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긴 줄에 매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이를 오고 가면서 그걸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지요."라면서, 그 끈을 잘라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읽어 보았더라면 아마 좀 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번역본에 따라서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