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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인류의 생활방식은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용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다른 이들과 만나 어울리며 지내는 것을 당연시하던 관념이 ‘비대면’으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팬데믹의 시대에는 전염의 우려 때문에 수업과 회의는 물론, 물건의 구입마저도 비대면으로 이뤄지야만 했다. 이제는 팬데믹의 우려가 사라지고 더 이상 비대면만을 강요당하지 않고 있지만, 한동안 지속되었던 문화적 관성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시대의 특징을 만질 수 없다는 뜻의 ‘언택트(untact)’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실상 다른 이들과의 소통이 문제되던 것은 비단 이 시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군중 속의 고독’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던 20세기 중반의 산업화 시대부터 통용되던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자본의 무한증식으로 인해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상대적 빈곤’이 심화되면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의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상위 20%의 사람들이 소유한 경제력이 하위 80%의 사람들이 지닌 것과 비슷하다는 ‘20/80 법칙’은 ‘10/90’을 넘어 이제 ‘1/99’를 당연시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정을 구가하던 이른바 ‘중산층’도 어느 순간 빈곤의 처지로 전락할 수 있는 세상,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가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의 변모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전제로, 철학적 질문을 통해 독자들의 현실 인식을 돕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라고 이해된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지본의 무한 증식에 있으며, 늘어난 몫의 분배 문제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전개되는 기술 발전은 ‘인공지능의 시대’를 열었고, 이제 산업 현장마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인간 대신 로봇이 그 역할을 대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며, 저자는 ‘우리가 만들어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지난 간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인공지능과 공존하기 위한 5가지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다. 이 책의 목차에서 2장부터 6장까지는 저자가 제시한 5가지 질문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질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이 철학적 관점으로 제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저자의 질문에 해당하는 목차의 제목을 제시해보기로 하자. ‘인공지능은 인류의 적인가?’(2장), ‘21세기, 자본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3장), ‘소수의 부자가 모든 걸 가진다’(4장), ‘제2 기계 시대의 노동과 빈곤’(5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2 기계 시대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6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배달이나 운전 등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자가 만들어낸 이익을 플랫폼 사업자가 손쉽게 가로채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기술 혁신을 내세운 자본가들이 그로 인해 파생된 막대한 이익을 독점하는 현상을 대중들은 그저 부러운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그 결과 디지털로 구축된 세상에서 ‘지구적 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온몸으로 겪으며, 다수의 사람들은 ‘잉여가 되어 버린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대안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일정 나이가 되면 ‘기초자본’을 제공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현실은 탐욕스러운 자본의 저항으로 인해 그러한 정책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결국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라는 당위적 선언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된다. ‘새로운 가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지면서, 책의 부제를 ‘뒤에 남겨진 우리들의 철학 수업’으로 명명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 것이 나름의 성과로 여기고 싶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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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만 책 같은 느낌입니다. 10분강의 요약대본 같아요.개인적으로 한주제에 대해 건드리고만가는 식의 책을 싫어하는데 아주 가볍게 읽을요량이라면 모를까...제가원하던 책은 아니었어요 책제목과 목차 리뷰만고른고 출간되자마자 샀는데 낚였네요 매장마다 구어체로 1장,2장을시작하며 뭘살펴보려한다며 나눈 구성도 페이지가아깝다는생각이. 더문제는 해당 장에서 뭘 생각해볼지던지잖아요 예를들에 '인간과 새로운 기계는 친구가될수있을까' 저자가 뽑은 질문도 좀 단순한단 생각뿐인데 그질문에대한생각들을기술한 본문도 다 아는얘비를 늘어놓아 답답했어요 휴ㅜㅜ 내가원하던깊이와생각할거리가아니었음 대실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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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제일 강추한다. 이 많은 내용을 이렇게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왜 열심히 일해도 점점 가난해지고, 부모보다 자식이 살기 어려워지는지, 이해안되던 거의 모든 것들이 명징해진다. 저자는 현학적이지 않고 조곤조곤 실 예를 들어 독자에게 설명한다. 정치이론이 어렵고 난해해 보이지만, 우리는 수많은 의문을 이미 알고있고, 몸으로 느끼고 있기에 저자의 설명에 탄복한다. 이래서...그래서...수많은 현상이 이해되고 본질이 밝혀진다. 정치가 더러운 것이라 외면하면 생기는 부작용에 분노하고 옆을 살피고 희망도 가지라고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그 길잡이가 되주는 고마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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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라는 아주 새로운 역사의 변환점. 이를 틈타 급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 원래 대화체? -다. 가 아니라 -요. 로 끝나는 책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편인데, 이번 책은 잘 읽혀서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은 얇지만 금방금방 읽어버리기는 아쉬운 책이라 오래두고 읽었어요. 꼭 부자가 되기 위해서,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떠한 생각과 태로를 가지고 살아야할 지 스스로, 그리고 또 같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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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당연한?것이 타인에게는 당연한것이 아니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깨닫게 되었다. 작가의 말대로 현실을 바라보니 섬뜻하지만 대책은 있더라도 지금 정치권 시민단체등은 서로 남탓만 하고 대안을 내놓치는 안아서 더 걱정된다. 무조건 상대방안은 반대만 하고 있으니~~솔직히 나 라도 이 시국에 살아남아서? 자식들에게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의 질 이상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만 간절함을 느끼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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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은 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 심리를 지녔다. 전쟁이 끝난 직후 먹고 입을 게 없었던 기억을 지닌 이들은 특히 ‘한강의 기적’을 비유적 표현 아닌 실재 마냥 떠받들며 오늘날이 진정 살기 좋다고 말한다. 같은 상황에 대한 인식이 명확히 엇갈려 신기하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헬조선’이란 표현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보여주는 방증 같다. 수치로 환산했을 때의 우리는 가난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투정 정도로만 받아들여서도 곤란하다. 가난을 측정하는 지표에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예 새로운 유형의 가난이 찾아오는 중이요,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은 이미 숨 막혀 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가난히 온다>를 읽으며 오늘날을 다시금 진단해 본다. 경제학자 아닌 철학자로 스스로를 소개한 저자의 관점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듯하다. 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창출되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은 경쟁이며, 효율성을 인정받는 건 이 사회를 살아나가기 위한 기본이다. 경쟁이 치열하다고는 하나 이는 우리 사회를 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정답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과정 우리는 모두 승자인가? 모두가 열심히 공부를 한들 일등을 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수능이 끝난 직후 극명하게 이 사실이 드러나고는 한다. 그나마 학창시절에는 예고된 시험을 치르므로 다행스럽다. 사회에서의 시험은 막무가내다. 취업을 했다고 좋아해도 순간에 불과하다. 언제라도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하루 근무를 마치고 어학 학원 등으로 달려가는 직장인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 마흔이면 아직 한창 일할 때이지만, 마치 ‘돈 먹는 하마’라도 된 것처럼 여겨지고, 끝내는 권고사직이나 해고 등의 끔찍한 결말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런 지적과 저자의 관점은 맥을 같이 한다. 가난을 체감하는 인원이 점차 증가하는 까닭은 성장의 과정에서 ‘사람’이 배제되어서다. 이는 새로운 성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난이다.
발전은 분명 화려했다. 잊고 지냈는데, USB가 패션 아이템처럼 각광 받던 시절이 글을 읽으며 떠올랐다. 그 땐 정말 목걸이마냥 USB를 목에 걸고는 다녔다. 10GB도 되지 않는 미천(?)한 용량은 동영상, 사진 등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법하나 그땐 최고 사양이었다. 인공지능(AI)는 또 얼마나 위대한가. 평생토록 몰입을 해온 인간을 상대로 신승을 거두는 알파고로 인한 충격은 상당했다. 상황이 꼭 극적일 필요는 없다. 홀로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집집마다 놓인 AI는 고독사 예방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 중이다. 선한 의도로 기술이 사용된다면 오늘날의 풍요는 날개를 달 수도 있겠으나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전쟁 또한 기기를 대하는 윤리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인류는 신자유주의를 겪었다. 이런저런 정책을 취해가며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래한 이 기조는 상위 포식자가 없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괴물과 닮은꼴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숱하게 구제하는 것보다는 부유한 한 명에게 모든 걸 몰아주는 게 이 체제에서는 더 효율적이다. 경제를 걱정하며 도덕적 해이를 범한 끝에 무너지고 있는 기업들을 향해서는 구원의 손길을 뻗는 국가의 모습이 말해주는 바가 무어겠는가.
살아 있는 이상 살아가야만 하므로, 전통적인 직업 사회가 붕괴하자 사람들은 색다른 직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일할 수 있는 사무실이, 일할 때 필요한 도구가 주어지는 형태가 지난날의 일자리였다면 이제는 모든 걸 스스로 준비해야만 한다. 생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므로 한정적 자원을 나누어야 한다는 공유의 취지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소일거리나 취미생활이 아닌 생업 차원으로 이를 여기는 이들에게는 그저 잔인할 수도 있다. 그들은 어디에도 고용되지 않았다. 그들의 자유로운 삶은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음을 뜻한다.
나이가 젊을수록 개혁적이라는 말이 거짓처럼 여겨진다. 젊은이들이 나서서 보수라 일컫기도 민망한 극우파에게 표를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개개인의 능력을 폄훼한다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무엇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사람들은 진실로 알려들지 않고 있다. 잘난 나는 이 세상에서 홀로서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선언이 언제까지 유효할까. 지금은 승자 같은 나일지라도, 이미 무너져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감을 감히 우리가 다스릴 수 있겠는가.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
엄정한 선언 앞에서 나는 입술을 앙다문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나의 걷는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그럼으로써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하늘과 바람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 계절이 뒤바뀔 적이면 어김없이 내 코끝을 파고들 꽃내음, 풀내음에 향긋하게 취해가며, 그렇게 ‘우리’가 되어 이 지독한 부와 가난을 뛰어넘을 수 있길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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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이미 로봇세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죠. 우리도 곧 그럴 겁니다. 인공지능이 무섭게 다가왔잖아요.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 top 상위권에 판사, 변호사, 의사 있다는 거 아십니까? 그으래? 그럼 단순직업은 괜찮은겨? 무슨 말씀을. 제조업의 단순조립 등 단순업무는 이미 무섭게 대체됐고 지금도 되고 있습니다. 대신 로봇세 거둬서 기본소득으로 준다잖아요 그럼됐지. 그래요? 나는 일하고 싶고 일을 통해 승진도 성공도 자아완성도 하고 싶은데 그걸 거절당하면 어떤 심정이 될까요? 리들리 스콧이 이미 40년 전 영화를 통해 그려졌던 어두운 골목이 다가왔다니까요. 일하고 싶은 내게, 일을 통해 성공과 성취를 하고싶은 내게 고용주는 이럴 거라니까요. ' 아 괜찮습니다. 제게는 로봇이 있어요. 사람보다 실수도 없고 더 좋은 건 뭔가 요구를 하지않는 로봇이 있단 말입니다. 돈을 버셔야 한다면, 정부에서 내가 낸 로봇세로 당신에게 기본소득을 줄 거예요.' 이봐요, 내가 필요한 건 돈보다 일을 통한 자아성취라니까요. - 아니 그건 당신 사정이고. 난 필요없어요. 약간 다른 얘기로 샜습니다만, 김만권 작간는 따뜻한 문체로 우리에게 인공지능에 밀려날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죠.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일자리에서, 따뜻한 집에서 밀려나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할 겁니다. 로봇세를 거둬서 기본소득으로 빵은 먹을 수 있게 한다고 해서 될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인공지능은 우리 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친구가 되기는 어렵겠죠. 그렇다면 밀려난, 남겨진 사람들의 친구는 누가 돼야 할까요? 나와,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더욱더 인간이 온기가 사라져갈 세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마음마저 없어진다면, 그건 인공지능이 지배할 세상의 가장 큰 공포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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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노멀 :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이 일상이 되는 것. ? 아폴로 11호 우주선에 탑재된 컴퓨터의 성능은 고작 a4용지 3장 정도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를 가졌었다. 현재 스마트폰의 성능은 그 컴퓨터를 훨씬 뛰어넘는데 이로 인해 우리 스마트폰으로 아폴로 11호를 우주선에 보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 전통적인 관점의 자본은 생산수단의 소유로 표현되어왔다. 예를 들어, 택시 회사라고 하면 생산수단인 택시를 소유한다. 하지만 현재의 자본은 생산수단의 소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례로 플랫폼 기업이 있다. 페이스북은 여러 컨텐츠가 있는 플랫폼 기업이지만 이들은 어떠한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단지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컨텐츠를 통해 수익을 거둔다. 에어비엔비도 숙박 업소지만 어떤 숙소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핵심역량약화 전략)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하여 사유하는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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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상반되는 현상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정말 힘들다고, 이보다 더 살기 어려운 시절은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거 5년 전,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들의 벌이는 분명 지금이 더 풍족하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소유했으며, 배움의 수준 역시도 그 시절에 비하면 더 높다. 어느 말이 사실일까, 이 즈음이면 헷갈리기 마련이다. 놀랍게도 이 중 거짓은 없다. 양측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다. 서글프게도, 풍족함 속에서도 우린 결핍을 맛보고 있다. 왠지 어떠한 짓을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날은 없으리라는 회의적인 생각에 빠져들 것만 같다. 가난을 논하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남 이야기를 접한 양 굴었다. 내 스스로 느끼기에 결코 부유하진 않지만, 책에서 접할 수 있는 많은 사례는 종종 내 삶과 동떨어진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난 쪽방촌에서 생활해 본 적도 없고, 어마어마한 학자금을 갚느라 숨 막히는 처지도 아니다. 게다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기까지 하다. 시원찮은 금액을 매달 벌어들일지라도 내 처지에서 가난을 안다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만 같다. 책은 과거보다 얼마나 더 가난해졌는지를 논하지 않았다. 숫자로 접하는 명쾌함보다는 문자로 접하는 치밀함에 중점을 둔 듯했다. 등장한 화두 역시 조금은 낯설었다. 가난을 논하는데 인공지능이라니. 이는 핑크빛 미래를 언급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다룬 소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내 수긍하게 됐다. 과거엔 인간이 일일이 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이 기계의 몫이 됐다. 컴퓨터나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것처럼 복잡한 일이라든가, 수술과도 같은 고도의 정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물론이요, 적잖은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어설 적마다 사람 아닌 기계가 우릴 반긴다. 이에 익숙잖은 세대가 점점 더 소외를 겪으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나이뿐만 아니라 평소 기계를 다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저소득층도 같은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더불어, 기계로 인해 일자리에서 밀려난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기계가 아니었더라면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았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대체 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을까. 최근, 특히 코로나19로 급증한 특수한 직종에 대해서도 저자는 언급했다. 자본주의의 폐해 해소 방안으로 떠오른 공유경제와 각종 택배, 음식물 등을 배달하는 업종은 여러모로 독특했다. 우선 공유경제 분야의 경우,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회사는 차량이나 숙박시설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다. 그들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챙긴다.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개인사업자다. 좋게 말하면 사장님이지만 각 플랫폼이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분명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그들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오토바이를 마련하고, 수시로 기름을 채우고, 배달 도중 다쳤다면 어떠한 보험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데다가 일마저 하지 못해 수입이 바닥으로 떨어지고야 마는 불안한 상태를 오늘날 노동자들을 경험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입장에서 저축은 요원하다.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자산의 취득 및 증식을 위한 어떠한 에너지도 그들에겐 남아 있지가 못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가난할 운명에 놓여 있다. 끊임없이 일을 함에도 가난하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게으르지 않건만, 사회는 개개인의 가난은 개개인의 게으름 탓이라고 말한다. 극소수의 부유한 층이 사회 부의 대부분을 거머쥐고 있다. 그들의 소비가 곧 사회 전반의 소비다. 굳이 가난한 이들을 고려해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없다. 부유한 이들만으로도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를 위한 소비력은 얼마든지 창출된다. 부모세대, 그리고 오늘날 젊은 이들이 한 때 누렸던 안정적인 삶을 가능케 한 정책이나 정치적 집단에 대해 젊은이들은 더 이상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과 귀는 이미 멀어서 진정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세력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미국 최악의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당분간은 유지할 트럼프 또한 그래서 당선될 수 있었다. 평등을, 복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나와는 동떨어진 엘리트로 비춰질 따름이다. 차라리 내 능력을 인정해줄 인물에 그들은 더 끌렸던 것이다. 수많은 문제의 해결책인양 언급되는 많은 대안들을 살펴보면 결론은 각자도생이다. 뭔들 상관없다, 나만 잘 살 수 있다면. 오로지 나만 돌보는 와중에 우리는 다 함께 가난해지고 있다. 몸만 가난해져도 서글픈데 마음까지 메마르고 있다. 연대, 연대, 또 연대. 왠지 80년대 구호 같이 느껴진다. 더구나 전파력 출중한 코로나19로 만나지도 말라는 시대에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할 타인을 구하라니, 시대 착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문득 노숙인들의 삶을 뒤흔든 게 몇 푼의 돈은 아니었음이 떠오른다. 그들의 마음을 살찌운,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선물한 건 다름 아닌 인문학이었다. 무모함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믿음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가난에 대응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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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하는 세상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책입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종류에도 컨시어지 노동자, 클라우드 노동자 등의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혜택을 누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기술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모두가 함께 혜택을 보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