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한국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의 지급 여부와 관련하여 논쟁적 갈등이 첨예하다. 수구집단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마치 기본소득을 자신들이 베풀지 말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저자 '콜린 크라우치'의 지적처럼 '복지 동냥'이라 이해하는 이러한 착오적 망상에는 시민의 헌법적 권리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훼손의 저의가 스며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선언하려는 '사회적 유럽'으로의 복귀를 막고 있는 이기심과 혐오에 터 잡은 탐욕의 민낯이다.
'사회적 유럽'이란 "급진적 재발명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복지국가 전략 강화(16쪽)"의 의미를 지닌다. 모든 걸 시장(市場)의 논리로, 즉 시장이 인간사를 지배하여야 한다는 교리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사리사욕에 집착하고 분배 요구를 외면하며 불평등 증가를 기업가 정신의 보상이라고 까지 하는 반동적 수구성으로 퇴화하는 세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이다.
A. 코로나 팬데믹이 알려준 교훈들 - 인간사회의 상호의존성
COVID-19가 지구촌을 휩쓸며 우리에게 인상깊은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줬다. 이 재앙적 전염병이 창궐하자 "경시받고 심지어 혐오와 경멸을 당하던 간병인, 쓰레기 수거인, 보안 요원, 배달 기사 등 저임금 노동자들이 맡은 중요한 역할(15쪽)"이 드러났다. 사람들의 가치를 시장에서의 성과로 평가하는 사회질서의 부도덕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또한 우파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한 미국,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일본, 브라질 등이 방역에 실패한 주요 국가였으며, 시장이 모든 걸 지배케 한 결과로 방호 장구, 인공 호흡기, 기타 의료 제재에 대한 대량 수요 조달의 실패는 물론 진단과 병상 연계의 혼란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무참하게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곤 강력한 국경, 자급자족 사회로의 회귀등 인종적 계급적 차별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협력과 공유를 위한 요청들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백신 투입이 이루어지고 집단 면역 형성의 시기가 가까워오자 다시금 재분배 정의, 노동및 인권에 대한 제고,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대처 조치등을 언제였더냐는 식으로 내던져 버리고 수익성(성장) 논리를 앞세워 기업과 부자들의 세금 감면 정책을 흔들기 시작하고 있다. "소비자, 노동자, 일반 대중의 이익을 자신들 주주를 위한 이윤 우선의 정언명령에 종속시켜야 한다(24쪽)"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COVID-19가 인간 사회의 상호의존이라는 가치를 각성케 하였음에도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자들은 인간 협력 영역의 확장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구성원 간(계층 간)의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며 반(反)평등주의와 계급(층)주의와 인종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이 보수주의와 반평등주의의 냉소적 동맹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수구세력은 인간 행동의 매우 강력한 동기인 이기심과 혐오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 옹호함으로써 대중을 효과적으로 흔들어 대고 있다. 오늘 우리 일반 대중들은 선택의 갈림 길에 있다. 선린 의식과 상호의존성의 가치, 불평등 해소의 절박감인지, 아니면 사회적 배제의 강화, 시장 이익의 극대화를 향한 경쟁과 탈 규제가 초래하는 극단적 양극화의 세계인지를.
B. '사회적'이라는 의미 - 복지 국가 전략을 위해서
이 책의 표제인 유럽을 수식하고 있는 '사회적'이라는 의미가 모두(冒頭)에서 언급하였듯이 '복지 국가 전략'으로서의 의미임은 물론이거니와 역사적으로 새길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은 1993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조약 사회적 장(Social Chapter)에서 "사회적 유럽 건설을 목표"로 하였으며, 2017년 11월 17일 EU의 대표기관인 유럽위원회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유럽 사회권 기둥(European Pillar of Social Rights)'으로 "기회 균등, 노동 시장 평등 접근, 공정 노동 조건, 사회 보장 등" 사회적 기본원칙을 선언 했으며, EU 회원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는 다시금 포용과 협력의 사회적 유럽 건설을 확인하였다.
이렇듯 책의 표제인 '사회적 유럽'이란 표현은 이미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는 그네들이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합의의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오늘 거듭 선언하는 이유는 이들 앞선 조약과 선언을 거부하고 포퓰리즘에 의한 퇴행적 그림자가 유럽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힘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인간적 삶이 들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이기심과 혐오가 지배하는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중의 도덕적 합의가 부정되는 세계는 인간 삶의 걷잡을 수 없는 파괴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 선언의 실천 과제는 무엇이어야 할까? 우리들은 어느 정책 집단에 투표를 해야하나? 무엇이 진정 국민 대중의 삶을 위한 선택이어야 할까
콜린 크라우치는 이를 방해하는, 즉 경제권력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용되는 것과 세계화를 인간의 통제 아래 두려는 도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의 제거를 통해 사회적 민주주의가 실현 될 수 있으리라 역설하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인종, 계급주의로서의 차별과 배제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를 인간적 삶을 파괴하는 두 망령(유령)으로 지목하고, 그 실천 방안으로 세계화의 개혁, 금융 자본의 규제, 물질적 불평등 감소를 위한 노동자들의 안전한 삶에 대한 요구와 조화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 유럽연합의 회원국들과 같이 한국 사회 역시 이미 "구조적으로 결정된 친(親)시장 성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 현상들 또한 그리 다르지 않기에 오늘 한국의 시민 대중에게 이들 실천 과제의 설명은 중대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C. 멈출 수 없는 시장 확대와 세계화 추구, 그리고 공공성의 내재화를 위해
크라우치는 세계화를 중단하고 국경을 걸어잠그자거나 시장 메커니즘을 부정하고 시장 억제 정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 범위의 적극적 확대라는 세계화를 추구하며, 광범위한 시장 추구를 주장하기까지 한다. 다만, 이미 드러났듯이 시장 자체만으로 인간 삶, 사회 안전망에 뚤려있는 수많은 틈을 메꾸지 못하기에 공공 정책으로서 기반시설(운송망-물리적인 것, 직업 훈련-인간적인 것)과 효율적 규제의 리드가 필요하며, 적극적 정책 개발을 통해 세계화를 인간의 통제아래 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상충하는듯 보이는 시장 규제와 광범위한 시장 추구를 통한 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마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써 "기술적 토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논의 과제로 격상되어 제안"되는 '표준 설정'은 시장 범위의 효율적 규제와 시장 우위확보를 동시에 아우르는 돋보이는 안목이라 하겠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 표준으로 시장 우위 선점을 경쟁한다.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가 국제 표준을 확보한다는 것은 자기의 규범이 시장 규칙이 됨으로서 지배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 설정'은 여기에 내부 품질 표준, 노동 환경 품질 표준을 추가하여 더 강력한 표준 설정 제도를 국제 규범화하자는 것이다. 표준 설정 자체에 인간 삶의 안정성과 환경 보호 규제가 내재되어 시장의 자율적 움직임에 억제와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이다. 이러한 권위를 지닌 표준 설정은 기업이 규제에 취약하지 않게 되며, 표준 달성을 위한 가격 상승은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등 상품, 서비스 생산의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를 이끌기도 한다. 해양 환경 규제에 따라 디젤 추진 선박에서 LNG추진 선박으로 선박건조 주문이 이동함에 따라 기술을 선점한 한국조선업체가 시장 지배자가 된 것이나. 내연기관에서 전기 배터리로 이전하는 자동차 설계, 제조부문의 표준을 선점하는 것은 이의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이에더해 표준 설정은 규제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산업투자를 억제 할 수 있으며, 산업 노동자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즉 확장된 상품, 서비스 표준 설정은 부정적 제재가 아니라 시장이 결여하고 있던 공공성을 내재시켜 차원 높은 시장 제도가 될 수 있다.
COVID 팬데믹은 배제와 차별, 불평등의 구조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냈다. 능력주의라는 허구적 발상에 뿌리박고 도덕적 외피를 입은 가치는 불평등의 정상화라는 기이한 현상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제 2 기계시대로의 급속한 진행은 플랫폼 노동과 같은 합법적 노동착취의 토대가 되고, 노동자들은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노동형턔로 내몰릴 뿐이다. 그마저도 많은 일자리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 취약 상태에 노출된 불안정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을 때 사회는 이들에게 더욱 관대해 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인간 사회가 마땅히 취할 의무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보수 집단은 실업수당 지급자격을 까다롭게하여 그 규모를 줄이려고 친기업적인 황색신문들을 동원한 프로파간다로 왜곡, 보편적 복지의 취지에 역행하려한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노동 현장은 월 단위 계약에서 최장 1년 계약을 통해 쉬운 고용과 해고라는 노동수급의 유연성만이 활용되고있는 현실이다. 5년내 3회이상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업급여 수급을 제한한다는 발상은 1년에도 수 차례 일자리에서 퇴출당하여야 하는 열악한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악행이 되고만다. 이러한 상황에 약삭빠르고 게을러빠진 인간들이란 굴레를 씌우는 자본축적의 탐욕에 눈 먼 자들의 편협성은 폭력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기심과 배제와 혐오의 세계가 아니라 포용과 협력, 모든 인간이 좋은 삶을 함께하는 세계를 위한 길은 항상 열려 있다.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시민 대중의 몫이다. 지배 기득권자의 시선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적 시선, 수 많은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볼 수 있을 때, '사회적' 가치가 우리들을 보호할 수 있다. 시장도, 세계화도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바로 그 길을 밟아나가게 해주는 안내자이자 조언자라 하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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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에 관해서 제가 가진 감정은 사실 잘 이야기 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간간히 한 가지 이야기 하곤 하는데, 일단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일단 이야기 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평가를 하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유럽은 정말 누가 보기에도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타 인종에 대한 혐오가 계속되고 있고, 소위 말 하는 빈부 격차로 인한 분노도 게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코로나 상황으로 이해서 정부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마스크 쓰기 싫어 하는 사람들 마저도 줄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까지 합니다. 이쯤 되다 보니 정말 사회에 관해서 그저 불만만이 그대로 쌓여 있는 상황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이로 인해서 오히려 정말 파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좀 재미있게도, 이 문제에 관해서 단순히 돈이 최고라는, 그리고 자유가 무조건적으로 최고라는 일종의 망령과도 같은 지점들이 같이 움직이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특성은 결국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결합하고, 여기에 온갖 민족주의적인 면이 결합함으로 해서 점점 더 파괴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것들에 관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유럽이 점점 더 극우화 된다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현재 유럽에 대한 상황을 설명 하면서 비난 하는 것도 사실 매우 쉬운 일이고,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에 관해서 찾기 위해 지금의 상황을 일으켰다고 유럽인들은 생각하니 말입니다. 실제로는 그냥 자신들이 억눌리고 있다는 매우 간단한 생각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결국에는 이 문제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다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정말 인간으로서 무엇을 더 내세워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나오고 있죠.
이 책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그 생각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그냥 유럽 내에서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정말 절대 다수가 잘 살기 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잘 산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금전적인 풍요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과 사회적 삶의 질이라는 지점에서 역시 모두 이야기를 하는 것들입니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들에 관해서 일정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고, 이 문제에 관해서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 책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 선언이라는 이름을 쓴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정말로 선언이기 때문이죠. 현대 유럽이 가지고 있는 병폐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고, 이에 관해서 사람들의 삶이 정말 나아지기 위하여 진정으로 내세워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이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에 과해서 굳이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누구라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기 단순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뒷전으로 미뤄버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책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매우 간단합니다. 현재 사회 시스템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손상 되었는지, 그리고 이 속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속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 하게 됩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회 정책을 통한 안전망 강화를 통해 사람들이 모두 일정 이상 살게 만들어주느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이 속에서 유럽의 표준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에는 품질이 아닌 공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재미있게도 환경과 기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에 관해서 분명히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 이상의 노력을, 지금 모두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역설 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 외에도 세계화에 대한 지점을 이야기 하면서, 세계화가 단순히 시장 차원의 통합이 아닌,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임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안전과 사람들의 불평등 해소, 그리고 사회적인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인간 사회가 단순히 정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정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이를 통해서 정말 다양한 면들을 드러내고 있기에 책의 재미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임을 결론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장 자체가 매우 일관되고 있고, 이미 알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이야기를 제대로 끄집어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재미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 책에서 가져가는 이야기에 관해서 정말 쉽게 받아들일만한 상황이 된 겁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그 책이 돈을 벌기 위해서 그냥 대충 쓴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부러 잊어버린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 해서, 당신들이 일부러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일침을 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이 가져야 하는 다른 인간에 대한 존중과 행복에 대한 면모를 이야기 하고 있고 말입니다. 한 번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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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유럽 선언'. 유럽은 국가를 초월하여 '유럽 연합'으로써 대륙간 화합을 최초로 이룬 곳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사회적' 이라는 말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적 유럽' 에서 점점 벗어나는 양상을 보이는 유럽 내 정치 및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에 대한 제언을 담은 책이었다. 짧고 자그마한 책이지만, 다소 깊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금방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대학교 때 들었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교양 강의도 생각이 나면서, 유익한 독서 시간이 되었다. -
1. 사회적 유럽의 쇠퇴와 민주주의의 파편화 "두 개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장은, 사회적 유럽이 쇠퇴하게 된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두 장애물은 팬데믹 이전부터 유럽에 있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등장 이후 표면적으로 드러났다. 재난상황에는 강력한 공공 보건과 집단 서비스의 필요성, 공익을 위한 시민 활동이 필요했으나, 이 두 장애물은 반대의 성향을 지녔다. 첫 번째 원인은 신자유주의이다.가능한 기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이 인간사를 지배해야한다는 독트린은 불평등 및 국가간 배척을 증가시켜왔다. 이는 이기심을 조장시키고, 각자 경쟁하여 개별 국가들 간의 게임이 되기에 초국가적인 협력 및 행동은 불가능하다. 이 교리는 1990년대 매우 인기가 있었고, 가장 큰 대항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조차 많은 부분들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경제위기가 터지자 책임을 안았다. 두 번째 원인은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이다.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잘 어울린다. 저자는 이와 함께 민주주의의 파편화로 인하여 협력과 포용 및 사회적 유럽 프로젝트의 주요 옹호자였던 정치 세력인 사회민주주의가 선거에서 나약하며, 떠받들어줄 강력한 세력이 없다면 이념을 성취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2. 유럽 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수용에 대한 투쟁 유럽 정책 결정자들은 흔히 시장과 공공정책 조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두 개가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20세기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시장의 강화에는 그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할 공공정책이 필요하다, 시장에 대한 방어에서 더 나아가, 시장의 요구는 공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다. (ex. 기반 시설, 규제체계) 저자는 유럽 정책 결정자들이 이러한 것들이 국가 간 협력에 의해 달성되고 있다는 것을 외쳐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 3. 사회적 유럽의 확대와 표준의 역할 저자는 사회적 유럽으로의 복귀 필요성을 주장하며, 다음 다섯 가지 해결 과제를 제시한다. 환경 훼손과 기후 변화에 대한 투쟁, 세계화의 개혁, 금융화된 자본주의 규제, 물질적 불평등 감소, 경제 변화와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요구 조화 (+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 여기서 '표준 설정' 관련된 말을 하는데, 제품 그 자체의 품질을 중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공정 그 자체(노동 환경)의 표준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이었다. -- 저자는 전반적으로 '사회적 유럽'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배제가 아닌 포용의 방향으로 정책을 구성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도좌파인 사회민주주의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사회적 유럽'은 1980년대부터 추진되어왔지만 강력한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좌초되었다. 이는 팬데믹 상황에서 다양한 혐오와 배제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불평등 등의 부작용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주의자, 환경주의자, 그리고 사회적 자유주의자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진보적 연합을 구축해야한다고 말한다. --
Better together, Hope not hate!
* 본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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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와 외국인을 혐오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등장이 유럽을 배회한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20세기 초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이후 사회주의가 유럽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할 무렵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2개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는 말을 인용하여 현재 유럽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의 무력함을 극복하기 위해 포스트 민주주의로서 새로운 사회주의의 필요성에 대하여 논거를 제시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사회주의적 주요 관점은 기후 변화 대응, 부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금융화된 자본주의 규제와 불평등 축소,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시대에 대비한 노동의 미래 조화, 코로나19에서 드러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강화 등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유럽연합 차원의 정책 수립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 집약적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 세력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독자생존의 길을 선택한 이면에는 영국 거대 자본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렇듯 자본에 의한 자유방임주의적 경제는 통합보다는 각자 도생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에 낙오된 지역과 국가, 자본의 영향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거대 자본과 연결되어 있는 개인과 단체들은 그들만의 집단적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자들과 결탁하기 쉽거나 동조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다소 확증편향적인 논증이긴 하나 가능성은 높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신자유주의적 성향의 자본 집약적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면 전 세계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저소득 국가에 대한 지원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세금정책에 반대할 것이고, 이것이 민족주의자와 맥을 같이 할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사회적 유럽 선언'은 20세기 초반의 사회주의가 쇠퇴하고 민주주의가 유럽을 이끌어 같지만 경제성장의 정점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자본 경제의 문제점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민족주의의 당황스러운 움직임들을 살펴보고 유럽연합이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여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사회주의적이라는 텍스트에 다소 거부감도 있었으나, 환경문제, 양극화, 저소득층의 복지 등 당면한 우리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심리를 자극하여 공동체 삶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협력과 포용의 중요성에 대한 맺음말로 부상하는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저항하자고 주장한다. 100년 전 유럽에서 전 세계로 확산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일방적인 억지 사상을 펼쳐가면서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가시밭길을 걸어가도록 했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처럼 협력과 포용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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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었던 책들 중 어렵게 느꼈던 2권 중 하나, ‘사회적 유럽 선언’.
유럽과 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많은 경제가 황폐화된 추세에서 코로나상황을 계기로 드러난 유럽 내부의 인종차별과 노동자 문제 등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가 에 대한 제안에 대한 글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신자유쥬의와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의 계속되어온 성장을 꼬집었고, 이제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유럽의 복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혹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가면 무조건 나쁘다고 고정관념이 자동으로 작동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불평등과 불가역적인 상황이 많아진, 신자유주의의 극점에 다다른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적용이 있다면 바로, 공생을 기반으로 하는 이런 내용들이다.
_불안정한 노동의 사용자들에게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많은 미숙련 인력에게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주는 저소득층 일자리 제공 기업들을 좌절시킬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성이 과장된 주장이다. 단지 재정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열악한 고용 조건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역 인센티브에 즉각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_p113
_요점은 노동 인구가 개방적 노동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하면서도 다양한 형태의 국가 지원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의 규범적 기반은 시민권 자격이지, ‘복지 동냥’이 아니다._p107
_오늘날의 사회투자복지국가 옹호자들, 특히 안톤 헤이머레이크는 오래된 위험 정책에서 새로운 위험 정책으로의 비용 중립적인 전환이 아니라 통합적인 접근법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경제적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적 지출은 투자로 간주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보호를 희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귀중한 통찰력은 남아 있다._p107 108
어려운 전문용어와 다소 과격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거친 저자의 주장이 느껴지겠지만, 핵심을 잘 짚어야만 한다. 최근 코로나이슈로 더 가속화된 환경보호에 관한 자각, 공존에 관한 문제,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필요성 등과 이어지는 복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경제학 관련해서 현 이슈를 더 깊이 있는 도서로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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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받아 보고 놀랐던 점은 책의 판형(크기)이나 페이지 수(두께)에 비해 정가의 표시를 보고서 였다,
요즘 문고본의 보편적인 정가가 이 정도는 할까요,,, ? 물론 책의 정가란 것이 단지 외형적인 부분만을 고려해서 책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만한 베스트 소설 작품 정가와 맞먹는 듯 하여 저으기 놀랐다,
그래도 책의 내용이 가진 묵직한 주제 논변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놀랄만한 정가는 또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각설하고, 이 책은 포스트 민주주의란 개념과 함께 유럽정치에서 비교 유럽사회학과 산업관계, 경제사회학과 당대문제 등을 연구하는 콜린 크라우치 교수가 유럽 사회의 오늘을 진단하여 그 해결책으로 유럽 사회 연합을 향하여 기치를 내세운 [사회적 유럽 선언] 이다,
생각보다 난해했던 유럽 정치 이야기나 논변들이 있었으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기본 주제 의식을 염두에 두고 읽어 나간다면 책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없을거라 믿었다,
세계화가 사회 내부의 불평등을 증가 시켰지만 사회 간의 불평등을 감소시켜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사이의 격차는 줄어 들게 했으며 이러한 세계화를 더욱 길들여서 경제적 권력이 더 광범위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규제와 공공정책을 통해 그것을 인간의 통제 아래 두기를 요구해야 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듯 그의 거대 담론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럽 사회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각종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 희망적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단초로서 새겨 둘만 하지 않나 싶었다,
특히 코로나가 도래하기 훨신 전부터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두 개의 유령, 즉 사회 진보의 장애물이라는 '신 자유주의'와 '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의 해결책으로서 제시한 사회적 유럽의 복원 선언은 이 책의 핵심 주제 로서 미래에 심화될 소지가 있는 각종의 세계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 되는 이론으로 제시되고 있다,
중도 좌파인 사회 민주주의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프로젝트로서 사회적 유럽은 환경훼손과 기후변화에 대한 투쟁, 세계화의 개혁, 금융화된 자본주의 규제, 물질적 불평등 감소, 그리고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의 미래 조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 복원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의 표준 설정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함께 하면 더 좋고 Better together 혐오가 아니라 희망 Hope not hate 적인 내일의 세상을 위하여,,,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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