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나는 책이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놀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놀아야할 것들이 많아선지, 자극적인 볼거리가 많아선지 다른 즐길 것들에 눈길을 돌린다. 그럼에도 공부는 해야 하고 문학을 알아야 하니 때론 아이들은 죽을 맛이다. 지금의 정서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상 할래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제법 많이 있으니 아이들 입장을 이해 할 수 있다. 이청준 단편 집 ‘선생님의 밥그릇’을 읽다보면 부모인 나는 충분히 이해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슬픈 눈물을 흘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 입장은 다를 것 같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다는 이청준 작가의 단편들. 누군가는 가슴이 먹먹해 눈물이 날 수 있지만 음... 아이들 입장에선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겠다.
첫 번째 단편 ‘나들이 하는 그림’은 화가 이중섭 선생이 첫째 아들을 잃고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사실을 이청준 작가가 소설화한 작품이다. 두 번째 ‘별을 기르는 아이’는 홀어머니와 사는 순희는 엄마가 아프자, 엄마별이 희미해 진 것을 의사 선생님이 볼 수 있도록 선생의 집 유리창을 닦는 이야기다. ‘선생님의 밥그릇’은 전란 후 궁핍한 생활 속에 살던 지방 도시 중학교가 배경이다. 선생님은 간혹 아이들이 싫어하는 청소 당번을, 벌칙으로 충당했는데, 도시락 단속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도시락 검사가 문상훈의 상처가 되었고 선생님은 그 후로 자신의 밥그릇의 절반을 덜어 놓고 먹기 시작했다. ‘그 가을의 내력’사춘기에 들어선 석구와 금옥이 미워하면서도 다가갈 수밖에 없는 오묘한 심리를 그렸고, ‘어머니를 위한 노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서울로 돈 벌러 간 아들이 30년 만에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른들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그랬었지를 연발할 수 있겠지만 요즈음 청소년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허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들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지금과는 다른 사람들과의 정과 사랑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의 아이들이, 부모들의 사랑이 그때와 다르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사건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짐을 느낀다. 아이들이 이런 소설을 읽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왜 그렇게 공감이 되지 않는지 짚어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훗날 50년이나 100년 쯤 뒤에 아이들 교과서에 실릴 작품들은 무엇이고 그 작품들은 언제까지 읽혀지게 될 것인지. 세상이 변하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의 문학 작품들도 달라질 것이니 어떤 것들이 수록 될지 상상하는 것도 즐거움이 될 듯하다. 50년 후의 아이들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공감하지 못하고 지루하게 느끼게 될 지도 모르니까. 우리의 예전 생각을 하면서도 달라진 지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이나믹한 세상에서 변화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우리들. 문학작품은 그 시대상을 이야기 한다고 했던가? 예전보다 잘 살게 된 것은 맞지만 마음까지도 잘 살고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
|
도서관에 가서 읽을 책을 고르려고 서성이다가 문득 나의 눈에 한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제목이 ‘선생님의 밥그릇’이었다. 여러가지 짧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묶여진 책이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별을 기르는 아이’였다. '별을 기르는 아이’라는 내용은 병든 어머니와 딸 순희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머니와 순희는 별을 기르고 있었다. 하늘의 별을 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걸 뜻하는 것 같다. 산 높이 있는 순희네 집에서는 창가에서 별을 잘 볼 수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병이 나서 순희는 의사 선생님 댁에 갔지만 의사선생님은 계시지 않고 바쁘신 탓인지 창문이 깨끗이 닦여 있지 않아 창문만 열심히 닦고 돌아왔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고 창문만 닦고 돌아왔다. 어느날 순희가 의사 선생님을 찾았을 때 창문앞에 돈이 조금 놓여 있었다. 창문을 닦아준 보답으로 놓아 둔 것이었다. 순희는 그 돈을 들고와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안된다고 하시며 도로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다. 순희는 추운 겨울날, 눈을 헤치며 그곳까지 가서 돈을 다시 가져다 놓았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엄마를 위해서 추운 날인데도 열심히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고, 창문을 닦고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는게 정말일까? 순희가 그 돈을 다시 가져다 놓고 돌아오는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보시고 의사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치료하러 와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순희가 매일 찾아와 창문을 닦았다는 말도 어머니께 해주셨다. 나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순희와 어머니 별이 영원토록 오래오래 빛났으면 좋겠고 건강하고 예쁘게 반짝이는 순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인상깊은구절] 얼핏 들으면 무슨 선문답 같은 주고받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 곡절을 알게 되어JT다. 동시에 그 시절의 또 다른 기억 한 가지를 떠올리고들 있었다. 다름 아니라, 그 시절 선생님은 우리들이 싸 온 점심 도시락 단속에 유별나게 더 열을 올리고 계셨다. 거의 종례 시간마다 도시락통을 검사하여 점심을 거른 아이들에게 그 벌로 청소를 떠맡겨 버리곤 하셨다. |
| '선생님의 밥그릇'은 200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은 중견 작가 이청준의 삶과 사랑, 희망, 예술 이야기와 강우현 화백의 멋진 그림이 조화를 이룬 감동적 작품이다. 죽은 아들을 위해 아들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주는 화가 아빠의 자식 사랑 이야기(나들이하는 그림), 아픈 엄마를 고치기 위해 의사 선생님 집의 창문을 말없이 닦으며 선생님이 별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가난한 아이이 부모 사랑 이야기(별을 기르는 아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제자를 위해 37년 동안이나 자기 밥의 반씩을 덜고 드시는 선생님의 제자 사랑 이야기(선생님의 밥그릇), 석구네 개 베스와 금옥이네 개 누렁이의 싸움을 통해 고된 삶과 또래 아이들의 심리를 그린 친구 사랑 이야기(그 가을의 내력), 가난 때문에 아들을 진학시키지 못한 엄마가 가출한 아들을 30년간이나 기다린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어머니를 위한 노래)... 이 작품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과 사랑 이야기다. "이제부터 나는 매끼 내 밥그릇의 절반을 덜어놓고 먹기로 했다... 누가 너를 위해 늘 자기 몫의 절반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제자에게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내가 잘되기를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 삶은 큰 위안과 용기을 얻게 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 이 책은 초등학생을 위한 책이다. 제목과 부제만 보았을 때 이 책을 이청준씨의 팬이 선택했다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속을 한번 펼쳐본다면 금방 아동용 도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읽기 쉽게 활자도 크고 그림도 알맞게 들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배곯는 제자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선생님의 이야기, 의사선생님께서 별을 볼 수 있도록 유리창을 닦는 소녀와 그 발자국을 따라가 보는 의사 선생님의 훈훈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와 같이 초등학생들이 쉽게 우리 문학에 접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감사하다. |
|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는 너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삶.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가진 것이 부족하다며 더 큰 것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 뺏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
|
작가 스스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썼고, 따뜻함이 남아 있는 글이라 평한 5개의 단편글들이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한다. 물론 전해지게 되기까지 많은 생각과 정리를 하여야 하지만 모두의 삶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일부인 것들이어서 낯설지가 않다.
그 중 "선생님의 밥그릇"을 통해 메말라가는 교육의 현실과 견주어 생각되는 것이 많다. 지식과 지혜의 전달을 해 주시는 것은 물론 삶의 방식도 예행케 되는 학교에서 과연 무엇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가하는 의구심과 반성을 해 보게 된다.
한참 전 보릿고개가 있던 학창시절에도 삶은 비록 고달펐어도 그만의 낭만과 추억이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도 하루 동안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여 지적 당한 아이들에게 청소나 도우미 역할을 시키는데 그때부터 선생님들은 그러한 방법을 적용하셨던 듯......, 그런데 건강을 염려해서 하던 도시락통 검사가 문상훈의 빈 도시락 사정을 알게 된 계기로 해서 사라지게 된다.
그때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 평생 습관이 되었던 속내를 후에 알게된 모두는 감동하는 분위기로 마무리하게 된다는 이야기. 제자를 위해 밥그릇의 절반을 덜어 낸 이유, 그럼으로해서 항상 자신의 마음이 함께 하고 있으니 희망적으로 살아가라는 격려......
그는 물론 모두를 위해 강요하기 보다는 스스로 소신으로 애쓰는 본보기를 보이시는 선생님을 둔 그들은 얼마나 든든했었고 앞으로는 또 얼마나 행복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한 사랑과 정이 뭍어나는 사제지간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
| 화가는 나들이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감에 젖었다. 그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비록 꿈에서였지만 아들이 그의 그림으로 인해 행복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이론에서도 말해 주듯이 그것은 아마도 화가 이중섭의 욕구가 아들을 꿈에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단 한가지 그림 그리는 것이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와 그의 현실적인 한계상황이 그를 꿈 속에서도 그림 그리게 하였다. 아버지의 사랑이 죽음을 초월해서 꿈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을 통해 영적인 메시지로 전달된다는 상상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성격은 몽상적임을 공인한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그리움을 아버지와 나누고 있는지,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 혹시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지나 않은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문제제기까지 하게 만드니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르뽀적 교훈도 담는다. 별을 기르는 아이는 오래 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전통 이야기 같다. 별을 기른다는 말은 가슴 속에 별을 품고 그 별을 만들어간다는 뜻일 거다. 하지만 별을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문학적인 상상에서만이 가능한 일임을 안다. 별은 분명히 행성이고 내 마음대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움직인다고 해서 같이 움직이는 것이 분명 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별을 분명히 기르고 있었다. 별을 소망하는 마음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의 창문을 닦는 그 마음이 바로 별의 마음이고 별을 닦는 마음인 것이다. 우리는 별을 닦으면 별을 기를 수 있고 별을 소유할 수 있다. 별을 닦는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요, 꿈을 꾸준히 키워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를 수 있는 별은 분명 존재하며 그런 별은 저마다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누구나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밥그릇을 이 시대에 재차 읽기에는 내용이 솔직히 진부하다. 선생님의 천편일률적인 밥 덜어 먹기가 어쨌다는 것인가? 교사라는 직업에서 그러한 옹고집적인 부분이 선생님의 청렴을 지탱해준다고 우리는 과연 믿어도 될까? 하지만 한심하더라도 이런 분 밑에서 배워보고 싶다. 좀더 강직하고 우직한 근성으로 학생들을 아우룰 수 있는 카리스마가 분명한 선생님 밑에서 학생이 되어 보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방식은 일종의 진화적 차원에서 이해타산에 걸맞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자꾸 업그레이드 된다. 그 가을의 내력은 황순원 선생님의 소나기와 김유정 선생님의 동백꽃을 읽는 듯하다. 소나기의 형상화된 감동과 구수한 시골 정경을 후각적 감동을 안겨주는 토속적인 동백꽃의 감동을 세기는 덜 하지만 동시다발로 안겨주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그 가을의 내력은 상상력이 좀 덜하다. 예상대로 석구는 금옥이를 사랑한 거였고 금옥이는 그런 석구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석구가 누렁이를 싫어했던 이유는 어쩌면 금옥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게 원래 들키고 싶지 않다가도 들키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좋아지는 게 아닌가? 잔잔한 감동을 준 이 청준 선생님의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추측컨대 작가 역시 욕심없이 쓴 글이 아닐까 싶다. 어떤 큰 서사의 매력은 없어도 따뜻하고 잔잔해서 더욱 오래가는 감동이라고 믿는다. 당신도 그 느낌에 젖어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