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91%
  • 리뷰 총점8 9%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9.0
  • 30대 9.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6)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도대체 지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대체 지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용보기
"인간의 고결함은 하루를 자신의 취향, 그러니까 강제가 아닌 자신의 욕구에 따라 형상화할 가능성에서 나온다."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著,『 사냥꾼, 목동, 비평가』122쪽, 열린책들 刊   만인이 자유와 평등과 풍요를 누리는 이상향(理想鄕)을 설계해보려는 시도는 인간의 오랜 역사내내 수행되었지만 어느 것도 시대성을 탈피하지 못했던 싶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도대체 지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용보기

"인간의 고결함은 하루를 자신의 취향, 그러니까 강제가 아닌 자신의 욕구에 따라 형상화할 가능성에서 나온다."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著,『 사냥꾼, 목동, 비평가』122쪽, 열린책들 刊

 

만인이 자유와 평등과 풍요를 누리는 이상향(理想鄕)을 설계해보려는 시도는 인간의 오랜 역사내내 수행되었지만 어느 것도 시대성을 탈피하지 못했던 싶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 또한 제국주의, 계급주의의 당대 이해를 넘어서지 못했다.  부를 독식한 자와 빈곤에 허덕이는 자, 지배하고 착취하는 자와 종속되어 부림을 당하는 자, 전쟁을 일으키는 자와 전쟁에 이끌려 생사의 투쟁를 벌여야 하는자,  자기 취향의 여가를 즐기는 자와 생존을 위한 노동에 얽매여 있는 자와 같이 지면에 모두 열거 할 수 없을 만큼의 불평등과 불공정은 인간 세계에서 오히려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을 뿐이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로보토피아(Robotopia)와 로보칼립스(Robocalypes)의 갈림길를 전망하며 AI와 로봇, 자동화를 비롯한 제2 기계시대의 낭만적 전개와 비극적 예측이 교차하고 있지만, 사실 미래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이들 기술주의자들, 이를 추동하는 거대 자본가들이라는 점에서 대중은 무력하기 그지없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칼립스가 아니라 유토피아라고 주장하지만 자기 편익과 권력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만인에게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결코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아니 화폐와 권력을 쫓을뿐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누가 미래를 알겠는가?  다만 인간의 역사는 지배와 피지배 계급의 역사이상이 아니었다는 점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사회는 인간사회를 과연 유토피아로 안내할까? 아니면 절망적 디스토피아로 이끌까?

 

아무런 사유와 행동도 없이 그저 이들 자본가와 기술자가 주도하는 세계를 방관하면 절로 로보토피아의 세상이 도래하게 될까? 지금이라도 거대 자본이 설치한 플랫폼에서 소비하며 오락에 심취하여 마치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자각해야하는 것 아닌가?  행위에 대한 자기 인식이 사라진 인간들이 많을수록 지옥의 문은 쉽게 열릴지도 모른다.  현실에 대한 준엄하고 냉정한 이성적 비판,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세계를 설계하려는 유토피아에 대한 사유는 그래서 바로 지금 더욱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꿈일지언정 우리가 시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토머스 모어'는 인간 공동생활에 대한 설계 중 당대 최고의 걸작인 『유토피아』의 쓰기를 마치며  "나는 이런 세계의 실현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망할 뿐이다."라고 겸허하고 솔직한 심정을 남겼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제1부는 당대 영국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부정의 요인들을 신랄하고 준엄하게 비판하는, 즉 디스토피아인 현실 세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제 2부는 이들 문제점이 해결된 '어디에도 없는 나라 (ou+topos)', 즉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Utopia)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까지 잡아 먹는다고 들었습니다."     - 28쪽에서

 

사실 16세기 초 영국사회란 프랑스와의 지난한 100년 전쟁을 끝내고 다시금 귀족간의 헤게모니 대결인 일명 장미전쟁으로 불리는 30년간의 내전으로 인민들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있는 세계였다. 더구나 귀족인 대지주들의 양모 사업에 대한 탐욕으로 농민들은 그들의 집과 토지로부터 내쫓겨 생존의 가능성을 박탈당하고 도적과 걸인으로 양산되고 있었다. 국왕의 불의에 비판적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끝내 1535년 7월 반역죄로 처형되었던 현실 최고 지위의 정치가였던 토머스 모어의 정의와 양심에 대한 성품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하겠다. 

 

오늘날 우리네 정치배들의 양심과는 그 격이 다른 인물이었던 듯하다.  한국 사회가 이러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 누가 그를 외면하겠는가?  1부는 자신의 토지와 집으로부터 쫓겨나 생존을 위해 걸인과 도적이외에는 길이 없었던 사람들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균형을 잃은 사법제도의 비판이 눈길을 끈다. 귀족과 부르지와 권력집단은 빵을 훔친자를 사형으로 엄벌하는 것이 범죄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초에 이들을 양산한 자들이 누구인가? 또한 도둑질에 대한 형벌로써 사형이란 양형기준이 형평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이들에게 생존의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할 정치권력이 오히려 이들로부터 그것을 빼앗은 것이 아닌가? 그리곤 그들을 법이란 잣대로 처형하는 것을 어찌 정의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버젓이 이와 동일한 사태가 벌어지곤 하는데,  2009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용산 재개발지구 철거민들의 저항을 강경진압을 통해 무참히 살해하는 파렴치한 권력,  16세기 영국의 탐욕스러운 귀족들과 빼닮지 않았는가?  2021년 4월 서울시장에 압도적 지지율로 선출된 자는 폭도였기에 이들을 진압하려다 살해하게 되었다고 TV토론에서 주장했다.  생존의 길이 막혀 저항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이들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신념(?)이 지배하는 세계, 참으로 우울한 세계, 모어가 느꼈던 세계, 디스토피아에 가 닿는다.  

 

2부는 54개의 도시로 구성된 된 국가, 유토피아를 통해 1부에서 비판되었던 사회적 문제점들, 다시 말해 당대를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던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속박과 억압으로 부터 해방된 인간들의 자유와 풍요, 고귀하고 열린 정신 세계와 덕으로 충만한 삶의 세계를 펼친다.  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모어가 설계한 이 가상의 세계가 지닌 정치와 도덕, 종교, 일상의 삶을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인간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가치들이 무엇이었는지,  진정 인간의 존엄성을 서로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에 대한 견해를 경청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학자계급, 시민계급, 노예계급으로 삼분된 유토피아의 계급사회는 어불성설일 것이며, 여행허가서를 비롯하여 일일 여섯 시간 노동의 엄수를 감시 통제당하는 세계를 이상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정복한 국가로부터 배상금과 획득 토지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의 축적으로 국가 대부사업과 전쟁비용을 준비한다는 발상은 다분히 제국주의적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이러한 시대성을 돌파하지못한 한계를 떠나 사유재산과 화폐(돈), 즉 축적에 대한 비판은 가히 자본주의의 본원적 모순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16세기에 선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돈이 사라지면 빈곤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 141쪽에서

 

이것은 '부자의 곡간'이라는 축적의 현장에 대한 적나라함으로 드러난다.  흉년으로 수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는데, 그 곡간에는 기근과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모두 살려내고도 남았을 식량이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화폐가 없다는 한가지 만으로도 귀족성, 장엄성, 화려함, 장대함이 사라질 것"이라며, 축적과 계급성의 과시 욕망 수단으로서의 화폐를 간파하는 것은 모어의 통찰력을 돋보이게 한다.

 

궁극적으로 모어의 유토피아 설계, 그 목표는 가능한한 인간성을 많이 지키고, 인간성의 반경을 확대하는 것이다.  기술이 되었던, 법이나 제도적 권력이 되었든, 그 무엇이든 인간성의 축소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력으로 상품화된 인간, 세금원으로서의 데이터화된 인간, 물품을 소비할 돈벌이 수단으로서 대상화 된 인간처럼 인간 본질에 대한 경멸을 밑에 깔고 있는 권력화된 지배의 시각이 인간성에 침투할 때 그것이 곧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전락하는 길이라는 점이다.  2021년 우리들의 사회는 이러한 지점으로 이미 침잠해 들어가고 있다. 소수의 부류와 나머지 대다수의 데이터화된 인간 부류로 나누어진 계급사회, 로보칼립스의 도래를 저지하고 로보토피아로 향하는 것은 오직 인간 대중의 몫이다.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물질의 편향성과 양극화의 해소 등등 오늘의 인간사회가 안고 있는 해결되어야 할 부정적 모습은 갈수록 더해져 암울해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일까?  인류의 지성들은 시대가 안고 있는 인간사회와 삶의 태생적 문제에 대한 본원적 현상을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 사회를 설계하고 전망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시켜왔다. 이처럼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하고 모든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의 장소,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모색이라 할 수 있다.

 

유토피아(Utopia)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꿈은 실패한 낙원, 암울한 현실의 세상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보이기만 한다.  결국 이상적 사회를 꿈꾸지만 오히려 그 추구는 반(反)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낳기도 하고, 경계와 비판의 사회로서 실로 다양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케케묵은 갈등으로 그 균열이 날로 커져만 가는 듯한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새로운 가치와 이상을 실현키 위한 사색의 시간으로서 '대안사회' 에 대한 지성사의 뼈대를 성찰하는 것은 아마 유익하고 또 유익할 것이다. 

 

유토피아의  21세기 버전인 『사냥꾼, 목동, 비평가』에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유토피아의 핵심에는 "자발적 동기, 즉 자기 규정적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 '목적의 독재'로부터 해방되어 '목적 없는 합목적성', 즉 그 자체로만 목적이 있는 예술과 같은 활동이 인간 삶의 행복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썼다.  『유토피아』에서 인간의 삶을 쪼그라들게 하는 것들에 대한 저항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는 비록 단 하나의 의미를 건져낼망정 어떻게  살게 될 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헤아리게 해주는 인류의 영원한 고전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도대체 지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누스쿠암(Nusquam)"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유토피아
"유토피아" 내용보기
정작 내 발제 준비하느라 “세계사의 구조” 읽는데도 빡세서 책은 못 읽고 참석했지만 어제 새움 독토에서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 고전 “유토피아”가 다시 떠올랐다. 지난 여름방학에 2학기 수업 평가 준비하면서 말로만 듣던 “유토피아”를 정독했다. 고등학교 3학년 수업하고 있는 “윤리와 사상”, 사회사상 이상사회 단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
"유토피아" 내용보기

정작 내 발제 준비하느라 “세계사의 구조” 읽는데도 빡세서 책은 못 읽고 참석했지만 어제 새움 독토에서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결국 고전 “유토피아”가 다시 떠올랐다. 지난 여름방학에 2학기 수업 평가 준비하면서 말로만 듣던 “유토피아”를 정독했다. 고등학교 3학년 수업하고 있는 “윤리와 사상”, 사회사상 이상사회 단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읽고 대입시 내신 영향 적은 2학기에 수행평가로 독서 토론을 걸었다. 청소년들이 사회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 이런 고전이 있다는 점을 알고 책을 만져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깝게는 특히 인문사회학 지향 학생들에게 국어 비문학 문제 풀이, 면접, 논술 준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인간상과 사회사상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가진 상태로 시민으로 사회에 나가기를 바랐다. 워낙 내신이 대입시에 전혀 영향 없는 학기여서 그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자신이 없기는 하다. 아래는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함께 자세히 읽고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기록해둔 부분들이다.

 

“... 사유 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돈이 모든 것의 척도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나라든 정의롭게 또 행복하게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 최악의 시민들 수중에 있는 한 정의는 불가능합니다. 재산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수는 불안해하고 다수는 완전히 비참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래서 아주 소수의 법만으로도 대단히 훌륭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유토피아의 현명하고도 성스럽기까지 한 제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들은 모두 덕을 숭앙하면서도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고 또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살아갑니다. 이에 비해 다른 나라에서는 늘 새로운 법을 만들면서도 만족스러운 정도로 질서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얻는 것을 모두 자기 사유 재산이라고 부릅니다만, 그토록 많은 신구의 여러 법들로도 각자의 소유권을 보장하거나 보호하는 것, 심지어 다른 사람 재산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같은 재산에 대해 여러 사람이 차례로, 혹은 일시에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므로 소송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노라면, 플라톤이 모든 물건의 평등한 분배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법이 제정을 거절한 것이 이해가 됩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현인이었던 그는 모든 사람이 복리를 누리는 유일한 길은 재화의 완전한 균등 분배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파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개인 소유인 곳에서 과연 그런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무리 재화가 풍부하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소유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소수의 사람들이 재화를 독점하게 되고 대다수 사람은 가난 속에 남겨지게 됩니다. 그 결과 두 종류의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부자들은 탐욕스럽고 사악하며 쓸모없는 자들인 반면, 빈민들은 자신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자들로서 주제 넘지 않고 소박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걸 보면 양측의 재산 상태가 뒤바뀌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라서 나는 확신하건대 사유 재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올바르고 정당한 재화의 분배도 불가능하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통치도 불가능합니다...”, 52-53쪽.

저자 토머스 모어는 윤사 평화 단원에 나오는 에라스무스와도 친분이 있었던 인문주의자이다. 도덕 철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가 떠오르는 언급을 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유명하듯 그는 여기서 사람들이 재산 축적을 위해 욕심을 부리고 갈등하게 한다는 이유 때문에 사유 재산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 그가 제시한 유토피아에서 사유재산 철폐가 왜, 어떻게 가능할까? 어제 “거대한 전환” 독토 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오이코노미적인 노동에서는 목적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가정을 중심으로 자급자족했는데, 현대에 똑같이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갖자는 목적을 공유해야 지금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다. 유토피아에서는 덕을 중시하면서, 하루 6시간만 노동하고 나머지 시간은 깊은 연구나 공부, 수준 높은 여가 생활을 하는 가치관을 공유한다. 이런 점들이 고대 그리스 공동체주의, 덕윤리적 맥락을 떠올리게 한다(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모어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이상도 언급하고 있다). 여기 더해 세계화 시대이지만 오히려 지역 상황에서 필요한 대로 공동체 안에서 협업하고 돌보며 생산, 소비하는 체제도 대안으로 생각해보았는데, 이 점에서 유토피아 같은 경우 여러 섬들이 ‘지역 자치’를 할 수 있을 듯 나눠져 있는 점도 돌아볼 만하다.

 

“... 우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경우에는 남편이 빈둥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라든지 소위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사나 귀족이라고 불리는 지주들을 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붙어 먹고살며 뻐기고 돌아다니는 깡패 같은 시종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 좋고 건장하면서도 병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 걸인들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생필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모든 것의 표준이 되는 곳에서는 순전히 사치와 방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헛되고 무용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일에 투입되는 많은 인력을 정말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편의품과 필수품 생산에 돌린다면 어떤 결과가 될지 생각해보십시오. 아마도 생산량이 너무 커져서 가격이 떨어지고 그래서 노동자들의 생계가 힘들어질 정도가 될 겁니다. 무용한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모두 유용한 직종으로 돌리고, 모든 게으름뱅이(이 사람들은 실제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두 배나 많이 소비합니다)에게 생산적인 일을 시킨다면, 편의품과 필수품을 생산하는 데 한 사람 당 정말로 적은 시간만 일해도 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물품까지 포함해서입니다. 물론 그 쾌락은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쾌락을 가리킵니다.”, 72쪽.

자본주의가 이윤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게(+‘상업’, ‘금융’ 포함) 만드는 시스템이고, 이에 따라 경제학은 (이기적으로)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 본성인 듯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새움에서 읽고 있는 책들에서 주장하듯 그렇지만은 않다고 보는 학자나 증거 자료들도 있다. 모어는 여기서 마치 현대 자본주의를 내다본 듯한 비판을 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생산해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필요한 욕구만 채워도 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에피쿠로스 학파가 주장하던 소극적 쾌락주의가 생각났다. 일하지 않는 ‘쓸모없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함께 열심히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도록 일한다면 하루 6시간만 일해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후 남는 시간은 수준 높은 여가 생활을 하도록 제안한다.

 

“도덕 철학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우리와 유사한 주장을 폅니다. 선의 성격을 조사하고 육체의 선과 정신의 선, 그리고 외부 환경의 기여를 구분합니다. ‘선’이라는 이름이 그 셋 모두에 적용되는 것인지 오직 정신에만 적용되는 것인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덕과 쾌락을 논하지만,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의 행복이며, 행복이 한 가지로 이루어졌는지 여러 가지로 이루어졌는지를 따집니다. 그들은 인간의 행복이 거의 대부분 쾌락을 이루어진다는 견해에 대소 과도하게 경도된 듯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진지하고 엄격하다 못해 가혹하고 엄숙한 종교를 통해 이 쾌락주의적hedonistic 철학을 옹호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행복을 논할 때는 그들의 철학적 합리주의에 반드시 종교 원칙을 결부시킵니다. 이러한 종교 원칙 없이는 철학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때 미약하고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89-90쪽.

 

“그들이 쾌락이라고 할 때는 자연의 인도에 따라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 기쁨을 느끼게 되는 심신의 상태와 운동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그들은 사람의 식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신의 감각과 올바른 이성을 따름으로써 사람은 자연적으로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큰 쾌락을 배제하거나 고통이 뒤따르는 법이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자연에 반하는 쾌락, (마치 이름만 바꾸면 사물의 본성까지 바꿀 수 있다는 듯이) 전적인 허구로서 ‘기쁘다’고 여기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복을 파괴합니다. 왜냐하면 쾌락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혀 단맛이 나지 않고 오히려 쓴맛만 가득한 것들이 세상에는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욕망의 도착된 유혹 때문에 그런 것들이 대단히 큰 쾌락응로 간주되고 심지어 인생의 지상 목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93-94쪽.

모어는 유토피아인들의 쾌락론을 나열하면서 실제로 91쪽에서 ‘유토피아인들은 이상화된 에피쿠로스주의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한 쾌락론이 유토피아인들의 이상적 인간상과 사회상으로 이어진다. 요는 현대인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만이 진리가 아닐 수 있고, 우리가 쾌락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모어가 들고 있는 구체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지금도 고등학생들이 생활과 윤리에서 학습하고 토론하는 중요한 이슈들이다. 모어는 유토피아인들이 생각하는 ‘쾌락의 본성nature’에 대해 나열한 후, 그들이 고통과 쾌락을 중심으로 ‘안락사/존엄사’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예로 들어 보이고 있다. 건강 자체가 쾌락을 준다는 언급을 보라.

“그들은 진정한 쾌락을 여러 종류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크게 보아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으로 나뉩니다. 정신적 쾌락은 지식, 그리고 진리에 대한 관조로부터 오는 즐거움, 또는 잘 보낸 한평생을 되돌아볼 때의 만족이나 장래의 행복에 대한 의심할 바 없는 희망 등입니다.

육체적 쾌락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 것은 감각을 만족시키는 즉각적인 즐거움입니다..

두 번째 종류의 육체적 쾌락은 고요하고 조화로운 육체 상태, 무질서에서 벗어난 건강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건강한 상태는, 고통으로 방해받지 않는다면, 외부적인 자극이 없더라도 그 자체가 쾌락을 줍니다...”, 98쪽.

 

“환자와 죽어 가는 사람에 대한 간호

... 이 나라에서는 환자들을 아주 극진히 간호하며, 그들을 위한 약과 음식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또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환자를 방문한 사람은 곁에 앉아서 그와 대화하며 최선을 다해 위로합니다. 하지만 그 병이 치료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극심한 고통이 계속된다면 사제와 공무원이 찾아와서 더 이상 그런 고통을 당하지 말라고 재촉합니다... 이제 사는 것이 단순히 고통에 불과하고 이 세상이 감옥처럼 된 이상 삶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해방되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는 쾌락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므로 현명한 일입니다...

... 이런 주장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굶어 죽든지 아니면 약을 먹고 고통 없이 잠들어서 죽음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지에 반하여 이런 조치를 취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106-107쪽.

 

아래와 같이 유토피아의 ‘교정적 정의’(처벌, 재판, 관습 등/종신노역형을 주장한 베카리아)를 다루는 부분이나, 외국과의 관계에서 ‘피해 발생 여부나 정도’를 중심으로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다루는 부분들은 공리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범죄에 대한 형량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중범죄는 노예형으로 다스리는데, 이것이 사형보다 범죄 예방에 효과적이고, 또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노예는 범죄가 결코 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항구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 그들은 형벌을 통해 범죄를 예방할 뿐 아니라 명예를 고양함으로써 덕을 장려하기도 합니다. 나라에 많은 봉사를 한 뛰어난 사람의 동상을 광장에 세워서 훌륭한 선행의 기억을 보존하고 후대의 시민들이 조상의 영광을 따르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111-112쪽.

 

“이처럼 유토피아인들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그들의 우방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에는 극심하게 응징을 가합니다만, 오히려 그들 자신의 권리를 침탈당한 경우에는 그렇게 엄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기를 당해 피해를 보았으나 신체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을 때는 피해 보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교역 관계를 끊는 정도로 그치곤 합니다. 자신들보다 우방 국가 시민을 더 소중히 여겨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동맹국 상인들이 피해를 본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재산을 잃는 것이지만, 유토피아인들이 어떤 것을 상실한 경우 그것은 이 나라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공동 소유물 가운데에서 잃은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풍부해서 어차피 수출되었을 것들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국민의 생명과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피해에 대해 많은 병사의 목숨을 빼앗으며 복수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 중 어느 누구라도 외국 정부에 의해서든 개인에 의해서든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되었다면, 그들은 우선 이 사태를 조사할 사절단을 파견하고 그 일에 책임이 있는 자를 넘기라고 요구합니다. 만일 그 요구가 거절될 경우 그들은 지체 없이 전쟁을 선포합니다. 만일 요구한 책임자를 넘겨받으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하거나 노예로 삼습니다.”, 116-117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22.11.26.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유토피아
"유토피아" 내용보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고전입니다. 사유 재산이 없고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며, 당시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이야기라기보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과연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묻게
"유토피아" 내용보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고전입니다. 사유 재산이 없고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를 그리며, 당시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이야기라기보다, 지금 우리의 사회는 과연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묻게 만드는 철학적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읽는 동안 ‘완벽한 사회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고민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짧지만 깊은 사유를 남기는 고전으로, 한 번쯤 꼭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9 2026.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아닌가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아닌가 " 내용보기
유토피아단순한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도 많이 들어본 단어이지만 이렇게 통찰력있고 심오한 내용을 가진 책이 있었구나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이 세상은 과연 유토피아인가 더 나은 유토피아는 어떤 세상일까그것은 누구에게나 이상적일까아니면 우리가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는 것들도누군가에겐 이상이, 꿈꾸는 유토피아일수 있을까여러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읽어보게 된 책이었어요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아닌가 " 내용보기
유토피아단순한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도 많이 들어본 단어이지만 이렇게 통찰력있고 심오한 내용을 가진 책이 있었구나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이 세상은 과연 유토피아인가
더 나은 유토피아는 어떤 세상일까
그것은 누구에게나 이상적일까
아니면 우리가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누군가에겐 이상이, 꿈꾸는 유토피아일수 있을까

여러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읽어보게 된 책이었어요
d*******1 2026.01.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역사 수업과 함께한 유토피아
"역사 수업과 함께한 유토피아" 내용보기
역사수업과 함께한 북클럽 첫 번째 책이었다. 어릴 때 고전 100선 추천 도서로 이 책을 봤을 땐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16세기 당시의 유럽 사회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 깔리고 2장부터 읽고 앞쪽을 읽으라고 하신 북클럽 리더이자 역사학자의 이끎이 주효했다. 짧지만 완독하지 못했던 책을 의미있게 마치고 나니 북클럽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역사 수업과 함께한 유토피아" 내용보기
역사수업과 함께한 북클럽 첫 번째 책이었다. 어릴 때 고전 100선 추천 도서로 이 책을 봤을 땐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16세기 당시의 유럽 사회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 깔리고 2장부터 읽고 앞쪽을 읽으라고 하신 북클럽 리더이자 역사학자의 이끎이 주효했다. 짧지만 완독하지 못했던 책을 의미있게 마치고 나니 북클럽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YES마니아 : 골드 y*****1 2025.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유토피아
"유토피아" 내용보기
토머스 모아의 [유토피아]는 500년이 지난 고전 중에 고전이다.그것만으로도 읽어야하는 이유는 충분하다.[유토피아] 책에는 토머스 모어가 말하는 이상국가를 그려내고 있다.15-16세기 당시 영국의 부조리함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유토피아]가 고전으로써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유토피아 (utopia) 란 어디에도 없는 곳'이자 '세상에서 가장 좋
"유토피아" 내용보기
토머스 모아의 [유토피아]는 500년이 지난 고전 중에 고전이다.
그것만으로도 읽어야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유토피아] 책에는 토머스 모어가 말하는 이상국가를 그려내고 있다.
15-16세기 당시 영국의 부조리함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유토피아]가 고전으로써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 (utopia) 란 어디에도 없는 곳'이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우리 모두가 원하는 유토피아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출판사 중에 을유문화사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쁜 표지뿐만 아니라 쉽고 간결한 번역때문이었고 을유문화사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s*****0 2022.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유토피아
"유토피아" 내용보기
보통 유토피아 하면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의 보금자리로 이해한다. 토마스 모어는 전쟁과 종교문제, 질병과 기근으로 사회가 극심히 혼란을 겪는 와중에 민중의 참담한 현실을 모티프로 삼아 글을 썼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과연 가능할까?사실 유토피아는 저자의 상상에 기반한 것이지만 그것을 마냥 예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비판하고 또한 막연한 이상도
"유토피아" 내용보기
보통 유토피아 하면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의 보금자리로 이해한다.
토마스 모어는 전쟁과 종교문제, 질병과 기근으로 사회가 극심히 혼란을 겪는 와중에 민중의 참담한 현실을 모티프로 삼아 글을 썼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과연 가능할까?
사실 유토피아는 저자의 상상에 기반한 것이지만 그것을 마냥 예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비판하고 또한 막연한 이상도 예외가 아니다.
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은 허황된 것인데.
그럼에도 우리가 유토피아를 읽고 깨닫는 건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을유문화사는 기존의 양장본들을 싹다 문고본으로 교체하고도 가격을 거의 올리고 있다. 종이질도 별로고.
YES마니아 : 로얄 g********2 2022.04.22. 신고 공감 0 댓글 0